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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67화 (66/131)

67화.  < 사고치지 말랬더니 사고를 당하고 있네.(2) >

주청윤의 말은 너무 작았기에 그 옆에 있던 박유정만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러다 그 남자한테 죽어요.”

"..."

박유정의 진심어린 충고에 주청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리고, 주청윤은 그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은게 아니라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눈앞에서 믿지 못할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저 사람 대체 뭐야?”

랜버튼의 대상없는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할 수가 없었다.

수만이었던 정령들은 수십만으로 늘어났으며 하나둘씩 오크들에게 붙었다.

그게 안 되면 네 명 이상씩 붙어서라도 오크의 숨통을 끊어놨는데, 속성 공격이라고 하던가.

빛의 정령이 오크의 몸에 붙으면 그 붙은 부위가 빛났다.

이후 이어지는 절차는 마치 부식되듯 산화되는 과정이었고, 어둠의 정령이 오크의 몸에 붙으면 그 부분은 썩어 들어갔다.

오크들이 하나둘씩 정리되고, 이어서 공격을 했던 정령들도 소멸했다.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가 떠오를 정도였지만 눈앞에 보이는 정령들의 모습은, 가미카제 그 이상이었다.

“...저래서 단장이구나... 괴물이잖아.”

전장의 분위기가, 단 한사람의 존재만으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양규의 명령을 받아 황성으로 대피하던 병사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한수아의 힘을 경배했고 그 위력에 전율했다.

직접 당하고 있는 오크들은 죽을 맛이었지만 말이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양규는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상급 정령, 몸 안에 내재된 기운은 어림잡아 검주나 창주와 동급. 그런 존재 무려 수십 개체다.

그 수십 개체가 오크들을 씹고 찢어발기는 그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코앞에서, 자신은 물론 권능자들을 가지고 놀았던 디나스티스모는 열 마리의 상급 정령과 겨루고 있었으며, 이미 팔 하나를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사자 문양을 하고 있던 10마리의 오크는 모조리 죽은 상태였다.

뒤이어 사자 문양을 한 십 수 명의 오크가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자마자 정령들과 싸웠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양규는 이 순간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거, 이도가 없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굳이 수도를 폭발시키지 않아도 전부 해결 되지 않을까.

이 고민을 한 게 딱 10초였고, 이후에 그 고민을 완전히 접어두었다.

옥상으로 시선을 옮긴 양규는 보게 되었다.

양쪽 무릎을 꿇은 채로 헐떡이고 있는 한수아의 모습을.

지치다 못해 거의 숨넘어가기 직전인 상태였고, 그 옆에서 수십 명의 추기경이 신성력으로 그녀를 끊임없이 치료하고 있었다. 순간,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한수아의 오른손의 검지가 그대로 터져나간다.

비명한번 내지르지 않고 이를 악무는 그녀의 모습에서 양규는 한 가지를 읽었다.

한수아는 지금, 시간을 최대한 끌고 있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던 양규는 곁에 있던 네 명의 권능자들과 성미령에게 말했다.

빨리, 황성으로 이동하라고.

그제야 다섯의 시련자들은 상황을 살필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 병사들이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이 황성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박유정이 희미하게 웃었다.

무언가, 대비해둔 게 있는 게 확실하다.

하긴, 그때의 그 남자가 맥없이 당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

그때, 앞서 나가려던 양규가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양규뿐만이 아니었다.

성미령과 네 명의 권능자도 마찬가지.

거대한 존재감이 주변을 짓누른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등급을 불문하고 모든 정령들도 그 자리에서 멈췄으며, 오크들도 멈췄고, 황성으로 바쁘게 이동하던 병사들마저, 그 모두가 멈췄다. 그리고 침식 게이트가 펼쳐진 곳을 향해 일제히 시선을 옮긴다.

“...개판이군.”

붉은 피부의 오크.

그가 나지막한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폐하를 뵙습니다!!!!”

