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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28화 (127/131)

128화.  < 내가 그렇게는 못 살지(3) >

나는 여태껏 내 몸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바알의 팔을 부수고 목을 부러트렸던 내 오른팔은 어깨 아래로 모든 뼈가 살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였으며 오른손가락들은 전부가 기이하게 뒤틀려있었다.

그리고 시황의 목을 밟았던 오른발은 허벅지 아래로 그냥 개박살난 상태.

이걸 지구로 따지면 전치 48주, 아니지. 48주 따위는 당연히 아니고 전치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했다.

그냥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할 부상이 확실했다.

심지어 내 몸은 인간의 몸을 초월해 신이라는 자리에 도전하는 상태다.

그런 몸이 개방골절, 분절골절, 횡골절 등등, 심지어 내장까지 파열됐다.

통각을 차단한 게 아무래도 신의 한수였나 보다.

나는 최대한 몸의 회복에 집중했다.

계속해서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액체가 있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한수아가 엘릭서를 끊임없이 먹여주는듯했다.

상황은 최악이다.

강제로 의식을 닫고, 외부의 자극은 최소화 한 채 몸의 회복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불의 숨결이라는 위치를 나는 자세히 모르고 슈샤이어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슈샤이어는 정령이다.

결국 슈샤이어는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슈샤이어는 찾아냈다.

어느 동굴 같은 곳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한수아가 무언가 장치를 건드렸으며 아스트레이와 한수아가 열띤 토론을 펼쳤으며, 이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처럼 몸이 부유감을 느꼈으며 마지막으로 미칠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도님, 정신이 드세요?”

한수아의 물음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동굴이었다.

벽은 붉었으며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거대한 불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앙.

딱 내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수정구가 기이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곧바로 확신했다.

저게, 이 행성의 용맥을 관장하는 불의 근원이라고, 그런데...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든다.

“내핵까지는 갈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슈샤이어가 나를 바라본다.

“이 행성은 생각보다 거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으로 가는 순간 나는 물론 저 여자도 그리고 네놈도 전부 타죽을 것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여기다?”

“저 수정구는 이 행성을 감싸는 용맥에 기운을 불어넣고 있지. 총 2개의 수정구가 있었고 가장 가까운 쪽으로 온 것이다. 혹여나 저걸 흡수하려는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나을...”

“그딴 짓 안 해.”

아니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조용히 몸 상태를 체크했다.

역시, 여전히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지경까지 왔는데 왜 예지력은 발동하지 않는 걸까.

그러다 뇌리에 번개가 쳤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굴, 뜨거운 열기.

이거 예지 속에서 보았던 그 장면과 비슷하다.

힐끔 고개를 돌리자 슈샤이어가 푸욱 한숨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왜 아직도 여기에 있냐?”

"...?"

“그만 가봐.”

“네놈... 설마.”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슈샤이어는 내 웃음에 담긴 의미를 해석한 것인지 급속도로 표정이 어두워진다.

“사루한테 가봐.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알았다.”

의외로 슈샤이어는 순순히 정령계의 문을 열고 그곳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나는 한수아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조용하네.”

“그러게요.”

문득 떠오른다.

예지력이라는 내 권능이 내게 보여준 미래는 절대적인 걸까.

지금의 상황과 지금의 구도.

아무리 봐도 아까 보았던 예지에서 나온 장면이다.

나는 여기서 한수아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한수아는 내게 고생했다고 했다.

키스한건 둘째치고 상황이 흡사한 게, 아무래도 나는 이번에 제시된 미래를 피해가지 못했나보다.

예지력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죽음을 앞에 두었고 그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절대적인 예지라...

터져 나오는 하품이 절로 사라질 정도로 충격적이지 않은가.

“이도님, 이곳에는 왜 오자고 하신 거예요?”

“글쎄,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고 해야 할까.”

길게 말하지 않아도 한수아는 알아들은듯했다.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하나 꺼내들더니 내 입가에 가져다 대려는 게, 아무래도 여전히 내 보모 노릇을 해주려는 것 같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수아의 손을 잡아채자, 그녀의 볼이 붉어진다.

“그냥 둬.”

사실 이젠 먹어도 의미가 없다.

