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이게 내 방식이다(2) >
추기경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 묻는다.
“사도가 맞.... 컥”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움켜쥐며 그의 말을 끊었다.
생각할수록 웃기네.
그럼 내가 뭐로 보이는 걸까.
아니, 내가 사도가 아니건 맞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그딴 건 됐고, 우리 대신관님께서 몸이 많이 아프시다고?”
무언가 말하려던 추기경이 숨이 넘어가는지 켁켁 거리기 시작했다.
아. 미안 목을 계속 틀어쥐고 있었구나.
팔에 힘을 빼자. 그가 털썩 주저앉고는 숨을 헐떡인다.
창백한 그의 표정은 마치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 사람의 표정 같다고나 할까.
“내가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 묻는 말에 빨리빨리 대답해라.”
"..쿨럭, 지금.. 대체 뭘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오. 사도라면 당연히 신의 계시를 받아야 할 테고, 그 자세한 신의 계시가.... 커헉."
역시, 그냥 목을 틀어쥐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쪽 세상은 아무리 마법이라는 비상식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 배경은 지구의 중세 시대와 흡사하다.
나름대로 권력이라는 체계를 구축해 아래에 사람을 둔 이들은 결국 권위적 일수밖에 없고, 특히 신이라는 마법보다 더 월등한 존재의 '계시’를 받는 대신관과 신전의 힘은, 황궁의 그것과 맞먹을 정도다.
율리우스가 괜히 대신관과 거래를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놈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나는 율리우스랑 매우 다르다는 거.
그리고, 대신관의 계시는 등장할 몬스터의 세부적인 위치를 알려주는 선에서 그치는데, 그게 지금의 나한테 필요한가?
나는 모든 마법사들로 대륙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게이트 존’을 설치하려한다.
즉, 침식이 아니라 그냥 몬스터가 소환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그게 어디에 소환되건, 나는 그곳으로 단번에 이동할 수 있다.
다시 보자.
대신관의 계시가 내게 필요한가?
아니. 필요 없다.
눈앞의 추기경의 태도는 결국 대신관의 의지를 말해주는 것일 터.
자신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먼저 와서 고개를 숙이라는 그런 되도 않는 협박.
내가 사도이기에 자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물량을 믿는 걸까.
중요한건 하나다.
대신관은, 내가 준 기회를 차버렸다.
사실 살려 둘 생각도 없었지만, 이렇게 빨리 죽여 달라고 애원할 줄은 몰랐다.
진심이다.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푸르죽죽하게 변한 얼굴의 추기경이 양손으로 내 팔을 붙잡고 살려달라는 듯 애원하고 있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대로 손가락에 힘을 주자.
뚜두둑-!
추기경의 목이 꺾이고, 시체가 된 그의 몸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퀴나스.”
“예..예!”
“다음 침식은 이 황궁 근처에서 열릴 확률이 높다. 거기 있는 마법사들이랑 이 수도 전체에 함정 마법진과 결계를 치는 작업에 착수하고 하루에 한번 꼴로 보고하도록.”
“추.. 충!!”
고개를 돌려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띄고 있는 양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양규.“
"예."
“앞서 말했던 ‘살생부’중에서 대신관은 지워.”
“…예 알겠습니다.”
양규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으로 그가 어떤 심정인지 알 수 있었다.
매우, 아쉬워 한다는 거.
“대신관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 그러니까, 시킨 일이나 제대로 처리해.”
“아!... 예 알겠습니다. 폐하.”
양규가 한 번 더 밒게 고개를 숙이던 그때, 내 눈에 보인다.
대전의 모든 귀족들과 마법사들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하..
“니들 지금 뭐하냐?”
“...예?”
“시간이 남아 도나보네. 내가 시킨 일이 한두 개가 아닌데. 이 정도의 여유면 생각보다 일 처리가 빠르겠어.”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킨다.
“그만 나가봐. 아 가기 전에 이 쓰레기, 내다 버리고.”
발로 추기경의 시체를 툭툭 치며 말하자 몇몇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대충 보니 귀족이었다.
아니, 저렇게 약한 심기로 어찌 귀족이 되었을까.
