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60화 (60/131)

61화.  < 그런 거였어?(1) >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자주한다.

나는 연기를 했었더라면 적어도 연기 신인상 정도는 타지 않았을까하는.

신들의 연회장으로 가겠냐는 홀로그램 창의 Y버튼을 터치하자마자 내 몸은 빛에 휩싸였으며 이후의 나는,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나는 빛무리에 휩싸인 채로 공간을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주변에 보이는 것은 까마득한 어둠,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행성.

목성 같기도 하고.. 잠깐 눈을 깜빡인 순간 나는 그 행성을 지나쳤고 코앞에는 또 다른 행성이 보인다.

마치 토성같이 생긴... 뭐야? 이거 진짜 토성이야?

상황 파악이 조금 늦었다.

이 어두운 곳은, 분명 ‘우주’였다.

심지어 나는, 그 우주를 이동하면서도 몸에 한 점의 부담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기이한 현상이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이게 아스가르드로 이동하는 ‘장치’일까?

문득, 지구에 있었을 때 보았던 마블 영화가 떠오를 정도다.

매우 다르긴 하지만 정확한 개념은 모르겠다.

우주에 덩그러니 놓여진 채로 이동하는 기분이라.

두렵다기 보다는 그냥 신기했다.

오랜만에 인벤토리에서 시계를 꺼내들었다.

현재 시간 13시 22분.

도착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속도가 느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대기실로 이동할 때랑은 사뭇 다르니. 조금 복잡하다.

문득, 상태창을 켜봤다.

이름 : 이도

칭호:[이레귤러(?)], [유물 사냥꾼(전설傳說)], [게으른 왕(유니크)], [피로 물든 왕좌의 주인(준신화準神話], [유토피아의 군주(신화 神話)]

고유 권능 : [예지력豫知刀]

스킬 : X

성장치 : 0성

[능력치]

[힘 : 0성(84%)]

[민첩 : 0성(84%)]

[지능 : 0성(84%)]

[체력 : 0성(84%)]

[기력 : 0성(84%)]

가장 눈에 먼저 들어 온 것은 능력치였다.

레벨이 사라지고 성으로 표시되며 그 앞에는 경험치처럼 퍼센트 게이지가 생겨났는데, 이건 언젠가 언급했었던 능력치의 산정 방식과 흡사하다.

0성은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의 종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고, 1성이 되는 순간 나는 신격을 초월한다.

1성부터는 모든 종족이 일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기운을 뿜어내는 것만으로 반경 100미터에 존재하는 고층 아파트들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

전생에서 형님은 정확히 7성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신격도 7성으로 동일했다.

그 외의 시련자들은 모조리 0성.

신들조차 형님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구의 모든 시련자들을 찍어 누르고, 격을 갖췄던 풍신과 뇌신을 가지고 놀았던 바하무트는 6성급의 괴물이었으며, 발바라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탈레리안은 4성급의 괴물이다.

그 외에, 다른 건 다 이해가 된다.

칭호에 급수가 매겨지는 건 당연했으며 유토피아의 군주는 분명 신화급의 칭호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레귤러 칭호는 왜 등급 표시가 되지 않는 걸까.

여기에도 무슨 비밀 같은 게 숨어 있는 걸까.

생각을 정리하고는 상태창을 치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14시, 15시... 그렇게, 16시가 되었을 때.

속도가 느려지고, 눈앞에 보인다.

거대한 ‘도시’가.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분명히 이곳은 우주인데, 저 도시는 뭐지?

판테온 제국의 수도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거대한 도시였다.

그게, 우주 한복판에 떠올라있었다.

...저게 아스가르드인가.

잠깐 눈을 깜빡이던 그때.

내 다리가 ‘지면’에 착지했다.

띠링!

[당신은 신격을 초월하지 않은 상태로 아스가르드에 진입하셨습니다.]

[업적! 「이레귤러」를 달성하셨습니다.]

[100,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레귤러 업적?

띠링!

[아스가르드에 최초로 진입한 당신에게 안내 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첫째, 아스가르드 내부에서는 싸움을 절대적으로 금지합니다.]

[둘째, 아스가르드 내부에서 격을 뿜어내거나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셋째, 격을 바친다 해도 앞선 두 가지 사항을 우회할 수는 없습니다.]

[넷째, 그럼에도 싸움을 하겠다면 그 존재는 그 즉시 시스템의 징벌을 받아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끝이었다.

끝이었는데... 이게 되게 묘하다.

