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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05화 (104/131)

105화.  < 탐욕의 재앙(2) >

마지막 기회라...

잠깐 생각에 잠기려 할 때.

띠링!

[선善에서 군림하는 자가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를 노려봅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침묵합니다.]

그 외에 혼란을 초래하는 자 등등, 중립 진영의 초월자들은 물론 다른 진영의 모든 초월자들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귓가에 울리는 띠링 하는 엿 같은 메시지 소리는 둘째 치고, 그 메시지의 양이 내가 일일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았다. 어림잡아 100, 아니, 최소 200.

아니, 그런데 이 새끼들은 왜 이걸 나한테 보내는 건데?

내가 하나하나 입으로 말해주기를 원하는 건가.

짜증으로 미간이 찌푸려지던 그때.

[여화님은 그대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

[아마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겠지.]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더니. 지금 또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고?

말이 앞뒤가 맞지 않잖아.

찌푸려지는 내 표정을 바라보던 탈레리안이, 마저 말을 잇는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 하려한다. 그대가 나를 어찌 아는 건지, 왜 기차에서 나를 언급했는지, 내 진명은 어찌 알았는지, 그런 건 모른다. 궁금하긴 하지만 밝혀내고 싶지도 않아. 어차피 그건 그대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 테니까.]

확실히 말하건대, 저건 완벽한 오판이다.

내가 놈의 진명을 알고 있는 건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으로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여화님의 능력은 간단하다. 무언가를 제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소환하지.]

조금 애매 하다.

몇 대 패려던 생각이 그대로 자취를 감출 정도였다.

지금 탈레리안의 모습은 내게 퀘스트를 내려주려는 npc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힐끗 메시지 창을 돌려 빠르게 훑었다.

여화는 아까 이후로 여전히 내게 아무런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이건 그냥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건데.

살짝 궁금해진다.

이놈이 깨달았다는 자신의 역할이 대체 뭘까.

[이 간단한 메커니즘에 대해 여화님의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지. 그분의 힘과 그분이 가진 ‘코인’, 그것들이 그 모든 것을 증명해.]

말을 마친 탈레리안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인지, 끝말에 문장 하나를 덧붙인다.

정확히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이라는 문장.

거참.

여화가 대단하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걸까.

솔직히 여화는 대단하다.

어떻게 왜곡하건 결국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모자란 자가 각 종족을 초월해 신격이라는 것을 갖춘 초월자들을 거느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재 이 상황.

한번쯤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왜 탈레리안이 내려왔을까.

시스템에 구멍이 많다고 해도 그 구멍이 시스템의 근원 자체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런 구멍이 존재했다면 초월자들이 아스가르드에 묶여있을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분명 탈레리안은 말했다.

여화가 목숨을 바쳤다고.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건 하나다.

그 여러 개의 목숨중 하나를 바치는 ‘악수’를 두면서까지 왜 하필이면 탈레리안을 소환했는가.

여화가 나를 죽이려는 목적이었다면 탈레리안이 아닌 다른 이가 내려왔을 것이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최소 9성을 갖춘 괴물.

내가 악 진영에 속한 모든 초월자를 아는 건 아니지만 분명 9성을 갖춘 초월자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여화 본인이 직접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왜 나보다 약한 탈레리안이 강림했을까.

단순한 전령의 역할이기에?

그럴 리가.

문득 여화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너 말이야. 나랑 그 한수아라는 애,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고 하면 누구 선택할거니?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즉, 여화는 내 눈을 피해서 한수아를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여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탈레리안으로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자세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탈레리안이 강림함으로써 여화의 계획 중 ‘어떤 것’이 충족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게 끝일 리 없다.

그러니까.

“준비한 거 꺼내봐.”

짤막한 내 말에 탈레리안이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작은 수정구 하나를 꺼내들었다.

무늬 하나 없이 말 그대로의 그냥 구슬.

묘하게 거슬리는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권능의 본질은 영혼의 힘. 누군가를 세뇌시키는 것 같은 능력이지만 시스템은 그 능력을 매혹이라 정의했지. 그 이유를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한테 하는 말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내 뒤쪽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있는 한수아를 향해 있었다.

뜬금없는 선문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내 직감은 절대로 흘려서 듣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시스템은 과정이 아닌 결과로 모든 걸 판단하지. 저 인간의 매혹은 결국 세뇌와 비슷하지만 그 근본은 한 인간을 기준으로 한 맹목적인 충성.]

“그래서?”

[결과, 근본, 인과.]

짤막한 말이지만 이건 절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되는 단어들이다.

[이 정도면 이게 무슨 말인지 그대라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언젠가 한번 깊게 생각해보려다 중간에 끊겼던 생각의 연장선.

살짝 입맛을 다셨다.

왜 한수아의 능력은 매혹일까.

영혼의 힘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단어의 정의에 대해서 한번쯤 깊게 생각했어야했다.

그리고, 사실 그 답은 뻔했다.

탈레리안의 말대로 매혹은 세뇌와 흡사하지만 그 근본은 결국 한수아에 대한 충성심이다.

흡사하긴 하나 추구하는 목적과 확실한 결과물이 다르다.

내 예지력도 마찬가지다.

처음 아스가르드에 갔을 때 여화는 말했다.

‘예지’라는 능력을 가진 시련자가 더러 있었다고.

