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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17화 (116/131)

117화.  < 준비 (1) >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피비린내가 코를 훅 찌르며 나를 반긴다.

여기서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고.

발로 땅을 짚었을 때 느껴지는 그 질퍽한 느낌에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떻게 된 게 내가 가는 곳은 죄다 이렇게 음습하고 더러운 일들만 가득한 걸까.

문을 닫고 고개를 들자 주변 광경이 보인다.

우선 드넓은 평원에 흩뿌려진 핏물과 살점들이 보이고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는 공룡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공룡.

그 말로밖에 표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저게 크레타노스구나.

많이 들어는 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랩터랑 별반 다를 게 없네.

그리고 그 뒤쪽에 20여 미터 높이의 성벽이 있었고 그곳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 여성이 보인다.

한명은 박유정, 그리고 다른 한명은 한수아.

예지 속에서 한수아의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기분이 매우 이상하다.

짧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쿠웅-!!

굉음이 울리고, 크레타노스 무리가 좌우로 벌려지기 시작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랩터가 마치 금의환향을 한 귀환자처럼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폼이 꽤나 여유롭다.

그런데 저놈은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열려있는 차문을 닫으며 랩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덩치의 놈이 내가 다가가자 의문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냥 무시했다.

조용히, 나는 힘을 끌어올렸다.

쿠구궁-!

요동치는 내 기에 땅이 진동한다.

“끼..끼에엑...”

주변에 있던 랩터들이 그대로 짓눌리며 신음을 내뱉는다.

그것은 마치 겁먹은 강아지의 그것과 비슷했다.

기운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퍼서석-!!

일순간 내 주변에 있던 모든 랩터들이 그대로 터져나간다.

허공에 피가 흩날리고 살점이 날아다니는 매우 섬뜩한 광경이 이어지고 내 쪽으로 걸어오던 대장격인 랩터가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놈이 겁먹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때,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네. 전보다 기운의 수발이 쉬워진 거 같은데?

설마 신격이 상승하기라도 한 건가.

슬며시 상태창을 열람했다.

+

이름 : 이도

칭호 : [이레귤러(?)],[유물 사냥꾼(전설傳說)],[게으른 왕(유니크)], [피로물든 왕좌의 주인(준신화準神話)],[이종족 구원자(준신화 準神話)][유토피아의 군주(신화神話)],[균형자 후보(?)][지배자(?)]

*한정 칭호 : [세계 최강의 귀신(?)],[세계 유일의 귀신(?)]

고유 권능 : [예지력豫知刀]

스킬 : X

성장치 : 7성

[능력치]

[힘 : 7성(54%)]

[민첩 : 7성(52%)]

[지능 : 7성(57%)]

[체력 : 7성(61%)]

[기력 : 7성(99%)]

*[귀기 : ?성(?)]

보유 코인 : 23,184,266,050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던데, 진짜로 잡아버렸다.

내 신격이 상승했다.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그냥, 의문스러웠다.

난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데 대체 왜 신격이 상승한 걸까.

그러다 문득 읽지 않은 메시지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눈에 보이는 몇 가지 문장을 보자마자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당신(인간)은 시련자 최초로 아스가르드의 4단계 제약을 버텨내셨습니다.]

[모든 경험치가 40% 상승합니다.]

[당신(인간)은 시련자 최초로 아스가르드의 5단계 제약을 버텨내셨습니다.]

[모든 경험치가 50% 상승합니다.]

나도 모르게 한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말았다.

외부의 시선 같은 것에 신경 쓰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 내가 짓고 있을 멍청한 표정을 대놓고 보여주는 건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거...

‘대박이네?’

생각해보자.

내가 아스가르드에서 신격을 ‘제대로’ 뿜어냈던 적은 정확히 두 번이다.

한번은 여화와 힘 싸움을 했을 때, 그리고 방금 전 여화와 발락투스의 힘 싸움에서 버틸 때.

정리하면 지금 이 메시지는 에피소드가 진행되어온 이래 신격을 최대 3성 까지 성장시켰던 ‘어떤 시련자’가 있었고, 그가 아스가르드에 종속되지 않은 상태로 아스가르드에서 격을 뿜어낸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죽었을 수도 있고 아스가르드에 종속된 초월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스가르드에서 ‘인간’인 채로 4성의 신격을 내뿜은 건 내가 최초다.

‘잠깐만.’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꺼내야할지 말문이 막혔다고 해야 할까.

내가 지금 뿜어낼 수 있는 최고의 신격은 9성, 그렇다면 6성부터 9성까지의 힘을 아스가르드에서 뿜어낸다면 내가 얻게 될 경험치는 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가볍게 계산해보자.

4성이 40프로의 경험치를 주었고 5성이 50프로의 경험치를 주었다면, 6성부터는 60프로의 경험치가 내게 들어오게 될 것이다.

7성이 넘어갈수록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날 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어마어마한 혜택이다.

이어서 설명창에 (인간)이라고 정의 내려진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리하자면 이건 히든피스.

그것도 진정한 의미의 히든피스다.

에피소드의 방향성과 유래라든지, 이런 것들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근본인 지배력.

즉 진정한 지배자가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

‘이거였구나, 너희가 거기까지 올라 갈 수 있었던 건.’

