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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90화 (89/131)

90화.  < 그래서 어쩌라고?(1) >

내가 하려는 일은 간단했다.

일단 자하로 가서 레이놀즈가 파묻었던 그 ‘물건’을 찾는 것.

말은 짧고 매우 간결했지만 자하라는 거대한 지형을 나 혼자서 이 잡듯 수색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수아를 데려가야 한다.

정령의 사랑을 받는 그녀는 어디로 보나 결국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니까.

아니, 그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애매한 게 하나 있었는데, 정령도와 정령계를 과연 별개로 취급해야하는 걸까?

혹시 두 단어는 같은 곳을 뜻하는 게 아닐까.

일단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털어냈다.

하나씩 최대한 깔끔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해결하자.

그러려면 전제되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침착성이다.

최대한 침착해야한다.

이후, 나는 자하로 가기 전 몇 가지를 준비했다.

일단 황궁의 창고에서 썩히고 있는 물건들 중 한파에 강하다는 옵션이 붙어있는 겉옷들을 걸쳤으며, 잠을 자야했기에 간이식 텐트를 인벤토리에 통째로 우겨넣었다.

내가 예상한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

어떤 일이 벌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는 정령도로 갈 확률이 높다.

수치를 따지자면 한 99.9% 정도.

아수라의 시련을 통과한건 나밖에 없으며, 발락투스에게 정보를 얻기도했고 군자검은 직접 내게 과거까지 보여주었다.

그렇게 밥상까지 차려줬는데 떠먹지못하면 그게 사람인가. 그냥 머저리지.

하지만 그렇다고 안일하게 대처 할 수는 없었다.

이 시련의 전체적인 틀은 결국 힘을 가진 자가 모든 걸 가진다는 강자존의 논리와 귀결된다.

정령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내가 가진 무기들을 천천히 되살펴보고 실험해보는 기간이 필요하다.

레이놀즈가 숨긴 물건을 찾는것과 동시에 내 힘을 시험하는 것, 나는 그 기간을 최대 일주일로 잡은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준비는 끝났다.

나는 살짝 들떠있는 표정의 한수아를 데리고 곧바로 순간이동 반지를 작동시켰다.

목적지는 당연히 북부.

정확히는 ‘발란카르 산맥 ’이다.

그렇게 나와 한수아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

지형을 뛰어넘은 뒤, 내 소감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볼만하네.’

일단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덩이들과 주변에 쌓여있는 만년설들, 그리고 내 시야의 바깥쪽에 보이는 땅들, 거리는 약 1만 km정도일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저곳은 중부 대륙일 확률이 높다.

그곳들에는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는데. 이거 정말이지 그냥 볼만한 수준이 아니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다.

나는 지구에서도 이런 지형을 본적이 없다.

“와아...”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는지 옆에 있던 한수아가 짤막하게 감탄을 내뱉는다.

그렇게 내 어깨와 한수아의 어깨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나는, 슬며시 손을 휘저으며 기운을 퍼트렸다.

후웅하는 소리와 함께 눈덩이가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럽게 한수아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이런 작은 여유.

솔직히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이런 여유는 잠시면 된다.

이제 보물을 찾아야하니까.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웃고 있는 한수아가 보인다.

그녀와 눈을 맞추자. 그녀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잡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그녀에게 건넬 말은 절대로 볼이 붉어질 말이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정령 소환해봐.”

“...네?”

다른 대답을 원한건지 그녀가 멍하니 날 바라본다.

아무래도 그녀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를 이제는 제대로 말해줘야 하나보다.

“내가 찾아야 할 게 있거든. 그걸 네가 조금 도와줬으면 하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령 소환하면 되는 거죠?”

왠지 긴 설명은 필요 없는듯하다.

아마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런 표정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조용히 스킬 명을 외친다.

정령 소환술.

이어서 허공에 쩌저적하며 균열이 생기고 마나가 형태를 띠며 아름다운 마법진을 수놓는다.

콰지지직-!!!

전에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

발바라 대륙과 정령계가 이어지는 느낌과 그 소리.

