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75화 (76/355)

제 14 장 무림에 감추어진 비밀 혈비도 무랑 (4)

하는 수 없이 면벽동에 앉아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장천이였

는데, 면벽의 동굴 벽들 사이로 무엇인가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응? 이건?"

벽에 새겨져 있는 것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이였는데, 그 하나하나에 뜻이

상당한 심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장천의 지금의 상태로는 그 심득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일단은 비도문

의 역대 문주들이 면벽을 하는 곳인 만큼 가치 없는 낙서는 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장천의 생각이였다.

한참을 그 글귀를 읽어본 장천이였지만 도저히 심득을 얻은 자의 글귀를 알아

볼 수 없었으니 아직 장천의 수준은 미천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조심스럽게 글귀를 하나씩 외워

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라도 어느정도 경지에 오르면 이 글귀가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

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글귀를 외우다보니 어느덧 한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으니

장천으로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주일간 면벽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달의 시간동안 장천이 한 것은 오른쪽 벽에 쓰여 있던 글귀를 외우는 것이였

고, 이젠 천천히 왼쪽의 벽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외우기 위해 수십번을 계속 반복하며 읽으니 어느 정도 의미가 전달이 되기 시

작했으니 왼 쪽벽의 글귀를 외우는데는 세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물론 두 벽에 써있는 글자는 양은 거의 비슷했지만, 왼쪽의 글을 읽어나가면서

다시 오른쪽의 글을 잊지 않게 외워나가게 되었고, 그 덕에 조금씩 의미가 해석

되어가면서 외우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벽의 글귀를 외웠을 때 장천은 천천히 앞을 돌아보니 할아버지의 초상화

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초반에 느꼈던 그런 싫은 감정보다는 오랜 시간 같이 지내 친숙해지는

감정이 드는 초상화였기에 가볍게 고개를 숙인 장천은 너저분해진 옷을 입은

채 천천히 면벽굴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면벽굴을 지키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지라 천천

히 마을로 걸음을 옮겨서는 비도문의 전각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인지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형제들과 여인들은

단 한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긴...'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들은 교에서 지시한대로 갔겠구나 생각을 한

장천은 촌장에게 작별의 인사를 할 겸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촌장의 집에 도착하자 젊은 청년 한명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리고 있었기

에 그는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촌장은 어디 있는가?"

"...돌아가셨습니다."

"음..."

전에 만났을 때의 모습을 미루어보아 죽을때도 됐다는 생각을 한 장천은 천천

히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랜 시간 면벽굴에서 지냈던 장천은 온 몸에 때로 시꺼멓게 변했을 뿐만 아니

라 옷 또한 너덜너덜 한지라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있었지만, 웬지 이런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전과는 달리 자신이 나가려고 하는 것을 막지 않는 마을 사람들이였기에 장천

은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 길을 재촉했다.

그에게 가진 것이라곤 몇푼의 돈과 함께 아홉 개의 비도, 그리고 동굴에서 가져

온 순백색의 물이 담긴 가죽주머니 뿐이였다.

가죽주머니의 물은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변질되지 않았으니 장천은 혹시 이것

이 무림에서 전설로 남는 공청석유(空淸石乳)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세상에 어느 문파가 그 귀보와 같은 공청석유를 먹 가는 물로 쓸 것인

가 하는 생각에 공청석유 비스무리한 약수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기가로 했다.

배고프면 산에 풀을 뜯어먹거나 열매를 따먹고, 밤이 되면 이슬을 맞으며 나무

귀퉁이에 잠을 이루며 장천의 여행은 계속되니 어느덧 시간을 세달이 넘게 흘

렀고, 장천은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장사, 이곳에서 장천의 일행들은 홍련교 지부에서 나온

사람들과 만나 동행을 하기로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만나기로 한 태평루(太平樓)에는 장천과 같은 거지가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니 장천은 들어가기도 전에 점원에 의해 밖으로 나뒹그러지고 말았다.

물론 무공을 사용하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상대이긴 했지만, 평민을 상대로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그로선 별로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태평루의 건물 옆의 구석에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거지꼴이

되었으니 이왕 거지라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어디선가 반쯤 부서진 쪽박을

앞에다 놓고는 터를 잡았다.

구걸하는 거지가 된 장천이였지만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이

한푼이라도 떨어뜨려 줬으면 하는 그런 것이 아니였다.

머릿속 가득히는 면벽굴에서 외운 글귀들이 계속 맴돌고 있었으니 그가 이런

거지 꼴을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그 글귀들을 생각하는라 씻는 것이 귀찮을 따

름이였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보니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고개를 숙인 장천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과 같이 다 헐은데로 헐어

버린 신을 신고 있는 더러운 발이였다.

한쪽발에 신은 밑창이 거의 다 닳은지라 긴 발톱으로 때가 끼여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지라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 장천은 잠시 후 그가 거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는 한 육십세 정도로 보이는 거지노인이였는데, 코 끝이 시뻘겋게 변해 있

는 것으로 보아 한잔 걸치고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세요?"

