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72화 (71/131)

72화.  < 누굴 진짜 병신으로 아네(2) >

호흡을 고르며, 자리를 박찼다.

이어서.

콰아아아아앙-!!

놈의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내가있던 자리를 초토화시킨다.

한줄기 물결 같은 파도가 쭉 뻗어져나가는 것을 보니, 이놈, 드래곤 중에서도 물 속성이 진하다고 알려진 블루 드래곤이 맞나보다.

잠깐 그 물결을 응시하다 느껴지는 찌릿한 살기에 고개를 돌렸다.

바하로사가, 재차 브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솔직히 저 브레스에 맞으면 아마도 나는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를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맞지만 않으면 된다.

허공을 박차고는, 주먹으로 놈의 몸체를 후려쳤다.

콰아앙-!

굉음만 울려 퍼질 뿐, 놈은 여전했다.

솔직히 기대도 안했다.

이어서 놈이 날개를 펄럭인다.

그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돌풍이 아니라, 격으로 이루어진 기의 파편들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으로, 모든 땅들이 갈가리 찢겨져나간다.

고개를 들었다.

순식간에 허공 40여 미터 이상 떠올라있던 놈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주둥이를 벌렸다.

한번 더 놈의 브레스가 이어진다.

자리를 박찼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이어서, 하늘을 향해 한번 더 땅을 박찼다.

쿠웅-!

내 몸이 수직으로 올라가며 코앞에 바하로스의 새하얀 복부가 보인다.

손날을 세우고, 기운을 날카롭게 벼린 뒤 놈의 복부를 향해 내질렀다.

콰아앙-!

젠장.

굉음만 울려 퍼진다.

이번에도 못 뚫었다.

내가 알기로 드래곤의 변신 형태는 총 세 가지다.

하나는 인간이나 오크, 혹은 고블린이나 엘프같은 형태로 몸을 변형시키는 폴리모프.

이건 유희를 위한 일종의 눈속임이라 완벽한 드래곤으로서의 무력은 찾아보기 힘든 형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처럼 본체로 변신하는 형태.

특징은 방어력의 극대화이며, 덩치가 너무나도 커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공격은 브레스와 거대한 네 개의 발로 땅을 짓밟는 것에 한정 된다.

굳이 말하자면 양민학살에 최적화되어있는 형태라고 해야 할까.

그걸 ‘완전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 ‘궁극체’, 드래곤의 최종형태라 불리며 거대했던 드래곤의 몸은 2미터에서 3미터 사이로 축소된다.

당연히 거대했던 완전체의 모든 힘이 압축된 그 상태는 방어력은 물론 공격력까지 어마어마하기에 대인전에서 거의 최강이라 부를 수 있는 형태.

그리고 지금, 바하로사는 고작해야 완전체로 변한 상태였다.

이건 아직까지도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뜻.

놈이, 고개를 들어 이번에는 황성 쪽을 바라본다.

설마 브레스로 황성을 녹여 버리려는 걸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이내, 놈의 목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다.

확실하다.

놈은, 황성에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없애려한다.

내가 오크를 죽였으니까 너도 당해봐라 이건가.

새끼가 생각보다 쪼잔 하네.

나는 망설임 없이 축지를 사용했다.

이내, 내 몸이 바하로사의 목 위에서 나타난다.

놈의 모가지에서 브레스가 터져 나오려던 그때. 나는 팔을 뒤로 힘껏 젖히고는 놈의 머리통을 향해 강하게 내려찍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고개가 바닥으로 꺾인다. 놈의 브레스가 바닥을 적신다.

그 순간.

찌이잉-!

권능 잃어버린 줄 알았잖아.

이명이 들려오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

오랜만에 발동한 예지라 그런가.

일단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처음 이놈에게 공격을 시도했을 때는 왜 예지가 발동하지 않고 지금 발동한 걸까.

빠르게 그 해답이 도출되었다.

놈은 황성을 향해 브레스를 뿜어냈었다.

그 황성에는 당연히 한수아를 비롯한 시련자들이 있었으니, 놈의 브레스가 황성을 휩쓸었다면 그대로 바하로사는 소멸하게 된다.

즉, 싸울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예지가 발동하지 않았던 거고. 나는 의도치 않게 그 미래를 막았다.

정말로 노린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깊게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바하로사라는 위선적인 도마뱀이 거슬려서 놈이 하려는 일을 그냥 막았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아쉽네.

그게 되게 쉬운 길이었는데.

이내 눈앞에 보인다.

거대한 바하로스의 앞발이 나를 향해 내려찍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기력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고.

문득 보이는 내 팔은 맨살이었다.

그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콰아아아앙-!!!

**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주먹으로 바하로사의 대가리를 후려친 상황.

짧은 순간 생각했다.

