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2) >
[미친놈]
부숴버리겠다는 내 말에 군자검은 저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렇게 나는 군자검의 시련을 클리어 하지 못했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지금의 내 모습은 군자검의 자격시험을 치루겠다고 대기실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던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조용히 군자검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 있게 부술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방법은 모르겠다.
일종의 허풍처럼 보이긴 했지만, 방법은 찾아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실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아니 시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솔직히 군자검의 힘을 직접 눈으로 본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번 휘두른 것만으로 초월자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고?
심지어 검이나 그 공백의 왕의 신체에서 그 어떤 기운의 유동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공백의 왕의 힘이건, 아니면 군자검 안에 내재되어있는 힘이건 모른다.
하지만 군자검이 내게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건 적어도 자기의 주인이 된다면 그 '기술'을 쓸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뜻인데.
...거참.
말 그대로 그냥 휘두르자 서걱하고 모든 게 잘려나가는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귀기를 극한으로 끌어 올려도 그 정도의 무력을 보여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머릿속에서 군자검이 했던 몇몇 문장들이 수면 아래 있던 물고기들이 떠오르듯, 조금씩 떠오른다.
-결론만 말하면 그대는, 약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그대는 초월자들의 위에서 군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는 없다. 그 전에 죽을 테니까.
손잡이를 으스러지도록 움켜쥐고 있던 나는, 조용히 숨을 토해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신화 아이템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자.
군자검의 외형은 보통 검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검신이 조금 더 길고 검 전체가 은색으로 물들어있다는 점. 그게 차별점의 전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검이라는 건 도구다.
베는 것과 찌르는 것에 최적화되어있는 도구.
그렇다면 이게,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내 손에 있는 [군자검] 뿐만이 아니라 내 팔목에 채워져 있는 [스스로 신화를 쌓아가는 자]라는 아이템까지.
이 신화 아이템들의 외형이 각각 다르듯이 타르켄을 어떤 형태로 ‘제련’해주는 시설이나 도구 같은 게 존재하지 않을까?
당연히 했어야하는 질문이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갔기에 여태껏 의문을 제시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 파헤쳐야한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쎄쎄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물었다.
“이 군자검을 ‘제련’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쎄쎄가 곧바로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말을 덧붙인다.
“불가능해요.”
잠깐 멍했다.
아니, 불가능이라고?
희박하다거나 힘들다거나 그런 단어가 아니라 불가능?
“쉽게 말씀드릴게요. RPG 게임 해보셨죠?”
해보긴 했었다. 오래하진 못했지만.
“RPG 게임에서 보면 어디 보물섬이나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이 드랍 되잖아요? 타르켄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이미 완성이 되어있는 물건들이에요. 그 완성된 물건들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뿐이죠.”
“세상 많은 초월자들과 많은 이들이 이 신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제련’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했었지만 모두가 실패했어요. 이도님이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타르켄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요.”
많지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생에서 내가 겪고 눈으로 보았던 신화 아이템의 종류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다 고블린들과의 침식을 겪고 나서 공적치 보상 목록을 보면서 아 생각보다 신화 아이템이 많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까.
자연스러운 내 의문은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쎄쎄는 아는듯했다.
그녀가 말을 덧붙인다.
“공적치 보상에 나왔던 신화 아이템들은 모두가 주인이 없는 물건들이에요. 즉, 이미 죽은 초월자들의 신화가 담긴 아이템이라는 거죠. 원래 침식은 모두가 ‘협동’해서 끝내야 하는 퀘스트인데, 이도님은 침식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으로 혼자서 전부 끝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혼자 독식하신 거고 상대적으로 많다고 느끼신 거예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아스가르드에서도 신화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분은 거의 없어요. 아마 한 50명 정도 될까요?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신격이 낮으신 분들만 타르켄으로 된 물건을 사용하죠.”
띠링!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황제의 길을 걸었던 전사가 물끄러미 안내자를 응시합니다.]
등등등.
기타 잡다한 놈들 이름이 대거 등장하는걸 보니 쎄쎄의 말이 맞나보다. 실소를 터트리다 문득 떠오른다.
여화가 자신의 신화가 담긴 아이템을 에릭에게 건네줬다는 그 사실이.
그러니까 그건 말 그대로 여화에게 있어서 그 아이템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뜻인데.
지금 내가 군자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과 쎄쎄의 말, 그리고 현재까지 벌어진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현재 신화 아이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내가 팔목에 차고 있는 [스스로 신화를 쌓아가는 자]라는 아이템의 성격처럼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가는 나 스스로의 신화. 그러니까 압도적인 업적들을 새롭게 적어나갈 수 있는 비어있는 신화 아이템.
아마 여화의 신화 아이템도 내 것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쎄쎄의 말처럼 이미 완제품처럼 만들어져 세상 곳곳에 쳐 박혀 있을 [군자검]같은 아이템.
