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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96화 (95/131)

96화.  < 이거 완전히 싸이코 아니야?(1) >

조금 늦었지만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번에도 감탄했다.

분명히 나는 단순히 힘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뿐인데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세상에 둘도 없을 절경중의 절경들 뿐이니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살짝 헷갈릴 정도다.

조용히 주변 기운을 느꼈다.

상쾌했다.

거기다 공기도 매우 맑았으며,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해바라기같이 생긴 분홍색의 꽃은 영혼이 깃들기라도 한 듯 춤을 추고 있었고 아름답게 형성된 녹색의 땅은 그 자체로 완성품이나 다름이 없었으며 주변에 흘러내리는 시냇물은 너무나도 맑아서 몇 급수인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아마 1급수 그 이상의 청정함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살짝 감탄하고 있던 그때, 옆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가 나도 모르게 폭기를 터트릴 뻔했다.

웬 인면어 같이 생긴 생선 같은 놈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는 것이, 정말이지 소름이 쫘악 하고 올라오는 게 긴장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로 폭기를 터트렸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놈이 다른 곳으로 하늘을 헤엄치며 날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머리 쪽에 나있는 서너 개의 안테나 같은 돌기와 온몸을 감싸고 있는 가죽은 저게 생선인지 동물인지 그 종족을 햇갈리게 할 정도였으며 등 쪽과 옆구리 쪽에 나있는 여섯 장의 새하얀 기운으로 만들어진 날개는 마치 저게 몬스터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그래도 확실한건 이곳은 내가 살면서 본적이 없는 것들 투성이라는 것.

잠깐 주변을 둘러보던 나를, 앞서 걷던 엘프가 멈춰서더니 돌아본다.

“안 오시나요?”

처음 봤을 때랑은 다르게 약간 까칠한 면이 느껴진다.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 내 영혼에 무언가 잠들어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무언가 물어보려던 내 말이 중간에 끊겼다.

솔직히 이런 적이 몇 번 있긴 했었지만 이렇게 명백한 의도를 가진 채로 말이 끊긴 건 또 처음이라 살짝 당황스럽기 까지 하다.

“저는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시련이 끝난 뒤 그때 말씀하시죠.”

“...진짜 까칠하네. 그 슈샤이어가 생각보다 많이 다쳤나봐?”

이죽이는 내 말에 엘프는 말없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무반응에 결국 나도 다시 멈췄던 걸음을 옮겼는데, 점점 걸을수록 작은 의구심이 싹을 틔우며 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아수라의 시련을 받을 때와 지금의 상황.

확실히 무언가 달랐다.

뭔가 되게 스무스하게 흘러간다고 해야 할까.

분명히 이곳으로 오기 전, 그러니까 세월의 돌과 자하의 폭포가 맞닿는 순간 그쪽과 이쪽의 시간 경계가 달라졌다.

쉽게 말하면 저쪽 세상은 멈춰 있는 거고 지금의 나는 균형자의 시련에 진입한 상황.

그런데 알림음도 뜨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아수라 때는 곧바로 좀비 같은 놈들이 달려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따라오란다.

천천히 엘프의 뒤를 따라가며 내 가슴속에서는 이상하게 불안감 같은 것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왜 이럴까.

거참.

이 직감이라는 게 쓸데없는 곳에서까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네.

이윽고 엘프가 멈춰서더니 내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슬며시 고개를 들자 거대한 철문이 보인다.

그 양옆으로는 거대한 두 개의 모래시계가 존재했었는데 그 안에는 반딧불 같은 빛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냥 장식품인가 아니면 시련 진행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인가.

그때 나와 엘프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말로 하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나를 재촉했다.

빨리 들어가라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제 와서 잡다한 걸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시련 안의 시련, 나에게는 이게 진정한 시련이다.

그걸 맞이하고 클리어하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철문에 손을 얹자 문이 자연스럽게 좌우로 갈라진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무리를 받으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쿠웅-!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뒤쪽에 있던 문이 그대로 닫힌다.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묘사를 해야 할까.

