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출세를 위하여 (7)
조금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은명석 장로는 오른손에 들려
있던 술병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친구들은 모두 장가가는데 혼자 외롭구만, 이 늙은이랑 한잔하지 않겠나?"
"예."
장로를 따라 간 곳은 저택 안의 작은 방이였는데, 창문 하나 없이 막혀 있는 곳
이라 이상하게 생각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긴?"
"교내의 일로 비밀리에 일을 처리할 때 사용하는 방이라네."
"그렇군요."
장천은 벽을 두드려 보았는데, 역시나 상당히 두터운 벽으로 감싸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안에는 술상이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안 장천은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이거 저를 위해 준비해두신 자리같군요."
"은가에 큰복을 가져다 준 사람을 위한 자리라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장로의 말에 약간의 겸손을 보인 장천은 자리에 앉아서는 그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서는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갔는데, 그 때 그의 얼굴 표정이 조금 진지해지
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용건이 있으신 것 같군요."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술잔 가득히 술을 따라 마신 은명석 장로는 장천을 보며 말했다.
"자네 주위에 감시가 붙어 있더군."
"그렇군요."
장천 역시 어느정도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장로의 말에 고개를 끄
덕일 수 있었다.
"소교주님을 만나뵈었는가?"
"예."
"조심하게 소교주님은 생각보다 잔혹한 분이시니 말일세."
"어느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습니다."
장천은 소교주의 눈에 비친 차가운 기운을 읽고 있었기에 장로의 말을 수긍할
수 있었다.
"어떠한 말이 오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거절한다면 자네의 목이 위험할 것일
세."
"그렇군요."
살인멸구, 소교주가 그토록 중요한 말을 자신에게 아무런 여과없이 내뱉은 이유
를 어느정도 알 수 있었던 장천이였다.
"그나저나 이젠 어떻할 셈인가?"
"글쎄요. 그 쪽에서 내건 조건이 워낙 좋은지라 생각해 보고 있었던 참이였습니
다."
은명석 장로가 소교주와 반대의 입장에 있음을 알면서도 장천은 이 자리에선
거짓을 말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솔직하구만."
"은아우의 아버님이시니 저의 아버님과도 같은데, 어찌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고맙군."
그 말 이후 한 동안 아무말 없이 술잔을 나누는 두 사람이였다.
"형제들을 적으로 돌리는데 괜찮겠는가?"
"그 반대로 형제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음..그렇겠군."
소교주의 편에 선다면 형제들과 적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장로의 말에 미
소를 지으며 답했는데, 그 말이 은명석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인의를 중시한다면 자네의 행동은 무림인으로선 실격일세."
"대의를 중시한다면 저의 행동은 정당할 수 있겠죠."
한마디도 안지는 장천을 보며 은명석은 자신의 딸과 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지 이해가 가고 있었다.
둘 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다가 두 사람 다 자신의 능력에 자신 있어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장천의 얼굴을 보던 은명석은 그에게 서신을 한 장 건네주고는 말했다.
"위험하다 싶은면 이 것을 꺼내 보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장천은 은명석의 서신을 공손이 받고는 품에 갈무리했다.
물론 그 서신의 내용이 무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은명석이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을 제시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세."
"예."
장로와의 간단한 술자리가 끝난 장천은 천천히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명인가...'
엉기적 걸으며 불규칙한 보폭을 통해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자와의 거리를 불
규칙하게 만들며 녀석들의 수를 가늠하는 장천이였다.
'방금 전의 장로님과의 일로 어느정도 의심을 받고 시작하겠군.'
다음날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장천은 간단히 운기조식을 마치고는 오랜만
에 도법을 연성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하고 있는 도법은 금선곡에서 배운 홍련교의 입문무공이였지만, 도가
그어지고 있는 길 하나하나에 흐트러짐이 없었기에 그의 도법이 얼마나 성장했
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현재 그의 수준은 사부와 금선곡에서 계속적으로 제대로 된 수련을 거쳤기에
과거에 비해 몇배나 실력이 상승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수준이라면 공동파의 꽃돌이와 대적한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추태를 부
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장천이였다.
가볍게 입문도법을 마치자 누군가의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훌륭한 솜씨네."
"아! 순사범님."
장천의 도술에 박수를 치며 감탄한 사람은 금선곡의 도술사범인 순유였다.
그는 언제나와 같은 촐랑거리는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금선곡에선 검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는데, 도술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
어서 한 행동이였구만."
"가전의 무공과 함께 우연이 도법이 적힌 책을 하나 얻어 익힐 수 있었으니까
요."
"음..우연이라..."
장천의 말에 순유는 조금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모든 무공을 익힘에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없음에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철저한 실전을 통하여 배우는 것도 스승이 있고 없고에 따라 초식은 상당히 달
라질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자질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였기에 자신의 결점
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였다.
순유가 보는 장천의 초식은 뭐랄까 군더더기가 없는 그런 초식이였다.
무공이란 것은 초기에는 단순히 수렵을 위한 것이 발전된 형태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을 상대로 하는 것으로 변화해 갔다.
