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58화 (58/131)

59화.  < 유토피아의 군주(1) >

“와, 책이 되게 많네요.”

성미령의 감탄사에 나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말로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나성진도 성미령처럼 멍한 표정으로 황궁 도서관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진짜 말 안 해줄 거예요? 가지고 있는 고유 권능이 뭔데요?”

“..그게, [변형]이라는 이름의 권능인데 아직은 저도 자세하게는 모릅니다."

“이름은 멋진데요?”

나성진이 허탈하게 웃는다.

가능하면 숨기고 싶었지만 성미령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약간 자랑 하고 싶은 이름이기도 했다.

[변형]이라니.

대기실에서 실험해봤는데 확실히 성능도 괜찮았다.

문제는 그 발동 조건이다.

아니, 왜 하필이면 발바닥을 마주쳐야 하는 걸까.

쪽팔림은 자기 몫이라는 건가.

“효과는 어땠는데요?”

“음.. 어떻게 말해야하나. 제 의념과 맞닿는 부분을 제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조금 복잡합니다.

성미령은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잠깐 묘해지는 분위기에 나성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때, 성미령이 눈앞에 있던 책 몇 권을 뽑아들고는 바로 고개를 갸웃한다.

“와... 정말이었네. 이쪽 세상에도 판타지 소설이라는 게 있긴 하네요?”

성미령의 감탄에 살짝 호기심이 생긴 나성진이 성미령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에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군주...귀환하다?”

“제목 이상하죠? 옆에 보니까 황제 귀환하다도 있네요.”

“시리즈물인가.”

나성진과 성미령은 말없이 그 자리에서 소설을 읽다, 결국 다시 원래 자리에 꽃아 넣었다.

“…조금 그러네요.”

“…그러게요.”

의견을 같이한 둘이, 잠시간 그 상태로 서있었다.

다른 책을 고르려고 손을 움직이던 성미령이, 잠깐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뭔데요?”

“이도님이요. 뭔가... 되게 불쌍하지 않아요?”

성미령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지 나성진이 고개를 갸웃한다.

“어떤 부분에서요?”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잖아요.”

복잡한 성미령의 말에, 나성진은 곧바로 이해했다.

솔직히, 그녀와 의견을 같이했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도님의 행동은 다른 사람을 믿는다거나 믿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범주의 것이 아니더라고요.”

“대기실에 가니까 안내자가 그러던데요? 그 이도라는 남자는 여태껏 있었던 그 어떤 시련자들과 궤를 달리한다고. 마치 무소의 뿔 같은 남자라고 하더라고요.”

“무소의 뿔이요?”

“그때 보셨죠? 눈 붉어진 상태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던 거요.”

나성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블린과의 침식 전쟁이 끝난 뒤, 발리스타 왕국 광장에서 보았던 이도의 모습을.

“그게, 몸의 선천지기 라는 걸 깎아내면서 사용하는 힘이라고 하더라고요. 전등을 온오프 하듯이 껐다 킬 수 있는데, 문제는 껐을 때 고통이 엄청나데요. 아무리 대기실의 치료 효과가 뛰어나도 분명히 부작용이 남는다는데... 그렇게 멀쩡하게 버티는 게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

“부작용이요?”

“예 부작용, 본래라면 몸 안의 세포가 쪼그라들고 장기가 제 기능을 못하고, 몸도 푸석푸석해지고 뼈도 녹아든다던데요.” “...끔찍하네요.”

조금 무거운 나성진의 말에 성미령이, 조금 침울한 표정으로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도님은 자기 목숨을 깎아가면서 싸우고 있는 거예요. 시련 내에서도 항상 바쁘게 움직이시고, 대기실에 가서는 그 고통이랑 싸워야하니까. 그분은 결국 시련이 시작되고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는 이야기잖아요? 아니지, 한 번도 쉬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아...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기분이 되게 이상하네요.”

잠시간 둘은 말이 없었다.

성미령이 앞서서 말한 불쌍하다는 말은 솔직히 주제넘은 말이긴 했지만 상황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이도는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스스로의 생명을 깎아가면서 앞만 보고 걷는 그를, 옆에서 보좌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불쌍했다.

