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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65화 (64/131)

65화.  < 아직도, 혼자로 보이세요?(2) >

그 단순한 말에 성미령은 겨울왕국에 있는 것처럼 팔에 닭살이 돋아났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제가요.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한분씩 면담을 해봤거든요.”

“그런데, 이 분들 되게 나쁘신 분들이더라고요. 싸움이 벌어졌으면 도망치려고 하셨던 분이 정확히 287명이고, 이도님의 옆에서 힘을 키우다가 뒤통수를 치겠다고 생각한 분들이 144명에... 되게 극소수만 이도님의 곁에서 싸우고 싶었다고 말씀을 하시던데요?”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오직, 한수아만 알고 있을 뿐.

“우리 시련자들은 대륙의 주민들이랑은 조금 다르잖아요.”

“달라?”

“네. 파티 퀘스트로 보상을 얻잖아요. 그걸로 스킬을 사거나 능력치를 올리면서 강해지는데, 그 퀘스트를 해결 할 수 있는 건 이도님 뿐이잖아요? 제가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약한’ 시련자들의 존재는 언제가 되었건 간에 결국 이도님의 발목을 잡게 될 것 같더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도의 역할은 간단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즉 종결자의 역할이다.

그 밑에 있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이도에게 접근하려는 잡몹들을 처리하거나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전부다.

그런데 수많은 시련자들은 결국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가지고 있는 생각도 다르다.

욕심의 크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미 이도는 지시했다.

한수아의 능력을 공개하는 쪽으로.

그 능력으로 시련자들을 한 번에 휘어잡기는 했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은 반감으로 다가올 테고, 언제가 되었건 폭발하게 될 것이다.

그건 결국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도가 침식을 끝낼 때마다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련자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대기실에 가서 자기가 매혹에 걸린 사실을 알아챈 시련자들이 투명화 마법이나 도망칠 수 있는 스킬을 덕지덕지 배워서 시련에 임할 때마다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면?

어쩌면 그건 잠재적인 적을 키우는 일로 비춰 보일 수가 있었다.

한수아의 말을 조용히 곱씹던 성미령은 뇌리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통찰력 스킬 때문인지, 상승된 지능덕분인지는 몰라도 확실하다.

한수아의 말뜻에 담긴 진짜 의미.

한수아는 지금 다른 시련자들과 자기 자신을 저울추에 새웠다.

즉, 한수아는 자기 자신이 다른 시련자들보다 더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

성미령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건데?”

한수아가 해맑게 웃는다.

동시에 그녀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란지에’가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한번 시험 해보려고요.”

“...시험?”

“네 시험. 저들 중에 누가 강한 시련자인지, 그리고 얼마나 살아남는지. 그런 거요. 물론 많이 살아남지는 못하겠지만.”

그 말로 성미령은 확신했다.

한수아.

애는, 미쳤다.

말은 누가 살아남는지 지켜보겠다고는 했지만 분명, 저 말은 모든 시련자들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랑 다를 바가 없었다.

“...이도님한테 말씀하고 그렇게 진행하는 거니..?”

“아니요. 이도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뭐를?”

한수아가, 고개를 돌려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라고. 저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 거예요. 제가 뭘 해야 할지를.”

“그러니까 언니랑 성진 오빠도 생각 하셔야 해요.”

띠링!

[Episode #10~#19]

[닐로드 대륙과 발바라 대륙 간에 침식이 활성화됩니다.]

[게이트가 활성화 되는 장소는 유토피아 제국의 수도 광장입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안내창은 전쟁의 시작을 알렸고, 한수아는 웃는 얼굴 그대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이도님에게 도움이 될 지를요.”

눈앞에서 게이트가 생겨나고 병사들과 모든 이들이 긴장의 끈을 끌어올렸다.

오직 한수아만이 긴장하지 않는 듯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성진은 눈을 껌뻑이고 있었고, 성미령은 조용히 한수아를 응시했다.

저 행동들은 이도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바탕이 된 게 아니다.

아니, 아예 그런 범주가 아니다.

저건 분명 ‘집착’이다.

그것도 소유욕을 기반으로 한 집착.

성미령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는 왜 그렇게 이도님한테 집착하는 건데?”

조금 어려운 질문이었던 걸까.

한수아가 무언가를 생각하는듯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미령과 눈을 맞췄다.

"저를 구해주셨으니까요. 20년이 넘도록 그 누구도 제 편이 되어 준적이 없었어요. 저를 구해주기는커녕 저를 노리는 사람만 많았죠.”

