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 누굴 진짜 병신으로 아네 (3) >
그 모습에 히죽 웃고 말았다.
“분명 말했던 거 같은데, 개소리가 너무 길다고.”
바하로사는 툴칸의 유언대로 오크들이 이 세상에 자리 잡게 만들고. 그 오크들이 발바라 대륙에서 전쟁을 이어가는 걸 방관하라고 계속해서 내게 강요해왔다.
그런데, 전쟁을 이어갈 오크가 없다면?
이미 침식 게이트는 닫혔고, 발바라 대륙에 와있는 오크들의 숫자는 많아봐야 십만, 아니 오만도 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로 무슨 전쟁을 하겠는가.
이제, 타임 리미트는 10분이다.
10분 안에 놈이 나를 죽이든 내가 놈을 죽이든, 둘 중 하나가 결정 난다.
“뭐하냐? 10분 남았는데.”
이죽이는 내 말에 놈이 격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런 힘 .
이내, 놈의 기파가 사방으로 터져나가고 내 몸이 저릿저릿 떨려온다.
이어서 무언가 공기를 찢고 나를 향해 날아온다.
빠르게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하지만.
콰아아앙-!!!
무언가 내 광대를 강하게 후려친다.
몸이 날아가고, 바닥에 쳐 박히려던 때, 팔을 뻗어 몸을 튕겨 올리며 공중에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이어서.
퍼어어억-!!
복부에서 밀려오는 통증에, 피를 토해내며 다시 날아갔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시발.
바닥에 서너 번 튕기고 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궁극체의 드래곤의 공격을 내 눈은 읽어내지도, 아니 잡아내지 못했다.
이게 전력인걸까.
대응책은.. 기술, 기술밖에 없다.
나는 비틀거리며 빈틈을 드러냈다.
복부.
지금 내 복부는 완벽히 열려있는 상황.
쌔애액-!
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본능적으로 복부 쪽으로 손을 뻗었다.
퍼어억-!
복부를 강타하는 무언가를, 그대로 잡아챘다.
빠르게 확인했다.
발인줄 알았는데 주먹이었나 보다.
이건 뭐 죄다 비늘이라 감촉이 거기서 거기니 보지 않고서는 모를 정도다.
“하등한 놈이... 감히 이 나를 능멸해? 10분? 10분이면 충분하다. 네놈을 죽이고 이 대륙을 완전히 지워 버릴 것이다!!"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나에게도 새로운 압박감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모든 걸 잃던지, 아니면 모든 걸 지키고 놈을 죽이던지.
이렇게 위기감이 닥쳐오니까 더 집중이 잘되는걸 보면 내가 특이 체질인가 싶기도 하다.
놈의 팔을 붙잡은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조용히, 속으로 스킬명을 외쳤다.
‘혈폭천성血暴天城’
이내, 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에 있던 광전사의 갑주가 내 팔을 타고 놈의 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놈이 당황해하는 그 순간, 빠르게 몸을 앞으로 밀착시킨 뒤 놈의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이..이게 뭔..?”
혈폭천성血暴天城.
광폭률이 50프로를 넘어서면서 오픈된 능력이다.
효과는 간단하다.
코어 부분을 제외하고, 내 갑주가 상대의 몸을 덮고, 그 상태로 압축되는 능력.
“기왕 압축한 거, 조금만 더 압축해보자.”
통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
이어서 놈의 몸을 뒤덮은 광전사의 전신갑주가, 증식하기 시작했다.
짧았던 부분은 늘어났으며 이내, 그 안에 있던 아다만티움 가시들이 놈의 피부를 미친 듯이 찌르기 시작한다.
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붙잡고 있던 놈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반발력이, 장난이 아니다.
계속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힘을 풀고 축지를 사용해 놈의 뒤로 넘어간 뒤 손을 뻗어 놈의 나선형 뿔을 잡아챘다.
이어서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전신갑주가 우두둑거리며 압축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피가 튀기고 살점이 으스러져야하지만, 1성인 나에게도 통하지 않았던 게 나보다 신격이 높은 놈에게 통할 리가 없다.
이건 그저, 눈속임과 감각을 흩트리는 용도로 생각해야한다.
무시하고 백 마운트 포지션에서 양 팔을 이용해 놈의 경동맥을 조르고 양 다리를 놈의 허리에 걸치고는 놈의 양 발을 봉쇄했다.
리어 네이키드 초크.
기술은, 완벽하게 들어갔다.
팔에 힘이 들어가고, 놈의 허리를 끌어안은 내 다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큭..."
분명 효과는 있다.
온 힘을 다해,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렸다.
놈의 몸에 둘러쳐져있던 기가 쩌저적하며 완전히 갈려지고, 놈의 목이 짓눌린다.
