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사고치지 말랬더니 사고를 당하고 있네.(3) >
별들의 운하에서 생겨난 운송수단은 놀랍게도 자동차였다.
그것도 전생에서 내가 복싱을 배울 때, 형님이 자주 태워주셨던 J사의 f타입 자동차.
내게 맞는 운송 수단이라더니 .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대로 운전석에 타고 문을 닫았다.
시동을 걸 필요도 없이, 내가 타는 즉시 자동차에 시동이 걸렸고 그 상태로 뻗어나간다.
맨몸으로 갔던 것과는 조금 다른 속도였는데.
조금 더 빠르게 가고자 액셀을 밟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팔짱을 꼈다.
오는데 걸린 시간은 분명 내 시계로는 4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실제로 걸린 시간은 3일.
시간 축 자체가 다른 걸까 아니면 세계선 자체가 다른 걸까.
시간은 절대적인 가치가 분명한데 그 가치를 상대적인 걸로 만든 건... 휴우.
이게 시스템의 힘인가 아니면 신들의 힘인가.
답답하다.
팔짱을 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바하무트의 대가리를 으깨버리려면 최소 6성내지, 7성의 신격을 갖춰야하는데... 앞으로 내가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유토피아 군주의 성장.
둘째. 스스로 신화를 쌓아가는 자에 추가된 아수라라는 스킬.
솔직히 이건 감도 잡히지 않는다.
대기실에서 시간 여유가 될 때 시험해보려고 일단 킵 해둔 상황이다.
셋째는. 신화 아이템을 수집하고, 그 아이템의 자격을 검증받는 것이다.
이게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었는데.
방식은 간단하다.
나는 과거 역사의 한복판에 들어가 그곳에서 원래의 주인이 쌓았던 신화를 이룩하면 된다.
레이놀즈가 몇 성의 초월자인지는 모르겠으나. 1성과 2성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나며, 성급이 올라갈수록 그 격차는 급격하게 벌어진다.
아마 내가 7성 이상의 격을 갖추는데 가장 빠른 길은 신화 아이템의 수집일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떠올랐다.
‘고룡 프리드리히의 심장.’
격을 갖춘 순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게, 온갖 잡다한 일이 벌어지다보니 나조차도 깜빡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이 먹을 타이밍이 아닐까.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동차 내부, 고급진 인테리어가 퍽이나 마음에 든다.
으음... 내단을 섭취할 때 가장 중요한건 외부와의 단절 유무인데.
조용히 창문을 내려 밖으로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보았다.
순간 스파크가 튀며 손가락 쪽의 갑주가 으스러지기 시작하자 황급히 손을 빼냈다.
손가락을 주물럭거리며 생각했다.
창문까지 운송 수단으로 판정이 되고, 이 안은 밖과 단절되어있다는 건데...
생각해보면 이거, 일종의 기연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빠르게 창문을 닫고 기운을 퍼트렸다.
내 몸에서 피어난 기가 자동차 안을 완전히 지배한다.
그 흐름을 조용히 느꼈다.
차 안을 가득 채운 내 기운은, 차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정이, 맞았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인벤토리에서 드래곤 하트를 꺼내들었고 입으로 씹었다.
자근자근, 광대가 으스러지도록 꼭꼭.
먹자마자 뜨끈한 피와, 그 안에 담긴 용의 기운이 내 몸속으로 파고든다.
한번 씹었을 때는 근육이 꿈틀거리고 두 번 씹었을 때는 심장이 뛰었으며, 세 번 씹었을 때는 내 몸의 뼈와 몸, 그리고 장기가 한번에 뒤틀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씹었다.
그리고 그 기운을 흡수하도록 노력했다.
일단 몸 안으로 파고드는 용의 기운을 몸 안에 순환시켰다.
내 몸속에 있는 수도 없이 많은 혈맥, 그중에서 잠재력을 관장하는 혈맥은 총 24개다.
광전사의 갑주는 그 24개의 혈맥을 강제로 증폭시켜주는데, 그 부작용은 신체의 파괴와 급격한 노하, 그리고 이지의 상실이다.
형님은 그 부작용을 줄이고자 노력했고, 결국 한 가지 심법을 창안했다.
그게 혈천 심법이다.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24개의 혈맥에 내장되어있는 나라는 인간 본연의 잠재력과 그 안에 담긴 선천지기를 현재의 내 신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까지만 조절해서 뿜어낼 수 있게 해주는 심법.
내가 여태껏 혈기를 자극하면서 이지를 잃지 않았던 이유는 끊임없이 혈천 심법을 운용했기 때문이었으며 란지에는 약간의 도움을 준 것에 불과했다.
솔직히 혈천 심법이 아니었더라면 혈기를 자극한 순간 나는 완전히 미쳐버렸을것이다.
그 정도 힘에 그 정도 리바운드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눈을 감고 기운을 순환시켰다.
용속 24개의 혈맥으로 고통의 기운을 몰아넣었다.
온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해진다.