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건지에 대한 이유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목적을 말했으니까.

지구를 구원한다.

그 목적 하나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희생하는 남자.

침묵 끝에 먼저 입을 뗀 것은 성미령이 아닌 나성진이었다.

“우리가 그분의 옆에서 확실한 ‘전력’이 되어드리면... 그때는 그분도 조금은 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성진의 말에 성미령이 해맑게 웃는다.

“맞아요. 그거네요. 우리가 도움이 되면 되는 거잖아요? 책 열심히 읽어야겠다."

나성진이 피식 웃는다.

“그럼 서로 열심히 해보죠.”

**

그렇게 하루가 흘렀고, 내가 시킨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황궁으로 오라던 내 말을 무시한 귀족들은 모조리 죽었으며, 그들의 영토는 임시적으로나마 황궁에서 파견된 수백 명의 행정관들이 도맡아 처리하게 되었다.

그 외에 복잡한 몇 가지 일이 있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건 하나다.

오늘, 새로운 국가가 들어선다는 것.

나는 천천히, 발코니로 걸어 나갔다.

마법 작용인지, 주변에 보이던 구름은 완전히 없어진 상황.

내 눈에, 도시의 전경과 그 아래 개미떼처럼 몰려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수만이라는 숫자로 정의내릴 정도가 아니다.

최소 수십, 많게는 수백만.

그리고 내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마법 술식들.

소천에게 듣기로 이게 대륙 단위의 통신 마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녹화 기능까지 플러스로 되어있다고 들었다.

즉, 수도 내에 있던 이들은 물론 전 대륙의 주민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연히 그 안에는 고블린들도 포함되어있고.

조용히 발코니에 서서, 기운을 끌어올렸다.

몸 안에 순환시키고, 성대에 기운을 담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투쟁을 벌이던 순간은 끊임없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자면 인류는 항상 독립적이기를 원했으며 동시에 지배당하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좌중이, 조용해진다.

“우리가 신이라고 믿던 이들은 이 세상에 종말을 예고했다. 왜 죽어야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같은 인류가 아닌 이종족과 투쟁을 해야 했으며, 그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우리의 등을 떠민 신들의 장난감이 되었고 그 결과로 얼마 전 하나의 행성이 멸망했으니, 그 언제가 되었건 우리 세상도 그들의 세상처럼 멸망하는....”

장황하던 말이 중간에서 멈췄다.

타의가 아니었다.

중간에 말을 멈춘 것은 내 자의, 오로지 내 자유 의지에 의한 행동이었다.

입맛이 쓰리다.

내가 황제가 되려던 이유가 무엇인가.

지구를 구한다는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나 스스로의 증명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이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거지?

내가 지금껏 말한 대사는 소천을 비롯한 수많은 행정관들과 귀족들, 그리고 똑똑하다는 마법사들이 머리에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개국 선언문 내용이다.

당연히 사고력은 물론 지능의 수치가 일반인의 범주가 아닌 나는 그 선언문의 내용을 통째로 외운 상태.

외우면서 이런 내용을 선포하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이건, 아니, 이딴 걸 원한 게 아니다.

이렇게 형식적이고, 길고,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한 개소리는 나와 맞지 않는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말을 멈춘 나를 모두가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사고라고 난 것처럼 걱정하는 이들도 존재했는데, 높은 확률로 발리스타 왕국에서 직접 여기까지 건너온 이들일 확률이 높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발코니의 석벽을 양 손으로 붙잡고, 모두를 내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개소리를 길게 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시련자다. 신들에게 기회를 받은 것은 맞지만 그들의 하수인은 아니며.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내가 본래 살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이고 그 과정에서 이 대륙을 구원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의지를 나에게 증명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순식간에 바뀐 내 분위기에 광장이 술렁인다.

