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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50화 (50/131)

51화.  < 스스로 신화를 쌓아가는 자 (1) >

게이트를 넘어 발리스타 왕국으로 돌아온 나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방금, 한 대륙이 멸망했다.

아니 정확히는 행성이 멸망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만한 운석 세 개가 떨어진다면 말 그대로 그건 종말이다.

종말의 선고를 알리는 여화의 소환술.

어이가 없을 정도다.

저런 운석을 쉽게 소환할 정도라면 그 본체의 힘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항상 생각했던 거지만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급 신들의 수준이라면 직접 본적도 있고 직접 느껴 본 적도 있지만 최상위, 그것도 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쪽은...

젠장.

그만 생각하자.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고개를 돌리자 포화상태에 다다른 왕국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광장은 꽤나 넓었지만 이제는 그 넓은 수준으로도 수용이 안 될 정도였다.

심지어 군데군데에서는 광기와 살기마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이건 하나밖에 없다.

싸움.

방금 전까지 무기를 겨누고 싸우던 두 종족이 서로를 향해 적의를 뿜어내는 것.

나는 말없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혈기가 용솟음치고, 내 머리가 기운에 나풀거린다.

거대한 존재감.

조용히 한걸음 앞으로 내 딛자.

쿠우우웅-!

주변에 있던 이들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멀리 있던 이들까지.

어림잡아 수만 명 이상이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동시에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슬퍼하던 고블린도, 그 고블린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다른 왕국 병사들도, 뿐만 아니라 발리스타 왕국 소속이 아니었던 시련자들 까지도.

"살아남기 위해 싸우라고 분명 말했었지.”

"..."

“듣지 못한 놈들은 지금 새겨들어라. 앞으로 내 허락 없이 내가 받아들인 ‘이종족’과 싸우지 마라. 앞으로 이 대륙의 형태는 변할 것이고 앞으로 많은 게 달라진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인간들을 비롯한 모든 시련자들도 해당되는 말이다. 지금부터 발바라 대륙에서는, 내가 만든 규칙과 내가 만든 법을 어긴다면 그게 누구든 간에 죽을 것이다. 변명은 필요 없고 들을 생각도 없다. 그러니 시도조차 하지 마라.”

언젠가부터 내 말투는 변해있었다.

지구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았던 생존자. 지옥에서 회귀한 유일한 남자. 그리고 평범한 시련자에서 왕이 된 시련자.

지금은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시련자.

자리가, 나를 만들고 있었다.

“주체. 케인.”

“신 케인,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신 주체,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둘을 부르자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두 기사가 내게 달려오더니 부복했다.

주변에서는 왜 시련자인 내게, 두 기사가 폐하라 부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들이 보였지만 솔직히, 굳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 까지 일일이 처리해야할 정도로 내가 한가한 놈은 아니니까.

띠링!

[Episode #5~#9, 1차 침식이 종료되었습니다.]

[승자는 발바라 대륙입니다. ]

[모든 시련자는 5,000,000 코인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공적을 발표합니다.]

[황제 쿤린을 죽인 시련자 : 이도]

[‘찬란한 두 개의 섬광’을 죽인 시련자 : 이도]

…중략-

[압도적인 공적치를 획득한 시련자, 이도는 보상을 고르십시오.]

[1. 선택형 신화 아이템]

[2. 선택형 유물 아이템]

[3. 50,000,000 코인]

[단 1개만 선택이 가능하며, 대기실에서 수령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간, 23시 25분, 모든 시련자는 5분 뒤 대기실로 일제히 귀환됩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

젠장.

이게 가장 걸림돌이다.

보상은 둘째 치고, 아무리 포장해봐야 시련자는 결국 이방인일 뿐이다.

침식은 메인 스토리.

이 메인 스토리를 끝냈다면 당연히 휴식을 주는 게 마땅하지만 더 웃긴 건 그 휴식을 강제로 준다는 점이다.

오늘, 황제까지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 길을 시스템이 막은 것.

내가 알기로 재소환시간은 24시간.

과연 율리우스는 내 목적을 알고 있을까?

과대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율리우스 정도라면, 적어도 황제라는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굴리는 놈이라면 충분히 눈치 챘을 것이다.

하루 동안의 준비 기간이라..

결국, 또 피를 봐야한다는 걸까.

고개를 돌려 부복하고 있는 케인과 주체에게 시선을 옮겼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말들을 빠르게 꺼내놓았다.

"...소천과 상의해서 고블린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주고, 타 지역의 인물들은 마탑과 합의하든 뭘 하든 자기 살던 대로 돌려보내.”

“충!"

“그리고, 고블린들은 이제부터 발바라 대륙의 새로운 주민이다. 벽보에 써 붙이건 통신으로 알리건, 전 대륙에 선포해.”

“...선포라 하시면...”

앞서 말 한 적이 있지만, 이젠 오슨 발리스타의 이름 따위는 필요 없다.

이미, 그때 내가 생각했던 판은 뒤집어졌고, 지금은 새로운 판이 펼쳐진 거니까.

“내 이름, 이도라는 이름으로 선포해라. 내 허락 없이 이종족에게 손대는 놈은 무조건 사형이다. 그 자리에서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발리스타 왕국 내의 모든 병사들로 고블린들을 호위하도록.”

“충!!!"

이거면.. 일단은 충분하다.

이번에는 고블린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슬픈가?”

