제 14 장 무림에 감추어진 비밀 혈비도 무랑 (5)
그날부터 장천의 거지생활은 시작되었다.
물론 거지생활을 안해도 잘 먹고 살 장천이였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면벽
굴에서 외워왔던 글귀를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그것도 거의 다 잊혀져갔는지, 점점
거지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자! 오늘 수입을 볼까?"
장사의 거지대왕 할아버지는 오늘도 어린 거지들의 수입을 보며 밥의 양을 결
정짓고 있었으니 역시나 오늘의 일등 역시 낙양에서 장사로 유학을 온 거지 장
천이 일등을 차지하는 순간이였다.
"자 오늘의 동냥왕은 장천이다. 자그만치 일곱전 팔푼이나 동냥을 받아왔다."
"우와!"
꼬마 거지들은 장천의 성적에 크게 놀라서는 탄성을 내지르니 쑥스러운 모습의
그는 뒷통수를 긁으며 사방에 흰 눈을 내리게 할 뿐이였다.
"자! 오늘도 두 바가지 옛다."
"헤헤!"
두바가지의 밥을 얻은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바가지를 받아드니 다른 꼬마 거
지들은 입맛만 다실 뿐이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곱전팔푼이면 이 정도의 밥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을텐데, 왜 단순히 두바가지에 밥에 만족하는 것일까?
처음 이곳에 온 장천은 이것이 말로만 듣던 거지세계의 왕초의 속임수가 아닐
까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후에 그런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곳 장사에 모인 거지들은 모두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고아들, 거지노인이 사
방으로 동냥을 다니면서 한두명씩 주어 온 녀석들이 십수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아이들도 나이를 먹는 법이니 열다섯이 넘으면 장성하여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어찌 동냥이 되겠는가?
이런 이유로 거지노인은 열다섯이 넘는 아이들은 장사의 거지세계에서 당호하
게 추방을 시킨다.
하지만 어린시절 고아가 되어 거지가 된 아이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
겠는가? 이런 이유로 거지노인이 도입한 방법이 거지 퇴직금제도였으니 일정양
의 동냥을 계속 받아온 거지들은 모든 돈을 노인에게 바쳐야 하고 열다섯이 넘
어 직장을 퇴직할 쯤 되면 어느정도의 돈을 아이에게 주어 자수성가 할 수 있
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거지노인의 이러한 일은 벌써 이십여년이 넘어가고 있었으니 이 장사 땅에도
거지퇴직금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꽤 있어 들어오는 수입은 꽤 짭잘한 편이
였다.
하지만 거지출신의 자수성가자 치곤 쉽게 돈을 주는 일이 없었으니 같은 직종
에 있었던 사람이 더 짜다란 말이 나오곤 했는데, 이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한번은 거지노인이 투덜거리는 장천을 보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거지가 무엇이냐?"
"예?"
"거지가 무엇이냐고 했다."
"음냐...음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거지가 아닌가요?"
그 말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빌어먹고 사는 놈들이 다 거지지, 하지만 말이다. 나 같은 늙은이야 이
제 힘이 없어 빌어먹고 사는 일 밖에 할 수 없다지만 너희는 이제 막 커가는
나이이니라."
"예."
"거지란 것이 다 그렇듯이 일을 안하고 빌어먹고 사는 것인지라 나중에 커서
이 거지소굴을 나가게 되어도 그런 타성에 젖어 게을러 질 수도 있는 것이다."
"......"
"이런 이유로 내 거지소굴에서 자수성가하는 녀석들에겐 쉽게 동냥을 해주지
못하고 호대게 아이들을 다루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쓴 맛을 알게되고 거
지란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
그제서야 장천은 노인의 뜻을 알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면벽굴의 글귀를 해석하
는 것을 조금 게을리 하게 되었던 것이다.
쌍도문에서 귀하게 자라, 어디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장천은 이런 거지소굴에
서 진정한 뜻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대충 동냥을 마친 장천이 일찌감치 다리 밑으로 내려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노인이 바가지를 안고는 서럽게 우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바가지들은 소년들이 밥을 먹는 그릇과 같은 것인데, 그 밑바닥에는 돌로 긁
은 써 놓은 몇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왜 우시고 계신 거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는데, 그 때 누군가의 인기척이 뒤에서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응?"
"쳇 들켰잖아."
뒤에서 온 녀석은 얼마 안 있으면 퇴직하게될 형진(形辰)이라는 소년이였는데,
장천을 놀래키려고 살며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공을 알고 있는 장천에게 일반인이 기척을 없애고 다가 올 수 없었던
탓에 들키고 말았는데, 잠시 천막 안을 들여다본 형진은 고개를 젖고는 장천의
손을 끌고는 천막에서 벗어났다.
