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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31화 (130/131)

131화.  < End(1) >

내 물음에 형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말만 안했다 뿐이지 나는 안다.

저게 긍정의 뜻을 가진 침묵이라는 것을.

“말했잖아 망설이지 말라고.”

망설이지 말라는 저 말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내 망설임을 알아챈 형님이 말을 잇는다.

“진작 끝났어야할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어떻게... 제가 형님을 죽입니까.”

나랑 키가 비슷한 형님은 한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네 생각은 다 안다는 듯이. 너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그래도 해야 돼. 망설이지 마. 너도 알고 있잖아 인마, 그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걸.”

안다.

내 뇌를 뜯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잘 안다.

“그때 네가 그랬잖아. 전부 보내줘야 한다고,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이들은 전부 과거에만 존재할 뿐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도 마찬가지야. 육체는 없고 혼만 남아 너한테 기생하는 나를, 어떻게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냐. 이제 나도 그만 보내줘야지.”

닫혀졌던 입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치밀하시네요. 그때... 그게 다 연기였던 겁니까?”

“네 각오를 확인하고 싶었거든.”

“각오요?”

“그래 각오, 네가 과거의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라는 놈을 그들과 같은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었어. 기분 상했으면 미안하다.”

“안 상했습니다. 기분 따위.”

조용했다.

침묵이 자리하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귓가에 맴돈다.

그렇게 나와 형님은 잠시 동안 서로를 마주보았다.

머릿속에는 과거에 형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복싱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한창 형님과 스파링을 하고 샌드백을 두드리던 그때까지.

세세한 모든 과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한번쯤은 있다고.

누군가에게는 그게 군대일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장이 되는 순간이었을 테고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는 순간 일수도 있다.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은 있었다.

에피소드를 진행하던 때나 지금 이 순간이 아니다.

형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가 내 인생에서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미안했습니다.”

“언제?”

“말없이 복싱 그만뒀을 때요.”

형님이 피식 웃는다.

“새끼, 그게 언제적일인데 이제 사과를 하냐?”

형님은 분명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그렇게 형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과거부터 시작해서 시련자가 되었을 때 형님이 했던 일까지. 가로수 길 벤치에 나란히 앉은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

혼란스러운 표정의 여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도가 방금 뭐라고 했더라.

조금 이따 보자고 했었나?

혼란스럽다는 단어를 의아스럽다는 단어로 정정해야 할 듯싶었다.

여화가 알기로 Episode #100은 도전 의사를 내비치면 코앞에 ‘고향’으로 가는 게이트가 생겨난다.

그 안에 들어가서 시련을 진행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조금 이따 보자니?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잠시 주변에 작은 돌풍이 몰아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도가 서있었다.

말을 건네려던 여화는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이도의 양쪽 불에서 흘러내리는 투명한 액체.

저건 분명 눈물이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쟤가 눈물 흘리는 걸 본적이 없는 거 같은데...’

아니다. 딱 한번 있었다.

에피소드 극 초반, 대기실에서 잠을 자다 일어나던 그때 이도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렸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것과 지금 눈앞에 저것은 분명 달랐다.

뭘까.

이 잠시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또 다시 무언가 물어보려던 여화는 이번에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띠링!

[금일부로 10000번의 회차 동안 진행되었던 모든 에피소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이도를 제외한 모두가 메시지가 뜬 허공을 바라본다.

메시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띠링!

[최종 시나리오. 권좌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권좌에 앉을 자격을 충족한 이는 총 4명입니다.]

[마황魔皇 여화女禍]

[최초의 드래곤 발락투스]

[기자선황歎_善皇 천군天群]

[회귀자回歸自 이도層道]

여화는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앞에 나와 있는 호칭 비스무리한건 어떻게 판정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하나가 마음에 든다.

기자선황歎自善皇.

스스로를 속이는 선의 왕이라니.

“너무 잘 어울리잖아.”

잔뜩 구겨져있는 천군의 표정도 꽤나 마음에 든다.

이어서, 또 다른 메시지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자격을 갖춘 네 분은 권좌에 도전하실 수도, 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진다.

동시에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아스가르드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황궁을 이루던 건물과 오벨리스크인지 뭔지를 비롯해 연회장까지.

거기다 어떤 종족이 사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문명을 이룬 곳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었을 건물까지.

그 휘황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건물들이 아스가르드의 땅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변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순식간에 아스가르드라는 도시는 사막처럼 황폐해졌다.

이윽고, 도시의 정중앙에 있던 땅이 점점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높이만 최소 100km.

안 그래도 우주 한가운데 떠있는 아스가르드도 비현실적이었는데 그곳에 이런 형태의 지형이라니.

여화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100km 높이 꼭대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왕좌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화는 한 번 더 감탄했고 건너편에 있던 발락투스와 그 대각선에 있는 천군은 신음을 내뱉는다.