여기서 엘릭서를 수십 개 아니 수백 개 처먹는다고 몸이 확실히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외상이 없으니 그 정도에서 엘릭서의 효용은 끝났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마지막 남은 폭탄을 꺼내들고는 그대로 옆에 내려놓았다.

이걸 가능하면 조금 멀리 떨어트려 놓고 싶은데 그 조금이라는 거리까지 이 폭탄을 옮길 수도 없는 지금 내 현실에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거기다.

“행성을 터트리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아무리 판타지 세상이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봐.”

실소는 작은 웃음이 되었고 머지않아 폭소가 되었다.

“아... 미치겠다. 진짜 이게 마지막이구나.”

손가락을 움직일 힘은 회복되었지만 마나를 끌어올릴 수도, 귀기를 터트릴 수도, 그렇다고 혈기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몸 전체가 완전히 텅 비어버린 상태였으니까.

이건 적어도 하루 이상, 아니 그 이상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회복할 수 있다.

젠장.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 폭탄은 그냥 ‘자살용’으로 써야 하나보다.

그때, 한수아가 아스트레이의 상자를 구석에 내려놓고는 내 옆에 조용히 앉는다.

“괜찮으세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대답해주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뭐가?”

“그 거인이 우리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이요.”

아직 포기하기는 이른 걸까.

생각해보니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걸까.

“수수께끼도 풀고 함정도 해제하고, 숨겨진 미로를 뚫고... 생각보다 여기로 오는 길이 험했어요. 아스트레이님이 꽤 도움을 많이 주셨죠.”

힐끗 고개를 돌리자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스트레이가 어깨를 으쓱한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그가 나보다 오래 살고 나보다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 거인이 이곳으로 오는 데에는 족히 하루 이상, 아니 이틀 정도 걸릴 것이네.

잠깐 동안이지만 나는 안심했다.

이거 이렇게 되면 여기서 힘을 비축하고 놈을 찾아서 죽이면 되지 않을....

쿠궁-!!

땅이 진동한다.

설마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하긴 시발. 그렇게 쉽게 풀릴 리 없지.”

이어서 또 다시 쿠궁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미약하게나마 떨리기 시작했다.

“놈의 권능이 [지진]이라고 했었나?”

“…네."

“지진이라기보다는 땅을 지배하는 권능 같던데, 이 미친놈이 땅이란 땅은 죄다 부수고 있나보네."

여기를 찾는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길어봐야 1시간?

그쯤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놈이 조금 불쌍하기도 하다.

놈이 보게 될 것은 에피소드 클리어가 아니라 물리학이 만들어낸 괴물일 테니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형님. 듣고 계십니까.”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묻겠습니다. 아까처럼 제 몸 빌리는 거 다시 한 번 가능하십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내 말대로 형님이 내 몸을 빌린다면, 그래서 그 정지라는 권능을 사용한다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에도 형님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스템이 제한을 거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안 되는 건지.

에휴.

한숨을 푹 내쉬기가 무섭게 옆에 앉아있던 한수아가 내게 몸을 밀착시키며 말한다.

“...이도님이랑 같이 죽게 되네요.”

힐끔 고개만 돌려 그녀와 눈을 맞췄다.

나는 여분의 목숨이 없지만 그녀는 여분의 목숨이 있다.

하지만 한수아라면, 내가 아는 한수아라면 머지않아 여분의 목숨마저 버리고 내 뒤를 따라올 것이다.

웃음이 터져 나올 타이밍인데 터져 나오지 않는다.

그녀를 안아줘야 하는 타이밍인가 싶은데 손이 가질 않는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느니, 누군가와 평생 함께한다느니, 그런 감정은 내게 사치였다.

사치였고 항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화와 몸을 섞었지만 마음까지 섞지는 않았다.

육체와 육체의 관계는 단순한 관계였을 뿐 더 깊은 관계까지 나아갈 수는 없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런 예외란 통하지 않는다.

이유는 있었다.

내 비밀을 한수아는 모르고 여화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 둘이 나를 원한다고해도 그 둘은 나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관계의 진전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제야 억눌렸던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죽음을 앞두고나서야 서투른 감정이 발전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어떻게 미래에 대한 정보를 그렇게 빠삭하게 알고 있는지 안 궁금해?”