혈류가, 차단되고 있는 게 확실하다.
거기다 광전사의 갑주가 놈의 몸을 압박하며 신경을 건드리니 놈이 당황해한다.
이런 기술은 처음 당해 본다는 듯 한 그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
수천 년을 산 새끼가 격투기는 안 배웠나보다.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계속 조이던 그때. 놈이 대응책을 찾아낸 걸까.
우두둑하며 놈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완전체.
30여 미터에 달하는 덩치로 변신하려는 것.
이어서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갑주가 터져 나오고, 내 몸이 밀려나온다.
젠장.
놈의 덩치가 5미터가 넘게 커졌을 때, 나는 결국 초크를 풀고 말았다.
그 순간, 놈의 몸이 다시 압축되기 시작했다.
다시 변한 궁극체.
잠깐.
나는 공중에 떠있었고 놈은 이미 궁극체로 다시 돌아온 상황.
놈의 고개가 나를 향해 돌려지고, 놈의 주먹이 번쩍하는 순간,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가드하기에는 늦었다.
몸을 틀기에도 늦었다.
필사적으로 모든 기운을 끌어올려 몸에 둘렀지만, 조금 늦었다.
놈의 주먹이 내 심장을 강타한다.
콰지지지직-!!!!
해일에 휩쓸린 것 마냥, 몸이 날아간다.
그렇게 바닥에 서너 번 튕긴 채로 바닥에 쳐 박혔다.
“쿨럭-"
터져 나오는 핏물에 섞여 있는 저 희끄무레한 것들...
이거 설마 내 장기인가.
손으로 심장 어림을 더듬었다.
광전사의 코어가, 완전히 부숴져있었다.
한번 더 피를 토해내고는, 고개를 들었다.
코앞에, 궁극체의 바하로사는 없었다.
완전체로 변신한 바하로사.
놈이 하늘을 부유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그 뒤쪽으로 황성이 보이는데.
그게 꽤나 작아 보인다.
생각보다 멀리 날아왔나 보다.
그때 황성 꼭대기 쪽에서 빛무리가 터져 나오더니, 두어 명의 시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익숙한 모습이다.
하나는 주청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레종이었나?
시련자들 중에 그나마 좀 쓸만해보이던 남자인데.
중요한건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이다.
주청윤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분명히 늦는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여지껏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스킬.
[유토피아의 군주]를 얻게 된 뒤로 얻게 된 그 스킬이.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고집 좀 그만 부리라고 말합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조용히 당신을 주시합니다.]
[선普에서 군림하는 자가 조용히 당신을 주시합니다.]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아니, 방법이라기보다는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아수라].
그때, 나를 향해 바하로사의 앞발이 떨어져 내린다.
내가 예지로 보았던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여화는 바닥에 엎드려있던 탈레리안의 머리를 발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 쟤는 어딜 봐도 우리 쪽이라니까?”
여화와 함께 이도를 지켜보고 있던 탈레리안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대체 어딜 봐서요? 라는 물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대로 삼켰다.
사실, 다른 건 다 떠나서 그냥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아스가르드의 세 지배자들은 이도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이도라면 최소 6성내지 7성까지 성장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전력이니까.
하지만 그의 단단하고도 높은 자존심은, 한번쯤 꺾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에피소드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다.
탈레리안은 확신했다.
이 세 명의 지배자들은 이도가 ‘위기’라고 판단되는 순간에 난입하려고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이라고.
일종의 눈치싸움.
그때,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지정석에 앉아있던 천군이 아룡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이보게 아룡, 저 아이는 그대의 후손이 아닌가. 왜 저리 무모한 짓을...”
“그게 중요한가?”
천군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마치, 남일 말하듯 하는 아룡의 태도에 질문 자체가 그냥 목뒤로 넘어갔다고 해야 할까.
아룡은 눈앞에 떠올라있는 거대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안에 비춰져있는 이도는 궁극체 형태의 바하로사에게 초크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이도는 바하로사를 이길 수 없다.
이도는 1성, 바하로사는 3성.
만약 바하로사가 2성이었다면 모를까.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신격의 차이는 무려 두 단계.
그 두 단계를 건너 뛴다?
그게 가능했다면 ‘힘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졌을 터.
그럼에도 연회장의 모든 신들은 화면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현재, 바하로사의 목이 짓눌리고, 그의 기막이 찢겨지고 있었다.
주변 곳곳에서 작은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솔직히, 감탄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다.
그 순간을 바라보던 탈레리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저 이도라는 놈은 마치 드래곤과의 싸움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게 [예지]라는 권능의 위력일까.
그때,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띠고 있던 여하가 말했다.