오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오크 황제 툴칸, 종의 한계를 넘은 괴물이 어깨에 도끼를 걸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인간족의 황제가, 누구인가.”

오크 황제, 툴칸이 모습을 드러낸 것.

**

침식 게이트를 타고 발바라 대륙으로 넘어온 툴칸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엉망이 된 듯 무너져있는 도시의 모습과 그 아래 깔려 죽어있는 오크들을 비롯해 찢겨진 채 죽어있는 인간들까지.

그리고 온몸이 부식된 시체들도 존재했다.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건 시체의 수는 최소 50만 이상이라는 거.

게이트로 보낸 처음 병력은 20만. 그중 몇 명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파하기가 무섭게 수도에 대기 중이던 모든 오크들에게 게이트로 진입하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오크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지금, 이곳 인간들의 도시는 거의 오크들의 도시나 다름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밀리는 지금의 모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보다 인간들의 저력이 뛰어난 것일까.

그때, 잠깐 행동을 멈추고 있던 정령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한수아와 툴칸을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던 한수아가, 입을 열었다.

“…저 오크를 죽이는 정령이랑 계약할게요.”

그 말은 의념이 되어 정령들에게 전해졌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정령의 기운에 힘입어 전장의 모든 이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 즉시, 계속해서 소환되던 수만 마리의 정령들과 24마리의 상급 정령들이 일제히 툴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수아와 추기경들은 그 틈에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착오가 하나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툴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툴칸은 말없이 한걸음 내딛는다.

그의 몸 안에 내재되어있던 기운이 조용히 퍼져나가고 달려오던 하급 정령들을 일시에 터트렸다.

사방에 빛과 어둠이 폭죽 터지듯 터져나가고, 그 사이에서 툴칸은 한걸음 더 내딛었다.

콰아아앙-!!

이어서 중급 정령들이 터져나갔고, 한걸음 더 내딛자. 달려오던 상급 정령들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툴칸이 옥상 위의 한수아를 바라본다.

툴칸의 기세에 힘입어 다시 무기를 들려던 오크들을 거의 빈사 직전인 디나스티스모가 막았다. 지금 이 순간, 전장에는 툴칸과 한수아, 그 둘만이 존재하는듯했다.

툴칸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빛의 상급 정령 위스프가 이를 악물고는 본체의 힘을 끌어올렸고,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소멸을 각오한 힘.

위스프가 툴칸을 향해 달려들었고, 툴칸은 여유롭게 도끼를 한번 휘둘렀다.

서걱-!

달려 나가던 위스프가 그대로 소멸된다.

이어서 소환되었던 상급 정령들 모두가 본체의 힘을 끌어올리고 일시에 달려들었다.

땅이 떨려오고, 수만 마리의 오크들의 다리가 살짝 후들거리던 그때.

툴칸의 도끼에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붉은 귀기가 돋보이는 광포한 기운.

도끼 주변으로 마나들이 일제히 요동친다.

그 도끼를 그대로 휘두르자.

콰아아아아아아앙-!!!

도끼의 궤적을 따라 건물 수십 체가 쩍하고 갈려나가고, 달려오던 정령들 전부가, 그대로 소멸했다.

압도적인 힘.

한수아의 주변에 있던 추기경들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바지 가운데 부분이 축축해진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로워 보일정도.

툴칸은 그렇게 아무런 장애물 없이 걸었고, 가볍게 자리를 박찬 뒤 한수아가 있는 옥상에 착지했다.

옥상에 착지한 툴칸이 허공에 떠있는 정령계로 통하는 마법진을 잠시간 바라보았다.

이내, 그 마법진을 향해 도끼를 한번 휘두르자.

파사삭하며 마법진이 소멸되었다.

3미터에 달하는 신체의 툴칸이, 이번에는 한수아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인간족의 황제여. 방금 그게 끝인 것이냐.”

한수아는 말없이 손을 뻗었다.

그때’

서걱-!

“아...."

한수아의 팔이 잘려나가고 그녀가 주저앉는 그때.

