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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79화 (78/131)
  • 79화.  < 세계 최강의 귀신(2) >

    아수라는 대체 몇 성의 초월자일까?

    이제 와서 그런 의문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지만 이게,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왜나면 내 눈앞에 이런 메시지창이 떠올랐으니까.

    [당신은 지옥도의 주인 아수라로부터 지옥도를 다스리는 왕좌를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아수라에게 도전하시겠습니까? Y/N]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다.

    결국 허탈하게 웃고는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귀기가,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거대한 막을 형성 한 채 바하로사의 앞발을 막고 있었다.

    이게, 혈기를 처음 접했을 때도 느꼈지만, 새로운 기운을 익숙하게 다루려거든 직접 사용 해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의념을 담아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바하로사의 앞발을 막고 있던 귀기가 폭발하며 놈을 멀리 날려버린다.

    슬며시 시선만 옮겨 내 팔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으로 물들어있는 내 팔과, 그 아래, 내 신체 모든 부분들이 검은색으로 물들어있었는데.

    이건 뭐, 인종이 변한건가 싶은 시답잖은 농담이 떠오를 정도였다.

    슬며시 다리에 힘을 준 뒤, 박찼다.

    그리고 조금 당황했다.

    나는 바하로사를 지나친 채로 하늘 높이 솟아올랐으니까.

    덩치가 30여 미터가 훌쩍 넘는 바하로사의 몸이 동네 똥개 같은 크기로 보인다.

    축지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정말로 가볍게 자리를 박찬 것뿐인데 이 정도라니.

    이거 적응하려면 왠지,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그대로 살짝, 정말로 살짝 허공을 박차자 눈앞에 바하로사의 거대한 눈깔이 보인다.

    이거, 꽤 신기한 기분이다.

    이어서 손안에 쥐어져있는 군자검으로 귀기를 밀어 넣자.

    끼이이익-!!!!

    귀곡성이 울려 퍼진다.

    그런데 왜일까, 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검은색으로 완전히 물들어있는 군자검을, 그대로 세로로 긋자.

    서걱-!

    바하로사의 한쪽 눈이 그대로 터진다.

    놈은 그 상태로 미동조차 없었다.

    기묘한 일이다.

    한 번 더 군자검을 휘두르자 남은 바하로사의 눈도 터져나갔다.

    장용盲音이 된 바하로사, 놈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조용히 한걸음 내딛자. 이번에는 바하로사의 날개가 보인다.

    군자검을 휘두르자.

    서거걱-!!

    그 거대한 날개가 완전히 찢겨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바닥으로 곧장 떨어졌어야할 바하로사의 몸이, 꽤나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묘하게 허공에 떠다니던 마나나, 바람의 속도가 평소보다 느리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나는 바하로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심지어 절대적인 가치인 시간선 마저 미묘하게 붕괴시킨 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어쩐지, 몸을 계속 덮고 있던 귀기가 계속 치지직하며 타오르는 게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슬슬 이 힘에 대해서 약간이지만 감이 잡힌다.

    속으로 바하로사의 목이 있는 부분으로 움직이겠다고 마음먹고, 몸과 정신을 일치시켰다.

    정기신의 일체.

    동시에 한걸음 내딛자 나는 바하로사의 목 앞에 자리해있었다.

    놈은 마치 도마 위의 식재료 같았다.

    나 좀 잘라주세요 하는 그 모양새가 꽤나 간절해 보인다.

    원대로 해줘야겠다.

    검은색으로 완전히 물들어있는 군자검을 내려찍자.

    서걱-!

    띠링!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러다 칭호 부자 되겠네.

    실소를 터트리려던 그때.

    띠링!

    [당신은 일반 시련자가 아닌 ‘초월자’입니다.]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는 중복 칭호입니다.]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가 삭제됩니다.]

    ....중복 칭호?

    약간 의아했을 뿐, 깊게 생각 할 필요는 없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모두 시련자였다면 분명 그들 중 하나는 [드래곤 슬레이어] 칭호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천군의 옆을 지키는 여천.

    그가 시련자였다면 [드래곤 슬레이어] 칭호가 없을 수가 없다.

    이어서.

    띠링!

