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66화 (67/355)

제 12 장 귀곡성의 남자를 장가 보내라! (4)

화무이관의 숙소에 하룻밤을 지낸 소령은 다음날 본격적인 수련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수련에도 은석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련을 시키고

있었기에 소령으로선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목소리가 무섭길레 그러실까...'

착한 소령으로선 은석영이 조금 안스럽게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사람이기에 감히 말을 못하고 그의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은석영은 그녀에게 자신이 직접 적은 수련에 필요한 글을 건네주었는데, 소령은

어렸을 적 약간의 글을 배우기는 했었지만, 완전한 해석은 조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천자문 정도를 약간 배운 그녀에게 내공심법을 설명하는 문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글을 잘 모르는데..."

"...."

그녀의 말에 은석영은 크게 당혹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설마 본단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가 글을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

이다.

본단에서 일하는 아이는 나이가 어느정도 이를 때까지 기본적이 교의 교리와

함께 성전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글을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였기 때문이

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성전을 배우기 위한 서당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것을 뜻하

고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그녀가 있었던 하가장에서 얼마나 홀대시 했을까 하

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무식해서...주인마님께서 서당에 보내주셔도 제대로...."

사실 수련이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은 무식하기 때문이 아니였다.

하가장의 장주인 하원로는 본명 수련을 데리고 오면서 글공부를 시키기 위해

집안에 선비를 불러 공부를 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공부를 자신의 손녀인 하미리와 같이 시켰던 것이 큰 화근이

였는데, 소령은 상당히 영특하여 천자문을 배울 때 하미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글을 익혀왔던 것이다.

그에 비해 하미리의 어렸을 때의 자질은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 자연히 소령에

비해 그 글공부가 뒤질 수밖에 없었다.

주인보다 종이 학문을 익히는 것이 더욱 빠른 것은 하미리로 하여금 조금 그녀

를 미워하게 만들었고, 몇일 후 소령이 선비에게 크게 칭찬을 받는 일이 있어

하원로에게까지 칭찬을 받자 하미리의 심술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미리는 이런 이유로 소령을 괴롭히기 시작하고, 글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니 그녀가 배운 글을 천자문을 겨우 익힌 수준에 불가하게 되어 버린 것이

다.

하미리의 이런 심술은 글공부를 못하게 된 후에도 계속 이어지니 그 후로 몇

년이 흘렀건만 소령은 어렸을 때 약간 배운 천자문 역시 반 이상은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사연을 알 리가 없던 은석영이였기에 조금 황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은석영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서는 손을 가져가 그

녀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기 시작했는데, 이십대의 청년이 과년한 처녀의 몸을

만지니 소령의 얼굴을 크게 붉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의 자세

를 바로 잡아주고는 그녀의 앞에 앉아 자신을 보라는 손짓을 했다.

"예."

은석영의 몸짓을 알아들은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소령이 알기 쉽게 운

기조식의 기본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두세번의 반복이 끝나자 소령은 어느정도 호흡법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운기조식이란 것은 호흡의 뒤 역시 중요하니 몸으로 빨아들인 자연의

기를 기맥을 따라 보내어 단전으로 모으지 않는다면 내공을 쌓는 것은 불가능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경우 가르치는 사람이 직접 당사자의 등에서 운기조식을 도와주며 말로서

중요한 점을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한데, 글로서 대체하려고 했던 은석영으로선

조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말을 해야만 하는가...'

은석영은 말을 해야 말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까지 자신이 가르쳐 준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말을 듣는 순간 심신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무공

수련을 실패하고 말았으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소녀마저 그런 과정을 겪게 하

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었기에 굳

게 마음을 먹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나의 말을 견딜 수 있겠는가..."

"헉!!"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소령은 크게 당황해서는 뒤로 물러서고 마니 그의 목소

리의 위압감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단 한마디만을 뱉었을 뿐인데 소령이란 아이가 큰 반응을 보이자 은석영은 크

게 실망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소령으로 하여금 크게 가슴이 아프게 하고 말았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아픔만을 가졌을 뿐 다른 이에게 그것을 표출하여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마음이였는데, 은석영이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던 소령은 자신의 부족함이 그에게 말을 하

게 하였음에도 이런 모습을 취하여 그를 안타깝게 했다는 것이 크게 죄송스러

웠던 것이다.