"..."

"고향을 잃은 너희의 심정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나는 너희보다 더 큰 절망을 맛봤었으니까.”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건 난 진심이라는 거.

“신들의 게임에서 패배한 너희는 모두가 죽었어야하지만 그래도 종족의 명맥을 잇게 되었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위안으로 삼아라. 그러지 못한 종족도 존재했으니까.”

“하루 동안자리를 비울 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 나누지.”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3분.

고개를 돌리자 시련자들이 보인다.

아직까지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관심 없다.

이들은, 다음 에피소드에 진입했을 때 교통정리 할 거니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성미령의 물음이었고 묘하게 데자뷰가 느껴지는 말이다.

이 여자는 항상 나만 보면 저 말부터 꺼낸다.

조용히, 셋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유명무실한 에덴이라는 단체의 단원들이자, 그중 두 명은 고유 능력자, 다른 한명은 일반 시련자.

한수아와 나성진을 어떻게 써먹을지는 이미 머릿속으로 정리가 된 상태.

하지만 성미령은 달랐다.

그녀는 약하다.

이게 새삼스럽지만 안타까운 사실인데. 권능이 없는 시련자는 당연히 그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녀의 성장 최대치는 높게 잡으면 쿤린 정도. 낮게 잡으면 오슨 정도다.

“일단 한수아, 너는 대기실에서 정령 소환술 계속 연습하고 ‘천리안’ 스킬을 구매해. 남은 코인은 전부 모든 능력치에 고르게 분배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성진 너는, ‘대지大地의 기운’ 스킬이랑 ‘임기응변’ 스킬을 구매해. 나머지 코인은 전부 능력치에 고르게 분배하고.”

그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문제의 성미령이다.

“너는… 좀 많으니까 외워. ‘통솔력’, '빠른 사고력’, ‘정치학’, ‘행정학’, ‘군사학’ 그리고 ‘속독법’, 남은 코인으로는 능력치 올리고.”

“…네?”

내 말을 외우지 못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앞선 두 사람과 너무 달랐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을 뿐.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에는 전투원만 필요한게 아니야. 비전투원도 필요하지.”

성미령이, 살짝 눈을 감는다.

무대포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분명 성미령은 정의감이 있는 여성이다.

심지어 바보도 아니었다.

“...저는 전력으로 쓸 수가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조금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조금 애처롭긴 했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우리는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죽더라도 우리는 시련에서 얻은 그 모든 것들을 가져갈 수 있다.

심지어 인벤토리까지도.

내가 성미령에게 배우라고 한 스킬들은 전부 두뇌 쪽과 관련된 패시브 스킬들이다.

이게,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인데, 시련을 겪는 시련자가 얻는 힘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조 스킬을 화려하게 익힌 그녀가 지구로 돌아갔을 때, 정치를 한다면 최소 총리, 혹은 대통령 이상까지 될 것이고 어떤 분야의 학자가 된다면 그게 어떤 분야든 노벨상을 심심할 때마다 탈 수 있을 것이다.

전생에서는 이런 보조적인 스킬들을 전문적으로 배운 이가 한명도 없었다.

살아남기에 바빴으니까.

나는 조금, 다르게 가려고 한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지구도 신경써야하니까.

조용히 손을 들어 성미령의 어깨에 얹었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힘쓰는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를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줘야겠지. 내가 처음으로 이 시련에서 ‘받아준’ 이들은 너희 셋이 전부고, 앞으로 에덴은 지금보다 더 커질 거다. 그때면 당연히 너희들의 역할도 커질 테고, 나는 너희가 그 일을 충분히 해줄 거라고 믿는다.”

위로 아닌 위로였지만, 성미령에게는 충분한 대답이었나 보다.

그녀가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하늘이 조금씩 갈라지고, 갈라진 그곳에서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이제 곧, 모든 시련자는 대기실로 귀환할 터.

팔을 내리고는 슬며시 한수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섬뜩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젠장.

그녀의 눈 안에, 내가 언젠가 언급했던 열정熟情이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다.

정확히는 광기로 넘어가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한수아의 코앞에 서있었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의 광기가 무색한 눈으로, 그것도 조금 밝아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손을 뻗어 그녀의 한쪽 볼에 가볍게 얹었다.

“오늘 고생 많았다.”

하늘에서, 빛무리가 내려찍히는 동시에 한수아가 밝게 웃는다.

“잡생각 하지 말고, 앞만 보고가자.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크게 도움 못되어드려서 죄송해요.”

진심일까?

그냥 진심이라고 치자.

“그래, 내가 말한 거 잊지 말고.”

그 말이 끝이었다.

몸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려던 그 순간.

“그러면요. 모든 일이 끝나면 우리 함께 하는...”

한수아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순간 서늘함을 느낀 나는, 빠르게 고개를 털어냈다. 빛무리가 사라졌다.

나는, 대기실에 있었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모든 일이 끝나면 함께..뭐?

그렇게 잠깐 멍하니 서있었다.

...이거 갑자기 너무 훅 치고 들어오는 거 아니야?

“와... 혹시나 했었는데 정말로 살아 돌아오셨네요?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변한 게 하나 없는 모습의 쎄쎄가, 그러니까 검은색 단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다 여전히 과묵하시고, 그나저나 어떠세요? 첫 번째 침식을 겪은 소감이?”

어떠냐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

"좇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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