턱-!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변형되며 툴칸을 향해 일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콰앙-!

툴칸은 발로 바닥을 내려찍는 그 단순한 동작으로 나성진의 공격을 무력화시켰고 말없이 튀어 오른 돌무더기를 한 번 더 발로 후려쳤다.

꽤나 먼 거리에 있던 나성진이 눈을 크게 뜬 그 순간.

퍼버버벅-!

돌 파편들이 나성진의 몸에 그대로 꽃혀들었고 그가 그 자리에서 맥없이 허물어졌다.

그 옆에 있던 성미령이, 이를 악물고는 달려들었다.

한수아의 성격이 좋건 나쁘건 간에, 성미령은 그런 그녀라도 살리고 싶었다.

성미령은, 그런 여자였으니까.

툴칸은 달려오는 성미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성미령은 두려움을 직시하며 검기를 두른 검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툴칸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미령의 검을 향해 머리를 들이댔다.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성미령의 검이 그대로 터지고 그 검 파편들이 성미령의 몸에 꽃혀든다.

그녀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몸을 꿈틀꿈틀 떨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강함.

모두가 입을 벌리던 그때, 상황을 패닉으로 몰고 간 당사자인 오크 황제 툴칸은, 한수아를 내려다보며 안타깝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인간족의 황제 이도여, 이것이 종의 멸망에 대처하는 너의 방식인 것이냐.”

한수아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눈앞의 오크가 자기를 이도라고 부르고 있음에도 그저, 툴칸을 노려볼 뿐.

“그대에게 제의 할 것이 있다.”

제의...요?”

“인간족들을, 우리세상으로 이주시키거라.”

"..."

근처에 있던 이들이 당황했다.

심지어 바닥에서 몸을 떨고 있는 성미령조차도.

어디선가 들어 본적 있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툴칸은 이도와 달랐다.

“동등한 대우를 해줄 생각은 없다. 너희들은 노예, 가축으로 대할 것이며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라도 종족의 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지. 하지만 거부한다면 너희는 모조리 죽을 것이다.”

툴칸이 조용히 손을 뻗자 쓰러져있던 한수아의 몸이 떠오르더니 그의 손으로 이동되었다.

허공섭물.

툴칸이 한수아의 목을 움켜쥔 그때, 한수아의 눈동자가, 번득였다.

비장의 한수.

매혹.

그 순간.

파아아앙-!!

툴칸와 한수아 사이에서 거대한 기파가 몰아쳤다.

건물 옥상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어마어마한 기의 충돌.

동시에 한수아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몸이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영혼의 충격으로 인한 리바운드. 그에 반해 툴칸은 너무나도 멀쩡했으며. 그의 미간은 처참하게 구겨져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것이냐. 이... 황제라는 자가 생각보다 치졸한 짓만 골라서하는구나.”

“...왜 이게.. 안 걸리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툴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대의 힘과 그대의 격이 나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힘의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한 이가 황제라니.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

“기회는 그대가 져버렸다. 그러니, 오늘 그대의 죽음을 시작으로 너희 종은 멸망한다.”

툴칸이 천천히 도끼를 들어올렸다.

“잘 가거라. 인간족의 치졸한 황제여.”

툴칸의 도끼가, 휘둘러진다.

목표는 한수아의 목.

하지만.

터억-

툴칸의 팔이, 허공에서 정지한다.

툴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고, 그는 보게 되었다.

누군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그 손을 타고 시선을 옮겼다.

입고 있는 검붉은 색의 갑주와, 양 팔에 채워져 있는 건틀렛.

그리고 안광인지 자연스럽게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그의 눈동자.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그가, 말했다.

“내가 치졸하다고?”

툴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대는 누구지?”

남자는 웃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툴칸의 명치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너무나도 느릿해보였지만 툴칸은 반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툴칸이 피를 흩뿌리며 날아간다.

< 사고치지 말랬더니 사고를 당하고 있네.(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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