"아..."

소령은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에서 나오지를 않자 자

신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니 그것을 본 은석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조용히 뒤로 돌아갔다.

"흑흑.."

그가 자신에게 실망한 소령은 더욱 크게 눈물을 터뜨렸는데, 그 순간 은석영이

뒤로 돌아서서는 소리쳤다.

"무공을 익히려고 하는 이가 겨우 이 정도에 목소리에 눈물까지 흘리면 어떻하

겠는가!"

"흑흑..."

냉혹한 은석영의 목소리는 귀기가 사방으로 흐르고 있었기에 주변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다른 이들 역시 크게 놀라며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은소협 무슨 일인가!"

"은소협 제발 자네의 목소리 좀 안들리도록 해주게!"

다른 이들은 은석영의 목소리에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 수련을 방해당하

자 소리치기 시작하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참을 울던 소령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는데, 그는 은석영과 같은 사범 중 한사

람이였다.

"무서웠을테지만 힘을 내도록 하게..."

"흑흑흑...아니에요..."

"아니라니..?"

"제가 울고 있는 것은 은사범님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알았으면서도 견디지

못하여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죄송해서..."

"....."

그녀의 말에 그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처다 볼 수밖에 없었다.

'착한 아이로군...'

첫 번째 수련의 날은 다른 사범에 의해 소령은 간단한 운기조식의 자세와 혈도

를 배울 수 있었고,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은석영의 방에선 아침에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던 사범이 와서는 그와 이야기

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수련생을 버려두고 가면 어떻게 하겠는가..."

"역시 나로서는 그녀를 수련시킬 수 없나보네..."

은석영은 조금 기가 꺾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상대방

사범은 그의 귀기 어린 목소리를 쉽게 견디어 내고 있었다.

아무리 귀곡성의 목소리라고 해도 그것을 견딜정도의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면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은석영이 내공을 높인 상대로 귀곡성을 터뜨린다면

견딜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아이는 조금 다른 것 같네."

"다르다니?"

"내가 말해주긴 조금 그렇긴한데, 말이야..."

그 순간 방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순간 은석영의 이야기 하던 사범

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말했다.

"드디어 왔군."

"누군데 그러나?"

"글세..."

그 말과 함께 그는 문을 열어 주었는데, 문들 두드린 사람의 얼굴을 본 은석영

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녀는 바로 자신이 담당하는 소령이란 아이

였기 때문이다.

"....."

소령이 있었기에 은석영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녀에게

문을 열어준 사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이만 가보겠네."

"..."

손을 들어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못 뱉었기에 사범은 밖으로 나가버렸

고, 방에는 소령과 은석영만이 남아 있었다.

긴 침묵의 끝에서 소령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사..사범님..."

"....."

"오..오늘 아침 일...정말 죄송해요..흑흑.."

소령은 말을 하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기에, 은석영으로선 조금

당황되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진 말에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다..다시 한번 저에게 말을 해 주실 수 없나요?"

지금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두 번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꺼려해왔었는데, 놀랍게도 그렇게 놀란 그녀가 자신에게 다시 한번 말을 해달라

고 부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단순히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그런 것은 아니에요. 사범님의 말씀을 듣고...

놀란 천녀(賤女)가 너무나 죄송스럽고....흑흑흑...."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기에 목소리가 조

금 무섭지 다른 것은 자상하기 그지 없는 은석영으로선 크게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말을 견딜 수 있겠는냐?"

은석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는데, 그 순간 소령의 어깨는 크게 흔들릴 수 밖

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은석영이 크게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꾿꾿하

게 몸을 지탱시킨 소령은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은석영은 크게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부터 두 사람의 무공 수련은 다시 시작되었다.