그냥... 새하얀 공간.

아수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형님을 꿈속에서 만났을 때, 그때 보았던 그 공간이 분명했다.

[오셨군요.]

공간 전체를 울리는 목소리.

근원지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눈앞에 있었으니까.

외형은 그냥 둥근 원.

그 안에 색깔이나 이런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그냥 원형의 이상한 물체가 눈앞에 있었는데, 농담이 아니라 내게 말을 건넨 것은 저 물체가 분명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신가요? 원하면 다른 모습으로 바꿔 줄 수도 있는데.]

“상관은 없는데, 그쪽이 정령도의 균형자입니까?”

그가, 혹은 그녀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도님. 저는 이 정령도를 관리하는 사루, 오랜 세월동안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했던 아수라의 시련을 통과하신 시련자를 보게 되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생각보다 말투가 여유로웠다.

[어디까지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균형자들의 시련들은 모두 시련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제작되어진 퀘스트입니다.] 뜬금없는 말에 살짝 고개가 갸웃해지려던 그때.

[지옥도의 시련은 아수라가 만들고 제작했지만 지금부터 이도님께서 겪게 되실 시련은 다릅니다. 제가 만들고 제가 관장하는 시련이 아니거든요.]

“...뭐?”

[공백의 왕께서 살아생전 체제를 잡아놓으셨고 그 체제를 시스템이 보충했죠. 깊게 생각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 그대로 문맥의 뜻이 전부니까.]

...뭔가 묘하다.

느낌이 싸하다고 해야 하나.

[표정을 보아하니 긴말은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그럼 바로 정령도의 시련을 시작하겠습니다.]

거참.

약간 미심쩍은 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진도를 빠르게 빼주는걸 보아하니 이거, 꽤나 시원시원한 게 딱 내 스타일이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곧 이도님은 다른 장소로 이동 될 겁니다. 그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수정구를 부수세요. 포기하고자 하신다면 포기를 외치시면 되고, 계속 진행하시려거든 계속 진행하셔도 됩니다. 아수라의 시련과는 다르게 이번 시련은 제한 시간이 없으니까요.]

슬금슬금, 불안감이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정령도의 시련, 공백의 왕께서 남기신 ‘의지의 시련’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띠링!

[메인 스토리 ##2(외전)]

[‘의지의 시련’을 이겨내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영체의 구슬을 파괴하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

머릿속에 알림음이 뜨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확 하고 밝아졌다.

곧바로 눈을 감았던 그때. 사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령도로 올 수 있는 방법은 이제 발바라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거죠. 부디, 무운을 빌겠습니다.]

후일을 기약한다?

솔직히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개소리였다.

에피소드 100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이상 내게 있어서 후일이라는 건 결국 모든 일의 나가리를 뜻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슬며시 눈을 뜨자, 나는 꽤나 넓은 ‘평원’에 와있었다.

어디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발바라 대륙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구인지. 솔직히 이제 와서 지명이 뭐가 중요할까.

내 시야에 사루가 말했고 시스템이 말했던 ‘수정구’가 눈에 보인다.

크기는 가로세로 3m정도의 완벽한 원.

그 안에 검은색의 이상한 기운과 하얀색의 기운들이 뭉치고 흩어지다 이번에는 섞이고 그 섞인 것이 다시 갈라지는 일련의 상황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수라의 시련과는 사뭇 다르긴 했지만 중요한건 제한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감정을 무시하고, 생각도 그대로 접었다.

손을 펼쳐들고 귀기를 끌어올리자 내 앞에 자연스럽게 다섯 개의 폭기가 만들어진다.

망설임 없이 수정구를 향해 쏘아냈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지고 먼지가 수정구 주변으로부터 피어오른다.

앞뒤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꽤나 짙은 먼지구름이다.

