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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06화 (105/131)

106화.  < 탐욕의 재앙(3) >

시작은 미미했다.

유토피아 제국의 수도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 하는 노엘은 순간 멍했다.

앞에서 진열대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물품을 바라보던 한명의 손님.

입은 복장은 군복이었으며 허리춤에 검이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병사일 확률이 높았다.

그냥 일반적인 손님인 그가,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입고 있는 군복을 의류점에 팔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저 검을 대장간에 팔면 얼마나 나올까.

그리고, 저 손님이 가지고 있는 골드는 대체 얼마나 될까.

그 병사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노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인식의 변화.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가지고 싶다는 탐욕이라는 감정이 슬금슬금 고개를 치켜든다.

노엘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내, 그는 비상시를 대비해 마련해둔 계산대 아래의 단검에 슬며시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물었다.

“손님. 실례지만 골드는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정중하지만 탐욕이 번들거리는 눈동자의 노엘.

그의 물음에 손님은 답했다.

말이 아닌 허리춤의 검으로.

서걱-!

병사의 검이 노엘의 복부를 꿰뚫는다.

그 일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묘하게도 밖에 있는 이들은 안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듯했다.

“컥..커헉..”

피가 치솟아오른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노엘이 고개를 들었다.

병사가, 노엘의 그것과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내가 왜 병사를 하고 있던 거지. 그냥 이것들... 전부 가져버리면 되는 건데.”

노엘의 귓가에 병사의 말이 광시곡처럼 울려 퍼진다.

그렇게, 노엘은 고개를 떨궜다.

***

의아함은 잠시였고 의아함과 함께 찾아온 당황이 사라진 것은 잠시보다 더 빠른 찰나였다.

으아악-!!!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그리고 살 가르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순식간에 내가 느낄 수 있는 범위 내의 모든 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모든 이들이 싸우고 있었으니까.

범죄, 약탈, 강간, 등등.

분명 국가라는 체계가 존재하고 그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존재했다.

굳이 내가 양규나 다른 이들에게 명령하지 않아도 그런 체계가 잡히는 것은 당연했다.

굳이 두 번 언급할 수준도 아닌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

그리고 이런 말이 있다.

군대가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진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처럼 혼란이, 세상을 덮었다.

탐욕의 재앙?

무슨 이름이 그렇게 거창한가 싶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거창할만했다.

이런 건 단순한 스킬, 혹은 권능. 그런 단어로 표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재앙.

한 세상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는 재앙.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한수아가 보인다.

보호하려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이 적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어서 한수아를 둘러싼 이들이 무기를 휘두르고 한수아가 뒤로 자리를 박차고,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 달려드는 이들.

그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그들이 내뱉는 말이 귓가에 울린다.

“이 악녀가!!!!”

“나를 세뇌했던 것이냐!!!!”

입고 있는 복장으로 보면 분명 ‘성기사’가 확실했다.

그리고 그들 뒤에서 돌 같은 것을 한수아에게 집어던지는 나이 많은 주민들까지.

그것으로 확신했다.

한수아의 매혹이 풀렸다.

그것으로 많은 것이 설명된다.

그때 한수아가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친다.

묘하게 조금 슬픈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수아.

솔직히 조금 의아했다.

아니, 모르겠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마치 곧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아직은 아니네. 이 분위기는 아니야.

“...지금이나 나중이나 별반 다르지는 않을거에요.”

-...이건 아니네. 이건 아니야.

혼란스러워하는 아스트레이와 무언가를 하려는 듯한 한수아까지.

그녀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다.

퍼억-

어딘가에서 날아온 주먹만 한 돌멩이가 한수아의 머리에 직격한다.

그녀의 이마가 까지고 피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수아의 신체 능력.

최소 모든 신체 능력이 80은 넘었을 것이며, 90을 앞둔 것이 확실하다.

그런 한수아가 저런 공격을 맥없이 허용한다고?

이어서 검을 휘두르던 이들이 한수아에게 살기를 담은채로 휘두르던 그때.

짜악-!

박수소리가 들려오더니.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돌풍이 한수아를 휩쓸었다.

아스트레이의 상자가 튕겨져 나가고, 한수아가 그대로 땅바닥에 짓눌린다.

하... 시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었다.

저 박수 소리는 한수아를 향한 공격을 대신 막아 주려는 것이겠구나...

그런데 아니었다.

저건, 막아 준 게 아니라 마치 너희들이 아닌 내가 죽여야 한다는, 그런 의지가 깃든 공격.