“그러게 그 드래곤들 소집한다는 거 진작에 끝내놨으면 좋잖아. 왜 시간을 끌다가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들었니?”
누구를 향한 말이었는지는 명확했다.
시작을 알린 아룡, 발락투스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진다.
"..."
“쟤가 걔지? 그 바하무트인가 뭔가 하는 미친놈 동생. 하여간 네발로 기어 다니는 파충류라 그런가 드래곤이라는 것들은 죄다 뭔가 이상한 놈들밖에 없네.”
중립 진영에 속한, 수십의 드래곤들이 눈을 치켜뜨며 여화를 노려본다.
여화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발락투스야 왜 그랬냐니까? 이도가 어떤 놈인지 에피소드 시작부터 계속 지켜봐왔으면서 감도 못 잡았니? 릴로드 대륙에 있던 저 도마뱀 새끼는 진작에 치워놨어야지. 너 진짜 대가리에 못 박힌 거 아니야?”
“아이고 우리 발락투스야, 너 어쩌면 좋니. 누가 널 보고 드래곤이라고 하겠어. 그냥 머저리라고하지.”
계속해서 조롱하는 여화의 말에 아룡이, 결국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콰지지직-!!!
아룡의 몸에서 거대한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한다.
여화는 팔짱을 낀 채로 그런 아룡을 감상했다.
"뭐 어쩌시게? 겨우 그 정도 격으로 되겠어? 너도 쟤처럼 궁극체로 변신정도는 해야지."
비웃는 여화를, 아룡은 잠시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상종하기 싫다는 그 완곡한 표현에 여화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설마 쟤, [아수라] 쓰려는 건 아니겠지?”
여화는 별 의미 없이 말했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아수라]라는 이름이 나오는 즉시 천군은 이를 악물었고, 아룡은 조용히 한숨을 터트렸으니까.
아수라.
이면의 지옥도를 다스리는 시스템의 관리자이자, [균형자] 중의 한명.
신격으로 따지면 최소 9성은 넘어가는 괴물이다.
여화는 발가락으로 탈레리안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현재 화면 속에서는 이도가 피를 토해내고 있었는데, 치명적인 내상이 분명한데도 눈빛이 아직 살아있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아무래도 [아수라] 스킬을 사용하려는 게 맞나보다.
’그런데... 혹시 쟤 저걸 소환술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런 거라면 명백한 오산이다.
저 아수라라는 스킬은 소환술이 아닌 단순한 시동어에 불과하다.
그것도 [**의 왕]의 자격검증을 위한 시동어.
저걸 발동시키면 이도는 시공간의 균열로 넘어갈 테고, 그곳에서 아수라의 시련을 받게 된다.
성공하면 힘을 얻겠지만 실패하면 [유토피아의 군주] 칭호를 잃게 된다.
이도라는 인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솔직히 가지고 싶긴 하지만 아수라의 시련을 이겨낼 수는 없다.
그건 확신이었다.
‘경험자’로서의 확신.
여화는 고개를 돌려 아룡과 천군을 훑어보았다.
이거 왠지 그림이 그려진다.
저 둘은 단순히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게 아니라. 이도가 [유토피아의 군주]를 잃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그 말은 역으로 생각하면 이도가 언젠가는 아수라의 시련을 이겨낼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더 성장하기 전인 지금 [유토피아의 군주]를 잃게 만들려는 그런 모양새.
으음.
‘이거 이도에 대한 기대치를, 나만 너무 낮게 잡은 걸까?’
하여간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여기 아스가르드 놈들은 죄다 음흉하다.
이게 신들의 특성인가 싶을 정도다.
여화는 결국 한숨을 터트리며 턱을 괴었다.
“그러게 그냥 나한테 오라니까... 저런 음흉한 놈들한테 낙인찍히면 피곤해질 텐데...”
여화의 아래에 엎드려있던 탈레리안은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도 머리 쪽에서 느껴지는 여화의 발가락.
아니, 누가 누구보고 음흉하다고 하는 건지.
탈레리안이 알기로는, 그리고 직접 겪어본 바로는 이 아스가르드에 여화만큼 음흉한 이는 없었다.
분명하다.
빌어먹을 년.
***
[유토피아의 군주]를 달성했을 때 얻게 된 ‘아이템 스킬'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분명히 보통 스킬이 아닐터.
사실 언제 스킬을 써보나 하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잠시간의 시간만 벌면 되니까.
내려찍히는 바하로사의 앞발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아수라!”
스킬 명을 외치기가 무섭게 내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멈췄다.
내려찍히던 바하로사의 발이 멈췄고 공기가 멈췄으며, 바람이 멎었다.
그 이후 내 시야가 암전되며 나는 무언가에 흡수되듯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