    [업적 드래곤을 죽인 시련자를 달성하셨습니다.]

    [와... 많이 크셨네요. 이젠 용도 잡아요?]

    [500,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칭호와 업적은 별개라는 건가?

    그때였다.

    콰아앙-!!

    바하로사의 시체가 바닥에 쳐박히는 것을 시작으로 붕괴된 시간선이 일치된다.

    잠깐 하늘에 떠 있던 나는, 물끄러미 그런 바하로사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놈은 여기서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딱 한번, 단 한 번만 내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놈은 툴칸의 유언을 이뤄주겠다는 생각과 스스로의 자존심, 그 두 가지를 저울질했고 결국 스스로의 자존심에 손을 들어주었다.

    놈은 내게 부탁이 아닌 명령을 했고, 나를 겁 많은 개새끼로 보았다.

    그래서 죽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아스가르드에서는 난리가 났을 확률이 높다.

    그들도 보고 느꼈으면 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너는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거냐. 아니면 [**의 왕]이 되려는 거냐.’

    형님은 내게 물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답할 수 있다.

    [공백의 왕]이라는 자리에 앉아서 지구의 멸망을 막을 것이라고.

    내가 특수 체질인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다른 누구한테 명령을 받는 게 죽는 것보다 싫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명령받지 않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밖에.

    터억-

    자리에 착지한 뒤, 그대로 몸을 돌렸다.

    아니 잠깐.

    나도 모르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네.

    드래곤을 잡았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거늘.

    놈을 식재료라 표현해놓고 먹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지.

    놈의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땅에 등을 댄 채로 쓰러져있는 거대한 동체를 잠깐 바라보다. 놈의 배 위로 올라갔다.

    군자검을 들어 올리고는 놈의 몸, 그러니까 심장이 있을 위치를 향해 두어 번 휘두르자.

    쩌어억하며 피가 튀고 놈의 심장이 드러난다.

    목이 잘려 분명 죽었을 텐데도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꽤나 농도 짙다.

    이거, 이 정도면 내가 먹었던 [고룡 프리드리히의 심장]이랑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내 머리통 크기와 비슷한 그 심장을 향해 손을 뻗자, 투득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심장이 내 손에 빨려 들어온다.

    그대로 씹어 먹으려다 흠칫했다.

    생각해보니까.

    혈기는 오래 사용할수록 내 몸이 붕괴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비록 혈기와는 다른 귀기라는 기운이지만.

    이것도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일단 귀기를 거둬보았다.

    검게 물들어있던 내 몸이 점차 원래 색으로 돌아가며,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귀기가, 순식간에 내 심장을 향해 일제히 몰려든다. 두근-!

    심장이 한번 크게 울리고,

    띠링!

    [귀신 상태가 해제됩니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몸이 뻐근한 느낌.

    이건 귀기를 얻기 전, 그러니까 궁극체의 바하로사한테 얻어맞았을 때 생겼던 상처들이다.

    ‘...한정 칭호라는게 이런 의미였나?’

    세계 최강의 귀신이라는게 조금 뜬금없다 싶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까 순식간에 이해가 간다.

    그러면 이거, 부작용 없는 힘이라는 건가?

    잠깐 생각을 멈추고 손안에 쥐고 있던 드래곤 하트를 씹었다.

    기운을 몸 안에 받아들이며 중단했던 생각을 이어갔다.

    아니 이어 갈 것도 없다.

    정리하면 나는 귀기를 사용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귀신’이라는 종족으로 변하며, 그 상태를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귀신이라고 정의 내렸다.

    저작운동을 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서 피어오른다.

    세계 최강의 귀신이라.

    내가 알기로 전생에서 형님은 ‘세계 최강의 인간’ 이었다.

    이거, 그래도 한정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형님과 가까워진 기분이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고개를 돌렸다.

    시련자 주청윤, 그리고 시련자 레종.

    그 두 명이 내 앞에 선채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냐?”

    내 물음에도 그 둘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짓눌린 것 같은 그 모습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내 기운을 몸 안으로 갈무리했다.

    당연히 저작운동은 멈추지 않았고.

    그제야 그 둘이 대답한다.

