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68화 (69/355)

제 13 장 눈물을 흘리는 정파의 꼬맹이 (2)

"화룡패선은 교주님의 전용 함선으로 장강에서 단 한번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당시 장강을 주름잡고 있던 장강수로십팔채의 이백여척의 배를 침몰시켰다고

전해지는 무적의 함선이지."

"......"

장천으로선 홍련교에는 별 희한한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조직이 수적도 아닌 주제에 그 따위 배를 가져서 뭐하

겠느냐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일단은 좋은 배 한척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휴...그렇다면 이미 결정된 사항이란 거로군."

동방명언이 놀랄정도의 배를 가지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에 장

천은 은영영들의 생각에 따르기로 결정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장강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배가 일행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방명언이 침이 마르도록 설명한 화룡패

선이였다.

선두에는 거대한 용의 머리가 달려 있었고, 양쪽으론 수십문의 화포가 달려 있

는 배의 크기는 전장 100미터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데다가 하늘 높을 줄 모르

고 솟아 있는 돛대를 보며 장천은 뭐 이런 배가 다 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문제는 그런 화려한 모습이 아니였다.

화룡패선의 갑판 위에선 선원들이 황급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으며 지상

에서 수십개의 밧줄을 잡아당기며 힘을 쓰고 있는 무사들의 모습이 보였으니

장천은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옆에 있던 은조상을 보며 물었다.

"뭐야 저건...?"

"....좌초 됐군."

"....."

이름 거창하고, 시설 완벽한 홍련교 최대, 최고의 함선인 화룡패선은 어이없게

도 장강을 여행하는 시작부터 좌초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배를 끌어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무사들의 수는 거의 오백여명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그 수가 힘을 다하는데도 꿈쩍도 안하고 있으니 이 배를 타고 장강을

내려가려면 적어도 한달을 족히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장천이였다.

역시나 좋은 배를 탈 복은 없는 장천은 눈물을 흘리며 다른 배를 이용할 수밖

에 없었으니 그들이 이용하는 배는 흔히 볼 수 있는 관광용 노선 이였다.

"휴..."

"뭔 한숨을 그렇게 쉬어?"

"화룡패선을 타고 조금 뽐내고 싶었는데...."

은영영은 화룡패선을 타지 못한 것에 크게 실망을 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요즘 명문가 자제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 부모의 후광만을 믿고 화려한 것에

만 눈독을 들이니 말이야. 너도 생각이 있다면 네 힘으로 번 돈으로 살아갈 궁

리를 하라고 무림의 여인이 부모의 후광만 믿는 그런 정신상태로 어떻게 살아

가겠다는거야."

문제 있는 생각을 하는 은영영에게 한마디를 해준 장천은 방을 나가서는 갑판

으로 향했다.

과연 장강의 유람선인 만큼 쌍쌍이 모여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였는데, 그 대부

분이 돈 많은 집안은 귀공자와 귀공녀들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정파의 무사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갑판의 한 구석에서 조용히 혼

자 강가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나이는 한 열두살 정도이기는 하지만, 흔들리는 배에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는

자세로 보아 상당한 수련을 쌓은 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정하게 청의를 입은 채 등으로 한자루의 검을 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장천은 조금 호감이 들었기에 그가 서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드는 강가의 모습은 상당히 운치가 있었기에 장천은 소년의

감상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이군."

"아.."

장천의 말에 소년무사는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보았다.

단정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는 소년으로 눈에선 정광이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명문 정파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에게 가볍게 포권지례를 하며 장천은 자신의 소개를 했다.

"낙양에서 온 두형이라하네."

"아...곤륜에서 온 수경(秀敬)이라 합니다."

수경이란 소년은 여자보다 아름다운 남자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며 소개를 하

자 크게 놀란 표정으로 소개를 했는데, 그 순간 조금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이는지라 장천은 상당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협이 곤륜에서 왔다하니 곤륜파의 제자가 아닐까 생각되오만.."

"예. 곤륜에서 사부님의 명을 받아 서한을 전한 후 잠시 고향집에 들리러 가는

중입니다."

"고향이라면?"

"항주입니다."

"항주라 좋은 곳이지..."

물론 장천은 항주는 그 초입도 구경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일단은 소년과의 말

에서 밀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라 조금 아는 척을 했는데, 좋은 곳이란 말에

소년의 얼굴을 조금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그런가요..."

"....."

소년의 말에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 보는 장천이였

지만, 역시나 자신의 죄는 없는지라 크게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고향인 항주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보군.'

어차피 항주에 관해선 아는 것도 없는지라 이렇게 되면 더더욱 항주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한잔의 술을 나눔이 어떻겠는가?"

"아!..예."

조금 유약한 성격의 소년인지 장천의 말에 거부도 못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

경을 보며 무산으로 가는 뱃길이 그리 재미없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의 손을 잡고는 선실 안으로 끌고 갔다.