그들이 어떤 미래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가진 권능도 분명 발동 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능력이 내 능력과 발동 조건이 같을까?

새삼스럽지만 내 예지력은 내가 죽게 되는 순간 발동된다.

그렇다면 내 능력은, 엄밀히 말하면 ‘위기 모면’같은 단어가 어울린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것을 예지력이라고 정의했다.

이것도 깔끔하게 답이 내려진다.

죽게 되는 그 과정은 결국 나를 기준으로 벌어지는 내 미래, 그 미래를 막느냐 혹은 막지 않고 죽음을 택하느냐.

결국, 근본을 따지면 나는 미래를 봄으로써 두 개의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선택지를 고르는 것은 나라는 주체이며, 어떤 것을 택하건 위기를 모면 할 수도 위기를 모면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위기 모면이라는 단어는 부적절 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은 애매모호한, 그러니까 추상적인 것에 정의를 두는 게 아닌 확실한 결과에 뜻을 두고 그것을 정의 내린다.

미래를 본다.

여기서는 이게 핵심이다.

과정은 다르되 결과는 같은 것.

탈레리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일터.

그리고 내가 알기로 중복된 권능은 존재가 불가능하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 영혼의 힘이기 때문에.

즉, 도플갱어같이 똑같은 존재가 아니고서야 중복된 권능이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가정.

해답을 도출해낸 뒤 고개를 들자, 탈레리안이 손에 든 수정구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건 여화님이 만드신 권능의 파편, 본질은 탐욕. 이름은 카르피온. 여화님이 지닌 네 번째 재앙이다.]

놈이 무언가를 하려한다.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있었다.

내 손이 뻗어지고 놈의 손에 들린 수정구가 살짝 빛을 뿜어내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

이어서.

파아앙-!!!

수정구가 터져나가며 빛 무리를 사방에 흩뿌린다.

잠깐 멍했다.

그 광경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그 생각은 잠시였다.

이어서 빛무리가 뭉치며 하늘 높이 올라간다.

그리고 초 단위가 아닌 그 미만의 시간이 흐르자 그대로 펑 하고 사라졌다.

대체, 뭔데?

콰악-!

[ 큭. ]

손을 뻗어 코앞에 있는 탈레리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지금 뭐 한 거냐?”

[...]

“뭐 한 거냐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게 부여된 역할을 마치려는 것일 뿐.]

이 새끼가 진짜.

손가락에 힘을 주려던 그때.

치지직-!!

내게 멱살이 잡힌 탈레리안의 몸에서, 거대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한다.

손에 힘을 주어 놈의 목을 조르거나, 부수거나, 그러려는 생각이 아예 들지가 않았다.

그냥 멍했다.

이거... 그거잖아.

소멸의 징후.

이어서 탈레리안의 손이, 그리고 그의 발이, 이어서 그가 입고 있던 로브가 그 끝부터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건 소멸의 징후가 확실하다.

대체 뭐야 이 새끼?

대화를 하자더니 지 할 말만 하고 갑자기 이렇게 뒤진다고?

무슨 전개가 이래?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탐욕의 재앙 카르피온.]

이건 유언인가?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게 조금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건 조금 다른 생각인데, 잠깐이지만 혹시나 했었다.

다른 초월자들의 생명을 대가로 바치기만 한다면 강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지금 놈의 상황이 말해주고 있었다.

강림에는 거대한 제한이 따르며, 시스템은 구멍이 생기더라도 엇나간 일에는 최대한 개입해서 '해결' 한다.

그 증거가 지금 눈 앞에 있었다.

[탐욕이 땅을 뒤덮고, 생명체는 욕망에 물드니, 그야말로 재앙이라 부를 수 밖에 없도다.]

갑자기 무거운 어조로 내뱉는 탈레리안의 개소리는 그냥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시스템의 제제로 인해 소멸하는 놈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가, 고통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막아보거라.]

유바의 신성이 소멸되면서 내게 보여주었던 그때의 표정과 매우 똑같은 표정의 탈레리안이 마치 시詩를 읽듯이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여화님의 뜻에 동조하거라.]

맹목적인 충성심인가.

적어도 내가 아는 탈레리안은 그렇게 숭고한 의지를 지닌 놈이 아니다.

죽이고 죽이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미친 마법사와 숭고한 의지?

흥미를 떠나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하나 밖에 없다.

결과의 확신.

탈레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

여화의 최종 승리를.

[춤을 추거라.]

잠시간 탈레리안의 시선이 내 뒤쪽에 닿는다.

누구를 바라보는 건지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분명, 상자 속에 담긴 아스트레이였을 테니까.

이어서 그의 시선이 살짝 옆으로 이동해 나와 눈을 맞춘다.

[꼭두각시가 되어 추거라.]

탈레리안의 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허공에 그의 머리만 남았을 때, 놈이 찌릿한 시선으로 시의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 짓는다.

[그 끝에는, 악惡의 세상만이 남으리니.]

스르륵-!

사라진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치고 각 세계의 수많은 마법과 기술을 배우며, 자기가 몸담았던 제국의 국민들을 제물로 바쳐 강제로 신격을 초월한 마법사가, 마치 엑스트라처럼 그렇게 소멸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 수키로 미터의 하늘에서부터 울려 퍼진 거대한 굉음이 시작이었다.

이 순간, 전생에서도 겪지 못했고 현생에서도 겪어서는 안될 재앙이, 발바라 대륙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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