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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25화 (124/131)

125화.  < 내 동생 잘 부탁한다.(2) >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식이 밀려난다는 표현을 썼지만 이게 맞는 표현인지도 헷갈린다.

분명 나는 의식이 있었다.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고 허공에 떠다니는 마나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마치 통제를 빼앗긴 듯 한 그런 느낌.

의식은 있되 의식이 없는, 모순의 극치.

그때, ‘나’가 말한다.

“신중하던 놈이 갑자기 왜 이렇게 무모해졌어.”

내 목소리였지만 어조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이질적이되, 너무나도 익숙한 누군가의 것.

머지않아 나는 이 어조가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다.

정지혁.

형님의 어조가 분명했다.

‘나’가, 쥐고 있던 바알의 주먹을 살짝 쳐낸다.

바알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때, ‘나’는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툭-!

가벼운 잽.

이어서.

뻐어억-!!

깔끔한 스트레이트가 바알의 안면을 강타한다.

놈이 멀리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자리를 잡는다.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입가의 피를 슥 훔치는 게. 꽤나 볼만하다.

“9성이라는 게 딱 이런거였구만.”

주먹을 쥐락펴락하는 ‘나’, 아니, 내 모습을 한 형님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상을 가볍게 찌푸린다.

“몸이 정상이 아니네. 이거 좀 힘들겠어.”

“정지혁.. 정지혁? 어떻게, 한 사람의 몸 안에 두 존재가 자리 할 수 있는 거지?”

바알이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지만 당연히 형님은 무시했다.

형님은 내 몸을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내 몸에 적응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안타까운건 정상이 아닌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고통으로 미간이 찌푸려져있다는거. 그거 하나가 매우 안타깝다.

“오히려 일이 쉬워졌어. 저놈만 죽이면 에피소드가 끝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관망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두 시련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목적은 뻔했다.

나를, 아니 형님을 죽이려는 것.

거인이 한걸음 내딛고, 노인도 한걸음 내딛는다.

바알도 한걸음 내딛기가 무섭게 그들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네.”

양손을 쫙 핀 채로 정면을 응시하는 형님은,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런데, 뭘 말한 적이 없다는 거지?

“내 권능, 한 번도 말해준적 없잖아.”

사실이었다.

형님은 내게 자신의 권능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말해준적이 없었다.

“그럴만도 한 게, 사실 내 권능은 본 사람이 없거든.”

본 사람이 없다.

무슨 뜻일까.

그 말을 끝으로 형님은 쫙 펼친 양손을 한번에, 단 0.1 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말아 쥐었다.

그 순간.

쩌엉-!

세상이 멈췄다.

미약하게나마 흩날리던 잿가루도, 허공에 떠다니던 마나도, 그리고 내 뒤에서 간절한 표정으로 기도하는 한수아도, 그 옆의 아스트레이도 그 모든 게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아니지. 본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전부 죽었다고 해야 할까.”

형님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코앞에 내질러져있는 바알의 주먹과, 내 허리를 그대로 동강내버릴 듯 손날을 휘두르고 있는 노인을 한번 훑고는 마지막으로 내 머리 위에서 발을 내려찍고 있는 거인을 바라본다.

“내 권능의 이름은 ‘정지’,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을 멈출 수 있지.”

형님의 자세는 간단했다.

양팔을 펼친 채로 양 주먹을 말아 쥔 모습.

저게 권능의 발동 조건인가보다.

형님이 천천히 오른팔만을 들어 올리더니 바알의 팔목을 한손으로 말아 쥐었다.

이어서,

뚜두둑-!

너무나도 쉽게, 바알의 팔이 뒤틀리며 뼈가 밖으로 돌출된다.

저건 부러진 것을 넘어 그냥, 찌부러진 수준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님이 한걸음 내딛는다.

허리를 동강내버릴 듯한 노인의 공격과 거인의 발뒤꿈치의 공격 범위 안에서 완전히 벗어난 형님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는 바알을 향해 한 번 더 손을 들어올렸다.

덜덜덜...

거대한 압력을 버텨내지 못하는 것처럼 내 팔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하지만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내 팔이 바알의 목을 움켜쥐자.

뚜두둑-!

그 소리가 시발점이었다.

멈췄던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털썩-!

모든 시련자들, 그리고 정령계에서 넘어왔던 이들까지. 그들 모두가 고개를 돌린다.

팔이 뒤틀리고 목이 부러진 채 죽어있는 바알.

형님이 권능을 발동시키지 않았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좌중은 조용했다.

강제적인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형님의 무미건조한 단어 한마디였다.

"다음."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거인, 이자나기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완벽하게 놈의 빈틈을 노렸고 무조건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공격을 시도했다.

발로 단숨에 머리통을 박살내려했는데 순간 놈이 사라졌다.

그런데 갑자기 바알의 팔이 부서지고 목이 부러져 쓰러진다고?

저건 죽은 게 분명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죽인거지?

생존 가능성?

없었다.

확신하건데 제로에 수렴한다.

‘이놈... 대체 뭐야?’

이자나기는 이 감정을 분명 느낀 적이 있었다.

지배자들.

그들의 끝 모를 힘을 상상했을 때 막연하게 느꼈던 감정 .

잊었다고 생각되던 그 감정은 바로 두려움이었다.

이자나기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땅에 착지하자마자 거리를 벌린 것.

힐끗 고개를 돌리니 마찬가지로 거리를 벌린 노인이 보인다.

그런데 표정이 묘하다.

마치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이자나기는 물었다.

“저 권능,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노인, 시황始皇이 대답했다.

“크로노스의 권능 ‘정지’. 그것과 매우 흡사하군.”

