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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76화 (75/131)

76화.  < 지옥도(3) >

...젠장.

머지않아 모든 초월자들이 나를 향해 날아오르고, 허공에서 날아다니던 익룡 수십 마리와 구석구석에서는 완전체로 변한 드래곤까지.

3성 이하의 초월자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발.

지상에 있었을 때 눈치챘어야했는데.

이놈들은, 나를 죽이려한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여서 그런 걸까.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든 기운을 다리 쪽으로 순환시켰고 전력을 다해 축지를 발동했다.

내 몸이, 공간을 완전히 뛰어넘는다.

콰과과광-!!!!

이어서 나를 향해 날아오던 익룡들과 초월자들이 자기들끼리 부딪쳐 또 다시 사방으로 피가 터져나갔지만 무시했다.

내 목표는 오로지 하나.

아수라를 찾는 것.

건너편의 동굴까지 약 20km정도 남은듯하다.

한 번 더 이를 악물고 축지를 발동하려던 그때.

서걱-!!

무언가 내 등을 훑고 지나간다.

이어서. 쌔애액하는 공기 찢기는 파공음이 들려온다.

군자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무언가의 팔에 내 군자검이 막힌다.

그제야 나는 볼 수 있었다.

새하얀 고블린이 한쪽 팔로 군자검을 막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그러니까, 지금 나를 공격한 것은 유바의 신성이었다.

지금도 등 쪽이 뻐근하다.

아니, 씹새끼가.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순간 놈의 몸이 흐릿해진다.

반사적으로 군자검을 회수하고는 곧추 세웠다.

콰아앙-!!!

유바의 신성, 놈의 짤막한 다리가 검면을 후려친다.

꽤나 거대한 중압감.

이놈... 혹시나 싶었는데 바하로사, 그놈과 동급이 확실하다.

그때 나는, 날아가는 반동을 이용해 재차 자리를 박찼다.

이어서 익룡들이 유바의 신성에게 길을 비키라는 듯 날개로 후려치고, 유바의 신성이 간지럽다는 듯 무시하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 모습들이, 묘하게 씁쓸하다.

자리를 박차면서 혈천 심법을 운용했다.

광전사의 갑주가 없어도 이미 그 원리는 파악한 상황.

내 몸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내 눈동자가 붉게 물든다.

이어서 용솟음치는 기운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일단 최대한 아끼고 있었는데, 오산인가보다.

힘을 아낄 수가 없다.

그때 다시 보인다.

눈앞에 땅이 접히는 그 부분, 아니, 공간이 접히는 왜곡의 길.

기운을 끌어올렸고 허공에서 다리를 움직이자.

콰직-!!

공간이 찢기며, 나는 건너편의 동굴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조차도 놀랍다.

내가 지금, 20km를 뛰어넘었다고?

이어서.

콰아아아아앙-!!

수백 마리의 초월자들이 그 좁은 동굴 입구로 들어오려다 지들끼리 부딪치며 굉음을 토해낸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유바의 신성이 피로 물든 얼굴로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앞서 말했지만, 한눈 팔 시간이 없다.

남은 시간은 약 9분.

나는 다시, 달려 나갔다.

**

나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7분 24초.

달리면서 느낀 건데... 몸이 뭔가 이상하다.

아프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다.

정확히 1분 전, 나는 단 한 번의 축지로 무려 20km를 이동했다.

이건 전생에서 축지 스킬의 숙련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형님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아니, 전력을 다해서 축지를 사용한다 해도 고작해야 3~4km를 이동하던 내가, 그게 가능했다고?

더 이상한 건 현재 내 몸 상태였다.

온몸의 잠재력을 관장하는 24개의 혈도를 터트린 지금의 나는 일종의 혈신 상태였는데.

용솟음치는 힘의 크기가 너무... 다르다.

생각했던 것의 두 배, 아니 세배 이상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그 증거로 나는 유바의 신성과 수천의 초월자들이 싸우던 ‘첫 번째 구덩이’를 벗어난 뒤로, 상처없이 무려 두 개의 구덩이를 더 지나쳤다.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벌어지는 일 자체들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야 할까.

예지부터 시작해서 어찌 보면 ‘나’라는 존재는 이 아수라의 시련에 최적화되어있는 형태가 아니던가.

그렇게, 축지로 한 번 더 공간을 뛰어넘었을 때였다.

코앞에 보인다.

텅 비어있는 공동 안에 굳게 닫혀있는 철문과 그 앞에 털퍼덕 주저앉아있는 기괴한 괴물이 보인다.

