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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64화 (63/131)

64화.  < 아직도, 혼자로 보이세요?(1) >

붉은 피부에 거대한 두 개의 송곳니가 인상적인 오크가 왕좌에 앉아 있었다.

“생각할수록 웃음밖에 안 나오는군, 멸망이라...”

오크로서 격을 갖춘 존재이자 툴칸 제국의 1대 황제, 그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종족의 멸실을 막기 위한 전쟁...”

종의 전쟁이라 이름 붙여도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미, 전쟁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폐하.”

대주술사 바하로사, 릴로드 대륙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신전을 다스리는 오크이자, 황제 툴칸을 옆에서 보좌하는 정신적인 지주.

그가 뭉툭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 빛이 되어 사라지셨던 선왕 가이노스께서 또 다른 메시지를 보내왔나이다.”

“메시지?”

툴칸의 눈가에 거대한 호기심이 맺힌다.

“...미안하다는 메시지였나이다.”

툴칸의 입 꼬리가 꿈틀하고 떨려온다.

미안하다고?

많은 것을 함축하는 그 말에 툴칸은 결국 떨려오던 입 꼬리를 끝까지 말아 올리고 말았다.

“나의 아버지, 가이노스께서는 많은 일을 해오셨지.”

바하로사를 비롯한 과거에 가이노스를 보필하던 사자단의 전신인 ‘철혈 사자단’. 그 단장인 디나스티스모와 30여명의 단원들은 조용히 툴칸의 말을 경청했다.

“수십 개의 부족을 통합했고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지. 대단한 분이야. 하지만.”

“그분께서는 너무나도 큰 실수를 하셨다.”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붉은 안광이 번득이는 툴칸은, 단순히 왕좌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대전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각 부족의 족장들을 살려두다니... 이 얼마나 허술한 마무리란 말인가. 바하로사.”

“예 폐하.”

“그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지?”

바하로사는 잠깐 심호흡을 하고는 빠르게 대답했다.

“모든 오크들을 소속시킨 가이노스 제국은, 5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다섯 족장의 반란으로 무너지고, 그분의 아들이신 툴칸님께서는...”

“그만.”

바하로사가 마치 기계처럼 말을 멈춘다.

“디나스티스모, 마저 말해 보거라.”

온몸에 판금 갑옷을 걸치고,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하고 있던 검은색 피부의 오크가, 고개를 숙인채로 말을 이었다.

“가이노스님의 아들이신 툴칸님께서는, 20세의 나이로 반란의 원흉이었던 다섯 족장 중 두 명의 족장을 죽이시고, 22세가 되기 전 나머지 족장을 모조리 죽이셨으며, 28세가 되어 모든 오크들을 통합해 가이노스라는 이름을 지우고 툴칸 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세우셨습니다.”

디나스티스모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툴칸이 한손으로 턱을 짚은 채 말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48세의 나이로 릴로드 대륙의 모든 오크들을 모조리 휘어잡았지. 바하로사. 디나스티스모”

“예 폐하.”

“릴로드 대륙의 주술사를 비롯한 모든 오크들에게 전쟁을 준비하라는 내 명령은 어떻게 되었지?”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바하로사는 디나스티스모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폐하의 명대로 모든 오크들이 무기를 챙겨서 수도로 집합하고 있습니다. 현재 모인 숫자는 약 5천만, 이후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5천만, 어마어마한 숫자다.

릴로드 대륙에 속한 오크들의 숫자를 추산하자면 약 2억. 그리고 툴칸은 그 2억의 모든 오크들을 수도로 집합시킨 것이다.

턱을 짚고 있던 툴칸의 입가에, 즐거워서 미치겠다는 웃음이 계속해서 피어오른다.

“종족의 명운이 걸린 싸움이라...”

툴칸의 몸이 희열에 가득찬 듯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상대 황제의 이름이 무어라고?”

“사도 이도입니다.”

“이도라...”

디나스티스모가, 한마디 더 보탰다.

“그래봤자 인간입니다. 신 디나스티스모, 폐하께서 나설 일이 없도록 제 선에서 모든 걸 정리하겠습니다.”

디나스티스모의 기특한 말에 툴칸은 폭소를 터트렸다.

