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출세를 위하여 (5)
그날 장천일행들은 은조상의 집에서 마련해 준 옷으로 갈아입으며 교주를 만날
준비를 했다.
역시나 옷이 날개라는 듯 멋드러진 옷을 입은 네 사람은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탐화공자들보다 훨씬 더 멋있게 보였다.
"촌스러운 것들..."
은영영이였다.
자신의 공작이 완전히 틀어져 친구들을 모두 오빠와 그 친구들의 첩으로 보내
는 우를 범한 그녀는 통한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천에 대한 복수는 버리지 못한 듯, 언제나 그들의 곁에서 한마디씩 하
는 것을 잊지 않고 있으니 은영영은 장천일행들에게는 정말 보기 싫은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의형제의 동생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인지라, 가끔씩 아는 척은 해주
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한마디는 더욱 무서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각한 것 같다.]
[시집보낼 때가 된거겠지. 불쌍한 내 동생...]
동생의 투정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은조상이였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신들에게 수많은 처첩을 안겨 준 것은 은영영의 공도
컸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무시하는 이들은 장천 외에는 없었다.
"부럽나보지?"
"부럽긴 누가 부럽다는거야!"
"친구들은 다 시집가는데 혼자 노처녀로 남아 있으니 말이야 푸하하하"
"이...."
물론 은영영의 나이로 본다면 노처녀라고 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말이기
는 했지만, 상대가 장천이다보니 그녀로선 노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도 원수가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욕과 같이 들
리는 섭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은조상들은 장천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방을 빠져나가니 넓은
방에는 은영영과 장천만이 불통을 튀기며 노려보고 있을 뿐이였다.
"그나저나 어떻할까? 친구들이 모두 오빠 친구들의 처첩이 되니 못된 시누이가
되버렸네 그려?"
"그럴까? 내 친구들이 모두 당신의 의형제들의 처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혼자
외롭게 지내셔야 할걸?"
"흥! 정 안되면 소박 놓으라고 하지 뭐! 한 두명도 아니겠다. 두세명 소박 놓으
면 알아서 잘할걸?"
"무슨 소리? 친구들의 사이에 끼여 고생한 당신 의형제를 생각해 보시지."
두 사람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듯한 언쟁을 계속하니 언제 끝날지 모르
는 판이였는데, 장천은 섭선을 들어서는 그녀의 눈앞에 멋드러지게 편 후 말했
다.
"어쨋든 난 너 같은 입이 험한 계집과는 말할 시간이 없다. 애석하게도 교주님
께서 부르시니 말이야? 늦으면 의형제의 버릇없는 여동생 때문이라고 핑계를
될테니 좋은 말 할 때 비키시지?"
"칫!"
그녀 역시 홍련교의 교도인지라 교주에게 가는 장천을 막을 도리가 없었기에
이를 가며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었고, 장천은 대소를 터뜨리며 여유있게 그녀
의 곁을 지나갔다.
'흥! 얼마나 잘 되는지 보자 교주님의 곁에도 내 친구가 있으니 말이야..호호호'
은영영은 그가 교주와의 대면에서 겪을 일을 생각하고는 지금은 웃고 있지만,
그 때 가서는 눈물을 흘리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으며 속으로 교소를 터뜨
렸다.
과연 교주의 곁에 있는 은영영의 친구는 누구일 것인가?
어느정도 준비를 끝낸 일행들은 교주가 기다리고 있는 천화전(天火殿)으로 걸음
을 옮길 수 있었다.
천화전은 교주와 그의 식솔들이 머무르고 있는 전각으로 본단에서 가장 큰 건
물이였다.
평상시에 전각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만 해도 그 수가 이백명을 넘고 있고, 일을
처리하는 하인이나 하녀까지 합하면 보통 삼백여명이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천화전의 크기는 분지 안에 있는 본단 전체 면적에 오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본단에서 교주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천화전의 대문에 도착한 장천 일행은 이미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뒤를 따라 백
화가 만발하고 있는 꽃밭에 위치한 정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조심스럽게 꽃을 다듬는 멋드러진 노인과 함께 묘령의 소녀가 있었는
데, 장천은 그 노인이 홍련교의 교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분이 교주님이시고, 옆에 계신 분은 교주님의 손녀이신 유능예님이시니 예
의를 갖추고, 몸조심하도록 해.]
은조상은 다른 이들에게 전음을 날리며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있었는데, 전음이
모두 끝남과 함께 뒤로 돌아서더니 너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이 곳은 사석이니 그리 예의를 갖출 필요 없다네 유공자."
"헉!"
교주의 말에 자신의 전음을 들었다는 것을 안 은조상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
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니 옆에 있던 장천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가서는 대표로 인사를 올렸기 때문이다.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장천의 말과 함께 다른 이들도 모두 정중하게 예를 취하니 잠시의 당황함을 이
어진 인사로 감출 수 있는 은조상이였다.
"자 이리 앉도록 하게나."
