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84화 (83/131)

84화.  <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1) >

사고가 정지한 느낌이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느낌 받아 보는 것 같다.

“...죽었다는 말이냐? 그럼 내 꿈속에서 계속 형님이 나타나는 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나름 불안해하는 표정을 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목소리는 숨기지 못했나보다.

조금씩 떨려오고 있었으니까.

군자검은 내 물음에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조용히 심호흡하며 기다렸다.

정확히 30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군자검이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이 가관이다.

[그건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군.]

어이가 없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생각할수록 웃긴 상황이다.

내가 모르던 일들에 대해서 꽤나 상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던 놈이, 형님에 대한 건 함구하는 지금의 상황.

이게 웃기지 않는다면 대체 어느 상황이 웃긴 상황이겠는가.

그대로 발을 들어 바닥에 박혀있던 군자검을 발뒤꿈치로 강하게 내려찍었다.

“말해. 짜증나게 하지 말고.”

바닥에 손잡이만 보이도록 쳐박힌 군자검은 침묵을 지켰다.

다시 발로 군자검을 내려찍고, 걷어차고, 별에 별짓을 하다 보니 결국 군자검이 답한다.

[그래봤자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말해줄 수 없다’ 이다.]

군자검을 그냥 눈에 안 보이는 곳까지 던져버리려다가 흠칫했다.

이거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군자검은 정확히, 형님이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형님이 죽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내 꿈속에 나타나는 형님은 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닌 이상 분명 실존하는 증거.

그렇다면 형님은 죽은 게 아니라 죽은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영혼’만 존재하는 상황같은거 .

‘생각해보면 그 양반이 누구한테 잡혀있을 양반이 아니지. 그런 면에서는 나랑 비슷하니까.’

형님은 현재 시스템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독자적으로 내가 모르는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걸까.

내가 아는 형님이라면 전자의 경우에는 그냥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본인이 대답하기를 꺼려하나?”

정말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것도 꽤나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서 던진 질문.

아무리 생각해도 이 회귀라는 건 시스템의 ‘허용’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벌어 질수가 없는 일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시스템은 내가 회귀한 것을 알고 있었다.

언급은 안했지만 아수라도 알고 있던 게 확실하다.

즉, 시스템과 균형자는 알고 있되 아스가르드의 초월자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 회귀는 형님과 관련이 있다.

문득 언젠가 꾸었던 ‘꿈’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바하무트에게 빅엿을 날렸고 후에 등장한 형님이 내 이마를 툭 치며 이렇게 말했었다.

너는 아직 이곳에 와서는 안 된다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군자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확신하건대 저 침묵은 긍정의 의미다.

그대로 뒷걸음질 치며 천우의 등에 다시 주저앉았다.

“...무슨 RPG 게임 하는 기분이네.”

점점 성장할수록 ‘비밀’이 하나씩 풀리는 게 딱 RPG 게임 형식이다.

“형님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성장]

계속해서 느낀 건데.

이 군자검은 대답이 너무 함축적이다.

“정확히 무슨 성장?”

[지옥도의 주인 아수라에게 인정받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대의 성장이 놀랍긴 하지만 그대는 초월자들의 위에서 군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는 없다. 그 전에 죽을 테니까.]

"..."

[아스가르드의 지배자들은, 현재 최소 10성. 그대의 신체는 3성, 하지만 귀신으로 변해 귀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면 9성까지도 가능하겠지만... 신체가 받쳐 주지는 않을 테니 중간에 터져버릴 테고, 결국 무의미한 가정이지. 결론만 말하면 그대는, 약해.]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다.

이건 안 되고 저건 되고, 그 기준점이 놈에게는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내 기준점이랑 매치가 안 된다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귀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9성에 육박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했다.

[지옥도地獄道, 정령도精證道, 천계도天界道, 적어도 이 세 개의 균형자들에게 인정은 받아야 ‘정지혁’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고 지배자들에게 육박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

우습게도 무엇을 공략해야할지 길까지 제시해준다.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걸 나한테 알려주는 거지?”

[어차피 그대는 나 군자검의 주인이 될 수 없을 테니까.]

이거 진짜 뭐하는 새끼지.

이게 문맥상 일치를 이루는 대화가 맞나?

“내가 어디 가서 멍청하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대화의 맥을 나만 못 잡고 있나?”

[멍청하지 않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국어 시간도 아니고 요점 정리는 알아서 하라는 건가.