내공이 낮은 소령은 은석영의 목소리를 쉽게 견딜 수는 없었지만, 그를 실망시

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니 그 무공은 점점 늘어갈 수 있었고, 은석영은 그녀가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이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은석영의 마음은 어느덧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차마 그녀에게 그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제 12 정 귀곡성의 남자를 장가 보내라! (5)

두 사람의 무공 수련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장천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화무이관에서 잠시 중간결과를 알아보던 중 은석영의 표정

이 좋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여러 가지를 짐작해 보며 그의 표정의 변화를 추리해보는 장천이였지만, 은석영

이 워낙 말이 없는 위인인지라 좀처럼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은조상은 장천과 같이 와서는 형의 표정이 우울하게 변해 있는 것을 보았기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두형. 내가 한번 형에게 물어보도록 하지."

"심장마비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응."

귀곡성을 듣기 전에 주의사항을 말해주는 것을 잊지 않은 장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은조상은 조심스럽게 붉게 물드는 석양을 보며 멋드러지게 퉁소를 불고

있는 형의 곁으로 다가갔다.

[삐리리..]

구슬픈 퉁소의 소리가 서산으로 지는 석양의 빛과 함께 울리는 이것이 바로 외

로운 남자의 낭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 남아의 길이 이렇듯 힘들단 말인가.."

잠시 헛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잡는 은조상이였는데, 그 목소리에 동생이 왔다는

것을 안 은석영은 퉁소를 부는 것을 멈추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왔느냐.."

"헉...예."

역시 갑자기 듣는 귀곡성은 심장마비의 위험이 조금 크긴 했다. 은조상을 멈추

려는 심장을 잠시 다독여서는 뛰게 만든 후 간신히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형님 무슨 고민이 있으신 듯 보입니다."

"..."

은조상은 걱정어린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은석영은 그의 말

에 단지 미소만을 지은 채 돌아서서는 다시 서글픈 음색을 석양에 흘려보낼 뿐

이였다.

형님에게 이야기를 듣지 못한 은조상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뒤로 돌아

서 가는데, 그 때 누군가 그의 등을 치며 말했다.

"석영형제의 동생인 조상이로구나."

"아! 소형님 아니십니까?"

돌아서는 은조상의 등을 치며 부른 사람은 바로 은석영의 의형제인 소철(蘇哲)

이였다.

동생인 자신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은석영과 함께 지낸 사람이 바로 소철이라는

것을 아는 은조상은 그라면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왜그러느냐?"

"오늘 우연히 이곳에 오고보니 저희 형님께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니 안타

까워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소철은 퉁소를 불고 있는 은석영의 뒷모습을 보고서는 무엇인가를 알

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나..."

"소형님께 무엇을 알고 계시는지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투로 말을 뱉고 있었기에 은조상은 황급히 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것 같으니."

"사랑이라시면?"

"녀석이 과거에 말하기를 자신의 목소리가 이렇게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 했으나 그것으로 인해 사람과의 만남이 어렵게 된 것에 조금 한이 된 것은

사실이다."

"예."

"벌써 성혼할 나이가 됬음에도 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런 이유인지라 술자리

에서 한번 물어보았더니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여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더군."

"아! 그렇다면..."

"자네의 짐작대로일세 이번에 들어온 소령이란 아이가 유일하게 그의 목소리가

아닌 그의 마음을 이해해 준 사람이니 어찌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말에 은조상은 크게 반가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잘된 일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네만, 녀석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네."

"예?"

"솔직히 그의 귀곡성에 가까운 청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인이 몇 명이나 되

겠는가? 물론 소령이가 화무이관에 들어오기 전에는 종의 신분이였다고는 하지

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여인이지 자신이 강

제로 안을 여인이 아닌지라 저렇듯 고민하고 있는 것이네."

"그렇군요."

그제서야 형님의 고민을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는 은조상이였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인을 발견했고, 자신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녀를 강

제로라도 취할 수 있는 입장이기는 했지만, 정말 사랑하는 여인이라면 강제로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들고 있는 고민이였던 것이다.

자신으로선 이 일을 해결할 방도가 없는자라 은조상은 급히 장천에게 가서는

소철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음..일은 잘 풀린 편이군. 좋아 가자고."

