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37화 (38/355)

제 8 장 사천당가에 부는 혈풍 (1)

검문산의 큰 불길은 순식간에 산 전체로 퍼져가기 시작했기에 구궁으로선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많은 사람들이 산불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

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하늘의 도움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비가 내리며 산불은 잠잠

해져가기 시작했고, 거대하게 번져가던 산불은 서서히 사그러져 가기 시작했다.

"휴!."

불길이 모두 사라지자 요운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곳에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천이 무진에게 안겨있었다.

무슨 연유이지 모르지만, 이상한 현상을 겪은 장천의 몸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

지만 몸 안의 장기는 다소 손상되었을 뿐. 그리 큰 부상은 아니였다.

"그나저나 큰일이군요. 백수마왕을 놓쳤으니 말입니다."

고도리는 불길이 사그러져가고있는 숲을 보며 탄식하듯 중얼거렸고, 구궁 역시

그의 말에 동감을 표시하며 말했다.

"그렇소. 그를 잡을 수 있었다면 마교의 계획도 알아 낼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

다."

마교에서 무슨 이유로 백수마왕을 장백산에서 불러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

늘 그를 놓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또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일단은 놓치기는 했지만, 이 산에서 백수마왕이 다시 나타날 확율은 적어졌기에

일행들은 산을 내려가 맨처음 출발했던 마을로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을 획복하지 못한 장천은 마을의 의원에게 맡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음.."

"장사제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요운은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장천의 상태를 물었는데, 의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깨어나기야 깨어날텐데....완전한 치료가 불가능 한 것 같군요."

"예? 도대체 무슨.."

"심마입니다."

"심마요?"

심마란 무인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현상으로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 하더라도

심마에 걸린다면 주화입마를 겪거나 미처버리는 수가 있었다.

심마에 대한 자세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마음속의 큰 불안이

그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심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은거고인에게서도 심마가 찾아오는 일이 있었

으니 단순히 마음속의 불안이 원인이 된다는 것은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기에

많은 무인들은 심마를 해결하고자 수많은 세월을 보내곤 했다.

이런 심마는 특히 사파의 고수들에게 자주 생기는데, 보통 내공의 일갑자 단위

로 이러한 심마가 다가온다고 알려져 있었다.

정파의 안정된 심법과는 달리 빠른 내공습득을 가능하게 하는 사파의 내공은

그 만큼 안정감이 떨어져 심마가 정파보단 심하게 밀려오지만, 정파의 고수들

역시 심마가 일갑자의 내공마다 다가왔다.

"심마라니..."

무슨 원인이 장천에게 심마를 불러 일으켰을까 알 수 없었지만, 그때의 장천은

심마에 빠져 미쳐버린 무인과 거의 비슷한 감이 있었기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 심마에 대한 원인은 의가나 무가에서도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기에

저로선 이 분을 치료할 도리가 없군요."

"어떻게 사제를 완치시킬 방법은 없겠습니까?"

"글쎄요...두 사람이라면 가능하겠군요."

"두 사람이라면?"

"신선곡의 곡주와 견즉사의 호청명이라면 가능할겁니다."

"..."

견즉사의 호청명은 자신들이 찾아가고 있는 사람이였지만, 워낙 방랑벽이 심한

사람인지라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는 인물이였다.

그렇다면 장천을 고칠 수 있는 곳은 신선곡 밖에 없다는 뜻인데, 신선곡 또한

만만한곳이아니였다.

신선곡은 사천 북부에 있는 곳으로 근 400년의 역사를 가진 무가였다. 하지만

이 신선곡이 무가보다 더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바로 바로 의술의 분야였는데, 대

대로 신선곡의 곡주는 화타를 능가할 정도의 의술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신선곡에선 매년 3000명 가량의 돈 없는 초민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

풀어주고 있을 정도로 평판이 좋은 곳이였지만, 정파의 무인에 한해서는 단 한

사람도 치료를 해주지 않고 있었다.

과거 무림 정파의 양대산맥 중의 하나인 무당의 장문이 큰 병을 앓아 신선곡에

찾아갔지만, 그들은 그 치료를 거부함으로써 약 30년의 걸친 두 문파간의 큰 싸

움이 벌어졌다.

물론 승자는 무당이였지만, 신선곡은 멸문의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결코 물러서

지 않았고, 신선곡을 돕기 위해 마교가 가세하고 거기다가 신선곡에 도움을 받

은 초민 수만명이 신선곡을 돕기 위해 몰려왔기에 무당파는 어쩔 수 없이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쌍도문의 정과 사에 모두 친분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파의 일맥이였기에

신선곡의 곡주가 장천을 치료해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으음.."

그때 누워있던 장천이 신음을 하며 눈을 떴고, 자신이 있는 곳이 숲이 아니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제 정신이 드는가?"

"예. 요운사형. 그런데 여긴?"

"우리가 산으로 오르기 전에 머물렀던 마을의 의원댁이네."

"의원댁이요? 누가 다치기라도 했어요?"