새삼스럽지만 한수아의 외모는 독보적이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으며, 그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눈코입이 다 들어있는 모습은 인세의 것이 아니라는 평가가 적절할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처음이었거든요. 제 얼굴, 몸,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은 채로 저를 구해준 사람, 그러면서도 제가 매혹을 걸었음에도 저를 살려준 사람. 저는 그분이 하는 일이 잘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그분 앞길의 걸림돌을 가능하면 제가 치워 드리려고요. 그리고... 그 누구한테도 이도님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

성미령이 입을 꾹 다문 그때, 침식 게이트에서 온몸에 판금 갑옷을 걸친 괴물이 걸어 나온다.

키는 무려 3미터가 넘어가는 그 괴물이, 얼굴에 쓰고 있던 투구를 슬며시 벗는다.

검은색 피부의 오크,

뭉툭한 코에 아랫입에서 돌출된 두 개의 송곳니가 인상적인 그 오크가 정면에서 대기하는 기사들을 조용히 훑었다.

마치, 상품을 품평하듯.

“...엉망이군.”

그게 첫마디였다.

불만족스러운 품평을 내린 오크가 무언가 더 말하려던 그때. 한수아의 명령을 받은 레종이 더 빠르게 행동했다.

“멸망을 건 싸움이라기에 기대... 흡!"

오크가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그의 머리에 레종의 검이 스쳐지나간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방에서 수백 명의 시련자들이 그 오크를 향해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얼음 화살이 생겨났으며, 불화살도 생겨났고 마나로 이루어진 온갖 마법들과 기로 이루어진 스킬들이 뻗어나간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굉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이내, 모든 공격이 일시에 멈췄다.

모두가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을 바라보던 그때.

파아앙-!

기파가 뻗어나가며 먼지가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그곳에서, 온몸에서 자잘한 생채기를 비롯해 피투성이가 된 그 오크가, 기쁘다는 듯 씩 웃는다.

“그렇군. 미약한 미물일지라도 투지는 있다 이건가?”

생각보다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다.

동시에 그의 뒤에 펼쳐져있던 게이트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이어 수많은 오크들이 점점 물밀 듯이 나타난다.

피투성이의 오크가, 외쳤다.

"전군!! 이 지역을 점령하라!"

전쟁이, 시작되었다.

게이트에서 물밀 듯 오크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어서 인간 쪽의 성기사들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피가 터져나가고 시체가 쌓여간다.

시련자들은 필사적이었다.

온갖 스킬들이 몰아치며 오크들이 죽어나가고, 오크들은 도끼, 대검, 둔기, 각종 무기를 가지고 인간들을 도륙했다.

그것도 웃으면서.

광기.

호전적인 종족답게 오크들은 저돌적이었다.

그렇게, 수도 전체가 순식간에 광기에 휩싸인다.

침식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크들의 숫자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확실한건, 아직까지 물량으로는 인간 쪽이 더 압도한다.

한수아가 옆에 있던 추기경에게 눈짓하자, 그를 비롯한 다른 성기사들이 일제히 합장을 하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여신님을 위해.”

그 말을 시작으로, 뒤에 배치되어있던 수많은 신관들이 기도를 하며 신성력을 펼친다.

새하얀 기운이 전장에 내려앉고,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오크들을 급습하던 인간쪽 병사들이나, 드넓은 광장에서 싸우는 인간들, 그들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고, 상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이고, 광기에 휩싸인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광경.

그렇게 오크들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

승기가 기울어 가는가 싶었던 그때, 게이트가 더 넓어지고, 또 다시 오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끝이 없었다.

그들 중 압도적인 무력을 뽐내고 있는 오크.

가슴에 사자 문양이 그려져 있는 전신 갑주를 걸치고 있는 10여명의 오크들은 특히나 돋보였다.

양규가 곁에 있던 장군급 기사들에게 눈짓하고, 아퀴나스를 비롯한 마법사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시련자들의 스킬보다, 더욱 더 농도 짙은 스킬.

5서클의 마법인 익스플로전과, 4서클의 아이스 에이지까지.

전장 곳곳에서 폭발하고,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다.

100미터 쯤 되는 건물 옥상에 서있는 인물은 이제, 한수아와 나성진, 그리고 성미령, 그리고 수십여 명의 성기사들이 전부였다.

성미령이 이를 악물고는 전장으로 달려 나가려던 그때, 나성진이 그녀의 어깨를 틀어쥐었다.

“왜요?"

“여기 계세요.”

“…네?”

“제가 스킬을 사용할건데, 옆에서 저 좀 보호해주세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은 성미령이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나성진이 옥상 전경이 훤히 보이는 쪽으로 이동하더니 그 자리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런 나성진을 성미령과 한수아가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때,

나성진이 앉은 채로 발바닥을 마주쳤다.