조금 큰 편에 속한 유람선인지라 배 안에는 작은 주점과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

기에 장천은 소년과 함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소년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큰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의 앞에 있는 잔에 소홍주를 한잔 가득 따라준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자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군."

"아..그렇습니까.."

장천의 말에 대답을 한 수경은 얼굴표정을 바꾸려고 했지만, 사람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표정인지라 수심 가득한 표정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답답할 정도의 거북스러운 표정이 되어 버렸으니 장천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젖고는 술잔을 들고는 한 수의 시를 읊었다.

"양인대작하월명(兩人對酌河月明) 두 사람이 술을 마시니 강가의 달은 밝기만

하구나

일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 한잔, 한잔 또 한잔

아취욕안군차거(我醉欲眼君且去) 내가 취해 눈감으려 하니 그대 또한 떠나가는

구나

명조유의포금래(明朝有意抱琴來) 날이 밝아 뜻이 있으면 거문고를 안고 찾아오

리라."

"??"

"하중대작이라 하여 본인이 잠시 이태백 어른께 시를 빌렸네."

"하하하.."

장천이 읊은 시는 이태백의 시인 산중대작이란 시였는데, 장천이 교묘하게 산화

개(山花開)란 단어를 하월명(河月明)으로 바뀌고는 분위기에 맞게 읊었기에 장

천의 재치에 수경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무슨 근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잊는 것도 중요한 것이네 근심

은 사라지지 않을 지언정, 그것을 이겨낼 여력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

장천의 말에 그는 수경은 깨닫는 바가 있었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협의 말을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자 우리 장강의 달을 보며 거나하게 취해보세나."

"예."

오랜 시간을 어린 모습으로 살아왔던 장천인지라 과거의 자신의 겉보기 나이와

같은 수경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두사람의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술잔을 나누고 있을 때 두 여인이 그들의 곁으

로 다가왔는데, 수경은 상당한 미모를 가진 여인인지라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

었다.

"어라? 왜그러나?"

수경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장천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는 고개를 돌아보았는

데, 아니나 다를까 가장 큰 문제거리의 여인인 은영영과 유능예가 자신을 노려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뭐하나 했더니 술이나 퍼마시고 앉아 있었군."

"영영이 너도 이런 녀석이 좋다고 따라 다니다니 나중에 고생길이 훤하구나."

"....."

두 여인의 말에 장천은 네녀석들이 내 마누라라도 되느냐 하고 소리치고 싶었

지만, 앞에 수경이 있는지라 차마 말을 뱉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장천은 양 옆에 자리를 하더니 그를 가운데 두고 술을 다작하기 시작

했다.

"정말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까.."

"우리같은 미모의 여인을 버려두고 술이나 마시고 있다니 정말 멋도 없는 남자

야."

"강호의 남자라면 당연히 여인을 아낄지도 알아야되는데 말이야. 안그러니?"

"당연하지 여인을 아낄지 모르는 남자는 삼류잡배도 못되는 녀석이라니까.."

두 여인의 수다의 사이에 갇힌 장천은 얼굴을 시뻘개질 수밖에 없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기는 했지만, 설마 새로 사귄 친구의 앞에서 이렇게 모욕을 줄지

는 생각을 못했다.

두 여인에게 갇혀 고생하는 장천을 본 수경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

았으니 그의 근심은 사라진 듯 했다.

장천을 어느정도 괴롭힌 두 여인은 수경과 통성명을 나누니 네사람은 다음날

새벽까지 술잔을 나누며 친목을 돈독히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달래며 장천은 흔들거리는 몸으로 갑판으로 나섰는데,

역시나 어제 저녁과 같은 자리에서 수경이 멍하니 강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을 볼 수 있었다.

"아! 수소협."

"두대협.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

수경의 얼굴에선 어젯밤의 숙취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 장천은 어리게만 보였

던 수경의 주량에 크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한 주량이로군...어제 그렇게 마셨는데도 멀쩡하다니 말일세..."

"태생이 그런 때문이지요...."

"응? 태생?"

어떤 태생을 가져야 주량이 쎌 수 있을 것인가란 생각에 장천은 장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말과 함께 그의 표정이 또 다시 크게 변하니 고향에

관한 일이 태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항주는 생향의 도시라고 했겠다..'

그런 생각을 하자 금새 수경의 태생을 이해할 수 있는 장천이였다.

"자네 기녀의 자식이였던가?"

단도직입적인 자신의 말에 그의 몸이 흠찟함을 보였기에 장천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고생 좀 했겠군.'

기녀의 자식이라 한다면 호로자식이라는 욕을 먹으며 천대받는 것은 보통의 일

이였고, 거기에다 곤륜이라는 명문정파에서 생활했다면 많은 따돌림을 받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그런 그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항주로 간다는 것은 잊고 싶었던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이렇듯 수심에 잠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경은 장천이 기녀의 자식이란 말에 크게 기가 꺽인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에 조금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멍청한 자식!"

더 이상 참지 못한 장천은 그대로 수경의 뒷통수를 후려갈기고 말았으니 난데

없는 봉변에 그는 크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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