팔로 턱을 짚고 정확히 5초 정도 놈의 말을 다시 생각했다.

이건 하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은 내가 군자검의 시험을 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저 세 개의 도道를 넘어야 한다는 말과 자기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저 말로 미루어보면...

허참.

결국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한테 인정받으면 지옥도를 제외한 나머지 저 두 개를 공략하지 않아도 힘을 얻게 된다? 그 말이냐 지금?”

[실제로 멍청하지는 않군.]

약 파는 것도 아니고.

물끄러미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군자검을 내려다보며 딱 한마디 내뱉었다.

“자신감이 지나치게 단단하네. 검 주제에.”

[회귀를 했다는 그대가, 최상급 신화가 담긴 아이템의 힘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어조가 비아냥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형님이 사용하던 [필살의 건틀렛]은 중상급의 신화 아이템이었고, 형님은 그 건틀렛을 차는 순간 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으며, 압도적인 격을 뿜어냈고 주먹을 두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바하무트의 대가리를 으깨버렸다.

그게 중상급, 높게 쳐줘봐야 상급의 아이템이었는데 최상급이라...

그런데,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내가 오래 산건 아닌데, 딱 하나는 알겠더라고.”

[그게 뭐지?]

“허풍떠는 놈들은 대부분이 별거 없는 허수아비 같은 놈들이라는 거.”

[...]

“내가 최상급 아이템을 알건 모르건, 네 주인이 되건 되지 않건, 그런 말을 하려거든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당연히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니냐? 공백의 왕이 사용하던 검. 그리고 거기 남아있는 잔류 사념, 메리트는 그게 전부잖아? 그게 나한테 실질적으로 힘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건 뭐 사기꾼이랑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군자검은 말이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아까부터 네 말이 조금 거슬리긴 했어.

“약을 팔 거면 제대로 팔던가. 나는 최상급 아이템이다. 너는 절대로 쓰지 못한다. 등등, 나는 대단하다, 나는 위대하다. 이건 뭐 사념이라 그런가. 정신병이 제대로 걸리셨어.”

분명 내 말은 군자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후 보이는 놈의 반응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보여주지. 그 눈으로 직접 보고, 왜 그대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는지 깨달아라.]

그게 끝이었다.

그 말이 머릿속에 울리는 것과 동시에 돌풍이 나를 감쌌다.

이건 뭔가 싶을 때 돌풍이 가라앉았다.

고개를 들자, 완전히 뒤바뀐 주변 풍경들이 보인다.

일단 처음에는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앞에, 그러니까 한 150m정도 전방에 궁극체의 형태로 변한 각양각색의 드래곤이 한 스무 마리 정도 있었으며, 그리고 그들 위에 날개를 펼친 채 날아다니고 있는 완전체 드래곤이 정확히 10마리가 보였으니까.

솔직히 다 처음 보는 드래곤들이었지만 느껴지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들의 수준은 최소 7성에서 8성 이상의 존재들이 확실하다.

뿐이랴.

어느 한쪽에서는 무언가, 처음 보는듯한 복식의 갑옷을 걸치고 있는 수백 명의 인간들이 보이고, 다른 한쪽에는 길쭉한 귀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히 구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종족인 엘프도 보인다.

그들의 신격은 드래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최소 3성에서 4성은 되는 것 같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금 ‘전쟁’을 하려 한다.

드래곤과, 엘프와, 인간과 그 외 수많은 종족들이 연합군처럼 형성되어있는 저 모습이, 내게 있어서 꽤나 흥미로웠다.

코앞에 보이는 거대한 외뿔거인의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마저 생각을 이어갔다.

그럼 저들이 싸우려는 대상은 누구일까.

그때였다.

머릿속에, 군자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대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의 한장면]

군자검의 말투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보고 싶다고 했나? 봐서 달라질건 없겠지만, 잘 보거라.]

연합군이라 추정되는 이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 있었다.

나와 비슷한 체격의 한 남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인간과 흡사했다.

이마에 돋아나 있는 작은 뿔 하나와 양 머리에 돋아나있는 두 개의 거대한 뿔을 뺀다면.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주위로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저 수많은 연합군들과 싸우는 건 저 한명이라는 이야기다.

그때였다.

-군자는 피에 취해서도 안 되며.

그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 번개가 친다.