"가자니 어딜?"

"석영형님의 마음을 알았으니 소령의 마음을 알아야 하지 않겠냐."

"그렇군."

장천은 그녀의 마음을 알기 위해 소령이 머물고 있는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

다.

다행히 도착한 그녀의 숙소는 불이 밝혀져 있었기에 장천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방의 앞에서 말했다.

"소령소저. 잠시 만나뵐 수 있겠소이까."

"뉘신지요."

"두형이라합니다."

"아!"

이미 장천과는 어느정도 안면이 있었던지라 그녀는 급히 문을 열어주고는 공손

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예."

장천과 은조상은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자리에 앉았고, 소령은 조심스럽게 그들

의 앞에 차를 따라주었다.

소령의 다소곳한 모습에 은조상은 자신의 형의 배필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 생

각이 들었지만, 무엇인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차를 따라주며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간혹 가다 가는 시선이 장천을 향하는지라 일이 크게 잘못됬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장천은 그러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남의 밥그릇은 챙

겨도 제 밥그릇 깨지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히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지요."

"두대협께서 배려해주시니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배려라니요. 하하하."

겸손한 말을 내뱉으며 웃고 있는 장천을 보며 소령은 몸둘바를 모르고 있었으

니 은조상은 가슴이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장천은 넌지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혼처를 알아 보신 곳이 있으신지요."

"천녀같은 신분의 여인이 어찌 그런 곳이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소령은 조금 어깨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종이라는 그녀의 신분

때문에 그런 이야기에는 의기소침해진 탓이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네 소저를 위하여 혼처를 하나 주선하고 싶은데 마음이

있으신지요."

"아!"

장천의 말에 소령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짓고 그를 처다 보았는데, 그 눈빛은 놀

랐다기보다는 무엇인가 남자의 가슴을 울리는 안타까움이 배여 있었기에 은조

상은 소령이 장천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천녀는 아직...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

그녀의 말에 장천은 아직 그녀가 남자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

었는데, 그 때 은조상의 전음이 들려왔다.

[두형...]

[뭐야?]

[아무래도 소령소저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응?]

은조상의 전음에 장천은 크게 놀라 그녀의 눈을 처다보았는데, 소령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크게 놀라는 듯 하며 붉어진 얼굴을 밑으로 내리니 그것은 바로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인지라 크게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 얼마나 얄궅은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예?"

속으로 내뱉어야 할 단어를 말한 장천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손을 내저으

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자신의 혼잣말에 반응하는 그녀를 보며 손을 내저은 장천은 다시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한단 말인가..'

옆을 돌아보니 은조상은 어떻게든 처리 해달라는 간절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

으니 장천은 때가 아니라 생각하며 물러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전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장천의 간다는 말에 소령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간단히 인사를 한 장

천은 뒤로 돌아서는 빠른 속도로 그녀의 방에서 빠져 나왔다.

"두형 어찌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연극을 벌여야 할 것 같으니."

"응? 웬 연극?"

갑작스런 그의 말에 은조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삼일 후 소령은 장천들에게 초대를 받게 되어 홍련교 총단의 주점으로 가게 되

었는데, 이 모임에는 은석영과 소철 역시 초대되었다.

제 12 정 귀곡성의 남자를 장가 보내라! (6)

소령은 본단에서도 좋은 가문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초대하자 크게 기뻐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주점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상황이였다.

애석하게도 그들과 소령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너무나 틀렸던 것이다.

장천은 쌍도문에서 귀한 도련님 취급받고 있었던 사람인지라 역시나 부잣집 도

련님이였고, 동방명언 역시 부잣집 도련님, 데비드는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이름있는 기사가문의 셋째 아들이였던지라 모두 종으로 들어온 소령과는 비교

도 안 되는 집안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다.

"하하하 정말 그렇단 말인가?"

"당연하지 않겠는가? 내기라도 해야지 믿겠는가?"

은조상과 장천은 상당히 흥겨운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믿지 못하겠

다는 말에 장천은 은조상을 보며 내기를 제안했다.

