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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18화 (117/131)

118화.  < 준비(2) >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소풍가기 전날 어린 아이의 들뜬 마음 같은 그런 게 아니라, 불안감.

지금 나는 불안했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일이 너무 잘 풀리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걸림돌이다.

내가 끼어들지 않은 에피소드에서 그들 나름대로 강해지고 스킬을 배우고 성장시켰다지만 그걸 강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강해졌다고 해봐야 그들은 엑스트라급과 조연급을 넘나드는 수준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아스가르드의 흔한 초월자중 아무나가 이곳으로 강림해 침 한번 뱉으면 죽는 게 내 주변 이들이다.

물론 그중에서 한수아만큼은 약간의 예외가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침을 한번 뱉느냐 두 번 뱉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이들을 초월자들의 전쟁터로 데려간다?

이건 그들에게 개죽음을 선물하는 것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향후에 벌어질 ‘지구에서의 일’을 처리하는 데에 매우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 할 수록 이상하다.

마치, 시스템이 나를 배려 해 주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아니지.

생각해보니 에피소드가 변화 할 때마다 나는 강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니 배려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변덕이라고 하자.

내가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성벽 위에 있던 시련자들이 내게 다가온다.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에피소드에는 나 혼자만 간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여자가 손을 들어올린다.

“저... 이도님.”

한수아.

그녀가 여태껏 본적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

솔직히 나를 제외한 모든 시련자들중에서 한수아만이 타이탄에서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한명을 데려가야 한다면 그건 분명 한수아가 될 테지만 이상하게, 예지로 보았던 그 미래가 눈에 밟힌다.

물끄러미 한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다른 시련자들에 비해서 강하다고 할 수 있는 한수아는 여러모로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건 확실한데, 초월자들이 그렇게 즐비한 세상에서 한수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설득을 한다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경고 정도는 해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타이탄으로 가는 것은 소풍가는 것이 아니며 그곳에서 벌어질 에피소드는 지금껏 겪은 에피소드들과는 그 궤를 달리할것이고 너는 높은 확률로, 거의 100% 확률로 죽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한수아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험생이 어떤 문제에 확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매우 단호했고 타이탄에 가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 하는 듯했다. 타이탄으로 가지 않으면 다른 답은 없다고 생각하는 수험생.

한수아가 저렇게 확신어린 표정을 짓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그리고, 결정했다.

한수아 정도라면 데려가도 될 것 같다고.

그렇게 정해졌다.

타이탄으로 가게 될 인원은 나와 한수아. 둘이다.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박유정이 손을 들어올린다.

“저.. 저도 가도 되나요?”

고개를 갸웃했다.

“가면 개죽음 당할 텐데, 굳이 왜?”

내 말에 박유정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는 속내를 그대로 꺼내들었다.

“더 강해지고 싶어서요.”

묘하게 지금의 햇병아리 박유정에게서 과거의 풍신 박유정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해지고 싶다.

힘을 가지고 싶은 것은 사람의 근본적인 열망이자 과거의 풍신 박유정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하지만 같이 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깔끔하게 대답했다.

“기각.”

“왜요?”

“넌 가자마자 죽을 테니까.”

이번에는 박유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더니 한수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게, 마치 왜 쟤는 되고 나는 안 되냐고 묻고 싶은듯하다.

그 말에도 깔끔하게 대답해줄 수 있다.

한수아는 정령계의 통로를 열 수 있고 그 안에서 5성의 슈샤이어를 소환할 수 있다.

물론 내가 폭기를 사용했을 때처럼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건 확률적이긴 하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5성의 슈샤이어라면 웬만한 초월자들은 발아래 둘 수 있는 강자다.

그래서 한수아는 타이탄으로 가도 된다.

개죽음 당하기전에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박유정은 아니다.

그냥,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그녀는 너무나도 약하니까.

“저도 가고 싶...”

“말이, 너무 많아.”

이딴 사소한 일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박유정도 합류하느냐 아니면 다른 이들도 합류하느냐.

쓸모없는 고민이다.

“타이탄으로 가는 건 나와 한수아, 둘이다. 나머진 여기서 대기해.”

쐐기를 박는 내 말에 박유정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물끄러미 박유정을 바라보자 그녀가 못 이기겠다는 듯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정리들 하고. 한수아 너는 잠깐 따라와.”

***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둥근 모양의 배지이자 서로간의 위치를 공유할 수 있는 아이템.

바로 맹의 증표였다.

한수아가 그것을 건네받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왜 이것을 준건지,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에.

하지만 이건 본론이 아니다.

“너, 대기실로 안간지 꽤 된 거 같은데 맞지?”

“어떻게 알았어요?”

모르는 게 이상하다.

그녀의 권능인 매혹은 내가 정령도에서 돌아왔을 때까지도 지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매혹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가 단 한 번도 대기실로 귀환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명백한 증거다.

“보니까 남은 코인이 꽤 되는 거 같은데, 그 코인으로 일단 신체능력부터 전부 올려.”

“네."