“그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야. 이렇게 신이라는 작자들이 무대를 깔아주었으니, 그 상대는 절대로 보통 인물이 아닐 터,”

디나스티스모가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의 자세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신이 실언을 하였나이다!!”

지나친 충성의 표본 같은 디나스티스모의 모습에, 툴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철혈 사자단을 들어라.”

대전 안에 부복하고 있던 이들은 디나스티스모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뒤로. 검붉은 판금 갑옷을 걸친 덩치 3m에 달하는 오크들이 무려 30명이나 존재했고, 그들이 일시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땅에 머리를 박는다.

“게이트가 열리는 즉시 쳐들어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모든 오크들이 수도로 집합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으니, 가볍게 20만 정도의 병력으로 정찰을 해보도록.”

“충!!”

디나스티스모와 철혈 사자단은 툴칸의 명령을 듣자마자 대전을 벗어났다.

그렇게, 대전 안에는 툴칸과 바하로사,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바하로사.”

“예 폐하.”

툴칸이, 웃음을 지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침식... 이게 혹시, 과거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고대의 전쟁, 그것을 말하는 게 맞는가?”

바하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의 전쟁.

가이노스를 비롯해 그를 호위하던 10명의 오크이자, 지금은 철혈 사자단의 전신이었던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오랜 꿈을 꾸었다.’

툴칸의 아버지인 가이노스는 조금 더 자세하게 언급했다.

‘그 꿈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었으며 또 다른 세상을 멸망시켜야하는 악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끝을 보지 못한채 꿈에서 깨었지.’

그 꿈에 대해서 툴칸은 누구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죽이고 죽이는 싸움, 그리고 힘을 얻기 위한 시련.

‘아들아, 언젠가 우리 세상도 그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기에, 나는 오크를 하나로 묶으려한다.'

어렸던 툴칸은 이해하지 못했었다.

‘분산되어있는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종족을 묶어야한다. 그게 꿈에서 깬 나와 사자단원들의 운명.’

툴칸은 한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 이후의 일은 앞선 바하로사와 디나스티스모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가이노스는 제국을 건설한 뒤 그대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어렸던 툴칸은 가이노스 제국의 2대 황제가 되었지만 머지않아 다섯 족장이 반란을 일으켰고 11살에 불과했던 툴칸은 도망을 쳐야했다.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복수심에 불타는 툴칸의 처절한 여정이었고. 그 여정의 끝에 툴칸은 가이노스가 하지 않았던 모든 일을 마무리 했으며 오크들의 황제가 되었다.

문득. 툴칸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이노스가 빛이 되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 모를 고대의 전쟁, 나는 그 일을 막기 위해 새로운 전장으로 가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거라.’

그게 끝이었다.

가이노스는 그렇게 빛이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책임감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책임감이 넘친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어렸던 툴칸은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툴칸에게는 너무나도 머나먼 과거의 기억.

고대의 전쟁이니 침식이니, 툴칸은 당시 아버지의 곁을 지켰던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바하로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종의 멸실을 건 전쟁이 언젠가 벌어진다는 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어 오크들을 패닉에 빠트릴 필요는 없었으며 툴칸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에 관련된 문헌과 역사들을 모조리 지웠다.

추상적인 믿음과 역사를 방패삼는 것보다, 힘으로 오크를 묶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으니까.

그리고 결국 툴칸은 힘으로 모든 오크를 묶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까.

“미안하다니, 결국 아버지는 이번에도 실패하셨다는 건가. 정말이지... 아버지는 항상 내게 이런 짐만을 남기시는구나.”

툴칸의 모습에서는 방금 전까지 보여주었던 위압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괜찮으십니까 폐하.”

“....너에게만 특명을 내리겠다.”

바하로사가 굳은 표정을 짓는다.

"...특명이라 하시면...?”

툴칸은 조용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고 이야기를 듣던 바하로사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피식 웃은 툴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어릴 적부터 내 옆을 지키고, 반란의 원흉을 죽이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게 바로 그대 아닌가. 여러모로 고마웠어.”

바하로사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폐하, 어찌 그리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폐하는 누가 뭐래도 이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십니다. 인간족의 황제가 아무리 강하다한들 폐하를 넘지를 못할 것입니다.”

일이 그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왕좌 옆에 걸쳐져있던 도끼를 집어든 툴칸이 조용히 도끼의 날을 쓰다듬었다.