다른 신화 아이템들은 주인이 정해져있다.
여화의 신화 아이템은 당연히 여화가 주인이었고, 형님이 사용하던 [필살의 건틀렛]은 거인 크로노스가 주인이었다.
그들의 인정이 있다면 그들의 힘을 빌려 쓸 수 있었는데, 군자검같은 아이템은 다르다.
그건 ‘공백의 왕’의 잔류 사념이 주인이다.
즉, 공백의 왕의 힘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
이거 경험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보물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고 해야할까.
결국 결론은 하나로 모아진다.
모든 신화 아이템의 기초를 다지고 제작한 것은 공백의 왕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그냥 타르켄으로 만들어진 일반적인 아이템이었을 것이고, 초월자들이 그것을 사용하면서 그 아이템과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필살의 건틀렛]과 여화의 신화가 담긴 아이템 같은 상급의 아이템들일 터.
생각보다 합당하고, 꽤나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몇 번이나 언급한 건지는 몰라도 나는 아수라에게 인정받았고 시스템으로부터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벌어진 상황이 말해주고 있었으니, 결국 추측이 아닌 확신으로 결정지어도 상관은 없으리라.
만약 제작처가 존재한다면 이 군자검을 가지고 가서 그대로 갈아버리고 나오는 재료로 다른 아이템을 제작하려고 했는데, 그게 안된다면 부술 방법이 없다는건데.
이거 조금 상황이 난처하다.
그냥 어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둬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군자 코스프레라도 해야 되는 건가.'
마지막에 군자검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었는데. 이걸 여지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손에 쥐어져있던 군자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때.
띠링!
[황제의 길을 걸었던 전사가 당신에게 100 코인을 후원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가 곧바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았다.
지금 대기실에서의 내 모습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
그러니까 내가 군자검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초월자들이 알아챘다는 뜻.
[황제의 길을 걸었던 전사가 폭소를 터트립니다.]
나를 비웃는 레이놀즈를 향해, 빅엿을 날려주려다 그냥 참았다.
한심한 새끼.
이거 정말이지 미칠 정도로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가 따로 없을 정도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습지 않은가.
눈앞에 있는 황금알을 보고도 이게 황금인지 동인지 구분도 하지 못해 그 옆에 있는 일반 알을 가져가는 상황이라니.
분명 세상에는 공백의 왕이 남겨둔 유산이 존재한다.
나는 균형자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인데.
문득 궁금해진다.
‘세 지배자들은 이 사실을 정말로 모르고 있는 걸까?'
군자검은 아스가르드의 지배자들이 최소 10성의 신격을 갖췄다고 했다.
그 세 명이 두 자리 수의 신격을 갖췄다는 건 최악의 최악을 가정했을 경우였는데, 그게 실제로 벌어지니 현실감이 닥쳐온다.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는 내가 신격을 초월하건 뭘 하건 간에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내게 직접적으로 개입 할 수가 없다.
즉, 일종의 무적상태. 그렇다고 그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다.
현재 남은 에피소드는 약 70개 .
침식이 벌어지던 것처럼 70개의 에피소드가 1~5 이런 식으로 압축해서 나타난다면 내게 남은 기간은 고작해야 두 달, 아니, 세달. 결국 나와 아스가르드의 지배자들 사이에는 압도적인 ‘시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걸 좁히려면 나는 군자검같이, 공백의 왕이 남긴 최상급 이상의 신화 아이템의 주인이 되어 그 아이템들로 몸을 ‘무장’해야 한다.
지금 이 정보가 나에게 황금 동아줄이 될지, 아니면 이미 선구자가 앞서 모든 사다리를 걷어차서 쪽박을 쓰게 될지는 직접 확인해봐야 하는데.
‘...복잡하네. 이거 진짜 보물찾기 해야 하는 건가.’
인벤토리에서 드레이크 훈제 고기를 꺼내 질겅질겅 씹으면서 마저 생각했다.
만약 내가 선구자라면 이 길의 끝에는 분명 왕의 자리가 자리해있을 터.
공백의 왕의 유산이라니.
최상급 신화 아이템이라니.
그 누구도 주인이 되지 못하는 신화 아이템이라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다.
다시 고개를 들자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쎄쎄가 보인다.
그녀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예상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스가르드로 이동한다.”
내 말에 반응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5초 후 아스가르드로 이동합니다.]
천천히 내 몸을 빛무리가 감싸기 시작했다.
빛무리에 휩싸이던 나는 보게 되었다.
쎄쎄가, 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그건 햇병아리 시련자를 향해 보이는 모습이 아닌 왕의 자리를 노리는 새로운 초월자를 향한 경의였다.
***
전과는 조금 달랐다.