    “저를 좀 죽여주십시오!”

    ......응?

    “여신님께서 저의 죽음을 원하십니다!! 제발 저 좀 죽여주십시오!!”

    ...이것들 갑자기 왜이래?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이도님!!!”

    멀리서, 내게 다가오는 무리들이 보인다.

    그중 딱 한명의 얼굴만 보였다.

    한수아.

    그러고 보니, 나는 한수아한테 메시지를 보냈었다

    죽여도 될 만한 시련자 두 명을 내 쪽으로 보내라고,

    자세히 보니 이 두 명, 매혹에 걸린 상태다.

    레종은 그렇다 쳐도 주청윤은 뭘까.

    “주청윤.”

    “예!"

    기합이 잔뜩 든 신병을 보는 기분이다.

    “시련자들은 수도로 모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텐데, 왜 소집을 거부했지?”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그런데, 대답이 가관이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그 소집에 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 봐라?

    “왜 그놈의 말을 들었던 거지?”

    “저와 랜버튼에게 무려 5천만 코인과 전설 스킬을 후원해주었으니까요.”

    슬슬 그림이 그려진다.

    주청윤과 랜버튼의 권능은, 꽤 뛰어난 수준이다.

    굳이 말하자면 예지력보다는 낮지만, 다른 권능들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그 둘을 악신들이 가만히 둘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참여한 건데?”

    솔직히 별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코인을 벌기 위해서 라는, 그런 대답을 했으면 했는데...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전쟁에 참가해 당신의 신뢰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이후 당신을 죽이거나, 당신의 밑에 들어가 배신을 하면 1억 코인을 주겠다고 했으며, 그 외에....”

    주청윤은 너무나도 예의바른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어갔고. 어느새 다가온 랜버튼이 사색이 된 얼굴로 자기 쪽에 있는 한수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 이야기는 꽤나 길었다.

    슬며시 고개를 들자. 랜버튼 옆에 있는 이들이 보인다.

    성미령과 나성진, 그리고 박유정과 양규, 그리고 조금 의외인 율리우스의 동생인 엘리자베스까지.

    이내, 양규와 성미령이 동시에 검을 뽑아들고는 랜버튼의 목을 겨눴으며, 나성진이 박유정의 목을 향해 검을 겨눴다.

    주청윤의 이야기가 끝나자, 싸한 침묵이 자리 잡는다.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언젠가 언급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하려는 일들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며,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른 이들에게 대의로 비춰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걸 대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여기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솔직히 그건 시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지구의 시련자들은 이곳에서 죽어도 실제로 죽는 게 아니다.

    그저 여분의 목숨을 잃고 힘을 가질 기회만 잃을 뿐이다.

    힐끗 고개를 돌려 박유정을 바라보았다.

    주청윤의 이야기 속에서 박유정도 등장했지만 그녀는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그저 힘이 될 만한 이들을 데려와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

    매혹에 걸린 주청윤이 한 말이니, 확실하다.

    그녀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던 나성진에게 살짝 눈짓하자 그가 검을 내린다.

    문득 한숨이 터져 나온다.

    전생에서 형님과 함께 지구의 멸망을 막으며 싸웠던 시련자, 랜버튼 그리고 주청윤.

    그대로 바하로사의 몸체에서 내려오며, 주청윤의 앞에 가서 섰다.

    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으로 그의 이마를 툭 치자.

    파아앙-!

    주청윤의 몸에서 분홍빛 기운이 밀려나온다.

    동시에 초점을 잡지 못하던 놈의 눈동자가, 제대로 초점을 잡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매혹이 풀린 주청윤.

    놈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나를 죽이려했다고?”

    “… 어... 그게…”

    나는 정말로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놈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살려주십시오.”

    깔끔했다.

    저 말 한마디에 모든 게 함축 되어 있었다.

    결국 나를 죽이려고 했었고, 내 신뢰를 얻어 배신도 하려고 했었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솔직히 주청윤은 미래가 기대되는 시련자중의 한명이다.

    그건 확실하다.

    전생에서 주청윤은 꽤나 음흉한 놈이었지만, 적어도 자기 할 일은 다 하는 놈이었으며, 나와 사사건건 부딪치긴 했지만 그래도 사선을 같이 넘고 정까지 얻게 된 꽤나 막역한 사이.