이어서 또 다른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권좌에 앉으십시오.]

그냥 앉으라는 걸까.

정말 그게 전부인걸까.

그럴 리가.

[권좌에 앉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 중 한 가지 이상을 충족하셔야합니다.]

[1.모두를 굴복시켜 권좌의 주인으로 인정받으십시오.]

[2.최후의 1인이 되십시오.]

재미있네.

여화는 작게 웃고 말았다.

[권좌의 주인이 되실 경우 얻게 될 보상은 ‘모든 것’입니다.]

그게 끝이었다.

이어서 모든 메시지가 사라진다.

그 순간 여화는 볼 수 있었다.

이도가, 타이탄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양손을 펼쳐든 채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먹을 말아 쥐는 모습을.

그 짧은 순간 여화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타이탄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세 지배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비록 초반 과정에 대해서는 시스템이 통신조차 차단해버렸기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중간, 그러니까 타이탄의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을 때, 그때부터 연회장에서는 타이탄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괘씸한 초월자들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문제는 여태껏 등장하지 않았던 권능.

[정지]라는 그 막강한 권능을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이도가 ‘획득’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화의 답은 하나였다.

무조건 거리를 벌리는 것.

그게 여화의 결론이었고 사실, [정지]라는 권능의 유일한 파쇄법이었다.

0.1초 동안 여화는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렸고 빠르게 반응했다.

여화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찼고 순식간에 10km의 거리를 벌린 것.

힐끗 보니 발락투스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벌린 것으로 보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서로의 생각이 일치했나보다.

하지만, 천군은 아니었다.

털썩-

띠링!

[기자선황歎自善皇 천군天群이 사망했습니다.]

***

비가 내린다.

멈춰있는 세상 속에서 무슨 비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심장이 뻥 뚫려있는 형님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앞이 흐릿해지는 게, 분명 비가 내리는 게 분명했다.

‘끝내자. 이 모든 걸.’

마지막으로 웃던 형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형님은 먼저 가련다. 천천히 쉬다 와라.’

그렇게 형님은 죽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한, 10초? 아니 15초?

그쯤 흐르자 멈췄던 세상이 굉음을 내뱉으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은 파편이 되어 흩날리고 땅이 갈가리 찢겨지는 것까지.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던 그때, 내가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모습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띠링!

[Episode #100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의 신격이 (1)상승합니다.]

후련함이라던가. 막힌 게 뻥 뚫린 쾌감이라던가.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속은 형님의 심장이 뻥 뚫려 있는 것처럼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10초 뒤, (시련자 이도)를 제외한 지구의 시련자들은 지구로 귀환합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를 제외한 시련자들은 지구로 돌아간다.

그럼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정말로 궁금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사실 궁금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게 적절한 것 같다.

시스템이 병신도 아니고 이제 떨어질 놈들 다 떨어져나가고 남을 놈들 다 남았으니, 이제는 그들이 미쳐 날뛸 무대만 마련되면 된다.

그 무대는 지금 마련되어있을까 아니면 준비하고 있는 상태일까.

부디 준비되어있는 상태이길 바란다.

그때였다.

띠링!

[분리되었던 두 개의 영혼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가슴어림이 간질거렸다.

개머리 풀로 살살 긁는듯한 좆같은 기분이 뇌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당신의 고유 능력이 개화됩니다.]

[권능 ‘정지’가 추가됩니다.]

띠링!

[업적! 「최초의 더블 플레이어」를 달성하셨습니다.]

[50,000,000,000 코인을 획득합니다.]

[맙소사 이건 깨라고 만든 업적이 아닌데, 두 개의 권능을 개화시키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메시지를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형님의 권능인 [정지]를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또 다시 눈앞의 광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던 그 순간, 나는 다시 아스가르드로 와있었다.

띠링하는 효과음과 함께 금일부로 에피소드가 종료된다느니 권좌의 전쟁이 시작된다느니.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번에도 시야가 뿌옇다.

여전히 비가 오는 걸까.

하 시발, 생각해보니 웃기네.

여기에도 비가 내린다고?

그렇게 모든 메시지가 출력되었을 때. 나는 움직였다.

양손을 뻗었고 형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시에 말아 쥐었다.

쩌엉-!!

한 번 더 세상이 멈춘다.

고개를 들자, 멍한 표정의 천군이 보인다.

놈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압력 속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쩌저적하며 땅이 갈려나간다.

이어서 놈의 목을 틀어쥐었고, 일시에 뜯어버렸다.

털썩-!

[기자선황歎自善皇 천군天群이 사망했습니다.]

놈의 권능이 뭔지 조금은 궁금했는데 그냥 쓸데없는 고민이었나 보다.

“이제 그만 끝내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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