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55화 (55/131)

56화.  < 이게 내 방식이다(1) >

높디높게 솟아있는 황궁.

솔직히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는데, 이건 정말이지 다시 봐도 너무 판타지스러운 건물이다.

아니, 황궁의 높이만 700미터가 넘는다는 게 이게 말인가.

아랍의 부르즈 할리파가 약 830미터로 알고 있는데, 적어도 그건 첨탑까지의 높이였지. 이 황궁은 아니었다.

건물의 평수만 무려 10만 평이 넘어가고 건물 안에 존재하는 방들과 회의실, 귀빈실, 그런 것들은 너무 많아서 셀 수조차 없었다. 쓸데없이 크다고 해야 할까.

그나마 쓸모 있는 건물은 황궁 외곽에 있는 중앙 행정청이었다.

약 2만 평 정도의 부지에 따로 지어진 중앙 행정청에는 보급청부터 시작해서 행정에 관련된 모든 부서가 총집합해있었다.

그리고 그 부서에 속한 이들을 통칭해서 행정관이라 부른다는데. 대충 듣기로 그 안에 속한 행정관만 수천 명에 각 영지로 파견나간 이들까지 하면 수만 명은 거뜬히 넘는단다.

나는, 황성 꼭대기 부분에 있는 전망대처럼 이루어진 곳, 그러니까 발코니에 있는 석벽 하나에 엉덩이를 걸친 채 앉아있었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이 자리는 제국의 전경이 그대로 들여다보일 정도로 꽤나 아름다운 장소였다.

아마 이곳에서 연설도 하고, 그러지 않을까.

문득 방금 죽은 율리우스가 떠올랐지만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나는, 그에 대한 애도 같은 건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입바른 말로는 그 무엇이든 못할까.

나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도 떠있는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았다.

[Episode #10~#19]

[닐로드 대륙은 오크들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5일 뒤, 낮 12시부터 닐로드 대륙과 발바라 대륙 간에 침식 전쟁이 활성화 됩니다.]

[패배한 대륙은 그대로 신들의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침식 전쟁에서 승리하십시오.]

[침식 전쟁 승리 조건]

[1. 오크 황제 ‘툴칸’을 죽이십시오.]

[2. 툴칸의 호위대인 철혈 사자단의 단장, 디나스티스모를 죽이십시오.]

[위 두 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하셔야 승리로 인정됩니다.]

[이 퀘스트는 발바라 대륙의 모든 시련자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파티 퀘스트입니다.]

[퀘스트 보상은 10,000,000 코인으로 동일합니다.]

[제한 시간 : 침식 게이트가 활성화 된 후부터 240시간.]

이번 침식은 대기 시간만 무려 5일, 거기다 침식이 진행되는 기간은 무려 10일.

즉 보름 안에 결판이 난다.

그런데... 상대가 오크다.

이건 내게 호재일까 아니면 악재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오크 황제이자 모든 오크 종을 하나로 묶었다는 대전사, 퀘스트창에 나온 대로 이름은 툴칸.

분명히 전생에서 Episode #39에 나왔던 그 오크가 분명하다.

툴칸은 쿤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괴물중의 괴물.

그는 오크 종으로써 신체를 극한까지 성장시킨 전사다.

즉, 오크로서 신격을 갖춘 존재.

그놈에 비하면 인간족 마스터들? 우습다.

일례로 툴칸을 호위하는 철혈 사자단, 그 안에 속한 전사 하나가 이쪽 세상의 권주와 맞먹을 정도다.

내가 알기로 사자단 소속의 오크는 총 30명.

여러 번 언급했지만 종의 차이는 거의, 웬만해서는 부서지지 않는 벽과 흡사하다.

오크라는 종족은 기본적으로 인간들보다 힘이 강하다.

힘이 강하다는 것은 그 힘을 받쳐주는 신체의 밸런스도 인간의 그것보다 월등하다는 뜻인데.

이번 싸움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오크는 매우 호전적이다.

쿤린은 적어도 신념과 종족의 멸실을 막기 위해, 나의 뜻에 협조하긴 했지만 툴칸은 싸우는 걸 낙으로 여기는 존재.

형님과 대화하던 과거의 순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었지. 일단 아주 못생겼고.. 매우 호전적이고, 싸우는걸 좋아하고,피를 흘리며 자기 살점이 찢겨져나가는걸 웃으면서 보는 놈, 툴칸이 딱 그랬거든.

-그거 미친놈 아닙니까?

-미친놈이었지. 강하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그놈, 약간 너랑 닮은 거 같은데?

-...제가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그거 말고, 다른 거.

-다른 거요?

-이를테면... 심성? 아니지, 성격? 그놈은 너랑 분명 닮았어. 그래서인지 되게 정감이 가더라고, 아직까지도 그놈은 잊히지가않아.

여러모로(?) 형님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툴칸.

내가 알기로 형님은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후원해준 신화 아이템 [필살의 건틀렛]으로 툴칸을 죽였다.

아마 그 무기가 아니었다면 형님은 졌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당시의 형님은 분명 햇병아리였으니까.