“...궁금하죠. 그런데 답해주지 않으실 거잖아요.”

뒤통수를 벽에 대고 작은 한숨을 터트렸다.

“나는 회귀자거든.”

“...네?”

거인이 이곳으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그보다 짧을 수는 있겠지만 길어질 수는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수아에게 들려주었다.

멀리 있던 아스트레이마저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듣다 종국에 가서야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이야기.

내가 겪은 지구라는 지옥의 이야기.

내 이야기에 빠져든 한수아와 아스트레이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 세상은 절대로 도래해서는 안 된다... 라고.

“시련자가 아니었던 나는 회귀를 하고나서야 시련자가 되었다는... 그런 별거 없는 이야기지.”

참으로 조용했다.

거참.

“그렇게 충격이야?”

“네. 여러모로... 그리고 고마워요.”

고맙다고?

“뭐가?”

“그런 얘기 해주신 거요.”

분위기가 핑크빛으로 물들려는 것 같다.

아스트레이가 슬쩍 시선을 회피하는걸 보니 내 직감이 맞나보다.

그런데 이러려고 말해준건 아닌데.

“내가 지구로 못 돌아가면, 그 일을 네가 해줬으면 해.”

“제가요?”

“죽음이 가까워질 때 사람들은 악마가 되지. 적어도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어. 패닉에 잠기지 않은 채로 마지막 시간을 누군가는 가족과 만찬을,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침대 위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나는 사람들이 죽음이라 는 걸 편안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겼으면 해. 네 권능인 매혹이라면 분명 가능할거라고 생각하거든. 그걸, 네가 해줄 수 있을까?”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고 개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멸망을 앞둔 지구에서, 모든 이들이 절망이라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 초연해진다는 거, 나는 그게 가장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를 한수아가 묘한 눈으로 바라본다.

아 맞다.

“혹시나 해서 말 해두는 건데 이건 명령이 아니고 부탁이야. 헷갈리지 않았으면 하네.”

그때였다.

쿠구구궁-!!

천장의 떨림이, 점점 가까워진다.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음, 오래 걸린다면 한 10초... 정도 되지 않을까.

죽음이 가까워진다.

한수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던 그때, 그녀는 조용히 내 입가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말로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그녀의 감정이 뇌리를 타고 전해진다.

촉촉한 그녀의 입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 내가 보았던 미래와 똑같았다.

이제 여기서 거대한 폭발만 일어나면 그 미래는 실현된다.

나는 살짝 손을 들어 폭탄의 스위치 부분을 작동시켰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 5초가 지나면 터지는 스위치 폭탄.

이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타이머가 시작된다.

-5초.

한수아가 슬며시 입술을 떼어내자,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무언가 이상하다.

“미안해요.”

촉촉한 한수아의 눈가는 그렇다 치고, 왜, 예지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 거지?

원래대로라면 나는 한수아와 오랫동안 키스를 하고 그대로 폭탄이 터져야하는데?

-4초.

콰아앙-!!

천장이 무너지고, 잠시간의 적막이 자리한다.

“이도님. 저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많이 서툴러요.”

-3초.

위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표현하고 싶어요.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요. 이도님."

대체, 한수아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2초.

“사랑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내 머리로 부드럽게 흘러들어온다.

이어서.

“이곳이 네놈들이 정한 무덤이구나.”

9성의 거인이 승리를 직감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개새끼.

-1초.

같이 죽자는 말을 거인에게 내뱉으려던 그때. 한수아가 말했다.

“먼저 가있을게요.”

...뭐?

이어서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뒤에 정령계로 통하는 문이 생성되고 그곳에서 기다렸다는 듯 어둠의 상급 정령 하나가 작은 기운으로 내 몸을 도포 말 듯 그대로 감쌌다.

이어서 한수아가 양 손으로 내 몸을 밀친다.

이 모든 게 1초. 아니, 거의 0.9초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 몸이 정령계로 이동했다는 것을,

내 착각일까.

그 찰나의 순간 한수아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정령계의 문이, 그대로 닫혔다.

띠링!

[Episode #99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은 최후의 1인입니다.]

[10성의 신격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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