공동으로 진입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생각보다 빠르게 왔군.”

문앞을 지키던 괴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로운 [통합의 군주]라... 제법이야.”

"..."

말없이 그의 모습을 살폈다.

신체는 약 5m.

상체는 물론이고 하체까지 완전히 덮고 있는 갑옷은 처음 보는 재질로 만들어진 갑옷이었다.

마치 고려 시대 장군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이어서 그의 옆에 세워져있는 거대한 망치가 내 시선을 잡아끈다.

별 무늬 없이 단순한 형태의 망치, 얼핏 봐도 무게는 톤 단위를 오가는 게 확실하며 무엇보다 통짜 타르켄으로 만들어진 게 확실하다.

"먼저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지옥도의 지하 1층을 관리하는 전혼장군將軍傳靈이다.”

이름을 듣자마자 조금 당황 할 뻔했다.

지옥도라해서 염라대왕이나 그런 걸 생각했는데 전혼장군이라니, 굉장히 뜬금없는 이름이다.

뜻을 풀이하면 영혼을 보내는 장군이라는 뜻인데.

나는 말없이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7분 12초.

그때, 전혼장군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그렇군.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내 뒤에 있는 이 문은 지하 2층으로 가는 입구다. 이 문을 열면 그대는 2층으로 내려갈 수 있지.”

“.. 그냥은 안 보내주겠지?”

그가 피식 웃는다.

“짧게 이야기하지. 이곳을 넘으려면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것, 그에 대한 답을 내게 보이 거라.”

"...?"

지가 무슨 스핑크스야?

이건 뭔 뜬금없는 퀴즈지?

...저놈을 옆으로 밀치고 문을 여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 뻔했지만 그대로 치워버렸다.

이건 예지가 발동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놈, 최소 7성 이상의 신격을 가진 게 확실하다.

그저 보고만 있는데도 온몸이 저릿저릿하며, 오금이 떨리는 수준.

솔직히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전생에서 박유정을 잃고 미쳐 날뛰던 형님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나랑 퀴즈를 하자는 거네?”

“굳이 풀어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그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대가 신격을 갖췄건 갖추지 않았건 그런 건 관심 없다. 결국 아수라님을 찾게 되어 그분에게 ‘보상’을 받게 된다면 힘은 자연스럽게 갖추게 될 터.”

조용히 놈의 말을 곱씹었다.

뉘앙스가... 되게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뭔가 함축된 의미가 있는 건가.

“내가 보는 것은 그 힘을 그대가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판단력, 그리고 진정 그 힘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알아두거라.”

"?"

“기회는 단 한번이다. 오답을 내게 보인다면 나는 그대를 죽일 것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힐끔 시선만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7분 2초

후우.

시간은 적지만 초조해하지 말자.

생각해내자.

어차피 이놈을 힘으로 이기고 넘어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축지를 사용한다 해도 중간에 끊길 확률이 100%, 내가 아는 모든 기술을 총 동원해도 놈이 기운을 한번만 퍼트리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그 정도다.

7성의 신격을 갖춘 괴물들의 수준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퀴즈를 맞히면 아래로 보내준다는 놈의 말은 마른하늘에 단비를 내려주는 것과 같았다.

신중하게 생각하자.

기회는 단 한번.

살아있되 살아 있지 않은 것.

대체 뭘까.

우선, 가장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좀비였다.

좀비를 비롯해 지옥도로 왔을 때 보게 된 존재들.

그들은 분명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그들을 뭐라고 정의할까.

귀신...이라고 정의해야하나?

일단 이건 킵 해놓자.

먼저 ‘살아있다’의 정의와 ‘살아있지 않다’의 정의를 구분지어보자.

살아있다는 건 숨을 쉰다는 것,

살아있지 않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 그러니까 숨을 쉬지 않는 상태.

그러면 혹시.

‘...혼수상태?’

애매하다.

가정자체도 너무 포괄적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영혼이 빠져나간 존재.

확신하건대, 영혼이 빠져나간다 해서 생명체는 죽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숨도 쉬고 심장도 뛴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살아있다고 볼 수도 없다.

왜냐면, 영혼이 없다는 건 인형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니까.

즉, 살아있지만 영혼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지 않은 존재.

‘시련자.’

현재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시련자들은 모두가 영체 상태다.

일종의 화신체라고 해야 할까.

시련자들은 전부 시스템에 의해 본래 세상인 지구에서 영혼만 쏙 빠져나온 상태로 시스템이 강제로 준비해준 ‘신체’를 덮고 있는 존재다.