황성에 있는 시련자 한명을 데리고 와서 바하로사를 소멸시킨다는 악랄한 방법을.

정말로, 짧은 생각이었다.

일단 좀 맞자.

왼손으로 놈의 머리에 있는 돌기를 그대로 움켜쥐고는 오른 주먹에 기운을 끌어 모았다.

망설임 없이 내려찍었다.

콰앙-! 콰앙!! 콰아앙-!!

한번, 두 번, 세 번.

미친 듯이 내려찍었다.

놈이 공중에서 제비돌 듯 미친 듯이 회전했지만 무시했다.

콰앙-!

퍼걱-!

콰직-!

머지않아 놈의 가죽을 덮고 있던 기막이 쩌적하며 금이 가고, 계속해서 내려찍자 결국 놈의 가죽이 찢어진다.

허공에 놈의 붉은 피가 흩뿌려지던 그때, 결국, 놈은 선택했다.

파아아아앙-!!!

바하로사의 몸에서 기파가 뻗어나가며 거대한 증기가 피어오른다.

동시에 내가 잡고 있던 돌기가 놈의 몸 안으로 들어가고 놈의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 죽음을 예고한 예지 속에서 놈의 모습은 완전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궁극체로 변하는 상황.

예지가 예고한 상황을 벗어난 것이다.

새끼가, 진작에 이럴 것이지.

나는 놈의 머리를 발판삼아 자리를 박차며 거리를 벌렸다.

바닥으로 자유 낙하하며, 바닥에 다리가 닿는 것과 동시에. 옆으로 몸을 틀었다.

스아악-!

코앞에서, 푸른 비늘로 둘러싸인 팔 하나가 스쳐지나간다.

고강도의 신체를 압축한 팔이라...

생각보다 꽤나 기발한 설정이 아닌가.

이어서 고개를 숙였다.

이어지는 놈의 공격에 서걱하며, 허공에 금이 간다.

스텝을 밟으며, 몸을 뒤로 빼냈고 한 번 더 몸을 틀었다.

스아악-!

놈의 공격에는 절도가 없었고, 형식이 없었다.

그저 내지르고 휘두르는 것.

그게 전부였다.

병신 같은 놈.

가지고 있는 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다.

새삼스럽지만 내 장기는 대인전이다.

거대 생물체와 싸우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신체를 키우는 기술 따위를 배운 적은커녕 관심을 둔적도 없으니까.

내가, 수년간 단련한 것은 나와 비슷한 신체의 적과 1:1 대결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들이다.

심지어 내 대련 상대는 다른 이들도 아닌 정지혁이었다.

궁극체의 드래곤?

충분히, 상대할만하다.

고개를 들자 코앞에 놈의 주먹이 보인다.

정면으로 뻗어오는 주먹.

고개를 살짝 틀며, 이번에는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놈의 주먹이 내 광대를 살짝 스치고, 이어서.

빠아아악-!!!

카운터를 노린 내 주먹이 놈의 면상을 후려친다.

놈이 주춤하며 시야가 돌려진 사이.

주먹에 한번 더 온 힘을 끌어 모으고 놈의 명치를 향해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그제야 제대로 보인다.

바하로사의 모습은, 인간과 용족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온몸에 돋아나있는 비늘은 번들번들했지만 묘하게 아름답기까지 했고, 그 안에 담긴 근육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다. 온몸에는 자연스럽게 기운이 흐르고 있는지 계속해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으며 2m가 훌쩍 넘는 키에, 이마에 돋아나있는 나선형의 곧은 뿔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내가 강타한 놈의 명치,

그곳을 둘러싼 기막에는 금이 가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단단하다.

나름 전력을 다한 힘이었는데 뚫지 못하고 금만 가게 하다니. 이건 마치 애무만 한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닌가.

툴칸에게 그러했듯, 나는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놈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개인적으로 상대 움직임을 봉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꽤나 선호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반대쪽 팔꿈치로 놈의 면상을 한번 찍었다.

놈이 주춤하며 물러섰는데... 데미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한번 더 팔꿈치를 찍으려던 그때.

터억-

놈이, 반대쪽팔로 내 팔꿈치를 붙잡는다.

교차된 팔 사이로 놈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설마, 노렸나?

그 짧은 순간, 나는 발을 들어 놈의 명치를 그대로 밀어차고 있었다.

콰직-!

놈이 그대로 멀리 날아간다.

내 팔꿈치 쪽의 갑주 파편을 손에 쥔 채로.

놈이 쳐 박힌 곳에서 먼지더미가 피어오르는걸, 잠깐 지켜보다 조용히 팔을 들어올렸다.

내 피부가 질긴 걸까 아니면 갑주가 생각보다 단단한 걸까.

팔꿈치가 욱신거리는 게, 금 정도는 간 것 같은데 뜯겨져나간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내가 봐도 신기하다.