이건, 내게 일종의 방아쇠로 다가왔다.

뿐이랴.

이 일련의 상황들이 도가 지나치게 거슬린다.

여화는 나를 협박하는 것처럼 상황을 만들었고 탈레리안은 팰 시간도 없이 지 혼자 뒤졌고, 재앙인지 뭔지, 실체조차 잡을 수 없는 이상한 게 잊고 싶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일련의 상황.

‘하…’

이 씨발새끼들이, 지금 뭐하자는 거지.

다리에 힘을 주고, 박찼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악!”

무언가 울분을 토해내는 것 같은 박유정의 멱살을 움켜쥔 채로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한수아가 무언가를 각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말없이, 몸의 기운을 해방시켰다.

쿠웅-

공간 전체가 진동하더니.

파아앙-!!

나를 기준으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5성의 기운.

하지만 여전히 멱살이 잡혀있는 박유정은 변화가 없었다.

손바닥을 자꾸 마주치려는 행동을 하는 게, 이거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너는 뭔데 내가 하려는 일을 막...”

개소리를 이어가려는 박유정의 말을 그대로 끊고는 기운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6성을 넘어 7성.

내 몸의 발끝부터 점차 검은색으로 물들더니 내 몸이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박유정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덜덜 떨고, 주변에서 싸우고 서로를 헐뜯던 이들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는다.

하지만 그들을 비롯해 박유정의 눈동자에 담긴 번들거리는 ‘탐욕’은 여전했다.

이대로도 안된다고?

결심을 굳힌 나는, 귀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콰과가가가강-!!!

8성, 아니 9성.

내가 현재 끌어올릴 수 있는 최고의 힘을 끌어올리자 변화가 생겨났다.

탐욕에 젖어있던 박유정의 눈동자가 평상시 그녀의 눈동자로 돌아온 것.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땅바닥에 짓눌린 이들.

적어도 죽지 않게 기운을 조절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은 그대로 땅에 짓눌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바닥에 박유정을 내려놓고, 주저앉아있는 성미령과 나성진을 잠깐 바라보고는, 한수아에게로 향했다.

한걸음 내딛자, 나는 한수아의 앞에 있었다.

그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의 입이 열렸다 닫히기를 서너 번.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마라.”

“...예?”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거, 하지 말라고.”

“아…"

이어서 한수아가 네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끝이었다.

이 탐욕의 재앙이라는 거.

해결 방법을 알았다.

지금의 내가 마라톤 하듯 전국을 돌아다니면 된다.

정말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유일한 해답일 텐데.

한수아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양규에게 주변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그때. 내 직감이, 그리고 내 본능이 외친다.

빨리 방어하라고.

반사적으로 팔목을 들어올렸다.

쩌엉-!!

하늘에서 내려찍힌 무언가가 내 팔목을 강타하고. 무언가에 밀리듯 나는 멀리 날아갔다.

콰아아앙-!!!!

땅바닥에 쳐박힌 나는, 순간 멍했다.

공격이... 꽤나 아프다.

아프고 느낌이 싸했다.

이거 마치, 내가 탈레리안을 구덩이에 처박았을 때랑 상황이 흡사하잖아?

몸을 일으킨 채로 가볍게 자리를 박찼다.

터억-

자리에 착지하기가 무섭게.

[신기한 놈이네. 넌 인간이냐 귀신이냐?]

거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탈레리안의 목소리는 쇳소리 같았지만 무언가 긁는 것 같은 그런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들려오는 저 목소리는, 쇳소리를 넘어 성대를 갈고리를 긁어대는 것 같은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딱 그런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가 않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난건지 모르겠는데, 꽤나 많이 지난 건 확실하네. 내가 있을 때는 그런 적이 없었거든.]

그런 적이라...

묘하게 흥미가 동하는 단어였다.

[내가 무언가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서 자유로운 건 여화 말고는 없었어. 지목 당한 놈은 그게 누구건 반드시 답을 했어야했지. 그러니까...]

“개소리가. 졸라게 기네.”

말문이 막힌 놈이 입을 다문다.

그 틈을 타 놈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하늘에, 정확히 700미터 정도 허공에 한 괴물이 서있었다.

마치 달걀귀신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얼굴은 그냥 동그랬으며 신체로 미루어보면 인간의 신체와 흡사한데 그게 전부였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온통 검은색의 생명체.

눈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코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며 저 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이제는 별 해괴한 생명체를 다 마주하는걸 보니, 여기가 판타지 세상은 확실히 맞나보다.