"할아버지가 왜 울고 계시는 거지?"
"음....아들이 죽었으니까..."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형진은 조용히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아들?"
형진의 말에 장천은 조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왜 거지일을 하는 노인을 편하게 모시지 않는 것일까하
는 생각이였는데, 그 때 형진이 손가락으로 자신과 장천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나도 할아버지 아들이고, 너도 할아버지 아들이야."
"응?"
"우리들은 모두 고아란 말이야.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내가 아는 할아버지
도 고아 출신이시지..."
"그런데 아들이라니?"
"바보 녀석, 방금 말해줬잖아 우리들은 다 할아버지 아들이라고, 수십년을 이
일에 해오신 할아버지는 많은 아이들을 자수성가하게 해주셨지, 하지만 그 아이
들이 모두 다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야."
"응?"
"오늘 십년 전에 거지소굴에서 나간 사람이 죽었데, 수문(秀文)이라는 사람인데
거지소굴을 나간다음에 제대로 정착을 하지 못하고 노름판을 돌아다니다 하오
문 패거리들한테 걸려서 죽은거야..."
"아!"
"할아버지는 그 아이를 제대로 밖에서 적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시며 눈물 흘
리시는 거지 자신이 제대로 했으면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하고 말이
야."
그제서야 장천은 할아버지가 울고 있는 이유를 잘 알수 있었다.
"장례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치루기는 했지만, 비명횡사한 것을 슬퍼하시
는거지...하지만 수문이라는 형은 그렇게 비참하진 않을꺼야.."
"...자신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지?"
"그래...나도 얼마 안있으면 이곳을 벗어나게 되는데, 반드시 큰돈을 벌어서 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거지들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은 올바르게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부잣집에서
태어나 수많은 학문을 배우고 명문가에서 태어나 뛰어난 무공을 배운 기재들보
다 장천은 이들을 더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장천의 생활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으니 언제나와 같이 태평루의
앞에서 동냥을 하면서 글귀를 해석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서 서있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두형..?"
"응?"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그곳에는 화려하게 옷을 차
려입은 청년이 서있었다.
때마침 태양빛이 눈을 부시게 하는지라 장천은 정확한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그는 무릎을 꿇어서는 자신을 안고는 크게 반가워하며 소리쳤다.
"두형! 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누구세요?"
장천으로선 자신을 끌어안고 소리치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없는
데, 그는 장천을 안던 것을 멈추고는 그를 보며 말했다.
"이 자식! 나 동방명언이야! 명언!"
"아! 명언!"
그제서야 무랑촌에서 헤어진 형제인 명언이라는 것을 알게된 두형은 크게 놀라
소리칠 수 밖에 없었으니 두 사람은 어언 일년에 가까운 시간만에 재회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으며 일년만의 해우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더 이
상 참지 못한 동방명언이 장천을 바로 차면서 말했다.
"이 자식! 넌 역시나 옛날의 두형이 아니로구나!"
"헉! 무슨 말이야 명언?"
장천은 명언의 말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며 옛날에 두형이 아니라니 어찌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잠시 후에 밝혔졌는데, 코를 쥐고 괴로워하는 명언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옛날에 두형은 이렇게 지독한 냄새는 안풍겼다고 제발 목욕 좀 해라 이자식
아!"
"하하하 조금 냄새가 나긴 하지.."
그제서야 이유를 알아차린 장천은 뒷통수를 긁으니 역시나 은빛의 눈이 그의
주위에 수북히 쌓이기 시작했다.
"휴..."
녀석의 비듬을 보며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동방명언이였다.
장사의 여관에 들린 장천은 드디어 일년이 넘는 시간만에 겨우 목욕을 하게되
니 드디어 숨겨졌던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이였다.
일년의 시간동안 장천의 몸은 그때와는 달라 있었는데, 놀랍게도 과거 어여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귀여운 모습의 장천으로 변해 있었다.
"이거...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네?"
"응"
명언의 말에 동경을 바라본 장천은 예쁘장하던 자신의 모습이 다시 옛날의 얼
굴로 돌어와 있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 키까지 작아진 것은 아닐
까하는 생각때문이였다.
다행히 키가 작아지는 일은 없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겉모습을 보면
과거보다 조금 어려보여 열두살 정도의 조금 몸집이 큰 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
았다.
과거 열 다섯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것이 크게 줄어 든 것이니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던 장천이였다.