“단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잃는 ‘침식 전쟁’, 그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려면 나는 황제라는 자리가 필요하다. 즉, 내가 새롭게 건국 할 국가는 앞으로 모든 침식 전쟁에서 승리 할 것이며, 신들의 수작으로 희생당한 상대의 이종족들을 발바라 대륙에 최대한 받아들일 것이다. 그 여파로 이 대륙의 원래 주민이었던 너희들의 생활 형태는 크게 바뀌겠지. 누군가는 적응 할 것이고, 누군가는 도태된다. 나는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줄 생각은 없다. 알아서 적응해라. 나는 너희의 생명을 구해주는 대가로 목숨 걸고 싸우라며 등을 떠밀거나 강요하지도 않으니. 너희도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마라. 그저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적응해라.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술렁임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오늘부터 판테온 제국은 사라진다. 나, 이도는 그 자리에 새로운 국가인 ‘유토피아’의 개국을, 지금 이 순간 선포한다.”

띠링!!

[칭호! 「유토피아의 군주」를 획득하셨습니다.]

[100,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Episode를 진행했던 그 어떤 시련자들보다 가장 앞서서 이 칭호를 이륙하셨으므로 가산점이 붙습니다.]

[당신의 모든능력치가「10」상승합니다.]

[당신의 격이 소폭 상승합니다.]

쿠구궁-!

하늘이 찢어지고, 그곳에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아닌, 나를 향해서.

그 어떤 마법 작용도 아니었다.

이건 시스템의 의지.

동시에 내 몸에서도 빛이 흘러나온다.

띠링!

[축하합니다! 당신은 인간종으로서 종의 한계에 다다르셨습니다.]

[당신의 격이 대폭 상승합니다.]

[ 당신의 성장치가 상태창에 표시됩니다. ]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어서.

우우웅-!!

팔찌가 빛나기 시작했다.

띠링!

[신화, 유토피아의 군주, 이도의 신화가 새롭게 써내려집니다.]

[신화 아이템 ‘신화를 쌓아가는 자,의 첫 번째 옵션이 추가됩니다.]

띠링!

[칭호! 「피로 물든 왕좌의 주인」의 보상이 당신의 「신화」에 합산 됩니다.]

[첫 번째 옵션. 「아수라阿修羅」가 추가됩니다.]

[복속된 종족의 숫자「1」당 ‘지속 시간’이 5분 증가합니다. 현재 복속된 종족의 수「2」]

그동안 미루어져있던 칭호의 보상이 내 신화와 합쳐졌다.

지속 시간이라는 의미와, 아수라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좋은 건 확실하다.

다 좋았는데.

다음으로 이어지는 게 하이라이트였다.

띠링!

[당신은 신들의 도시 아스가르드에 초청되셨습니다.]

[초청에 응하시겠습니까? Y/N]

띠링!

[선普에서 군림하는 자가 연회장에서 그대를 기다리겠다며 환한 표정으로 박수를 칩니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인상을 구깁니다. ]

[시작을 알린 아룡이 좋아하는 춤은 없냐고 묻습니다.]

메시지창을 모조리 무시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속으로 조금 놀라고 말았다.

수백만이 넘는 이들이, 일제히 땅에 머리를 박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으니까.

오체투지五體投地, 왕이 아닌 황제, 황제를 넘은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최고의 예법.

건국왕 레이놀즈 판테온도 이런 경배를 받지는 못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뭔가, 감회가 조금 새롭다.

하긴, 그런 쓰레기랑 내가 같을 리가 없지.

조용히, 발코니에 서서 그들의 감정을 느꼈다.

절망을 넘어 환희, 그리고 구원을 받은 자들의 행복이 소용돌이치며 내게 다가온다.

아마도 방금 하늘에서 내리쬔 빛과 내 몸에서 터져 나오던 그 기운들을 ‘신의 현신’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하다.

그들의 감정에 동화 된 걸까, 묘하게 혈기를 자극 한 것도 아닌데 심장이 꽤나 빠르게 뛴다.

확실히, 그럴 만도 하다.

이 순간, 나는 그 어떤 시련자들도 해내지 못했던 업적을 달성했다.

유토피아라는 이종족들이 살아갈 토대가 될 국가의 군주가 되었으며,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인간종으로서 성장 할 수 있는 그 극한의 벽을 마주했다.

즉, 나는 지금 신격을 갖췄다.

웃음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지금 이 상황을 모든 신들이 지켜보고 있을 터.

아니, 보고 있지 않아도 부디 보고 있기를 바란다.

정말이지... 이번에는 아주 많은 게 다를 거다.

이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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