기운을 퍼트리자 먼지가 완전히 사라졌는데, 이후 내 눈에 들어오는 상황은 아까와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수정구, 그러니까 영체의 구슬이라는 것은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멀쩡했는데, 폭기의 위력이 낮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 힘이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뒤로 두세 걸음 물러섰다.

이때를 대비한건 아니지만 단일 타격에 최적화되어있는 기술을 한번 제대로 시험 해볼 때인 것 같다.

귀기를 내 몸의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나는, 하늘로 기운을 올려 보냈다.

스아아아-!!

하늘에서 생겨나는 검은색의 창.

내가 신의 창이라 이름붙인 그것이 고고한 모습을 드러내며 목표물을 노려본다.

당연히 목표는 구슬.

나는 의념을 보냈다.

‘내려, 꽃혀라.’

쌔애애액-!!!

콰아아아아아앙-!!!

**

홀로 남은 새하얀 공간에서, 사루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첼, 밖에 있나요?]

-네 있습니다.

밖에서 계속 대기하던 걸까.

엘프, 레이첼이란 이름을 가진 그녀가 사루를 향해 의념을 보내자 사루가 묻는다.

[그 한수아라는 인간을 직접 보고 싶은데, 데려와주실 수 있나요?]

-...네?

사루는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원거리 통신 비슷한 상황이지만 사루의 말은 정확하게 레이첼에게 전해졌으니까.

그녀가, 물었다.

-중간계의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오시면... 사루님의 기운은 더 약해지실 겁니다. 왜 그러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별 이유는 아니에요. 그저 영혼을 끌어당기는 기이한 힘을 가진 그녀를 저는 직접 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도라는 인간도 의지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 확실합니다. 거기다 머지않아 아스가르드의 제약이 풀리고 그들은 이곳을 지우거나 사루님을 죽이려 할 것인데, 그 말씀은 재고해 주시는 게 어떨까하고 조심스럽게 청합니다.

사루가 작게 웃는다.

[저랑은 생각이 다르시네요.]

-...네?

[그 이도라는 남자는 공백의 왕께서 남기신 의지의 시련을 통과할겁니다.]

[다만 그 남자가 해결책을 찾느냐 못 찾느냐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저는 통과할 것 같네요.]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선택의 문제인데, 과연 그 인간이 그 ‘선택’을 하겠습니까?

사루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오늘따라 말이 많네요. 레이첼, 저는 분명 말했어요. 한수아라는 인간을 보고 싶다고.]

[왜 대답이 없나요.]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새하얀 공간에는 순식간에 침묵이 자리하게 되었고, 그 공간에서 사루는 나지막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공백의 왕께서는 다시 생각해도 장난기가 넘치시네.]

***

나는 자리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다.

정확히 15m정도 앞에 보이는 영체의 구슬.

거참.

신의 창으로 때려 박아도 멀쩡했고 주먹으로 후려쳐도 멀쩡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으로 만져보았지만 그냥 딱딱한 구슬을 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 게 전부였다.

그냥. 답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생각에 잠겼다.

선례를 예로 들어보자면, 사실 선례라고 할 것도 없이 딱 한 가지 예시밖에 없었지만 아수라의 시련에서의 키워드는 ‘판단력’이었다. 웃기지도 않는 퀴즈를 내는 뭐시기 장군부터 시작해서 그 지옥도 전체가 아수라라는 존재의 몸이었다는 웃기지도 않는 결론.

그 결과 나는 귀기라는 힘을 얻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련은 어떠한가.

제목이 의지의 시련인데 정작 내용은 구슬을 깨라?

정확한 퀘스트 내용이 떠오른다.

‘영체의 구슬을 파괴하십시오.’

파괴.

파괴....

아수라 때는 분명 찾으라는 조건이었고 나는 아수라를 찾았다.

찾는다는 단어는 분명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긴 하지만 파괴하라는 단어의 뜻은, 솔직히 말하면 우회 할 구석이 없다.

그냥 부수면 된다는 건데...