붉어진 그의 얼굴은 여담이었고.

그렇게,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쿠구구구궁-!!

정면에 있던 다섯 채의 건물이, 뒤틀리기 시작했으며 그대로 주변에 있던 수백 마리의 오크들을 한 번에 휩쓸었다.

사방에 피륙이 터져나가고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완전히 압사된다.

"...뭐...뭐에요 이게?”

나성진은 그 상태 그대로 계속해서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는 그 옆에 있던 건물이 무너지고, 또 다시 수십 여 마리의 오크들이 압사된다.

성미령은 직감했다.

이게, 그의 고유 권능 [변형]이라는 것을.

눈을 뜬 채로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지속형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들 같았는데, 그 자리에서 꼼짝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제야 성미령은 이해했다.

그를, 옆에서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허리춤에 있던 유니크급 롱소드를 꺼내들고, 인벤토리에서 유니크급 카이트 실드를 꺼내든 성미령이 조용히 나성진의 뒤쪽에 섰다.

쿠구구궁-!!

계속해서 주변 지형이 바뀌며 오크들이 죽어나간다.

문제는, 죽어나가는 오크들보다 새로 진입하는 오크들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 건물들이 갑자기 무너지고 그 무너지는 파편들이 칼날 형태나 암기 형태로 변하는 것을 보고 그 원흉을 찾으려는 오크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나성진을 발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십 여 마리의 오크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일제히 나성진을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고, 성미령은 방패와 검으로 그 모든 것들을 막아냈다.

성미령의 모든 스텟은 현재 55레벨, 일반 오크들의 공격쯤은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철혈 사자단 단원의 공격은 힘들었다.

쌔애애애액-!!

거대한 파공음과, 공기 찢어지는 소리에 성미령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변하고, 이어서 본능적으로 기운을 끌어올렸으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콰아아아앙-!!

카이트 실드, 이도가 준 유니크 등급의 방패가 조각나며 성미령의 몸이 뒤쪽 건물에 날아가 그대로 쳐 박힌다.

방금 전 자신의 애검을 던져 성미령을 멀리 날려버린 오크, 펠렌타라는 오만한 표정으로 나성진을 응시했다.

마치, 다음은 너라는 것처럼.

그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위압감을 과시한다.

나성진의 선택은 깔끔했다.

그대로, 그놈의 주변으로 의념을 보낸 것.

이내, 그의 밑에 있던 건물 파편들이 밑에서 꿈틀하며 움직이더니 뾰족한 송곳 형태로 모습을 바꾸고는 그 오크를 향해 뻗어나간다.

하지만 늦은 걸까.

그 오크가 자리를 박찼고 나성진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나성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지켜만 보던 한수아가 정령 소환술을 쓰려던 그때.

짜악-!

경쾌한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후우우우우웅-!!!

거대한 돌풍이 날아오던 오크를 그대로 반대편으로 날려버렸다.

허공에서, 한 여자가 천천히 부유하며 한수아 쪽으로 내려온다.

긴 머리가 찰랑이는 동양인. 그녀가 한수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쪽이 에덴의 단장인 한수아, 이쪽이 참모인 나성진씨 맞나요? 지금 저기 건물에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사람은 성미령씨?”

한수아 곁에 있던 성기사들이 무기를 뽑으려던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 적의가 없다는 듯 양손을 펼쳐들었다.

“저는 도와드리러 온 거에요. 전에 이도 씨한테 은혜를 받은 적이 있거든요... 음.. 그 동화 아시죠? 다리 부러진 제비 치료해준 그 동화요.”

도와주러왔다..?

한수아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서요?”

그때, 작은 태풍에 떠밀려 날아갔던 오크가 재차 자리를 박찬다.

그때, 동양인 여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턱턱-

무언가를 두 번 치는 소리에 이어서, 빛이 번쩍였고, 날아오던 오크가 이번에는 감전되더니 바닥에 쓰러진다.

지켜보던 나성진이 눈을 크게 떴다.

번개.

분명 방금 그건 번개였다.

끝이 아니었다.

저벅-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왼손바닥을 오른손바닥에 포갠 상태로 천천히 걸어오는 그 남자의 주변으로 무기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순식간에 수백 개가 넘어가는 무기들이 떠올랐으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무기들이 일제히 정면을 향해 뻗어나가 오크들을 도륙했다.

동양인 여성. 박유정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혼자로 보이세요?”

그런 박유정을 바라보던 한수아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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