이레귤러 업적은 일단 생각한 한편으로 치워두고, 그 근본적인 시스템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신들의 협약이라고 하기에는 신들조차 그 안에 지배된다는 게 말이 되나?

확실히, 오길 잘했다.

도착하자마자 이런 정보를 퍼주다니.

“그대로구나. 새롭게 신격을 갖췄다는 인간이.”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몸 전체를 검은색 로브로 감추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

아니, 인간이 맞기는 한 걸까.

내 감각으로는 그의 기운은 물론, 저 검은색 후드로 가려져있는 얼굴도 감지해내지 못했다.

신격을 초월한 이들 중 하나가 분명한데... 이명이 뭘까.

괜히 궁금해진다.

“나는 안내자. 그대를 아스가르드의 연회장으로 안내하지. 따라오게.”

그 말이 끝이었다.

안내자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나도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면서 당연히 주변을 살폈다.

이곳으로 날아올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건물들의 양식이 되게 특이하다.

비잔틴 양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로코코... 그리고 지구에 있을법한 ‘고층 아파트’와, 고블린들의 도시에서 보았던 그들 특유의 건축물, 그리고 움막까지.

너무나도 언밸런스 하면서도 기이하다.

이게, 아스가르드?

더 어이가 없는 건 건물들 양옆에 ‘주차'되어있는 자동차들이다.

저거 람보르기니인가?

슈퍼카 수집이 취미인 신이 있는 걸까.

페라리도 보인다.

구석에는 우주선까지도 보이고.

그때, 말없이 걷던 안내자가 물었다.

“그대는, 여러모로 신기한 존재더군.”

물론, 대답하지 않았다.

지가 신기하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내가 볼 땐 여기 이 세상 자체가 더 신기한데.

“생각보다 과묵하군. 유토피아를 건국한건, 오로지 그대의 의지였는가?”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묻는 그의 질문이, 묘하게 내 신경을 건드린다.

“그러면, 다른 이의 의지로 보이나?”

“...[유바의 신성]과 이야기를 하던데, 하긴, 이건 무의미한 질문이었군. 그대의 의지였기에 시스템이 반응 한 것일 테니.

뭘까.

나한테 정보를 얻어내려는 건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궁금한 걸까.

다시 의문 하나가 고개를 치켜든다.

격을 초월한 이들 중 하나가 분명한데. 이런 잡일을 한다고?

그때,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안내자가 꽤나 거대한 돌기둥 앞에서 멈췄다. 특이 할 게 없는 그냥 흔하디흔한 돌기둥.

그 앞에 선 안내자가 말했다.

“이 ‘오벨리스크’에 손을 대고, 목적지를 말하시게. 그러면 이동될 터이니.”

"..."

이러면 자동차 같은 건 거의 무의미 한 거 아닌가?

정말이지....

그냥 생각을 안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안내자의 말대로 오벨리스크에 손을 댔다.

그러자 코앞에서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시스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다.

연회장이라고 적혀있는 부분을 터치하려다, 다시 안내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 뭡니까?"

뜬금없는 내 질문이 의아했던 걸까.

안내자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냐고 묻는다면 앞서 알려주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안내자, 아스가르드로 진입하는 이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존재.”

“...내가 볼 때는 안내자라는 건 그냥 잡일을 처리하는 자리인거 같은데... 시스템으로 안내해주면 편할 것을, 신격을 초월한 괴물한테 그런 잡일을 시킨다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도시네?”

그가 피식 웃는다.

“그게 중요한가?”

나한테는 중요하다.

중요하다뿐일까. 매우 미심쩍기도 하다.

“내가 궁금한 건 잘 못 참거든. 당신, 종족이 뭡니까?”

그가, 입 꼬리를 씰룩인다.

하필이면 다른 질문도 아닌 종족을 묻는 질문이라니.

“말해주어도 그대는 모르는 종족일터. 연회장으로 가시게."

이것 봐라?

자꾸 대답을 피하네?

그러니까 자꾸 묻고 싶어지잖아.

“...너. 멸망한 종족의 신이냐?”

그가 움찔 몸을 떤다.

당연히 내 입 꼬리는 씰룩였고.

그리고 아직 내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지배자들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으니.”

“너, 유바의 신성이랑 같은 ‘소속’이지?”

"..."

정곡을 찔렀나보다.

그가,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겼다.

그제야 드러난다.

그의 얼굴 전체에 돋아나있는 붉은 돌기들과, 턱 쪽에 나있는 두 개의 ‘아가미’. 그리고 푸른색으로 물들어있는 두 개의 동공, 무슨 병에 걸린 게 아니다.