인간의 몸은 그 움직임에 어느정도의 규칙성이라는 것이 있기에 무공은 그 규
칙성을 넘어서는 동작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혼자서 무공을 익히게 될 경우에는 그 규칙성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초식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책을 통해 혼자 익혔다고 하기에
는 너무나 깨끗한 초식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였기에 고
개를 저은 순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나저나 사범님께선 무슨 일로?"
"다른 녀석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너희들이 갈 곳이 정해졌단다."
"아!"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일이 왔다는 생각에 장천은 탄성을 내질렀지만, 그것도
잠깐 막 신혼의 즐거움에 잠긴 녀석들이 외지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형제들
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떠날 시간은 언제입니까."
"교주님의 배려로 한달 저도 후를 자고 있지만, 그것도 녀석들에겐 조금 짧은
것 같구나."
"그럴테지요."
"아무튼 네가 말을 좀 전해주도록 하여라."
"네."
순유는 장천에게 부탁을 하고는 돌아갔다.
"휴..."
형제들에게 말해야 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는 장천이였다.
장천은 그래도 셋중에선 가장 마음이 가벼울 것 같은 동방명언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갔다.
"어? 명언."
이상하게도 동방명언은 밖으로 나와서는 한 숨을 쉬고 있었는데, 방안에선 여인
들의 다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 두형이구나...휴..."
동방명언은 장천의 물음이야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가문은 홍련교 내에선 그리 좋지 않은 가문이잖아."
"응."
"그 일로 마누라들이 다투는거야.."
"왜?"
"아무래도 나중에 출세를 위해선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말이 나온
것 까지는 괜찮은데, 어디로 들어가느냐로 싸우는거지."
"음.."
남자가 여자의 집 보다 떨어지면 생기는 불상사였던 것이다.
"그 외에는 별 문제가 없는거야?"
"응. 다들 나한테 만족해하더라고.."
그 말에 장천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동방명언은 잘생긴 편에 속하는데다가 무공에 대한 자질도 뛰어난 인물이니만
큼 남편감으론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럼 한 오년의 유예기간을 가져봐."
"오년?"
"응. 순유 사범님께서 우리 일이 한달 후부터 시작된다고 하더라고, 오년 정도
면 충분히 홍련교에서 공을 세워 출세를 할 수 있는 시간일테니까. 데릴사위는
일단 그만두고 기달려 달라고 하라고, 어차피 우리들의 나이야 약관도 넘지 않
은 나이이니 5년 정도야 처가쪽도 기달려 주겠지."
"아! 고마워 두형!!"
동방명언은 그제서야 집안의 환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에 어여쁜 장천의
볼에 수십번 입맞춤을 하며 감사의 표시를 한 후 천천히 옷을 벗겼다.
"이 자식이 무슨 짓이야!"
"아! 미안... 뽀뽀하다 보니 내 마누란 줄 알았지."
"....."
동방명언에게 전달한 장천은 은조상의 신혼방으로 찾아갔다.
"흑흑흑..."
애석하게도 은조상 역시 편하지 못한 듯 마루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에 장천으로선 이상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은조상 무슨일이야?"
"흑흑흑 장천....아무래도 나 이 결혼은 실패인 것 같아."
"실패?"
어여쁜 마누라를 일곱명이나 얻어 놓고서는 실패라고 하는 말에 장천으로선 이
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 힘이 부족해서 마누라를 만족 시켜 줄 수가 없어...아무리 힘써도 세네명은
언제나 나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데, 어떻게 살라고...흑흑흑..."
그 말에 조금 이해가 가는 장천이였다.
은조상도 사람이니 어찌 하루에 일곱명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니가 일찍 죽어서 청상과부 만들어 재가시키는 방법은 어떨까?"
"......"
"농담이고 그렇담 이렇게 해봐."
"어떻게?"
"이른바 천궁의 날."
"천궁?"
"그러니까 한 사람에 하루씩을 투자하는거야 일단은 하루에 모든 힘을 한사람
에게 쏟을 수 있으니 편할테고, 원래 사람이란 기다리는 맛이 있어야 하니 날을
기다리는 마누라들이 너가 자신에게 올 날을 기다리며 잘 대해줄 것 아니야."
"무슨 말이야?"
"바보같이 생각을 해봐 일주일이나 기다린 네 녀석이 축 늘어진 폼이 되어 자
신을 맞이하려한다면 당사자는 얼마나 진이 빠지겠니. 그러니 그런 것을 방지하
고자 너를 극진히 모시는 것은 분명한 일이잖아."
"아!"
그제서야 은조상은 장천이 이야기하려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고맙다 두형.."
"별말을 아! 우리 임무의 날짜가 정해졌어."
"....언젠데...."
"한달 후..."
"휴....그때는 조금 편해지긴 하겠군. 알았어."
"그럼 난 간다."
신혼도 신혼 나름이였다.
만약 한 명의 아내를 얻었다면 은조상도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겠지만, 워낙 많
다 보니 임무를 나간다는 것이 탈출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명의 형제들은 이렇게 힘들게 보내고 있는 반면 단 한사람 만은 예외였으니
그것은 바로 가장 많은 여인을 얻게 된 데비드였다.
"하하하하!"
데비드의 신혼 방에 도착하자마자 밖으로 그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
는데, 역시나 그는 아내들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으며 재미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데비드."
"오! 형제 어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