신격을 갖추는 것과 갖추지 않은 이의 차이는 작지 않다.

당연히 코인이 남는다면 이번에 모조리 쏟아부어야한다.

“필요한 장비는 황궁 창고에서 가져다 쓰거나 ‘윌의 속삭임’으로 나한테 말해. 웬만한 건 다 사줄 테니까.”

내 말에 한수아가 감동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일단 무시했다.

“정령계로 향하는 통로, 지금 열어봐.”

그녀는 군말 없이 정령도로 향하는 통로를 열었다.

쩌저적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균열이 생겨난다.

나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데, 몇 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정령계의 통로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거참.

"상급 정령이라도 불러볼까요?”

새로운 정령 친구라도 사겼나.

이제는 상급 정령을 소환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걸 보니 정령을 소환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졌나보다.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올래?”

정령계의 통로를 향해 말하자 안에서 반응이 왔다.

[...또 뭐냐.]

슈샤이어.

죽기 직전까지 내게 쳐 맞았던 그 늑대가 여전히 까칠한 말투로 대답한다.

솔직히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일단 넘어갔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사루한테 말한게 있는데 너한테 전해졌을지 모르겠네.”

[...]

안쪽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오는걸 보니 슈샤이어는 내가 사루에게 말했던 그 ‘거래’에 대해서 알고 있나보다.

사실 거래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내게 협조하지 않으면 내가 공백의 왕이 되었을 때 정령도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내 귀여운 협박에 사루는 내게 협조하겠다고 말했던 게 전부였으니까.

생각해보니 거래라는 단어는 부적절하네.

그냥 대화라고하자.

“긴 말 안 해도 알지? 협조해라.”

[.....]

“대답은?”

조용하다.

거참, 아무래도 주먹질을 좀 해야 할 듯싶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사루님이 말씀하셨기에 하는 거지 절대로, 다른 이유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긍정의 대답이 들려온다.

그러고보니.

그때 그 엘프는 뭐하고 있냐?"

[유리젤님을 말 하는 것이냐.]

유리젤.

슈샤이어를 어린애 부르듯 말하던 그 엘프의 이름이 유리젤 이었나보다.

어림잡아 신격은 6성내지 7성.

슈샤이어처럼 그녀의 힘을 구두로나마 약속 받을 수 만 있다면 꽤나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걔좀 불러봐. 내가 걔랑 대화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아.]

슈샤이어가 깊은 한숨을 내뱉기가 무섭게.

[...저 말씀하시는 건가요?]

처음부터 계속 듣고 있었던 건지 '유리젤'의 목소리가 통로 너머에서 들려온다.

"바쁜가?"

[글쎄요. 바쁘다면 바쁜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겠죠.]

그때 어렴풋이 눈치 챘었는데, 이 엘프는 슈샤이어만큼 이나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길게 말 할 필요 없겠네. 네가 힘을 좀 써줬으면 하는데."

[...]

"지금 상황이 참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거 알려나 모르겠네. 초월자들이니 뭐니 타이탄이니 뭐니, 그래서 내가 나름의 대비를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너희 정령들이 힘을 보태주면 어떨까싶거든. 너도 사루한테 들은 게 있을 테니 내가 길게 말하지 않...."

[알겠습니다.]

응?

[협조하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슈샤이어에 이어 유리젤에게도 긍정의 대답을 얻어냈다.

나는 잠시간 말없이 통로 앞에 서있었다.

한 1분 정도 그렇게 서있다가 한수아에게 살짝 눈짓하자 그녀가 정령계의 문을 닫는다.

사실, 길게 이야기 하고 싶은데 아는게 없다.

도움을 준다고 했으니 그냥, 그러려니하자.

이로써 한수아에게 두 명의 초월자라는 조력자가 생겼다.

거기에 나 까지 있으면 적어도 개죽음은 피할 수 있을 터.

“너는 바로 대기실로 귀환해. 24시간의 유예시간이 대기실에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니까 다시 여기로 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냥 안온다고 생각하고.”

“네."

이 정도면 한수아에 대한 조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이어서 그녀가 허공의 어느 지점을 살짝 터치한다.

아니, 터치하려다 그대로 손가락을 멈추더니 고개를 든다.

나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정말로, 이도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거에요.”

실망이라.

이미 한수아는 여태껏 내게 매우 많은 도움을 준 존재다.

비록 일 처리가 확실하지 않았던 적이 있긴 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단 한순간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아니까.

그리고 결과만 보면 모든 일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 쭉.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허공의 어느 부분을 그대로 터치한다.

그녀의 몸을 빛이 감싸기 시작하던 그때, 기이하게도 그녀의 품에 들려있던 상자와 거기서 홀로그램처럼 떠올라있던 아스트레이의 몸도 빛이 감싼다.

이어서 아스트레이가 당황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나와 한수아를 번갈아 쳐다본다.

-어? 어어?

...설마.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한수아와 아스트레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거 둘만 가려고 했는데 아스트레이까지 셋이서 가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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