교주는 장천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정자로 가서는 말했고, 장천들은
예의를 차려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어여쁜 미인이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향이 진한 용정차를 가져다 놓
으니 장천은 교주라는 것도 꽤 해 볼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새신랑들은 지금 기분이 어떠한가?"
갑작스런 교주의 물음에 일행들은 뭐라 말도 못하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역시 중원의 사람과는 틀린 데비드가 그의 대답을 해주었다.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그럴테지, 나 역시 처음 성혼을 할 때는 그랬으니 말이야 허허허."
다행히 데비드의 말에 마음에 들었는지 교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는데,
그 때 교주의 손녀가 새침한 얼굴을 하고서는 말했다.
"이 중에 두형이란 사람이 누구지요?"
"제가 두형입니다."
유능예의 말에 장천은 무슨 일인지 모르는 까닭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는데, 그녀는 얼굴을 잠시 뜯어보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과연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이군요. 듣자하니 당신이 간계에 능하다 들었는
데 사실입니까?"
"간계요?"
"혼기의 멀쩡한 여인들 덜떨어진 남자들의 처첩으로 안겨주었으니 간계가 아니
라면 무엇인가요?"
예상치도 못한 공격에 장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것은 다른 이들 역
시 마찬가지였다.
한 순간에 덜떨어진 남자가 되어버렸지만, 상대가 상대인만큼 뭐라 말하지도 못
하고 얼굴이 벌개질 수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이 상황을 말려 줄 유일한 인물인 교주는 이 상황을 재밌게 지켜보
고 있었는지라 장천들로선 계속 당할 도리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장천은 어이없
이 당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유소저께선 아무래도 성혼을 하시기가 어려울 듯 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천의 말에 유능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쳤는데, 장천의 미소를 지으
며 그 이유를 말했다.
"세상에 중신아비들이 모두 간계가 뛰어난 인물로 보일텐데 어찌 믿고 성혼을
하시렵니까?"
"흥!"
장천은 그 말로 자신은 단지 세친구들을 위해 중신을 섰을 뿐이니 그것이 죄가
되느냐 하는 식으로 대답을 한 것인데, 실제로 친구들이 모두 아름다운 미녀들
을 손에 넣어 많은 처첩을 거느리게 됐음에도 그는 어떠한 여인도 처첩으로 받
아들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중신아비라 칭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잠시 기회를 보기로 생각하고는 입
을 다물었고, 교주는 미소를 지으며 장천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자네는 이번에 처를 맞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규
수가 없었던가?"
"아닙니다. 단지 아직 성혼을 하기에 이르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아가 뜻을 세웠다면 그것으로 장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뜻을 이루기 위해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허허허허.."
한마디도지지 않고 대드는 장천의 말에 교주는 크게 웃음을 터뜨릴 뿐이였다.
세월을 어느정도 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이니만큼 혈기 왕성한 장천 같은 아이
는 귀엽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소녀인 유능예는 교내의 최고의 좌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말에 지지 않으려는 장천이 건방지게 보일 뿐이였다.
"그나저나 성혼이 끝난 후 예정대로라면 일주일 후에 임무를 위해 본단을 일년
정도 떠나 있어야 하는데 어떤가? 자네들이 원한다면 본단에서 일을 주선해 보
도록 하지."
교주의 말에 세사람은 모두 크게 반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장천은 고개를 저으
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장천의 말에 다른 이들은 물론 교주까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단에서 일하게 주선한다함은 그들을 배려하고자 함은 물론이요. 교내에서 중
용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라면 그 이유가 있겠지?"
"예. 저희들은 좁은 세상만을 접했을 뿐입니다. 좁은 하늘만을 보며 살아간다함
은 자칫 그 하늘에 만족해버리는 정저지와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하하하하 재밌는 아이로구나."
장천의 말에 크게 만족하는 웃음을 터뜨린 교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네. 자네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교주와의 대면이 끝난 후 장천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설 수 있었는
데, 그 때 은조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그나저나 왜 본단에서 일하는 것을 거부한거지? 두형 자네라면 교주께 말한
것 외에 다른 뜻이 있을 듯 한데 말이야?"
"푸하하하 당연하지!"
"당연하다니?"
"본단에서 살게 되면 내가 만족할만한 여인은 찾을 수 없을 것이 뻔한데 뭣하
러 이곳에 있는다는 거야. 혹시 너희들만 장가들면 끝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
겠지?"
"역시나 하하하하!"
장천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린 일행들이였다.
하지만 장천이 본단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본단에서 일해봤자 그에게 전해지는 정보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스승의 말 따라 뜻을 이루기 위해선 본단의 작은 직위에서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나가 홍련교의 중원통일 계획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 무천무급을 얻기 위해선 큰공을 세워 자신의 위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
하기에 지금과 같은 시기에 본단에 있는 것보다 외지로 나가 공을 세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사문인 쌍도문을 위한 것이니 장천의 거룩한 희생이라 할 수 있
었다. 물론 그것은 장천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