슬며시 소천과 아퀴나스에게 눈짓하자 그 둘이 빠르게 귀족들과 마법사들을 데리고 대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대전에는 약간의 병풍처럼 서있던 성미령과 나성진. 그리고 나와 한수아, 총 네 명만 남게 되었다.
“한수아?”
“..네?”
마치, 무언가에 빠진 듯 나를 몽롱하게 바라보던 한수아가 한 타임 늦게 대답했고, 그녀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어디요?”
대답해주지 않았다.
가보면 알 테니까.
한수아를 데리고 이동하려던 때 뒤에서 나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그 옆을 보니 성미령도 무언가를 시켜 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침식을 한번 겪고 대기실에서 많은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딱히 지금은 시킬 게 없는데.
“내가 알려준 스킬들은 전부 배웠을 테니... 둘은 이쪽 황궁 도서관에서 책이라도 읽고 있어.”
“..책이요?”
“그래 책, 언어는 어차피 자동으로 번역되니까 어려울 거 없을 거다, 성미령 너는 책을 읽어야 스킬의 숙련도가 오르니 당연히 도서관을 가야 할 테고, 나성진 네 권능은 어차피 ‘상상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 이쪽 세계의 판타지 소설이라도 읽어보던지.”
둘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야겠다.
“내가 앞으로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지시 해줄 수는 없어. 너희는 너희가 하고 싶은걸 해,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을 넘어서 뭘 해야 할지, 그건 너희 스스로가 깨달아야지. 언제까지 나한테 의지할건데?”
말투는 아까 왕좌에 앉아 있을 때와 흡사했지만 그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적어도 한수아를 포함한 이 세 명은 그것을 느꼈나보다.
“그럼 고생하고.”
그 말을 끝으로 한수아를 데리고 게이트 존으로 이동했다.
**
나는 한수아를 데리고, 레드원 신전의 성지라 불리는 ‘이피로스’로 이동했다.
대륙 전체의 신도들을 관리하는 대신전이 존재하며 대신관이라는 나름 걸출한 인물이 지배하는 성지.
황성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건물과 수없이 많은 신도들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여러 가지로 사람의 시선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돔으로 이루어진 건축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이 대신전.
주변에 그려진 벽화와 천장에 그려진 신을 상징하는 그림들과 군데군데 자리해있는 붉은 색의 원 문양.
신과 레드 원 신전의 상징을 노골적으로 같은 곳에 배치해놓은걸 보니, 자기들의 말과 행동은 모두 신의 뜻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전 주변을 호위하는 수십여 명의 성기사들과, 2층에서 로브를 걸치고 있던 수십 명의 신관들, 그 모두가 나와 한수아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내 내 걸음이 멈추고 어느 한 곳을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 곳, 그곳에 마련되어있는 단상에서 무언가 연설 같은 것을 하던 한 노인이, 단상에서 내려오더니 나와 한수아를 향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여유로운 모습과, 주둥이에 걸려있는 온화해 보이는 엿 같은 미소를 보고 확신했다.
저놈이, 대신관 베네딕 메디치라고.
“오호... 모습을 보아하니, 그대가 이도라는 사도구려."
먼저 말을 건네는 메디치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길거리에 흔해 빠진 일반적인 주민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딱 하나 다른 건, 저 눈깔 안에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구렁이가 수십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 옆에는 지그문트를 현혹했다고 소문이 퍼진 한수아라는 사도. 맞소?”
입 꼬리가 씰룩인다.
지그문트는 물론 그놈이 남긴 유서고 나발이고, 이제 그딴 건 관심도 없다.
그런데 현혹이라.. 뭔가 단어의 뉘앙스가 조금 거슬린다.
몸을 팔았다고 생각하는걸까.
음흉한 새끼가.
“듣던 대로 꽤나 과묵하시구려. 그래서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오? 몸이 아프다고 분명 전했을 터인데.”
“몸이 아픈 놈 치고는 꽤나 멀쩡해 보이는데?”
“놈?”
순식간에 치고 들어가는 내 말에, 메디치의 표정에 금이 간다.
꽤나 볼만한 구경거리다.
놈은 나를 권주나 창주 같은 마스터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조용히, 기운을 퍼트렸다.