마치 천상의 메아리를 마주하게 되는 것 같은 그런 묘한 기분.

이어서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정령들이 뛰쳐나오지.....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냥 마법진만 그려졌다.

그냥 그게 끝이었다.

솔직히 당황했다.

고개를 돌려 한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매우 당황한 표정이다.

‘한수아의 의지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면 누구의 의지로 정령들이 소환에 불응하는가.

계약을 해달라며 애걸복걸하던 그 정령들이 왜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상급은 그렇다 쳐도 중급은 물론 심지어 하급까지,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 통제하는 게 분명하다.

건너편으로 넘어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슬며시 손을 뻗어 마법진에 손을 얹자.

콰지직-!

마법진이 굉음과 함께 그대로 소멸한다.

이번에도 한수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영문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슬며시 실소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 현상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 할 필요가 있었다.

전에 가볍게 언급 한 적이 있었지만 정령 소환술의 본질은 통로의 개방이다.

그 통로는 상대 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것에만 한정되며, 그것의 주재자는 정령왕과 시스템이다.

내가 방금 통로를 넘겠다고 의념을 보내자 통로가 그대로 사라진 것이 그 증거다.

조용히 턱을 짚으며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정령이 누군가와 계약을 한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유희나 다름이 없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정령 각 개체의 자유 의지에 따른다.

그 자유 의지를 통제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다.

그냥, 정령왕이 개입한 거다.

이건 조금 심각한 문제다.

문득 발락투스의 말이 떠오른다.

‘아스가르드에도 맹점이 많다고 했었나?’

그 말인 즉, 시스템에도 맹점이 많다는 이야기.

이거 참.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이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포기해야하는가.

아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겐 못하지.

“...이거 제가 없앤 거 아니에요.”

자책하는 모습에 살짝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건 그녀 잘못이 아니다.

굳이 자책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잠깐 기다려봐.”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내 눈앞에 거대한 설산이 보인다.

산 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어서 내 의지에 따라 기운이 한곳으로 응축되더니 허공에 주먹만 한 크기의 기운으로 뭉친다.

나는 그 기운에 의념을 담아 밀어냈다.

천천히 정면을 향해 날아가던 그것이 이내 속도를 붙이며 날아간다.

한수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작은 구체와의 거리가 대략 2km쯤 벌어졌다.

그 순간 의념을 보냈다.

터져라. 라고.

이어서.

콰아아아아앙-!!!!

띠링!

[전설 스킬 ???를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레귤러입니다.]

[전설 스킬 ???가 삭제됩니다.]

귀가 멀어 버릴듯한 굉음이 울려퍼지고, 사방으로 어마어마한 기운의 여파가 터져나간다.

어느 정도냐면, 얼어있던 눈덩이들이 무너져.... 시발.

콰과과과과광-!!!!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기운을 퍼트리며 한수아와 내 몸을 감쌌고, 하늘로 솟구쳤다.

콰과과광-!!

계속해서 굉음이 이어지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잠잠해졌다.

그렇게 나와 한수아는 하늘에 떠있는 채로 밑에서 벌어지는 ‘참사’를 바라보았다.

결국 한수아가 묻는다.

“대체 뭐에요 방금?”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애매하다.

기운을 뭉쳤고 그 안에 폭爆의 성질을 담은 채 터트린 게 전부였다.

한수아에게 그냥 실험을 했다고 대답 해 준 뒤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내가 써먹은 이 기술.

일단 이름을 붙여야겠다.

폭발하는 기운. 폭기爆氣가 좋겠다.

폭기를 실험한 이유는 하나였다.

눈사태가 진정되자 나는 한수아를 데리고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다시 열어봐.”

그녀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까와 같은 절차가 벌어진다.

공간은 열렸지만 그 안에서 정령들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앞서서 한번 말했지만 한번만 더 강조해보자.

시스템에는 허점이 많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스킬’에도 허점이 있다.

나는 한수아를 데리고 뒤로 다섯 걸음 정도를 물러섰다.