즉, 원리를 따져보면 시련을 진행하는 신체가 죽는다면 그곳에 자리해있던 영혼이 본래의 신체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미 지구는 시간이 멈춰있다.

보통 인간과 시련자를 구분 지어야 했기에, 시련을 진행하다 죽은 이들을 ‘대기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시련에서 죽음을 맞이해도 원래 세상으로 돌아 갈수 있는 존재.

죽음을 맞이해도 진정한 죽음을 맞이한게 아니며, 살아있음에도 실제로 살아있는게 아닌 존재.

시련자.

시련자 밖에 없다.

나는, 말했다. 아니 말하려했다.

입을 뗀 순간.

찌이잉-!

이명이 들려온다.

**

“답은 시련자다.”

예지속의 ‘나’가 말했고, 전혼장군이 답한다.

주둥이가 아닌, 들고 있던 거대한 망치로.

콰아아아앙-!!

이어서 예지속의 나는 눈을 떴고 바하로사의 앞발에 깔려 죽었다.

**

열었던 입을 그대로 다물고 말았다.

예지력의 범위가 조금 넓어진 건 그렇다 쳐도. 이거 웃기는 새끼네?

오답인지 아닌지 이야기도 안 해주고 냅다 망치로 후려갈긴다고?

이거 완전히 싸이코 새끼 아니야?

젠장.

다시 집중하자.

놈은 나를 죽였다.

그렇다면 시련자는 답이 아니라는 걸까.

혼수상태라고 말하려던 그 순간 또 다시 예지가 발동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똑같았다.

혼수상태로 말하는 순간 놈의 망치가 나를 짓뭉개는 것.

일단 오답이라고 생각하자.

시간을 확인했다.

6분 20초.

젠장.

초조해지면 안 되는데, 자꾸 초조해진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모든 단어를 고집어냈다.

‘사람'

‘좀비’

‘구울'

‘아수라’

‘아스가르드의 신들’

‘초월자’

등등등.

‘개새끼’

‘시발새끼’

‘엿 같은 새끼'

내가 내뱉은 단어만 무려 수백.

그리고 나는 수백 번을 죽었다.

농담이 아니라.

내 예지력을 죽음을 경고해주지만 내가 본 예지에서의 ‘고통’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실제로 수백 번 죽은 고통을 느꼈다는 뜻.

온몸이 짓뭉개지고, 깔리고. 찢기고, 터져나가는 그 엿 같은 기분.

나름 굳게 자리 잡혔다고 생각한 정신이, 조금씩 찢어지는 것 같다.

빌어먹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5분 12초.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고작해야 1분밖에 안 지났다고?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시련자’다.

나는 지금, 분명 무언가 놓치고 있다.

그러다 순간, 뒤쪽에 있던 아다만티움 벽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

촉박해지는 시간에 나 스스로가 초조해졌고 계속되는 죽음에 놓쳐서는 안 될 것을 놓쳤다.

그래, 나는 분명, 놓쳤다.

놈의 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어야할 단어.

놈은 분명, 내게 말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보이라고 했지.

talk가 아니라, show, 즉, 행동으로 보이라는 뜻.

그렇다면... 답은 시련자이고, 이 자리에 있는 시련자는 나밖에 없다.

아무 말 않고, 한걸음 내딛었다.

예지가 발동하지 않고, 놈이 눈에 이채를 띄며 나를 바라본다.

무시하고 한 번 더 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발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걸음, 두걸음, 세 걸음.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나는, 지하 2층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서있었다.

힐끗 고개를 돌려 전혼장군을 바라보니, 그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제법이군. 무언가 말을 했더라면 나와 싸웠어야 했을 텐데, 눈치가 빠른 건지 확신이 있는 건지, 가거라. 그대는 나 전혼장군의 시험을 통과했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그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깔끔하게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만국 공통 인사법인 중지만 추켜올리는 방식.

“그건 뭐지? 그대가 살던 세상의 인사법인가?”

답하지 않았다.

말하면 왠지 저 망치가 내 머리에 꽂힐 것 같았기에.

절대로 겁나는 건 아니다.

그냥 문을 열어젖혔다.

눈앞에 보이는 ‘포탈’. 그곳으로 걸음을 내딛자 내 몸이 그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그 짧은 순간 보게 되었다.

내 뒤에서 전혼장군이 나를 향해 빅엿을 날리고 있는 모습을.

놈의 입가에 흐뭇하게 걸려있는 웃음이 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싸이코 새끼.

다시 보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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