"은 삼십냥이면 어떻겠는가?"

"좋지. 아! 우리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돈을 걸지 형님 어떻습니까?"

은조상 자신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은석영을 보며 넌지시 제안을 했고, 장천

역시 다른 이들에게 제안을 하니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은자 삼십냥을 꺼내서는

탁자 가운데에 올려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 출신의 소령이 그런 거금이 있을 턱이 없었으니 역시 눈치 없는 데

비드가 소령을 보며 물어보았다.

"오! 소령소저 당신도 내기를 하려면 돈을 내세요."

"아!"

그 말에 소령은 자신은 돈이 없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에서 나오지를 않으

니 이것이 바로 소외라고 할 수 있었다.

본시 사람들은 자신의 분수끼리 모여사는 것을 보통이니 가난한 자들이 부자동

네에 살면 창피함을 느껴는 것처럼 소령 역시 이 지체 높은 사람들과 이야기하

는 것에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종으로의 삶이 힘들기는 했지만, 후회할 정도는 아니였던 소령은 지금 사람들의

행동에 조금씩 눈물이 맺히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던 은석영이 자리

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살기를 띄며 사람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형님....왜 그러십니까?"

은조상은 갑작스러운 형의 행동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석영은 그런

은조상의 멱살을 잡고서는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녀석이 이런 녀석인줄을 몰랐구나..."

"윽....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되었다."

은조상을 내던진 은석영은 말없이 주점을 나가니 소철은 혀를 차며 말했다.

"이거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로군. 평소에 화를 내지 않는 석영아우가 저런 행

동을 하니 말이야..."

"저로선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은조상의 말에 소철 역시 그가 화를 내고 있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표정을 지

었는데, 한참을 생각에 잠긴 그는 옆에 있는 소령을 보며 말했다.

"소령소저."

"예. 소사범님."

"자네가 한번 석영에게 가보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소령은 현재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조금 힘들었기 때문에 소철의 말에 고개

를 끄덕이고는 은석영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소령이 나가자 은조상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이거 형님에게 완전히 미움을 사게 됬는걸?"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뭐 나중에 진심을 말하면 지금의 행동을 알아주실꺼

에요."

"그렇겠지?"

은영영은 첫째 형에게 미움을 받은 은조상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잘 된걸까?"

소철은 두사람의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다가 장천을 보며 물었다.

"글쎄요. 은형님이 침묵을 지킨다면 소령소저로선 왜 형님이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테지만 단 한마디만 한다면 그녀의 마음을 바로 형

님에게 돌아 설 것입니다."

"한마디?"

"예. 바로 미안하다는 말이죠."

"응?"

사람들은 장천의 말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소령 소저의 마음이 돌아설 것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

가?"

"하하하. 별 것 아닙니다. 일단은 저희가 한 연극은 그녀의 가슴속에 있는 약한

부분을 자극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그녀와 비교해선 지체가 높은

사람이니 그녀로선 우리들의 행동과 말에 크게 소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

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요."

"그렇게 행동하긴 했지."

"사람이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크게 호감이 가는 것입니다. 은 형님 또

한 그녀보다는 높은 지위에 속한 사람인데, 그녀의 소외감을 느끼며 우리들이

그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소령소저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면, 첫째 은형님은 유

일하게 그녀를 알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둘째 타인을 잘못을 모두 받으려

하는 행동은 대인의 모습으로 비추어질 것이며, 셋째 이성으로서 남자다운 모습

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그제서야 사람들은 장천이 주도한 이 연극에 대해서 어느정도 눈치를 챌 수 있

었다.

"그런데 형님이 아무 말씀도 안하신다면 어떻게 되는가?"

조상의 물에 장천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말없이 한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그것을 상대방이 알게 되었을 시 크게 호감을

느끼게 되기는 하지만, 그것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인데다가 일

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지금 그녀의 소외감이 사라진 후에야 상대방이 자신

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도리 경우 그러한 맹목적인 사랑이 오히려 부담

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지요."