이게 또 현재의 내 수준으로는 흠집조차 가지 않는다.

이게 정말로 묘하다.

상황만 보자면 지옥도에서 얻은 힘으로 정령도의 구슬을 깨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무언가 풀리지 않는 퍼즐이 머릿속을 맴돈다고 해야 하나.

내 감이, 이 상황 자체에 대한 이질감을 포착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으음..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두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하나는 단순히 지금의 내가 힘이 없기 때문에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

다른 하나는 내 ‘의지’가 부족하다는 결론.

전자일 경우에는 솔직히 답이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하지만 후일은 내게 없으니 정령도의 시련은 그냥 버려야한다는 이야기다.

이게 생각해보면 웃긴 게 단순히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클리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건 ‘의지의 시련’이 아닌 그냥 ‘힘의 시련’, 혹은 ‘파괴의 시련’처럼 단순 명료한 뜻의 단어를 사용했어야 한다.

시스템에 구멍이 많다고는 해도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는 확실히 신중을 기하는 편이니 전자의 경우는 그냥 접어두는 게 나을듯하다.

그렇다면 후자밖에 없다.

내 ‘의지’가 부족하다는 결론.

그렇다면 여기서 의지라는 것은 어떤 것을 뜻하는가.

하필이면 왜 영체의 구슬인가.

영체와 의지.

‘하.. 복잡하네.’

턱을 짚고 멈췄던 생각을 다시 이어갔다.

나는 의지가 부족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로 설명할 수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희생하기를 망설이지 않았고 또한 내 목숨을 걸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일시적이긴 하나 귀기를 얻어 6성 이상의 초월체의 힘을 사용 할 수도 있으며 평상시에는 3성의 초월체로 현재 진행하는 시련에서는 그 누구도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잠깐.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진짜 이상한데.’

이렇게 하나하나 짚고 생각해보니까 이상한 점이 하나 떠오른다.

나는 분명히 강해질 의지가 있다.

그 길을 걸어가며 나는 내 목숨 걸기를 가리지 않았다,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답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내 목숨은 두 개니까.

시련을 진행하는 도중에 죽는다 해도 결국 대기자 상태가 되어 지구로 돌아간다.

그 심리적인 안전장치.

비록 이 에피소드 전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라고는 하나 내가 과감해지고 물불 안 가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죽어도 실제로 죽지 않는다는 시련의 본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정보는 결국 스테이크를 굽기 전 버터를 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이 지금껏 내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럴 수는 없다.

분명히 나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목숨을 걸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내 의지가 아닌 안정장치를 기반으로 한 의지라는 말이 된다.

거기다 그 사루라는 균형자는 분명히 내게 말했다.

‘애초에 균형자들의 시련이라는 건 시련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어요.’

처음 들었을 땐 뭔가 뜬금없고 미심쩍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게 이렇게 보니까 퍼즐이 맞춰진다.

시련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시발.

의지의 시련.

시련자들을 대상으로 의지를 시험하는 시련.

결국 두 개의 목숨을 가진 시련자들은 하나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증명할 수 있다.

거기다 아수라의 시련에서 얻은 귀기는 그 끝이 어느 정도인지 모를 정도로 거대한 힘이다.

만약 내가 내 몸의 한계치 이상으로 귀기를 끌어올린다면 6성 이상의 힘도 가능하지만 이곳은 대기실이 아니다.

결국 내 몸은 붕괴될 테고 나는 죽게 될 것이다.

미간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것 같다.

결국 내 몸이 붕괴될 정도로 힘을 끌어올린다면, 그 한계치가 어느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힘보다는 월등할 것이 확실하니 부족한 힘을 보충할 수 있고 당연히 내 의지도 증명 할 수 있다.

‘이게 지나친 비약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했던 것도 그렇고. 이거... 설마... 진짜야?’

아무래도 설마가 사람을 잡은 것 같다.

아니... 공백의 왕 이 새끼 이거, 완전히 싸이코 새끼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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