    그러니 한 번의 잘못쯤은.... 하아.

    시발. 내가 지금 무슨 엿같은 생각을 하는거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

    “…예?”

    “그때의 너희와 지금의 너희는 다른 놈들이지. 내가 알던 놈들은 이미 죽었다는 걸 인정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

    주청윤과,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나는 정말로 진지했다.

    나는 과거에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에 머물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으면서도 나는 계속 과거에 살고 있었다.

    과거에 괜찮았던 시련자, 과거에 나와 싸웠던, 과거에 형님을 사랑했던, 과거에 벌어졌던. 과거에, 과거에.

    이제는, 지겹다.

    이제는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제는 벌어지지 않을 미래, 회귀하기 전에 발생했던 그 미래에, 더 이상 집착하지말자.

    나와 형님만 아는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지만 말자.

    그 외에는, 나 꼴리는 대로 살자.

    그대로 손을 내질렀다.

    서걱-!

    주청윤의 목이 그대로 잘려나가며,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진다.

    망설임 없이 놈의 심장도 짓밟았다.

    더 웃긴 건, 주청윤을 죽이자마자 [광기의 학살자]를 죽였다는 메시지가 떴다는 거.

    기차에서 마키아벨리를 죽였을 때 떠올랐던 그 칭호다.

    그러니까, 이놈도 마키아벨리처럼 시련자들을 학살하긴 했었다는 뜻.

    그대로 걸음을 옮겨 랜버튼의 앞에 섰다.

    놈이 바들바들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런데 그다지 감흥이 없다.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손에 기운을 두르고 놈의 머리를 잘라냈다.

    그게 끝이었다.

    분위기가, 이번에도 싸해진다.

    “말했었지. 시련자들 뒤통수치는 놈들은 무조건 죽일 거라고.”

    성미령과 한수아가 눈을 크게 뜬다.

    이미 많이 퍼져나갈 대로 퍼져나간 말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저 두 명만이 퍼지지 않은 오리지날 내 목소리를 들었었으니까. 그때의 충격이, 지금의 충격과 흡사한듯하다.

    “저... 그 둘 그렇게 죽일 필요가...”

    “그리고 이 말도 했었지.”

    “뒤통수치는 새끼를 보호해주거나 도와주는 놈, 오해였다느니 누구누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느니.. 이딴 개소리하는 새끼들도 죽일 거라고.”

    박유정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변한 건 없다. 나는 최대한 많은 시련자를 살릴 거고, 그 기준은 내가 정해.”

    이 말과 내 행동이 약간 모순된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모순되지는 않는다.

    지금도 꽤나 많은 시련자들이 살아있는 상태니까.

    애초에 내가 생각한 시련자는 나와 형님과, 광범위 권능 가진 두세 명의 시련자.

    그렇게 총 넷에서 다섯 정도가 한계선이었다.

    다시 강조하자면 지금도 꽤나 많은 시련자들을 살린 상태다.

    "박유정."

    “네... 네!”

    “도망가지 마라.”

    짧은 말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를, 눈치 빠른 박유정이 모를 리 없다.

    그녀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양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밖에 병사들 대기 중이지?”

    “예. 현재 남은 약 10만 여명의 병사가 옆 영지에서 대기 중입니다.”

    모자라다.

    정말로 모자라니, 어쩔 수 없다.

    “주변 영지들에 협조요청 보내고 수도를 '격리 지역'으로 만들어.”

    “격리.. 지역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오크들 최대한 한곳에 모아놓고. 반항하는 오크는 무조건 죽이고.”

    오크들이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들 중 누군가는 살고자하는 의지가 있을 것이다.

    반항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 놓고, 살아남고 싶은 오크들만 주민으로 받아줄 것이다.

    "병사들 최대한 동원해서라도 확실하게 제압해놔. 무슨 말인지, 알지?”

    양규가 믿음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마치 무언가를 갈구하는 표정의 한수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게.. 얘도 참 애매하다.

    “아까, 힐끗 봤었는데, 시련자들이 꽤... 적어졌더라?”

    그녀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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