장천은 노인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는데, 그는 다짜고짜 들고 있던 지팡이로

장천의 머리를 한번 후려치고는 소리쳤다.

"이런 지나가는 똥개만도 못한 놈을 봤나. 거지라도 장유유서가 있거늘 이 늙은

노인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잽싸게 좋은 목을 가로채고 앉아 있어? 이

못된 놈 죽어라!!"

그 말과 함께 노인은 사정없이 지팡이로 후려갈기는 것을 멈추지 않으니 장처

는 고통에 머리를 안고는 몸을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면벽굴에서 외워두었던 글귀가 갑자기 터져나오며 해석

이 되는지라 크게 놀란 장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소리쳤다.

"아하!"

"헉!"

갑자기 장천이 벌떡 일어나서는 탄성을 지르자 노인은 크게 놀라서는 뒤로 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구나...그런 거였어..."

드디어 심득을 얻어낸 장천이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없겠는가? 하지만 난

데없이 봉변을 당한 노인은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는 대성통곡을 터뜨리기 시작

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젠 늙었다고 어디서 빌어먹다 온 거지새끼한테도 이런 봉변

을 당하는구나 아이고! 아이고!"

길바닥에 앉아 거지노인이 통곡을 하니 어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지 않겠는

가?

지나가던 행인들은 통곡을 터뜨리는 노인을 보며 좋다고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장천을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는데,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장천은 잠시 노인

을 한번 흝어보고는 멍한 얼굴로 물었다.

"할아버지 왜 울어요?"

"....."

지가 해 놓고선 모르는 척 하는 장천을 보며 잠시 눈을 흘기는 노인이였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정말 모르겠다는 것을 만인들에게 말

해주고 있었으니 노인으로선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알고 보니 저 노인네가 어린 거지 놈을 골탕먹이려 하는 거였군."

"세상 많이 살고 보아야 겠네, 어찌 저런 아이의 쪽박에 든 한푼 돈을 긁어먹으

려 저런 연극을 하는 거지같은 노인네가 있단 말인가?"

이런 모습에 행인들은 오히려 노인을 욕하고는 발길을 재촉하니 거지노인으로

선 거지 생활 수십년만에 이런 낯두꺼운 녀석은 처음 보는지라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할!"

더 이상 녀석을 상대했다간 이 장사 땅에서 자신이 설 땅이 없어질 것이란 불

안감에 쌓인 노인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녀석의 앞에 와서는 지

팡이로 무릎을 후려쳤다.

"끄악!"

갑자기 무릎을 강타당하자 장천은 자신도 모르게 주저 앉고 말았는데, 그런 녀

석에게 노인을 지팡이로 머리를 후려치며 말했다.

"네 이녀석 장사 땅에서 너 같은 거지새끼는 구경한 적이 없다. 어디서 굴러먹

다 온 거지새끼냐?"

그 말에 한참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장천이였으니 뭐 별로 말할 것도 없으

니 만큼 홍련교에 들어갔던 이름을 그대로 말해주기로했다.

"낙양땅에서 온 장천이랍니다."

"낙양이라...과연."

노인 역시 낙양거지들의 뛰어난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지라 고개를 숙이며 장천

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양땅이라면 거지로선 한 수 재간이 있다 할 수 있지."

"엥?"

아직 자기가 거지라는 자각이 없는 장천은 멍한 얼굴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리 나쁜 노인은 아니라는 생각에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어쨋든 노인장을 만나뵙게 되서 반갑군요. 존성대명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다시 지팡이로 후려갈긴 노인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고작해야 거지새끼들이 무슨 존성대명이냐! 장사에 터줏대감인 하노인이라 부

르거라."

"예. 하노인."

무공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의 손속이 여간 매운 것이 아니라 아

픈 머리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는 장천이였다.

이럭저럭 날이 저물어가니 장천은 그곳에서 쭈구려 앉아 잠이나 청해볼까 했는

데, 그 때 노인은 지팡이로 뒷덜미를 잡아끌어서는 그를 끄고 가기 시작했다.

"아!! 무슨 짓입니까?"

"잔말말고 따라오거라. 이런 곳에서 잠을 잤다간 뼈와 장기에 한기가 스며들어

젊은 나이에 되지기 싶상이니 말이다."

"앙!!"

눈물을 흘리며 노인에게 끌려 갈 수밖에 없었던 장천이니 그가 도착한 곳은 장

사의 개천 다리 밑이였다.

"이곳은 예로부터 말 안듣는 꼬맹이들에게 부모가 줒어왔다고 하는 다리 밑이

다. 지금은 장사 모든 거지들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니 네 녀석도 잠을 청할때면

이리와서 자도록 해라."

"예."

다리 밑에는 허수룩하게 만든 큰 천막이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자신과 비

슷하거나 어린 나이의 거지들 십여명이 모여서 돌맹이를 사용하여 놀음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젠장할 거지 새끼들이 무슨 놀음이냐 당장 집워 치우지 못할까!"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는 크게 소리지르니 어린 거지들은 노인의 지팡이를 피

하고자 사방으로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한식경 정도가 지나자 어느정도 진정이 되니 아이들은 다시 천막안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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