아무리 봐도 전체적인 상황은 일기토가 아닌 총력전으로 전개 될 여지가 있었다.

아니, 매우 높은 확률로 총력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이루어질 상황을 대비해서 계획을 짜야되는데...

5일이라는 시간 안에 가능할까?

아니.

가능할까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무조건, 가능하게 만들어야한다.

조용히 퀘스트창에서 눈을 때고 단상 아래를 바라보았다.

수백 미터 아래에 위치한 워프게이트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과 중년 남성, 중년 여성, 심지어는 노년에 접어든 이들이 하나둘씩 소환되고 있었다.

입고 있는 복장은 그 모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고급진 튜닉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다 어디서 주워 온 건지는 몰라도 약간의 마나가 느껴지는 아이템들을 착용한 이들도 보인다.

마치 나는 귀족입니다 라고 온몸에 써 붙이고 다니는 모습 같다.

그렇게 수백 명의 귀족들이 소환되고, 이어서 소천과 케인, 주체, 한수아, 나성진, 성미령이 차례대로 소환된다.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는데.

언젠가 내가 에릭을 쫒던 때 은신술로 나를 쫓아오다 결국 내게 들켰던 그 첩자였다.

이름은 양규揚規.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가볍게 설명하자면, 내가 율리우스를 죽이고 대전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던 그때, 복도 끝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가 내게 다가오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율리우스가 직접, 자기 입으로 믿는다고 했던 남자.

그러면서도 내가 그를 공격했을 때 율리우스의 이름을 팔았던 남자.

그런데 그건 알고 보니까 전부 율리우스의 명령이었단다.

만약 미행하다가 걸리게 되면 자기의 이름을 무조건 말하고 살아 돌아오라는.

그는 약간 붉어진 눈시울로 내게 물었다.

율리우스의 최후는 어땠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황제답게 최후를 맞이했다고.

그 죽음에는 의미가 있었냐고 묻기에.

깔끔하게 대답했다.

그 의미를, 지금부터 보여주겠다고.

내 말에 양규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고, 나는 그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하나는 내 곁에 남아서 율리우스에게 했던 것처럼 보필 하라는 것.

둘째는 고향으로 돌아가든 어디 구석진 곳에 가서 조용히 사는 것.

그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첫째를 선택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내린 명령은 두 가지.

하나는 황궁 대전 안을 ‘깨끗하게’ 청소할 것.

다른 하나는 곧 워프 게이트를 타고 오게 될 이들을 대전으로 안내할 것.

그때였다.

수백 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내 시선을 느낀 걸까.

그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본다.

이내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양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든다.

일반인의 시야로는 내가 절대로 보이지 않을 텐데도 그들은 느꼈나보다. 머지않아 그곳에 있던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나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다 실소를 짓고는 그대로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

대전 안에 있는 왕좌에 앉아서 기다렸다. 마법사들과, 귀족들이 이 안으로 들어오기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던 이들이 속속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리스타 왕국 내에 있었던 대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황궁의 대전은 무려 수천 명을 수용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마법사들까지 포함해 어림잡아 2천명이 넘는 인원들이 들어왔음에도 대전에는 절반 이상의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새삼스럽지만, 쓸데없이 너무 거대하다.

손을 들어 소천과 아퀴나스, 그리고 한수아를 지목하고는 까닥이자 세 명이 다가오더니 수 미터 아래의 단상아래에서 멈춰 섰다.

대전 안에 모여 있는 이들의 시선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불만을, 누군가는 의구심을, 누군가는 약간의 환회를 담은 채 나를 바라본다.

생각은 진작 끝났고, 해야 할 말도 진작에 정리한지 오래다.

“나를 처음 보는 이들도 있을 테고, 몇 번 본 사람도 있겠지.”

조용한 목소리로 시작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련의 모든 일들은 이 대륙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목숨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다. 긴 말 할 필요는 없겠지. 판테온 제국의 황제였던 율리우스는 죽었다. 그리고 내일, 새로운 제국의 개국을 선포 할 것이니 그 준비를 하도록.”

“...예?”

단상 아래에 있던 몇몇 이들이 당황 섞인 말을 내뱉긴 했지만 무시했다.

“앞으로 내가 하는 말에,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토 달지 마라.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라. 새롭게 건국될 제국은 인간들뿐만 이 아니라 이종족들도 살아갈 새로운 형태의 국가가 될 거다.”

“기존에 있던 제국의 체제는 유지 할 것이며, 오등작 체제도 유지한다. 국호와 형태만 달라지는 것이니 그에 대한 적응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도록. 아퀴나스”

“예.. 예!”

“함정 설치에 능한 마법사들을 모조리 불러 모으라고 했는데, 이들이 전부인가?”

아퀴나스가 고개를 고덕인다.

“밟는 순간 폭발하는 지뢰 형태를 비롯한 모든 함정 마법진에 능통한 이들이 총 820명, 결계를 칠 수 있는 마법에 능통한 이들이 총 574명입니다.”