[덜 맞았나. 갓 9성이 된 것 같은데, 그런 네가 나한테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난 그냥 묻고 싶은 게 있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내말 끊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줄래?]

묘하게 어투가 여화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이상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온몸에서 들 끊는 기운을 다리로 보낸 뒤 폭발적인 힘으로 자리를 박찼다.

콰앙-!!

내 몸이 빛살 같은 속도로 뻗어나갔고 내 허리춤의 주먹이 직선으로 뻗어져나간다.

쩌어엉-!!!

카르피온.

탐욕의 재앙이라 불리는 그가 아까의 나처럼 팔목을 들어 올려 내 주먹을 막는다.

그런데 이어서 놈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니, 모르겠다.

표정이 없는 놈이라 굳어진 건지 아니면 쪼개고 있는 건지. 그래도 확실한건 저놈은 절대로 웃지 못 할 거라는 거.

왜냐면 지금부터 나한테, 미친 듯이 쳐 맞을 테니까.

살짝 손을 거두고는 그 상태로 몸을 회전시켰다.

이어서 내 발이 원심력과 기운을 머금은 채로 놈의 옆머리를 그대로 후려친다.

꽈아아앙-!!!!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사방으로 충격파가 터져나간다.

밑에 있던 이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안 그래도 박살나있던 건물들이 그대로 사방으로 터져 나간다.

재앙은 별게 아니었다.

이게 재앙이다.

신격을 갖춘 존재.

인외의 존재.

심지어 9성이면 최상위권이다.

단순히 공격 한두 번 주고받는 것만으로 땅이 초토화되는 게 그들의 싸움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

멀리 날아가는 달걀귀신을 바라보던 나는 성대에 기운을 담은채로 말했다.

[상황 정리해.]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지는 명확했다.

한수아와 남은 시련자들.

그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묘한 곳에서 반응이 왔다.

“오오... 신의 목소리다!!!”

“신이시여!!”

“이도님이시여!!!”

이게 아스가르드의 존재들과 나의 차이인가보다.

적어도 내 목소리는 ‘시련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확실하게 전해졌으니까.

이어서 유토피아 제국의 수뇌부들이 오뚝이처럼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빠르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황급히 어딘가로 이동한다.

무시하고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아스트레이의 상자를 집어든 한수아가, 조금 글썽거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잠깐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한수아랑은, 이 일이 끝나고 따로 이야기 해야 할 듯싶다.

[하... 하하..]

달걀귀신이 웃는다.

[재미있는 놈이네, 온전한 지 힘도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수발이 자유롭다고? 이거 좀 애매한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이 아닌 이번에는 흰색으로 물들어있는 달걀귀신이 보인다.

무슨 색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겉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 달라졌을 게 확실하다.

그냥 색깔이 변했을 리는 없으니까.

고통이 남아있는지 한쪽 손으로 타격을 받은 옆머리를 문지르던 그가 말한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뭔지 알아?]

실소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무슨 장기자랑 시간인가.

“내가 알아야하나?”

[알면 좋지. 내가 지금 기분이 매우 나빠졌거든.]

말없이 놈을 노려보았다.

[나는 말이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권능’의 힘을 뿜어낼 수가 있단다. 재미있지? 그러니까 너는 죄책감을 가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얼마나 이렇게 소환되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이쪽 세상은 분명히 멸망 할 테니까.]

순간 흠칫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권능의 힘을 뿜어낸다고?

그러니까, 일종의 디버프가 패시브 스킬처럼 장착되어있다고 해석해야하나?

그런데 저놈 말에 조금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었다.

내가 자초해?

“딱 보니까 한 대 쳐 맞고 기분 나빠서 화풀이하려는 머저리가 연상되는데. 이름이 카르피온이라고?”

잠깐 달걀귀신의 목소리가 멈췄다.

그리고는 작게 웃는 게, 이 상황 자체가 꽤나 재미있나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제일 잘하는 건 그런 게 아니란다. 싸우는 건 별로 재능이 없어. 어차피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무너지는데 내가 뭐 하러 싸워? 그렇지 않아?]

미친놈에도 등급이 있다면 저놈은 분명 최상위권에 링크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굳이 마라톤 하듯 발바라 대륙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냥 눈앞에 있는 저 달걀귀신을 쳐 죽이면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생각.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뒤지면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 말은 참 많아.”

[...하아... 그래 쉽게 말해줄게. 나는 말이야. 도망치는걸 아주 잘한단다.]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나보다.

“유감이네. 난 도망치는 새끼를 잡는 걸 제일 잘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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