빛무리에 휩싸이자마자 나는, 익숙한 운전석에 앉아있었는데 전에 아스가르드에서 발바라 대륙으로 넘어갈 때 나를 태웠던 운송수단이 분명하다.
시동을 걸 새도 없이 자동으로 차에 시동이 걸렸고 나는 자동차를 타고 우주를 직선으로 가로질렀다.
아마, 이 상태로 30분 정도 안으로 아스가르드에 도착할 터.
조용히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공백의 왕, 모든 초월자들의 왕이 되려면 일단 아스가르드의 세 지배자들을 치워야한다.
현재의 내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그들 모두가 탐내는 블루칩이다.
아니, 이제는 블루칩을 넘어서 탐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익어버린 천도복숭아 수준일터.
지금의 내 상황에서, 나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가장 베스트는 군자검이 말했던 나머지 두 개의 도.
정령도와 천계도를 찾아 그곳의 균형자에게 인정받으면서 신체의 격을 순식간에 뻥튀기시키고, 그것과 동시에 공백의 왕이 남긴 유물 중 내게 맞는 아이템을 찾아야한다.
이 두 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돌아가야 나는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
자 생각해보자.
그들이 나를 아무리 탐내도 그들은 내게 강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무리 봐도 현재 상황에서는 내가 그들에 비해 나름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 우위를 이용해서 저 셋의 긴장을 완전히 고조시키는 건 어떨까.
세 명의 절대자가 아스가르드 내부에 만들어놓은 균형의 질서.
그 균형을 이루는 세 개의 진영을 흔들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베스트일까.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해보는 건 성미에 맞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면 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건 베스트가 아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구석에서 칼을 갈고 있는 제 4진영인 ‘대의의 이면’. 그놈들은 분명 써먹을 구석이 있는 놈들이다.
내가 겪은 미래와 전생의 상황들로 미루어보면 그들은 형님의 시련이 끝난 순간 아스가르드의 지배자들에게 칼을 겨눴고 모조리 전멸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차피 전멸할 놈들이면 나한테 쓸모 있는 방향으로 이용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목적이 가리키는 방향과 내가 가려는 방향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으니까.
일단 이건 킵.
생각해보니 지금 아스가르드를 흔든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다.
지금은 준비, 즉 밑 작업만 해두는 게 가장 베스트고, 역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캐내야한다.
세 명의 절대자를 살살 달래면서 정령도와 천계도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거기다 신화 아이템에 대한 정보도 알아내야한다.
‘진짜 보물찾기 해야 되네.’
왠지 모르게 벌써 피곤해지는 기분이다.
하나씩 체크해보자.
여화는... 미쳤다.
솔직히 그 여자랑은 상종하고 싶지가 않다.
천군은, 대체 그가 추구하는 대의가 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아니 그냥 모르겠다.
대의를 가진 놈이 침식을 방관하며 오히려 침식의 매칭 대상을 정하는데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도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이게 그가 말하는 대의와 관련이 있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싫은 게 신념을 가진 미친놈인데, 아무리 봐도 천군은 신념을 가진 미친놈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시작을 알린 아룡.
발락투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드래곤으로서 시련자다.
특이 사항으로는 춤을 좋아한다는 거 .
36계중에 아마 이런 내용이 있던 것 같다.
멀리 있는 적과 친교를 맺어 가까이에 있는 적을 노린다는 말.
드래곤은 가장 오래 사는 종족이다.
악마들의 수명은 어림잡아 500년 .
여화가 얼마나 살았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 수명이 5000년인 드래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 .
정해졌다.
일단 발락투스를 꼬셔보자.
원하면 왈츠라도 같이 춰주고.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때, 차가 멈췄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분명 실페리온이라는 문지기가 나를 반겼지만, 지금은 정확히 세 명의 초월자가 나를 반기고 있었으니까.
얼굴에 참을 수 없는 탐욕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는 여화,
그녀의 말려 올라간 입 꼬리를 본 순간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어서 그 옆에는 천군이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돌리자 표정 없는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발락투스와 눈이 마주쳤다.
이건 좀 예상외의 일인데. 어차피 잘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여기서 쇼부 보자.
“너 정말 대단...”
“시작을 알린 아룡, 저와 대화 좀 하시죠.”
무언가 말하려던 여화의 말을 그대로 끊어버린 나는 발락투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눈매를 좁히고 있는 여화는 당연히 신경 쓰지 않았다.
발락투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마치 따라오라는 모습 같다.
그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터억-
누군가 내 어깨를 틀어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손을 확인했다.
꽤나, 길고 얇은 손가락들인데, 아마 손 모델을 했더라면 세계 최정상에 위치해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선으로 그 손을 타고 올라가 주인을 확인했다.
여화, 그녀가 난생 처음 보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너, 미쳤니?”
그녀의 몸에서 조용히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내 인내심 시험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