내 기운이 대신관의 몸을 옥죄고, 주변에 있던 수많은 ‘성기사’들이 이상함을 눈치 채고는 무기를 끼내든다.
한걸음 내딛자, 그들도 한걸음 내딛는다.
다시, 한걸음 내딛자 그들이 이번에는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퍼트리던 기운에 살기를 담자 기둥이 떨리고 성기사들이 주저앉는다.
한걸음 더 내딛자, 이번에는 대신관이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아까까지의 여유롭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그의 표정에 남은 것은 공포였다.
자기의 썩은 눈깔이, 어느 정도로 썩어있었는지 이쯤에서 제대로 파악했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슬며시 손을 들어 올리자, 내 의지에 반응한 허공의 기운이 움직이고, 메디치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자연스럽게 메디치의 목을 움켜쥐자, 그제야 그가 억눌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를... 나를 죽이면 이 대륙에 혼란이 가득할거다.. 나는 신의 계시를 받는 신의 대리자.. 사도인 네놈은 나를... 커헉.켁..켁켁.."
손에 힘을 주고, 다시 풀자, 놈이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말을 내뱉는다.
“협조.. 협조하겠네. 신들의 계시가 내려오는 대로 숨김없이 그대에게 보내... 커헉.”
앞선 과정을 다시 반복하자.
“나는 대신관.. 혼란을 막는데 도움을 주겠.. 커헉.”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다.
다시 손에 손을 풀자.
“나를 놀리는 것이나!!!!!”
“그걸 이제 알았어?”
“이런 빌어먹을 새... 커헉!”
웃는 얼굴로 놈의 면상을 코앞으로 끌고 왔다.
“나는 말이야. 완전한 중앙 집권 국가를 생각하고 있거든. 그런데 그런 국가에 너 같은 불순분자가 존재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
“쿨럭... 하지만 이 대륙에는 신을 믿는 자들이 많아. 무려 수천만에 이르는 그들에게 안정을 줄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왕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거, 듣다보니 코미디가 따로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걸 네가 왜 걱정하지?”
“..뭐?”
“네 생각을 내가 모를 줄 알아? 어차피 나 같은 사도들은 이 대륙에서 평생 살게 아니니까. 언젠가는 떠나겠지. 너는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던 거 아니냐?”
정곡을 찌른 것인지, 대신관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럴 거면 애초부터 나한테 고개를 숙였어야지. 같잖은 새끼가 나랑 맞먹으려고 들어? 그런 놈이 지금은 또 목숨 줄이 아까워지니까 대륙을 걱정해?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미친놈에게 미친놈 소리를 듣는 기분은 어떨까.
그게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대신관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분노와 허탈함. 그리고 의문.
그때 내 시야에, 한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신전 끄트머리에서 하얀색 로브를 입고 있는 금발 머리의 눈부신 여인.
그녀 주변에서 성기사들이 있는걸 보니 아마, 저 여자가 엘리자베스인가보다.
“하지만 나를 죽이면, 성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고 대륙은 혼란에 빠질...큭.."
“말 참 많네, 그건 네가 걱정 할 일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네놈은 율리우스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 상태가 아니더냐!”
그냥 죽이려다 잠깐 멈칫했다.
이게 대신관의 통찰력인가.
신기하네.
“그래서?”
“쿨럭... 젠장. 그건 높은 확률로 엘리자베스에 대한 이야기겠지! 내가 죽으면 그녀는 성녀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 그걸 모르는 것이냐!”
웃으며 손가락에 힘을 주자. 놈의 얼굴이 점점 푸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성녀라... 앞서 말했듯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진짜 성녀가, 여기 존재하니까."
“켁...뭐...뭐?"
그게 대신관의 유언이었다.
뚜두둑-!
대신관의 목이 꺾이고, 그의 시체가 옆으로 쓰러지고, 내가 발로 그의 심장을 짓밟아 터트리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오랫동안 염원하던 것이 이루어진 사람처럼 희열에 떨고 있었다.
오늘부터 그녀는 성녀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는 한수아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말했다.
그녀가 당황할만한 그 말을.
“네가, 오늘부터 성녀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