일종의 거리를 벌린 셈.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의아하게 바라보는 한수아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동으로 보여줄 거니까.

다시 한 번 폭기를 만들고 통로 너머로 이동시켰다.

이어서. 쑤욱 하는 소리와 함께 내 폭기가 정령계로 넘어간다.

솔직히 느껴지고 있었다.

내 폭기가 이상한... 마치 심해 아래에 있을 법한 기이한 공간을 떠다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주변에서 내 기운으로 접근하는 묘한 움직임들까지.

아마 정령들일 확률이 높았다.

나는 이번에도 보냈다.

‘터져라.’

동시에 건너편의 폭기가 사라진다.

당연히 내 폭기와 가까이에 있던 정령들도 그 기운에 휩싸였다.

아마 확신하는데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힘을 조절했으니까.

그런데 반응이 없다.

으음...

‘모자라다는 건가?’

다시 한 번 기운을 끌어올렸다.

내가 언급한 시스템의 맹점.

지금의 이 상황에서 시스템의 맹점은 한가지다.

정령계에서 내 쪽, 그러니까 ‘중간계’로 넘어 올수는 있지만 중간계의 인물은 정령계로 넘어갈 수 없다.

그것이 시스템이 설정한 기준.

하지만 인물이 넘어갈 수 없다뿐이지, 그의 ‘기운’이 못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기운을 정령계 너머로 보내는 것은 ‘맹점’이 분명하다.

솔직히 이 맹점을 이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정령왕은 내가 하려는 일을 ‘방해’ 하고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들어서는 알고 있다.

내가 없었을 때 한수아는 수만이 넘는 숫자의 정령을 소환했고 거의 혼자서 오크들을 막아냈다고.

분명 그때 일반 오크들을 상대했던 정령들은 아마 그대로 정령계로 역소환 되었을테고, 소멸을 각오한 ‘소수’의 정령들은 소멸했을 것이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

상급 정령이라는 희귀한 자원을 잃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건 지들 잘못 아닌가.’

이곳으로 오기 전 여러 가지를 준비하면서 시간이 남았었다.

그때 한수아와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수아는 툴칸을 죽이는 정령과 계약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령들은 툴칸을 죽이지 못했다.

툴칸을 죽이지 못한 정령들 잘못을 전가하려는걸까?

정령왕이라는 놈이 생각보다 째째한가보다.

거기다 지금 이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

말 그대로 보물찾기에 필요한 인력 동원의 개념과 흡사한데, 방해를 한다?

정령왕.

아무리 생각해도 놈과 다이렉트로 대화를 좀 해야겠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게, 확실히 인사가 조금 부족한 게 맞나보다.

이번에는 기운을 더 강하게 끌어모았고, 건너편으로 내보냈다.

방금 전처럼 터트리기가 무섭게, 쿠구궁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근원지는 통로, 그 자체였다.

세로 3m, 가로 1m 정도 크기의 통로가 순식간에 덩치를 불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세로 10m, 가로 5m정도의 크기로 변했다.

끝이 아니었다.

느껴진다.

통로 그 너머에서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옆에 있던 한수아가 뒤로 주춤 물러서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오히려 한걸음 내디뎠다.

정령왕.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존재가 내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그에 맞춰 인사를 해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내 키가 커지기 시작했고, 그런 내 몸을 귀기가 감싼다.

귀신체.

그 상태로 나는 기다렸다.

정령왕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하지만 그의 모습보다 그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감히!!!!]

생각보다 화가 꽤 많이 났나보다.

야 솔직히 죽는 것도 아닌데 엄살이 좀 심한 거 아니냐.

이어서, 나는 번개 같은 속도로 고개를 틀었다.

순간 한 줄의 빛이 방금 전까지 내 머리가 있던 부분을 꿰뚫는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콰아아아앙-!!!!

이어지는 굉음이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이거 참.

시비를 건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왠지 이 말은 해둬야 할 것 같다.

“일단 진정을 좀 하는 게 어떨...”

[닥쳐라!!]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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