장천은 의원댁이란 말에 크게 놀라며 소리쳤는데, 요운은 겉으로 보면 멀쩡하기

그지 없는 놈이 심마에 들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대충 의원댁에서 약 몇첩을 지은 후 일행들은 다시 객점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개방의 문도들이 천천히 일행의 앞으로 다가왔다.

놀랍게도 사도혜는 전에 봤던 거지의 차림새가 아니라 깨끗한 복장을 하고 있

었기에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행의 앞으로 다가온 사도혜는 향긋한 향기가 풍겨오는 비단 옷자락을 휘두르

며 나비처럼 장천에게 다가가더니 두 손으로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장동생 이제는 괜찮은거야?"

"예. 누님."

사도혜의 걱정어린 말에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사

도혜의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장천

으로선 쉽게 그녀를 가까이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님. 오늘은 왜 이렇게 깨끗하게 차려입었어요?"

"글쌔? 왜 그럴까?"

그녀는 장천의 물음에 도리어 질문을 던지고는 천천히 장천의 입을 가져가서는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우와..."

장천은 느닷없는 사도혜의 행동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표정을 보

며 그녀는 만족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더니 말했다.

"언제 시간이 있으면 장사로 놀러와! 그때는 경단보다 맛있는거 많이 사줄테니

까."

"예. 누님."

장처의 대답을 들은 사도혜는 천천히 객점의 밖으로 나갔다.

"쳇! 끝까지 쌍도문은 철저히 무시하고 가는군요."

"개방의 용두방주 세력이 우리를 배척한 것이 하루이틀이였나? 그러려니 하고

참게나."

자신의 투덜거림에 요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앞에 있던 차를 마시며 말

했고, 구궁 역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기에 무진은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고도리는 사도혜의 뒷 모습을 보며 아쉽다는 모습을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부턴 어디로 가시렵니까?"

"사천당문으로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당문이요?"

"예. 일단 당문의 당이(唐二)어르신이 구사숙님과 안면이 있으신 사이니 인사를

드릴까 해서 말입니다."

"아. 예."

하지만 구궁은 사천당가로 가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화룡

신도, 사천당가와 쌍도문간의 친분은 오립산이 문주였을 때부터 있었던 만큼 화

룡신도가 오립산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분명 사천당가가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

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장천이 화룡신도의 이상한 능력에 의해 심마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하는 구궁은

사천당가에서 이 화룡신도에 대해서 조사해보려고 생각하고 일정을 잡은 것이

다.

사천 당가의 당가타에 도착한 것은 검문산 근처의 마을에서 출발한 지 십여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과연 당가와 관계된 인물들이 사는 곳인지 당가타는 여느 마을과는 다른 모습

을 띄고 있었다. 지나가는 한사람 한사람마다 한수의 재간이 있는지 손끝에는

암기를 다룰 때 생기는 굳은 살이 엿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의 어린 꼬마들은 벌써부터 나무로 만든 비표(飛 )를 들고는 암기 연습을

하고 있었고, 군데군데에는 각종 암기를 팔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

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암기의 마을이라고 할까? 하지만 당가타의 상점에서 볼 수 있는 암기

는 거의 대부분이 흔히 볼 수 있는 암기였고, 침과 같은 암기의 종류는 거의 전

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보이고 있는 것은 모두 큰 모양의 암기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가타의 골목을 지나 일행은 상천당가의 당가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가장은 보통의 일가의 장원과는 달리 무림의 문파라고 할 정도로 거대한 곳

이였다.

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거대란 장원인 당가장에 도착란 일행은 근처에

서 망을 보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서는 쌍도문의 표식을 보여주며 쌍도문의 소

주가 당가의 가주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고 전하자 일행들은 쉽게 당가로 들어

설 수 있었다.

하지만 당가로 들어섰다고 해도 그것은 외전에 지나지 않았다. 외전은 당가에

머물고 있는 다른 성씨의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당가의 외가의 사람

들이 모여 사는 곳이였다.

외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안내되어 갔다.

일행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당가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당가의 가주가 거처하

는 곳이였다.

장천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당가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친족들이 자리에 앉

아 있었고, 상좌에는 당가의 현 가주인 당일이 엄숙하게 일행들을 처다보고 있

었다.

구궁은 당가의 가주인 당일에게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를 하고는 쌍도문의 소주

인 장천을 소개했는데, 공동파때와는 달리 당가에선 그리 큰 환대를 받지 못했

다.

일행들을 당가의 기운이 차갑기 그지 없었기에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것을 알아 볼 새도 없이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일행들은 물러

날 수 밖에 없었다.

당가장을 나온 일행들은 조처럼 이러한 대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거 당가장에 몇번 온적이 있었던 요운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대접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과거의 삼대제자들과 찾아갔을 때만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당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운의 말에 구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당가의 수뇌부들을 만났다고는 하지

만, 그곳에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구사숙과 친분이 있는 당이를 비롯하여 당이의 동생인 당삼, 조카인 당철, 당소,

당진 등 사천당가에서 이름난 고수들의 얼굴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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