신체가 3.5m에 달하는 툴칸이지만, 그가 집어든 도끼의 날은 거의 1.5m,

차라리 도끼가 아니라 할버드와 배틀 액스를 혼합시킨 듯한 이 무기는 툴칸의 무기이자, 가이노스의 유산이었다.

본래 이름은 꽤 길긴 했지만 툴칸은 그 이름을 지우고 그냥 이 도끼를 ‘가이노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문득. 툴칸은 한쪽 손으로 심장 어림을 짚었다.

꽤나 빠르게 뛰는 심장의 고동.

기대된다.

앞으로 싸우게 될 인간족의 황제, 고대의 역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침식을 진행하는 시련자, 그는 어떤 인물일까.

겨뤄 보고 싶다.

실제로, 보고 싶다.

한쪽 어깨에 도끼를 걸친 툴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직 자신이 넘지 못한 가이노스가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낼 정도라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오크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미 릴로드 대륙 내에서 툴칸의 적수는 없었다.

고독한 괴물.

조용히 정치나 하며 말년 같은 초년을 보내던 툴칸은, 이 순간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

침식이 시작되기 삼일 전.

이도는 빛무리에 휩싸여 어딘가로 사라졌고 당일 돌아오지 않았지만 유토피아 제국은 그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침식 이틀 전.

수도 내에 거주하던 일반 주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타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3000 제곱키로 미터에 달하는 수도 전체를 전쟁터로 바꾸는 밑 작업이 완료 되었다.

이도의 빈자리가 조금씩 커지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도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아니라. 그 불안감은 이도의 곁에 있던 소수에게만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색만 하지 않는다면 밖으로 퍼져 나갈 일이 없었으니까.

침식 당일 날.

일단 수도 전체를 결계로 감쌌으며. 건물 곳곳에는 함정 마법진이 설치되었고 20만의 성기사들과 병사로 자원한 40만 명의 병사들이 황성과 광장을 둘러싸고, 도시의 건물 곳곳에서 대기했다.

그때까지도 이도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요?”

“그러게요.”

무기를 들고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던 나성진과 성미령은, 약간이지만 불안에 떨고 있었다.

“수아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도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고계시니?”

한수아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늦지 않게는 오실 거예요. 그리고 양규 아저씨.”

“예 성녀님.”

한수아를 대하는 양규의 태도는 매우 공손했다.

마치 이도를 대하는 것처럼.

“이도님이 말씀하셨던 거, ‘그거’ 맞죠?”

이도는 다른 이들도 아닌 오직 양규에게만 계획을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그게 어떤 계획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한명도 없었으니.

“따로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만 잘 하실 거라고 믿어요.”

그게 끝이었다.

한수아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곁에 있던 양규와 소천, 그리고 나성진과 성미령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매혹이라는 사람 자체를 홀리는 그 기이한 권능을 가진 한수아는 매우 수동적인 성격을 가진 여자였다.

하지만 이도가 사라지고 난 뒤, 그녀는 변했다.

그것도 매우 능동적으로.

이도가 마법사들에게 시켰던 일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확인하며. 제대로 처리가 되었는지 끔꼼하게 확인하는 것은 물론,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생기면 눈앞에 보이는 마법사들한테 바로 매혹을 걸고는 더 자세하게 파고들었다.

요 며칠 ,한수아의 행보는 너무나도 파격적이었다.

당연히, 수동적이기만 했던 한수아가 그렇게 바뀌니 자연스럽게 주변 인물들은 그녀를 경계하는 것과 동시에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때, 갈색 머리의 서양인이 한수아에게 다가온다.

“여신님, 저희는 이제 무엇을 할까요?”

에덴에 속한 500여명의 시련자들 중 모든 능력치가 50을 돌파한 꽤나 유망한 시련자인 레종은 몽롱한 눈으로 한수아의 명령을 기다렸다.

“제가 신호 내리면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오크들을 공격하세요. 목숨 아끼지 마시구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레종은 마치 신의 명령을 받든 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모여 있는 시련자들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미령이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수아야. 그 사람들 그러다 다 죽을 수도 있어. 진영을 나눠서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게...”

“언니.”

“..응?"

“제가요.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그 차분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이상하게 분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꼭 다른 시련자들이 필요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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