시킨 대로 하는 모습을 보니, 꽤나 마음에 든다.

“그 외에는?”

“그 외라면... 어떤...?”

“내 명령에 따를 수 없다거나, 이 자리에 오지 않은 마법사들.”

아퀴나스가 침을 꿀꺽 삼킨다.

“그게... 지그문트의 빈자리를 대신하던 백마탑의 수석 마법사를 비롯해 십여 명의 마법사가 명령에 불응하였습니다.”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있다니까 조금 재미있기까지 하다.

“양규. 여기 귀족들 중에 불참한 인원은?”

“...두 명의 공작과 두 명의 후작, 그리고 다섯 명의 백작과 이십여 명의 자작이 불참하였습니다.”

이쯤에서 입가에 실소가 지어졌고.

“...대신관은 몸이 불편하다기에 추기경을 대신 보내왔습니다.”

이 부분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 나는 이런 게 참 신기해.”

웃음을 터트린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모두가 응시한다.

“어찌된 게 세상이 변하건 말건, 헛짓거리 하는 새끼들은 꼭 한두 명씩 존재하는 걸까. 이게 참 의문이야.”

내 넋두리에 담긴 살기가, 대전 전체를 옥죄이기 시작했다.

“소천. 양규 “예!”

“오늘 중으로 이 자리에 불참한 새끼들 전부 죽여.”

“"예?”

소천이 의아한 말을 내밸었지만 양규는 마치 이런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마저 말을 이었다.

“율리우스 밑에 속해있던 병사들을 데리고 가던지 암살자를 고용하던지, 그놈들 오늘 중으로 전부 죽이라고.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혹은 그들을 보호하는 놈들이 있다면 그놈들도 빠짐없이 죽여라. 아니, 그냥 죽이는 건 모자라지, 그놈들 친인척들까지 전부 죽이고 아예 씨를 말려.”

"추... 충!!”

충격과 공포가 대전을 휩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퀴나스.”

“..예!”

“백마탑의 수석 어쩌고 하는 그 새끼를 비롯해 이 자리에 불참한 마법사들, 그놈들과 관련되어 있는 놈들 모조리 모아서 산채로 묻어버려."

아퀴나스가 말을 잇지 못하고, 대기하던 마법사들을 비롯한 몇몇의 귀족들에게서도 묘한 반발감 같은 게 조금씩 피어오르려한다.

코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그냥 참았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 같은데. 나 없이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쭙잖게 내 앞에서 자존심 세우지마라. 권력다툼? 하고 싶으면 해, 하는 순간 모조리 죽여 버릴 거니까. 자기가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버러지가 꼴같잖게 자존심 세우는 꼴은, 내가 역겨워서 못 보거든.”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관심 없다.

폭군이라 부르건, 미친놈이라 부르건.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다 틀린 말도 아닌데.

그리고 이놈들을 하나하나 설득하는 것은 형님의 방식이지, 내 방식은 아니다.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죽일 거고, 반발해도 죽일 거고, 거슬리게 해도 죽일 거다.

그게, 가장 확실하니까.

그리고 그게, 내 방식이니까.

“귀족들은 창고에 쌓아두고 있던 금, 식량, 그런 것들 모조리 풀어서 마법사들한테 지원해주고, 아퀴나스.”

“예.. 예!”

“아까 말했던 대로, 최대한 많은 마법사들을 동원해서 3일 안으로 전 대륙을 이을 수 있는 워프 게이트를 만들도록.”

“소천 너는 식량들과 무기, 그리고 건축에 능통한 이들 수천 명 정도 모아서 고블린들이 거주하고 있는 카툰 산맥으로 보내도록, 그들이 굶거나 추위에 떨면서 자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신경 써라.”

조용하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걸까.

“대답은?”

소천이,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라고 운을 떼자.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중에서, 딱 한 놈.

꽤나 마른 체구에 머리를 뒤로 넘긴 중년인이, 뒤늦게 고개를 숙이는 게 내 눈에 포착됐다.

입고 있는 옷에 ‘레드 원’ 신전의 상징이 박혀 있는걸 보니, 혹시 저놈이 대신관이 아파서 대신 왔다는 그놈인가?

“추기경.”

“…왜 부르시오?”

뒤늦게 대답이 들려온다.

저놈이 추기경이 맞나보다.

그런 추기경의 표정에 떠오른 것은 미심쩍어하는 의문의 감정.

그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는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내 말하리다.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사도일터. 사도면 사도답게 행동해야지. 개국? 국가를 만들겠다고? 그러면 황제로 취임하겠다는 말이오? 미친 것도 아니고 그대는 그대의 ‘운명’을 따르지 않으려는 것이오?”

말투가,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는듯한 말투다.

이것도 꽤나 웃긴 놈이다.

개소리도 지나칠 정도로 길었고.

대체 지금까지 뭘 들은 거지.

대답하지 않고 왕좌에서 일어섰다.

단상을 내려가, 추기경의 앞에 서자 그가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나는 입가에 웃음을 띤 채로 물었다.

“내가 가는 귀가 먹었는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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