나는 지금, 나보다 격이 높은 상대와, 그것도 대인전에서는 최강이라 불리는 용족의 궁극체와 싸우는데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형님과 대련한 그 순간들은, 확실히 의미가 있었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아직도 고민 중이냐고 묻습니다.]

무시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조용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생각해보면, 이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침식이 앞당겨졌을 때는 솔직히 그러려니 했었다.

내가 들었던 미래와 똑같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변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놈은 경우가 다르다.

나는 바하로사라는 이름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농담이 아니라 저런 드래곤이 존재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런 드래곤이 툴칸의 곁에 있었다고?

툴칸은 분명 형님이 말했던 오크 황제가 맞다.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형님의 설명과 판박이다.

그렇다면 전생에서 바하로사는 형님과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긴데.

솔직히 합리적인 추론은 가능했다.

본래대로라면 지금은 에피소드가 고작해야 10정도 진행되었어야하는 시기다.

형님이 툴칸과 만났던 시기는 Episode #39.

즉 최소 한 달 이상의 차이가 벌어진다.

놈은 그 사이에 릴로드 대륙에서 사라졌다는 가정은 분명 합리적이다.

주술사?

시발,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도 우습다.

폴리모프를 한 상태로 오크 대륙에서 주술사로 살아왔다고?

그것도 오크라는 종족의 밑에서?

에휴.

방랑자면 방랑자답게 방랑이나 쳐 할 것이지 시련에 끼어들고 지랄이야.

먼지더미를 헤치며, 천천히 걸어오는 놈을 바라보았다.

"...아룡님께서 네놈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 같은데.”

놈의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말이 참... 재수가 없다.

“나를, 왜 막은 거지?”

자리를 박차려다 멈칫했다.

무슨 의미야 이건.

“저 황성에는 다른 시련자가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네놈은 내가 그들을 죽이는 것을 막았지 않았느냐.”

놈의 말투가 변했다.

...이상하다.

이건 착각물이 아닌데.

“재미있는 인간이군. 상대의 격이 높든 낮든, 편법은 쓰지 않겠다 이건가?”

아닌데, 지금 막 황성으로 가서 시련자 하나 데려올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럼 나도 네놈을... 아니, 그대를 존중해주지. 유토피아의 군주라는 칭호를 성장시키려한다지?”

“그 칭호의 끝을 본 자는 없었지. 그대는 운이 좋아 그 칭호를 얻게 되었을 뿐이야. 그대는 그 칭호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착각물과는 별개로, 긴장의 끈이 중간에 끊길 뻔했다.

굉장히 뜬금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것보다, 저놈이 유토피아 칭호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눈매를 좁히며 놈을 자세히 살폈다.

조용히 무언가를 막 중얼거리기도 하는 게,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그런 모양샌데.

설마 아룡과 대화중인걸까.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칭호를 끝까지 성장시킨 자는 여태껏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단 한명도 없다고?

그렇다면...

“이 칭호를 가지고 있던 놈들이 누구인지는 아나보네?”

바하로사가,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진정 몰라서 묻는 것인가.”

"...?"

“아니, 되었다. 이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겠어. 말로 미루어보니, 그대가 내게 대적하는 이유는 결국 이 대륙에 생겨날 혼란으로 인해 [유토피아의 군주]가 사라질까 하는 염려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생겨난 칭호이기에 국가가 무너진다 해도 그 칭호는 여전히 유지될 것이다. 거기다 그대의 격 또한 당연히 변동이 없을 터. 다만 사족을 조금 붙이자면 어차피 그대는 그 칭호를 끝까지 성장시키지 못할 것이야. 주제에 맞지 않는 욕심은 그만두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도 그대의 선택이겠지.”

말이 참 묘하다.

도마뱀 새끼라 그런가 화법이 참 특이하네.

저걸 정리하면,

“그냥 이 칭호를 버려라? 아무도 끝까지 성장 시키지 못했으니까?”

내 말에 바하로사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듯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놈을 바라보면서 딱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이 병신은 대체 뭐하는 놈일까 하는 그런 생각.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마냥 사고방식이 너무 편협하지 않은가.

문득 여화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오만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종족이 바로 드래곤이라는 그 말.

아룡님이 그대를 죽이지 말라고 계속 신령을 보내시는군.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릴로드 대륙에 남아있는 오크의 수는 현재 약 5430만, 그들은 지금 게이트 너머에 대기 중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그들을 이 대륙으로 불러올 것이야. 그대가 해야 할 일은, 툴칸의 유언대로 오크들이 이 대륙에서 발버둥 치며 전쟁을 이어가는 것을 방관하는 것이다. 두 번은 없다. 이 제안을 거절하면 그대는 죽을 것이다. 아무리 아룡님이 말씀하셔도 이 이상 그대에게 나는 기회를 줄 수가 없다.”

