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20화 (21/355)
  • 제 5 장 장천의 첫사랑 (2)

    "그럴수도 있겠군요. 만일 요운대협의 추리가 맞다면 강호에서 큰 혈풍이 불어

    닥칠 것 같습니다."

    "예. 그런 일이 없기를 빌 수 밖에 없겠지요."

    장천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지만, 강호의 정세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별로 감흥은 오지 않았다.

    한참을 그런 식으로 듣고 있던 장천은 문득 경운문의 정화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순간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젠장!'

    경운문의 소녀 정화, 그녀는 자신의 오른 쪽 두 번째에 앉아 있는 요운을 멍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도 얼굴을 붉힌채 말이다.

    그렇다면 분명 정화는 요운을 보며 반했다는 뜻인데, 아 이것이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암암리에 찍어 두고 있던 여인이 자신의 사형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엇다.

    그것도 사랑에 빠진 소녀의 표정으로 말이다.

    사실 자신은 귀엽기만 할뿐, 나이에 비해 한참 어려보였기에 연애 상대로는 적

    합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사형인 요운은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강호 오룡에 속할 정도

    로 준수하니 어찌 게임이 될 수 있었는가?

    '역시 난 안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장천은 크게 시무룩해질 수 밖에 없었고, 한참을 어깨를 축 늘어

    뜨린채 앉아 있다가 더 이상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힘 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한편 구궁은 강호의 젊은 무사들의 얘기를 들으며 정파의 밝은 앞날을 생각하

    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장천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걸어나가

    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전 두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만해도 멀쩡한 모습이였는데, 한 순간에

    기가 빠진 모습으로 걸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진사질]

    [예. 사숙.]

    무진은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구궁의 전음이 들려오

    자 이상하게 생각되었기에 자신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방금 천사제가 시무룩한 모습으로 나가는 것을 봤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무진사질이 천사제와 친하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게.]

    [예. 사숙]

    무진은 편안하게 쉬지도 못하게 하는 장천을 욕하며 구궁사숙의 말에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천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에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경운문의 여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

    화와 함께 객점의 삼층에 있는 숙소로 올라갔는데,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백이 요운을 향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쌍도문의 장천소협께서는 아직 성혼의 상대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예? 장천사제라면 아직 성혼 상대가 없다고 알고 있는데.."

    "아 그럼 다행이군요. 구궁대협과 요운대협께서는 방금 저희들과 함께 있다 숙

    소로 올라간 정화사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백의 질문에 요운과 구궁은 무슨 연유인지 약간은 짐작이 갈 수 있었다. 현재

    쌍도문의 위치는 감숙성을 구파일방의 하나인 공동파와 양분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문파이니 만큼 많은 문파들이 쌍도문과 친분을 맺기 위해 노력

    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심한 것은 바로 성혼의 약조로 현재 열다섯의 나이인 쌍도문의 소

    주인 장천은 이런 면에서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요소였던 것이다.

    쌍도문의 문주가 될 소주인 장천을 자신의 문파의 여식들과 성혼의 약속을 잡

    기만 한다면 그들로서는 쌍도문의 위세를 등에 짊어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구궁과 요운이 장천의 성혼상대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

    지만, 어느 정도 그들에게 어필만 할 수 있다면 하백으로선 반은 성공할 수 있

    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꺼낸 것이다.

    뭐 두 사람으로선 대 놓고 거부할 수는 없는 입장인지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줍음이 조금 많은 것 같긴 하지만, 상당한 교육을 받은 소저같더군요. 다소

    곳한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아.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열두살에 지나지 않은 정화를 이번에

    다른 사제들과 동행시키게 된 것은 조금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면?"

    "예. 바로 혼례상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지요."

    두 사람은 하백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해 올줄은 몰랐기 때문에 조

    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강호 밥을 한두해 먹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금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화는 그 출신을 모르는 고아이긴 하지만, 저희 문주님께서 딸 같이 키운 아

    이이지요. 7살 때 사서삼경을 땠을 정도로 뛰어난 아이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것

    은 경운문 내에서만 자라나 저희들 사형제들을 제외하면 얼굴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이번에 문주님께서 정화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 줄 겸 강호의 문파들 중

    에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혼례상대를 알아보라 지시하셨던 것이지요."

    "그렇군요."

    "두 분에게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저로선 도저

    히 장천소협같은 정기가 가득한 눈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는지라 이렇게 말

    씀드리는 것입니다."

    "음.."

    무릇 명예를 생각하는 자는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다. 그런 이유로 정작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함으로 큰 손해를 보는 경우

    가 다반사였는데, 하백의 경우에는 단 한번의 상견례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느낀

    바를 망설이지 않고 피력함으로써 그 기회를 잡을 기회를 높인 것이다.

    구궁은 이런 하백을 보며 젊은이의 과감성에 점수를 주고 싶었다.

    '경운문이라.'