마치 우주에 와있는 듯 한 기분이... 아 실제로 우주에 와있구나.
그렇게, 뒤틀리던 내 신체가, 점점 원형을 갖추고 새롭게 골격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환골탈태.
동시에 혈맥을 찌른 갑주의 가시가 얇아지고, 조금씩 밀려난다.
마치, 내 몸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나는 그 의지를 읽었다.
그런데, 누구 맘대로 도망 치냐.
기운을 끌어올려 갑주의 이탈을 강제로 막았다.
혈맥을 찌른 가시가 몸을 벗어나려하는 것을 막았고 강제로 내 혈맥에 박았다.
혈신 상태의 본질은 아이템의 효과다.
그리고 지금, 주객이 전도되었다.
여태껏 완벽하게 혈기를 컨트롤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고작해야 유물 등급의 갑주는 이미 존재 자체가 신화인 나를 지배할 수 없다.
즉, 나는 이제 혈기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유물급 아이템이 신화 그 자체인 나를 지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이내 내 몸에서 생겨난 각질들을 갑주가 밖으로 뱉어내기 시작했고 조수석과 운전석에 허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내,
띠링!
[업적! 「신격을 초월한 시련자」를 달성하셨습니다.]
[200,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의 격이 대폭 상승합니다.]
[당신은 언제든지 신들의 도시, 아스가르드에 입장 하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1성의 신격을 획득하셨습니다.]
조용히 눈을 떴다.
온몸에서 용솟음치는 힘들. 아무래도 이거 조절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듯하다.
그때 눈앞에 보인다.
거대한 행성.
이름은 모르겠지만 발바라 대륙이 있는 그 행성이 확실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보니까 그 크기가... 확실히 지구보다는 크다. 슈퍼 지구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빠른 속도로 대기권에 진입하고 눈을 깜빡인 순간, 나는 어느 산속에 도착해있었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프스슥하는 소리와 함께 f타입 자동차가 사라진다.
조용히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시간은 아스가르드에서 출발했을 때와는 다르게 고작해야 1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
“...폐하?”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빛 피부의 고블린.
네스레자였다.
어쩐지, 뭔가 익숙한 산맥이다 싶었는데 카툰 산맥이었나 보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네스레자는 모른다.
현재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그렇게 정보를 통제했고 당분간 산맥 안에서만 지내라고 명령을 해둔 상태였으니까.
네스레자는 그저 머지않아 또 다른 침식이 시작 될 거라고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 말 않자, 그가 말을 잇는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언젠가 시작될 두 번째 침식에서 고블린들은 빠지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순간이동 반지를 작동시키려다 멈칫했다.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이곳으로 온 고블린들은 대부분이 투사출신입니다. 폐하. 감히 간청 드립니다. 다음에는 저희에게 싸울 기회를 주십시오.”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인간들은 싸우기 싫어서 도망친 이들이 수두룩한데, 오히려 고블린들이 싸우고자 열의를 다하는 상황이라니.
손을 들어 네스레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래, 다음 침식에는 너희 고블린들도 참가해라. 됐냐?”
네스레자가 고개를 깊이 숙인다.
잠깐 그를 바라보다 반지를 작동시켰다.
내 몸이 빛에 휩싸이고, 나는 황궁에 와있었다.
순식간에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침식이 시작 된지는 고작해야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주변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사방에 흩날리는 영체의 파편.
아마 정령일 확률이 높다.
나성진과 성미령은 거의 죽기직전의 상태였으며, 그 뒤쪽에서 뭘 할지 망설이고 있는 세 명의 권능자.
전생에서 격을 갖췄던 존재인 철강왕 랜버튼과 뇌신 주청윤, 그리고 풍신 박유정.
저들이 여기에 왜 있는지는 모르겠다.
코인 벌려고 왔나?
그리고 팔 한 짝이 잘린 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오크에게 멱살이 잡혀있는 한수아.
찰나의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한 내 소감은,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상하게, 그냥... 기분이 더럽다.
“잘 가거라 치졸한 황제여.”
그 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나는 움직였다.
땅이 접히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는 오크의 팔을 강제로 붙잡고 있었다.
“내가, 치졸하다고?”
놈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대는, 누구지?”
그 시선과 놈의 몸 안에 내재되어있는 힘으로 직감했다.
이 새끼가, 툴칸이라고.
툴칸이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손바닥을 피고는 놈의 명치를 향해 천천히 내밀었다.
신화 스킬 격골장擊骨掌.
장법으로 상대 몸 내부를 완전히 짓뭉개고 터트려버리는 기술.
그 안에 나는 1성의 격을 담았다.
뒤늦게 툴칸이 반응하려던 그때,
파아아아아앙-!!!
툴칸이 그대로 날아갔다.
사방에 피를 흩뿌리면서.
나는 손을 뻗어 한수아가 털퍼덕 주저앉으려는 걸, 한손으로 받아주었다.
마치 참았던 것처럼, 붉어진 그녀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게, 조금 신기할 정도다.