아.... 아까 했던 대화의 연장선이다.

내가 최근에 아주 다정다감한 모습들을 보여주어서 그런가.

나를 바닥에 머리를 박으라면 박고 기라면 기는 개새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 저놈이 형님과 만났는지 만나지 않았는지, 이딴 걸 내가 왜 생각한 거지.

중요한건 이미 일은 벌어졌다는 사실인데.

고개를 들어 바하로사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기회라는 듯 조용히 격을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그 모습이, 참 엿 같다.

거기다 5400만의 오크가 대기 중이라고?

말이 안 나온다.

생각해보니 처리해야 할 일이 한 가지가 아니었네.

먼저.. 바하로사를 죽이자.

일단 황성으로 가서 시련자 하나만 잡아와야 할 것 같다.

...잠깐만, 그런데 지금도 황성에 시련자가 있을까?

기운을 퍼트려보았다.

황성을 조용히 휩쓰는 내 기운....아.. 젠장.

없다.

황성에, 아무도 없었다.

아까 바하로사가 브레스를 내뿜었을 때 그대로 워프를 타고 도망쳤나보다.

이런 젠장.

나는 조용히 양쪽 손을 들어올렸다.

마치, 나는 전투를 포기했어요 라는 듯이.

놈이 잠시간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어차피 그대에게 남은 시련은 아직 많으니, 잘 생각하였다.”

무시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디나스티스모.

한 팔이 잘린 채, 나와 바하로사의 전투 중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유일한 오크.

그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윌의 속삭임’을 꺼내들고는 조용히 말했다.

“윌의 속삭임을 사용한다. 대상자는 시련자 한수아”

[윌의 속삭임을 사용합니다.]

[시련자 한수아님을 찾고 있습니다.]

[시련자 한수아님과 연결됩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기가 무섭게.

-...이도님?

-지금 어디야?

잠깐 건너편의 목소리가 멈췄다.

-여기가... 도시 이름이 네이튼이래요. 싸움은 끝나신 거예요?

도시 네이튼.

유토피아 제국의 수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규모의 도시다.

네이튼 공작이라는 자가 다스린다는 영지인데... 일단, 내 생각보다 가깝다.

-지금 당장, 수도로 시련자 한두 명만 보내.

-..네?

-죽여도 될 만 한 놈으로 보내라고, 최대한 빨리.

-네! 지금 바로 보낼게요!

윌의 속삭임을, 그대로 부쉈다.

후드득하며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던 그때, 내 눈에 디나스티스모가 보인다.

멍한 눈으로 나와 바하로사는 번갈아 쳐다보는 놈은, 넋이 완전히 나간 표정이었다.

놈의 코앞에 선채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침식 게이트 쪽에 손을 내민 채로 그 너머의 오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은 모습의 바하로사가 내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놈의 눈이, 의아함으로 물든다.

그 시선은 당연히 무시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열려있는 게이트를 타고 계속해서 넘어오는 오크들만이 보일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초당 수천에 이르는 오크들이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바하로사를 먼저 죽이려고 했는데, 순서를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나는 말없이 손바닥으로 디나스티스모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바하로사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짓고, 그의 눈꼬리가 꿈틀 떨리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망설임 없이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퍼석 _

디나스티스모의 머리가 완전히 터졌다.

손에 묻어있는 핏물과, 살점을 바닥에 툭툭 털어내기가 무섭게.

띠링!

[Episode #10-19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승자는 발바라 대륙입니다.]

[모든 시련자는 10,000,000 코인을 획득합니다.]

[공적을 발표합니다.]

[황제 툴칸을 죽인 시련자 : 이도]

[철혈 사자단의 단장 디나스티스모를 죽인 시련자 : 이도]

[압도적인 공적치를 획득한, 시련자 이도는 보상을 고르십시오.]

[1.선택형 신화 아이템]

[2.선택형 유물 아이템]

[3. 100,000,000 코인]

[단 1개만 선택이 가능하며, 대기실에서 수령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간, 14시 23분, 모든 시련자는 10분 뒤 대기실로 일제히 귀환됩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쿤린을 죽였을 때는 아마 5분이었던 것 같은데, 두 번째 침식이라 그런가 시간이 5분 늘어났네.

[시작을 알린 아룡이 당황해합니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폭소를 터트립니다.]

[선普에서 군림하는 자가 조용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이어서.

[발바라 대륙과 릴로드 대륙 간에 이어져있던 침식 게이트가 사라집니다.]

“이... 빌어먹을 개 같은... 하등한 새끼가...”

코앞에서 사라지는 게이트를 허탈하게 바라보던 바하로사가 이내 분노에 잠식된 듯 몸을 떨며, 말을 잇지 못한다.

언젠가 짧게 말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가학기질이 있는 것 같다.

드래곤 놀려먹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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