    경운문 그 자체가 크게 이름을 날리는 이가 없는 중간 정도의 문파였는데다가,

    정화가 고아라는 것에 조금 점수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하백과 같

    은 인물이 있는 문파라면 시간만 지나면 충분히 강호에서 두각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구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백대협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저희들의 입장으로선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니 확답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문파에 돌아 가는데로

    장사숙께 경운문의 뜻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야 고맙기 그지없지요. 구궁대협만 믿고 있겠습

    니다."

    "허..이런.."

    자신은 단지 말만을 전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백은 마치 구궁이 그 혼례

    를 주선해 줄 것이라 믿는 말을 하고 있었기에 그로선 조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하백에 대해 어느정도 호감을 느끼고 있었겠지만 거절은 하지 못하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글쎄요. 아무튼 성의를 다해 보도록 하지요."

    "예. 구대협."

    한편 사랑에 빠진 여인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장천은 말없이 객점을 나와서

    는 우물가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대어 앉아 흐릿하게 떠오르고 있는 저녁의 달

    을 보며 한 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뭐 주위에서는 자신이 크면 강호에서 내노라하는 미남이 될 것이라고 말은 하

    지만, 애석하게도 그 자신은 열 다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 살도 안된 것 같

    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라 미남에 대한 꿈은 버린지가 오래였다.

    하지만 미남의 꿈은 버리더라도 자신의 몸이 나이에 맞게 커주었으면 하는 생

    각은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못생겼더라도 어느 정도 몸이 나이에 나이와 걸맞게 커 주었다라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봤겠지만, 이건 감은 찌르기에는 꼬챙이나 너무 작으니 찔러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녁놀 뒤의 뜨는 달은, 잠시의 기다림으로 대지를 밝히건만, 소인의 시간은

    어이해, 기다림으로도 뜻을 얻지 못하는가"

    겁대가리도 없이, 외모에도 맞지 않게, 저녁의 달을 보며 풍취있게 사언절구를

    외운 장천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 때 그의 뒤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

    다.

    "푸하하하하!"

    "휴우..무진 사질 왔는가?"

    "사질 좋아하네! 둘이 있을 땐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잖아."

    그렇게 말한 무진이 장천의 볼을 잡고 땡기자, 장천은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칠

    수 밖에 없없었다.

    "우아악! 치사하다 그건 내가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빌미로 무진형이

    강제로 약속하게 한 거잖아!"

    "어허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 했는데 그 말을 지금에 와서 어기겠다는거야? 좋

    아 그럼 지금부터 내가 사숙님이라 불러주지."

    "정말?"

    무진의 말을 들으며 장천은 못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는데, 다음에 이어진

    말을 듣고는 역시나 하고 한숨을 쉬며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그대신 남아가 약속을 어겼으니 내 너의 가랑이 밑에 있는 것을 떼어서 여아

    로 만들어 주겠다. "

    "우와!!"

    장천은 무진의 손길에서 벗어나고자 도망다닐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식으로

    두 식경 정도를 놀던 두 사람은 이제 석양은 사라지고 어둠의 하늘 위로 밝은

    달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우물 옆에 있던 나무를 등에 대고 앉아 말없이 달 구

    경을 했다.

    한참을 그렇게 달구경을 하던 무진은 옆에 앉아 있던 장천을 보며 미소를 지으

    며 물었다.

    "네 녀석이 또 몸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탄을 하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이 형에게 한번 말해보아라."

    "휴..됐어..형은 말하면 아빠, 엄마를 비롯하여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니잖아."

    "하하하 그런가? 음..그렇다면 내가 맞추어 볼까? 음....여자때문이냐?"

    그 순간 장천은 크게 흠찟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진은 자신의 짐작이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지금의 장천이 여자 문제때문이라면 그 상대가 될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경운문의 정화라는 소저에게 마음이 있는가 보구나?"

    "휴유...."

    드디어 모든 것을 무진에게 들켰다고 생각한 장천은 그 말에 하늘이 무너질 듯

    한 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하늘을 말없이 처다보고만 있었다.

    이런 장천의 모습을 보며 무진은 상당히 중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러한 문제는 자신과 몇 번 장난을 치면, 잊혀지거나, 담담해지는 모습을 취했

    던 것이 보통이였는데, 역시 누가 남자 아니랄까봐 여자문제와 자라지 않는 문

    제가 겹치자 그 심각성은 배가 되어 전혀 장천같지 않은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긴 누가 장천 같은 녀석이 사언절구를 외우며 고독에 잠기는 것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도무지 자신의 말솜씨로는 장천의 이런 모습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한 무

    진은 다른 수를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음 역시 요운사숙이 맡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군."

    자신은 애석하게도 사랑의 열병도 앓지 못하고 남궁소화에게 덜컥 장가를 들었

    는지라 사랑에 빠진 청년의 그 깊은 속마음을 모르는지라 그래도 강호오룡으로

    서 뭇소저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요운은 충분히 장천을 도와 줄 수 있으리

    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장천의 이러한 현상은 정화가 요운을 보며 사랑에 빠져 생긴 일이 그

    결과에 대해선 조금 회의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무진으로선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 과연 무슨 결과가 생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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