저 목소리, 분명 군자검의 목소리와 똑같았으니까.

그가,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검을 천천히 뽑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약간 손잡이 형태만 살짝 다를 뿐, 저 검은 은색의 검은 분명 ‘군자검’이다.

이내, 연합군들이 미친 듯이 자리를 박찼고 내 머릿속에는 굵직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군자는 스스로 나태해지기를 주의해야하고.

그가 천천히 검을 고쳐 쥔다.

-살생보다는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가 고개를 돌린다.

분명 느꼈다.

이 순간, 그와 나는 눈을 맞췄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살생을 해야 한다면.

그가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검을 가로로 그었다.

서걱-!

무언가를 벤 것 같은데, 벤 것 같지가 않았다.

표현이 정말로 이상하긴 했는데, 설명할 길이 없었다.

눈앞에 있던 수많은 연합군들, 그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으니까.

-단 한번, 군자는 단 한 번의 검으로 모두를 해방시켜주어야 하느니라.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멈춘 것은 연합군들뿐만이 아니었다.

허공의 마나와 공기, 심지어 주인 없이 떠도는 작은 먼지들까지 그 모든 게 멈췄다.

이어서 쩌저적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근원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남자를 향해 달려가던 드래곤들과 최선봉에 서있던 외뿔 거인의 몸이 천천히 두 쪽으로 갈려지기 시작했으니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적어도 수천에 육박하던 그 모든 이들의 몸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쪽이 나며 무너져 내린다.

속으로 놀랬다.

아니 진심으로 놀랬다.

좌에서 우로 베는 단순한 동작이었다.

그 어떤 기운의 유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언젠가 느껴 본적 있다.

내가 신격을 갖추기 전, 그러니까 첫 번째 침식에서 만났던 유바의 신성이 시스템에 의해 제약을 받게 되던 그 순간에 나는 느꼈었다.

나조차 인식하지 못한 다른 차원에서의 힘. 정확히 말하자면 약자인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더 강한 힘이 가해지는 그 느낌.

소름이 돋았다.

지금, 나는 분명 3성 이상의 신격을 갖췄다.

더 예민하게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내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고?

상황은 간단했다.

저 남자를 향해 달려들던 연합군은 전멸했다.

저마다 몸이 두 쪽이 난 채로.

무엇으로 벤 건지 파악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짧게 감상하던 나를 향해 그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 군자는...

군자는 뭐?

-결과의 완성이 아닌 과정의 완성을 추구해야하는 법.

정말이지.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소리네.”

-...

그가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마치 더 말해보라는 듯이.

그럼 원대로 더 해주지 뭐.

“과정의 완성? 희대의 개소리 중에 개소리라 어디부터 짚고넘어가야할지 모르겠네. 결과가 모두의 죽음으로 귀결되더라도 과정만 아름답다면 그건 옳은 일인가?”

-과정이 완성된다는 것은 결국 결과의 완성을 뜻하니. 옳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면 결과가 좋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결국 필연이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무슨 말장난이야 이게?”

-아니, 과정의 옳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 옳은 결과를 만들려는 것은 오만이고 자만이다. 그 차이를 말하고 있는데 이게 어찌 말장난 일수가 있겠는가.

나는 잠깐 말없이 놈을 바라보았다.

이거, 말투나 느낌으로 보건대 이놈..

“너 군자검이냐?”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일종의 빙의랑 같은 건가?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그 몸의 주인은 시스템을 만든 ‘공백의 왕’이고?”

계속되는 내 질문에 그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그게 뭐가 중요하지?

뭐가 중요하나니.

매우 중요하지.

“네가 공백의 왕이라면 그딴 말을 해서는 안됐으니까.”

-...뭐?

감이 잡힌다.

일단 눈앞에 있는 저 모습이 바로 공백의 왕 생전의 모습이다.

정확히는 시스템과 군자검이 구현해낸 과거 공백의 왕의 모습. 그리고 그 과거의 모습에 군자검이 저 몸을 빌려 내게 말을 건네는 것.

생각보다 매우 잘생긴 건 둘째 치고 솔직히 저놈의 말과 생각은 공백의 왕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과정의 완성을 추구한다... 모두가 손에 손잡고 강강술래 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그 이전에 배신 때리고 뒤통수치는 놈들이라도 용서해주고 보듬어주면서 이끌고 가야한다. 뭐 이런 말 하고 싶은 거냐?”