"음...일단은 한마디라도 그녀에게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예. 무릇 기회란 것은 스스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면 잡히지 않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렇군..."

"저희가 지금 할 일은 하늘에게 비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한잔하면서 빌어보

도록 하지요."

"좋군. 자 석영의 한마디 말을 위해 잔을 들도록 하자꾸나."

"예."

소철의 말에 다른 이들은 모두 잔을 들고는 석영의 성공을 위해 잔을 들었다.

"형님이 느끼시는 감정을 소령소저가 느낀다면....일이 잘 풀릴텐데 말이야."

"무슨 말이야?"

"여인들의 모성이란 것을 아는가?"

"응?"

장천은 과연 소령이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또 다시 술잔에

술을 따르며 취해갔다.

한편 은석영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간 소령은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한 장

소가 생각이 나서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령이 도착한 장소는 바로 은석영이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퉁소를 부는 장소,

가끔 소령 역시 그의 퉁소를 들은 적이 있었던지라 그곳이 그가 생각에 잠기는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은석영은 자리에 앉아 퉁소를 불고 있었으니 잔잔한 퉁소의 음이 하늘

의 별과 어울러지고 있었기에 소령은 그의 뒤에 앉아서는 눈을 감고 퉁소의 음

색을 감상했다.

그렇게 반시진의 가까운 시간이 흐르자 석영은 천천히 퉁소를 내려놓고는 뒤로

돌아서서는 땅에다 글씨를 적었다.

"아!"

무공을 익히고 난 후 밤눈이 크게 밝아진 소령은 그가 쓴 글씨를 알아 볼 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천이 원하고 있었던 말이였다.

[아우들의 결례를 용서해주시구려.]

"결례라니요..."

소령은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은석영만이 자신의 서글픈 마음을 알아주

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말없이 무공을 가르쳐주며 자신이 무서워할까봐 하고 싶은 말도 잘 하지 못하

며 답답해 하는 그의 얼굴을 보아왔던 것이 생각이 나며 소령은 점점 그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전...천한...계집인걸요."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그들과 다를바 없는 지체 높은 사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령은 천한 계집이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말을 듣

는 순간 은석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노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노려

보았다.

"은..은사범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은석영은 무엇인가 답답한

것을 내뱉고 싶은 얼굴을 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질렀다.

"도대체 당신이 무엇이 천하단 말입니까!!"

"아..."

요귀에 비명과도 같은 그의 목소리에 소령은 크게 두려움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으니 은석영은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크게 당황하는 표

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서는 자리에 앉았다.

"아...사범님..."

두려움에 움추렸던 소령은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크게 놀라서는 그

에게 다가갔는데, 그 순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뒤로 돌아서 있는 그의 얼굴에서 달빛에 반사되어 은빛을 띄고 있는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범님...이 천녀를 용서해 주세요."

은석영이 목소리에 크게 마음을 다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소령은 자기

가 그의 아픔을 더욱 크게 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는데, 은석

영은 그런 그녀를 내공으로 일으키며 퉁소로 땅에다 글씨를 적었다.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여 흘리는 눈물이니 소저는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하지만...."

소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사범님은 아픔을 알면서도...왜 난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종으로서의 다른 이들에게 소외감을 받은 것은 지금 무사의 수업을 받은 지금

이 처음이였지만, 은석영은 목소리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자신이 느꼈던 슬픈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앞에서 투정을 부린 기분이 드는 소령이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소령의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은석영에게 다가가서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전...전..사범님의 목소리가...무서워요...하..하지만...사부님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

니에요..목소리는...무서워도...세상에서 제일 소령이를 아껴..아껴 주시는 분은...사

범님이라는 것을...알거든요...그러니....흑흑...."

소령은 은석영의 보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내뱉었지만, 모두 잇지는 못

하고 눈물을 흘렸고,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은석영의 닫혀진 마음도 조금씩 열리

면서 그의 손은 천천히 소령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범님..."

'소령...'

소령은 은석영이 마음속에서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며 그의 품으로 빨려

들어가듯 몸을 맡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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