혹시 이거 내숭인가.
“...사고치지 말랬더니 사고를 당하고 있네.”
그녀가, 그 와중에도 어색하게 웃는다.
나는 품에서 엘릭서를 꺼내들었고, 한수아한테 강제로 먹인 뒤, 당장이라도 숨 넘어갈 것 같은 성미령과 나성진 한테도 먹여주었다.
그들의 상처가 재생되는걸 잠깐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유정과, 랜버튼, 그리고 주청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양규.
구세주를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의 양규가 내 시선과 마주치더니 미친 듯이 달려와 내 앞에 부복했다.
“폐..!!"
“아직 안 터트렸네?”
“아... 그게.. 터트리려고 했는데, 그때 막 오신... 겁니다.”
그가 품에서 작은 두루마리로 되어있는 양피지를 꺼내들고는 내게 건넸다.
이건 일종의 마법 스크롤인데, 딱히 이름은 정해져있지않다.
그저, 도시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폭발 마법진들을 일시에 발동시켜버리는 일종의 방아쇠라고 해야 할까.
이름은 그냥, ‘수도 터트리기’ 라고 하자.
여하튼.
“전부 황성으로 피해있거나, 한곳에 몰려있어. 보니까 병사들 몇몇은 딴 데로 워프 시킨 거 같은데, 불꽃놀이 보고 싶으면 신호 맞춰서 니들 주변으로 새로운 결계를 치던지.”
양규가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내 감각이 다른 방향에서의 ‘공격’을 감지했다.
허리춤에서 군자검을 꺼내들고는 휘두르자.
콰아아앙-!!
날아오던 툴칸의 도끼가 그대로 튕겨져 나가고 사방으로 충격파가 터져나간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저앉는다.
그들이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속도였으니까.
무시하고는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내 툴칸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온다.
온몸이 붉은 빛으로 물든 툴칸, 위협적이다.
언젠가 보았던 악마 군주중 하나가 딱 저런 모습이었는데.
툴칸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대로 군자검을 휘두르자 툴칸이 그 속도 그대로 고개를 숙인다.
스아악-!
그의 머리를 스치고, 이내,
퍼어억-!
내 옆구리에, 그의 주먹이 꽃혀들었다.
전신이 움찔 떨려오고, 이어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날아갔다.
콰과광하며 건물 파편들과 먼지가 내 입속으로 들어온다.
건물 몇채를 부순 걸까.
서너 채일까. 아니 서너 채가 맞나.
실없는 생각은 집어 치우고, 날아가던 상태 그대로 군자검을 바닥에 꽃아 중심을 잡았다.
고개를 들자 한껏 근육을 뽐내며 달려오고 있는 툴칸이 보인다.
멧돼지같이 달려오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저놈 웃고 있다.
만족스럽다는 건가.
거리는 약 10m.
다시 한 번 툴칸의 주먹이 나를 향해 꽃혀든다.
그 주변에 찢어지는 공기의 파동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
나는 팔목을 들어올렸다.
그의 주먹과 내 팔목이 맞닿는 그 순간, 타이밍에 맞춰 팔목을 옆으로 틀었다.
콰아앙-!
한번 흘렸고.
쌔애액-!
이어지는 놈의 공격 .
이번에도 팔목을 들어 흘렸다.
콰아아앙-!!
애꿎은 땅만 터져나갈 때 내 눈에 보였다.
놈의 어깨가 꿈틀거리는 것이.
이어서 고개를 숙이자 툴칸의 주먹이 내 머리를 스친다.
이후 내게 보이는 것은 무수한 빈틈.
군자검에 기운을 몰아넣고 그대로 내질렀다.
목표는 툴칸의 심장.
쌔애애액-!!
끝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군자검의 칼날이, 툴칸의 심장을 찌르기 전까지.
파아아앙-!!!
나와 툴칸 사이로, 기파가 터져나가며 지형이 완전히 변형된다.
그리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툴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분명 회심의 일격이었고, 짧은 탐색전 속에서 찾아낸 완벽한 빈틈이었다.
결과만 보자면 나는 군자검으로 툴칸의 심장을 뚫지 못했다.
군자검의 칼날과 칼끝이 완전히 뭉툭해져있었으며 심지어 군자검에 둘러치고 있던 혈강기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이러니 심장은커녕 툴칸의 갑옷조차 뚫지 못했지.
이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레이놀즈 이 새끼가 진짜..’
와.. 어이가 없네.
설마 이런 식으로 훼방을 놓을 줄이야.
그대로 검을 거두고 몸을 회전시켰다.
당황한 것은 툴칸도 마찬가지 .
그래서 놈은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혈강기를 담은 내 발이, 그의 옆머리를 그대로 후려치는 것을.
콰아아앙-!!
툴칸을 날려버린 나는, 군자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치솟아 오르는 짜증을 숨길수가 없다.
인벤토리를 열어 그 안에 군자검을 집어던졌다.
레이놀즈, 너는 좀 이따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