-...

“그게 공백의 왕이 품고 있던 정의일 리가 없지, 그건 단순히 ‘군자검’으로써, 검안에 주입된 너의 망상 같은데... 내 말이 틀리냐?”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그럼 이 질문에 대답해봐. 현재 비어있는 ‘신’을 뽑기 위한 이 시련이라는 전체적인 과정을, 너는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지?”

-뭐?

“싸우고 싸워서 가장 강한 자가 ‘신’이 된다는 이 거대한 게임 판에서, 과정의 완성을 추구한다는 건 개소리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과정...

“거기다 힘이 없는 정의가 무슨 소용이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네가 말하는 건 그 자체가 모순이야. 과정을 추구한다? 잘 들어라. 인간이건 악마건 초월자건 간에 결국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결과다.”

-...

“네가 왜 잔류 사념인지 이제야 확실하게 이해가가. 그러니까 너는 공백의 왕이 군자검이라는 검안에 밀어 넣어서 만든 사념, 그러니까... 착한 놈들만 쓸 수 있는 그런 검이다 뭐 그런 건가?”

-...

“맞나보네. 확실히 내가 들었던 신화 아이템 자격시험에 대한 일들과 지금의 과정이 판이하게 다른 이유를 알겠어. 너 말고도 공백의 왕이 따로 사념을 심어놓은 아이템이 있다는 이야긴데. 지옥도를 다스리는 아수라에게 인정받은 나는 그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된 거고... 이건 뭐 보물찾기 하라는 건가?”

군자검이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그 표정이 마치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다.

“대답해봐. 그 정도는 대답 해줄 수 있겠지.”

-무엇을?

“모든 신화 아이템들은 타르켄으로 만들어져있고 그 타르켄은 공백의 왕의 신체 부속품이라매? 모습을 보니까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고, 공백의 왕의 피라던지, 아니면 공백의 왕 특유의 기운같은 게 어떤 외부작용을 거쳐서 결국 ‘타르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데, 그게 피나 기운이라면 농도가 짙은 것과 낮은 게 따로 존재하겠지. 내 말이 틀리냐?”

-...맞다.

“너는 농도가 더욱 더 짙은 물건이고?”

-그것도… 맞다.

“그럼 너를 제외하고, 다른 아이템들의 이름과 위치는?”

군자검이 빙의한 공백의 왕이, 그 잘생긴 면상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 마치 이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답해줄 수 없다.

피식-

"기대도 안했다 새끼야."

-...

내 생각과 내 결론에 의하면 이 시스템을 만든 공백의 왕이라는 놈은 분명 힘을 가진 강자를 원한다.

그 자리에 앉게 될 자가 누가 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힘만은 무조건 갖춰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내 결론이다.

반드시 그게 결론이어야 시스템이 신격을 나누고 힘을 얻게 하는 이 전체적인 과정들이 설명이 된다.

즉, 군자검은 그냥... 아이템이다.

공백의 왕의 잔류 사념이 꽤나 많이 들어간 아이템.

다만 그 성격이 ‘군자’의 성격을 띄고 있기에 저런 개소리를 하는 것.

그렇다면, 만약 내가 공백의 왕이라면 군자검과 반대되는 성격의 무언가를 만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친놈들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분명히 군자검이 존재한다면 그에 반대되는 무언가도 존재하기 마련.

그때, 군자검이 무언가 복수라도 하듯 한마디 내뱉는다.

-그대는, 나 군자검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했다.

말없이 놈을 향해 중지를 치켜세웠다.

군자가 되어야만 쓸 수 있는 군자검을 군자가 아닌 내가 쓸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애초부터 놈의 사상을 개소리라고 치부하는 나이기에 클리어 할 수 없는 시련이고 군자검은 내가 가질 수 없는 무기다.

군자검의 말이 맞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존재하던 그 수많은 초월자들을 죽인 건 공백의 왕의 힘이라기보다는 아마도 군자검 안에 내재되어있는 참격 같은 그런 ‘스킬’일 확률이 높다.

그걸 가지지 못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인정할건 인정해야한다.

나는 군자검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뒤끝이 좀 있거든.”

“너도 지켜봤으니까 알거 아니야? 내가 꽤나 많은 놈들한테 미친놈이라고 불린다는 거.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됐고.

“혹시 이런 말 알아?”

내 입 꼬리가 조용히 말려 올라간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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