하지만 여자같은 외모보다는 차라리 이 모습이 더 나은지라 만족한 미소를 지
을 뿐이였는데, 어떻게 변한 자신의 외모를 동방명언이 알아봤을까 궁금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거지꼴을 하고 있는 나를 어떻게 알아봤냐?"
장천은 궁금한 표정으로 명언을 보며 물어보았다.
"나도 처음에는 네 녀석이 아닌 줄 알고 태평루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한 남자
가 다가와서는 형제를 찾지 않느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은조상과 데비드하고 번갈아 가면서 너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는
데, 그 사람이 너를 가리키면서 저 아이가 두형이란 아이라고 하더라고."
"음..."
장천으로선 그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금새 사
라져버리고 말았다.
일단은 동방명언을 다시 만난 것이 기뻤기 때문이다.
명언이 가져다 온 옷을 입게되자 조금 저까지의 거질 꼴은 완전히 사라진 장천
은 부잣집 외동아들네미 같은 모습이 되었으니 어느 누가 봐도 그가 태평루 앞
에서 구걸을 하던 거지라는 것을 알 수 없는 그런 모습이였다.
동방명언은 깨끗하게 차려 입은 장천을 보며 이제 홍련교의 형산지부로 떠나자
는 이야기를 했지만, 장천으로선 그 전에 만나보고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이 있
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면벽굴의 글귀를 해석하며 걸음을 하는 장천은 어느사이엔가 다리 밑
의 천막까지 도착해 있었는데, 그곳에선 형진이 생일을 맞아 드디어 거지천막을
벗어나는 파티를 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천막 안으로 난데없이 깨끗하게 차려 입은 소년무사 두명이 들어오
자 아이들은 크게 놀라며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상석에 앉아 있던 거지
노인은 오히려 그 모습에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였다.
"역시나..알고 계셨군요."
장천은 거지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거지가 아니였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늙으면 눈치가 빨라지니 말이다. 그래 네가 고심하던 문제는 모두 다
풀린게냐?"
그 말에 장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이요. 하지만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풀고 말겠어요."
"후후후...그래 그래야지 나의 아들이 아니겠느냐.."
"예...그렇지요. 헤헤."
장천은 그렇게 말하며 뒷통수를 긁으니 그제서야 아이들은 거지할아버지와 말
을 하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는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두형!!"
형진 역시 그가 두형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을 보며 손
가락을 내젖는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형형님이라고 불러야쥐. 애석하게도 내 나이는 올해로 열일곱살이거든."
"엥?"
열두살의 정도의 어린 장천이 자신의 나이를 열일곱살이라고 말하자 믿을 수가
없었지만, 장천이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리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
며 말했다.
"젠장할 열일곱살이나 된 놈이 거지소굴에서 퇴직도 안하고 있었다니 뻔뻔한
녀석이였군!"
"하하하! 그나저나 이런 모습에 화 안났냐? 어쩃든 널 속인 것이 되어버렸는데
말이야?"
"멍청한 놈! 네 녀석이 부잣집의 외동아들이라고 해도, 우리와 형제인 것은 변
함 없는데 무슨 화를 내? 오히려 기댈만한 형제가 생겨서 마음만 편하군만."
"하하하! 고맙다."
형진의 손을 잡으며 고마움을 표시한 장천은 조용히 거지할아버지의 앞에 절을
하고는 말했다.
"이만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그래...잘 다녀오도록 해라..."
"예."
절을 마친 장천은 미련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큰 마음을 먹고 뒤로 돌아서서는
동방명언과 함께 거지의 소굴을 떠났다.
오개월 정도의 짧은 거지생활이였지만,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준 장사의 거지촌
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장천은 드디어 본격적인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떠나가는 뒤에선 한남자와 거지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붉은 두건을 쓰고 있는 남자는 거지노인의 곁에서 말없이 단도를 사용하여 목
상을 깍고 있었는데, 장천의 모습이 사라질 쯤 노인이 그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지켜볼 셈인가?"
"......"
하지만 노인의 물음에도 붉은 두건의 사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조각상이 만들어지자 그것을 땅에다 내려놓고는 뒤돌아서는 경공을 사용하여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노인은 그가 만든 조각상은 천천히 주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것은 심
장을 비롯하여 여덟 곳에 단도가 박혀 있는 장천의 모습이였는데, 가볍게 손가
락을 올리니 조각상의 이마가 부서져 내리며 하나의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자네의 대답인가...'
노인은 목상에서 눈을 돌려 이젠 보이지도 않은 장천의 뒷모습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