확실하다.

이놈도 ‘이종족’이다.

“...지금은 멸망한 ‘인어’들의 시조, ‘실페리온’이라고 하네.”

인어들이라...

"나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네. 그러니 이제 그만 연회장으로 이동하시게."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신들의 진영은 선과 악, 그리고 중립. 총 3가지로 나누어져있다.

실제로 그렇게 알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유바의 신성을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쎄쎄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러니까, 이곳 신들의 세계에는 총 4개의 진영이 존재한다.

제 4진영, ‘대의의 이면’.

신격을 초월했음에도 이런 안내자 같은 자질구레한 심부름꾼이나 하는 신들이라...

이거 제법, 써먹을만한 ‘전력’이 아닐까?

“그러면 이것만 대답해봐. '너희’는 힘이 없나?”

"...그만 들어가시게.”

대답을 회피한다.

무시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하긴, 격을 초월한 존재가 힘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 그러면서 잡일을 한다는 건... 웅크리고 있다는 건가? 속에 칼을 갈면서? 그 대상은 누구일까? 아... 이미 힌트는 줬었구나.”

그는 분명 말했다.

지배자들이 있는 연회장으로 이동하라고.

점점 판에 맞는 퍼즐들이 등장한다.

침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 그러면서 잡일을 하는 이들. 힘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웅크리고 있는 존재들.

이거, 점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웅크리고 있는 이들은 지배자들을 노리는 게 아닐까?

멸망한 종족, 침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초월자, 그리고 굴욕을 감수하는 초월자.

으음....

그럼 이 아스가르드는 뭘까.

여긴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마치 초월자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감옥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심결에 한 생각이지만 이거, 꽤 괜찮은 가설 같다.

만약 여기가 감옥이라면, 그 감옥의 간수는?’

머릿속에 번개가 친다.

‘…시스템.’

신들의 협약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곳으로 왔을 때 머릿속에 들려왔었다.

네 가지의 제한.

그리고 그중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그 어떤 존재건 이 아스가르드에서 싸운다면 그 즉시 소멸한다는 거.

자 생각해보자.

왜 그런 제한을 받으면서까지 이 아스가르드에 머무는 걸까?

...앞선 가정이 맞았다.

여기는 감옥이다.

생각해보면 여화가 에피소드에 개입했던 건 그 ‘징벌’이라는 부분을 자기가 처리하는 부분에서 그쳤지. 실제로 강림하거나 현신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쎄쎄는 마치 확신하듯이 중반부에 이를 정도가 되어도 여화는 에피소드에 개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근거가 없었기에 믿을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꽤 신빙성이 있다.

내가 아는 신들의 강림 수법은 딱 하나. 대륙의 주민들이 신들의 강림을 염원하며 그런 염원을 바탕으로 제물을 바칠 때.

형님이 말하기를 그건 분명 시스템을 우회하는 수작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런 식의 수법을 고안해냈다는 건... 결국, 결론은 하나로 내려진다.

신들은, 이곳에 묶여 있다.

확실하다.

여기는 시스템이 격을 초월한 이들을 가둬놓는 감옥.

내 생각보다 이 시스템이라는 것의 권위가, 매우 높다.

신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일종의 심판자.

자, 생각해보자.

형님은 신격을 초월했었다.

그럼에도 아스가르드에 속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뭘까.

형님은 아스가르드에 속하는 걸 거부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스가르드에 있는 신들은 이 ‘감옥’에 속하는 걸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했다고?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 속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고, 형님은 그걸 포기했다는 이야기인데...

의문이 깊어지긴 했지만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는다.

쎄쎄가 말했던 게 맞나보다.

나는 한걸음씩 이면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거.

“생각이 많나보군.”

실페리온이, 무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한 점의 감정조차 들어있지 않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가 대기하는 시간은, 그러니까 웅크리고 있는 기간은 언제까지지?”

실페리온이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뚫어질 것 같은 그 시선에, 정말로 뚫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을때 쯤, 실페리온이 조용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뭐야. 이게 끝이야?

조금 섭섭한데.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그때. 내 머리속에 그의 목소리가 울린다.

쎄쎄가 보여주었던 혜광심어, 그 기술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피식 웃고 말았다.

잠깐 그 말을 곱씹다가, 홀로그램 창에서 ‘연회장'을 터치했다.

꽤나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는 듯 하다.

방금 전 실페리온이 내 머릿속에 박아 넣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대의 에피소드가, 끝나는 그 순간.’

이거, 내 생각보다 더 큰 개판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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