“정지라고?”

“그렇다네. 바알도 반응하지 못했고 우리도 반응하지 못했지. 분명 크로노스의 그것과 흡사해.”

“하지만 크로노스의 권능은... 이 정도의 위력이 없을 텐데?”

“이미 죽은 놈이니 더 말해서 뭘 하겠냐마는 크로노스의 경우에는 사물의 움직임 같은 것을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었지만 이렇게 시공간을 초월하듯 모든 것을 멈추지는 못했어. 이건... 저놈이 가진 영혼의 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반증.”

이자나기는 빠르게 수긍했다.

여태껏 수많은 시련자를 보아왔다.

그런 자신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았던 시황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분명 일리가 있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저런 인간이 에피소드에서 단 한 번도 비춰지지 않았다고?”

감탄인지 한탄인지 모를 시황의 말에 이자나기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어떻게하긴 뭘 어떻게하나. 기다려야지. 스스로 자멸할 때까지."

시황이 뜻 모를 웃음을 짓는다.

**

“새끼들, 벌써 눈치 깠네.”

눈치를 챘다고? 대체 뭘?

“뭐겠냐. 리바운드지.”

내 말이 들리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형님은 혼잣말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물음에 답을 해주는 모습이었는데, 조금 다행이다.

정신병 걸린 줄 알았는데.

“누굴 미친놈 취급하고 있어?”

내 얼굴을 한 형님이 씩 웃는다.

그나저나, 리바운드라고요?

“그래 리바운드, 세상을 멈추고 홀로 움직이는데 아무런 대가 없이 그게 가능하겠냐.”

곧바로 이해했다.

모든 것이 멈춘 세상에서 홀로 움직인다는 건 거대한 압력에 홀로 노출된다는 것과 같다.

안 그래도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후들거리는 다리와 깨질 듯한 두통.

이건 그 여파가 확실했다.

“내가 1:1은 그 누구한테도 질 자신이 없는데 3:1, 아니지. 2:1은 조금 힘들 거 같은데.”

새삼스럽지만 형님은 전생에서 모든 초월자들이 괴물이라 부르던 남자다.

홀로 7성의 신격을 갖췄지만 겨우 그것만으로 괴물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7성이지만 그 이상의 신격의 초월자들을 죽일 수 있는 형님의 권능.

이거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전생에서 형님이 모든 초월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진정한 이유를.

그러고 보니 여화는 지구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왜 하필 운석을 떨어트려 멸망시킨 걸까.

설마, 형님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뭐야 이거? 진짜 먼치킨은 따로 있었잖아?

“이도야.”

형님이 나를 부른다.

꽤나 심각한 표정이다.

“딱 한번이야. 지금 이 몸 상태로는 딱 한번만 쓸 수 있어. 내가 확실하게 한놈은 죽인다. 그 이후에는 알아서 도망쳐라."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나는 마치 조건 반사처럼 이후에 내가 해야 할 행동을 머리속으로 떠올렸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고 나발이고, 9성의 초월자 세 명중 이미 한 명이 죽었다.

그리고 다른 두 명중 한 명은 이제 곧 죽을것이다.

형님이 죽이겠다고 했으면 죽는다.

그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터.

생각하자.

이 이후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그러다 머리속에 떠오른다.

자기를 가져달라던 '폭군의 갑주'라는 아이템의 목소리가.

놈을 한번 찾아보자.

그때, 형님이 고개를 돌린다.

“여천?”

“...나를 아나?”

형님이 뜻 모를 웃음을 짓는다.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안다고도 할 수 있고 모른다고도 할 수 있지 . 그쪽에 서 있는 건 우리 이도 편에 서겠다는 뜻이겠지?”

"..."

“아스가르드를 멸망시키자. 우리랑 함께.”

기다렸다는 듯 여천이 천천히 검을 고쳐쥔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지?”

각오를 다진 그의 모습에 형님은 말했다.

“시선분산.”

길게 말하지 않아도 여천은 형님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챘나보다.

여천은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자리를 박찼다.

목표는 당연히 하늘에 떠있는 두 시련자다.

보니까 그 두 놈은 형님이 여천에게 말을 걸거나 나와 대화를 한 그 모든 순간들을 그저 방관만 하고 있었다.

움직이기조차 힘든 지금의 내 몸 상태.

리바운드를 각오하고 단 한번 권능을 발동시킬 수 있다면 당연히 근접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형님이 눈치를 깠다고 하던 그 부분이 아마 이런 부분이 아닐까싶다.

내 생각에 형님은 이번에도 뜻 모를 웃음을 짓더니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수아를 바라본다.

“너구나. 우리 이도를 홀린 애가.”

“저를... 아세요?”

“알다마다. 그리고 내 동생. 잘 부탁한다. 앞으로도 쭉.”

한수아가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입을 살짝 벌린다.

한수아와 형님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형님이 고개를 돌린다.

여천과 두 시련자는 매우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광전사.

눈이 핏빛으로 물들고 온몸에서 핏빛 아우라를 뿜어내는 여천은 일시적이지만 거의 8성에 가까운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형님이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느 지점으로 걸음을 옮기던 형님이 그대로 자리에서 멈춰선다.

콰아아아아앙-!!!!

하늘에서 굉음이 터지고, 그곳에서 한 인영이 형님이 있는 방향으로 떨어진다.

형님이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노인이 빠르게 고개를 든다.

노인의 눈에 내 모습이 비춰 보이기 시작했다.

양 손을 쫙 편 채로 주먹을 말아 쥐려는 모습에 노인의 표정이 구겨진다.

마치 좆됬다는 그런 표정이다.

이윽고, 시간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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