생각해보면 여화와 천군의 힘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분명 곰곰이 생각해봤어야할 의문이었다.

여화의 겉모습은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본질은 ‘악마’, 천군은 ‘천사’. 그리고 나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들도 지금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다른 형태지만 이미 오래전에 겪은 상태.

본질적으로 그들과 나 사이에 종의 차이가 있었다고는 하나 시스템은 나름의 기준을 세운채로 ‘공정’을 앞에 내세운다.

결국 종의 벽에 서고 그것을 초월하게 되면 평등한 위치에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는 건데, 결론만 보자면 지금 여화와 천군은 지배자라 불리며 각 초월자들의 머리위에 서있는 상태다.

대체, 그들이 그렇게나 앞서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재능?

그럴 리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선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리고 내가 알기로 아스가르드에 종속된 순간부터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여화와 천군의 힘은 그들이 아스가르드에 종속되기 전인 ‘시련자’였을 당시의 힘에서 멈춰있다고 봐야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현재 시련자라는 신분을 가지고있으며 아스가르드와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다.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관심을 보냈던 거구만.’

이 일종의 히든피스이자 '보너스 업적'이 10성, 11성, 12성, 두 자리수가 넘어 갈때도 적용이 될 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걸, 나는 무조건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당신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습니다.]

여화는 그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저 웃음의 의미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자신감인걸까.

이건 분명 히든피스였지만 알고 있는 이는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알려준다는 말은 부적절하다.

그냥 이런 세부적인 정보에 대해서 초월자들은 단 한순간도 언급 한 적이 없다.

그게 아스가르드의 숨겨진 룰이었는지, 아니면 세 지배자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였는지는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스가르드에서 격을 뿜어낼 때마다 여화는 즐거워했었다.

그냥 미친년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상황이 묘해진다.

거참.

고개를 들자 땅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 있는 대장 랩터가 보인다.

생각에 빠진 게 잠시여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주변이 꽤나 조용하다.

슬며시 손을 휘두르자.

퍼석-!

랩터의 머리가 그대로 터졌다.

폭기라던지 신의 창이라든지 그런 기술은 무의미했다.

그냥 툭 치니 퍼석하고 터진다.

나와 랩터간의 차이는 그 정도였다.

띠링!

[축하합니다. 당신은 Episode #39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이게 뭔가 싶다.

클리어 했다는 건 크레타노스를 전부 죽였다는 건데, 설마 여기에 있는 크레타노스들이 남아있는 전부였던 건가.

그 이상 크레타노스에 대해서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금 이 시간부로 발바라 대륙에서의 모든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느낌이 온다.

발바라 대륙에서의 에피소드가 끝났다는 말은. 결국...

[모든 시련자들은 현 시간부로 일시적인 대기자 상태가 됩니다.]

[다음 에피소드의 무대는 타이탄입니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성벽 위에 있는 한수아와 박유정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울리는 시스템의 기계음과 눈앞에 보이는 작은 메시지 창.

저들뿐만이 아니라 이 대륙에 있는 모든 시련자들이 똑같은 모습이겠지.

솔직히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이미 전생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

[에피소드 중간 정산결과입니다.]

-

1위 이도. 26,800,620,000

2위 한수아. 315,850,560

3위 박유정. 235,238,223

4위 나성진. 76,600,340

5위 성미령. 55,747,432

-

[*사망한 시련자는 정산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모르겠다.

이게 뭐지?

중간 정산이라고?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보니까 에피소드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모았던 모든 코인의 숫자를 기준으로 잡은 것 같은 데,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가 들은 이야기랑 다른 수준을 넘어서 그냥, 방향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

그리고 내 의문은, 금방 밝혀졌다.

[공적치 1위 시련자인 당신에게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띠링!

+

[선택]

[타이탄 행성은 미지의 위협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시련자이면서도 초월자인 당신은 실질적인 발바라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만 세상의 지배자가 될 자격을 증명하셨습니다.]

+

미사여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중요한건 그 다음 이어지는 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련자들을 타이탄으로 데리고 갈지, 아니면 몇 명만 골라서갈지, 그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거, 정리하면 그거잖아.

에피소드를 받을지 말지를 선택 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 선택권을 나한테 주겠다는 거.

슬며시 고개를 돌려 성벽위의 한수아와 박유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잠깐 사이에 나성진과 성미령까지 보이는 걸로 보아 텔레포트로 넘어왔나 보다.

그들이 매장에 전시된 똑같은 표정을 한 인형들처럼 의문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개중에는 당황한 이들까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보고 있는 이 메시지를 저들도 보고 있나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데려가는 이들과 데려가지 않는 이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대기자 상태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건지.

그게 지구로 돌아간다는 말인지 아닌지, 이런 세부적인 것들에 대해서 시스템은 너무나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냥,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내 속내를 읽은 걸까.

[금일부로 발바라 대륙은 시스템이 주관하는 에피소드 내에서 완전한 ‘안전지대’가 되었습니다. 공적치 1위인 당신이 데려가는 이들은 타이탄에서 새로운 시련을 받게 될 것이며, 이곳에 남아있는 이들은 당신들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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