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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47화 (47/131)

47화.  <1차 침식(5)〉

콰앙-!

콰아앙-!

발라티에는 이를 악물었다.

눈앞의 고블린.

이름이 두 개의 섬광 어쩌구였는데... 솔직히 강했다.

농담이 아니고 언젠가 대련을 했었던 매캐넌, 놈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

‘고블린이..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이를 악물고, 창을 휘둘렀다.

채애앵-!

고블린의 검이 창을 막는다.

하지만 고블린은 쌍검을 사용했다.

다른 검이, 창주의 목을 향해 휘둘러지고 창주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고블린이 자리를 박찼다.

콰아앙-!

“크흑!”

고블린이 창주의 가슴을 그대로 들이 받고, 창주가 뒤로 멀리 날아간다.

이어서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이 다시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고블린의 눈동자가 빛났다.

검이 한번 휘둘러지자 땅이 뒤집어지고, 한 번 더 검을 휘두르자 참격이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달려오던 사십 여명의 기사가 그대로 짓이겨지고, 달려오던 사백 여명의 병사가 그대로 터져나간다.

핏물과 살점들이 허공을 수놓는 그 그림 속에서, 고블린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미 그가 죽인 이들이 숫자만 수천이 훨씬 넘어간다.

황제 쿤린을 제외하고 가장 강하다 불리는 ‘찬란한 두 개의 섬광’은, 이 순간 확실히 지쳤다.

그때였다.

창주가 날아간 그곳에서, 거대한 한 줄기의 ‘섬광’이 고블린을 향해 날아온다.

지쳤던 고블린은 반응이 늦었다.

그렇게.

푸우욱-!

창주가 주로 사용하고, 가장 아낀다는 창, ‘황련風鍊’이 고블린의 명치를 깊숙하게 꿰뚫는다.

“쿨럭-!”

무릎을 꿇고 쓰러진 고블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먼지더미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창주 발라티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그가, 입가에 묻은 피를 슥 훔쳐내더니,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이내, 발라티에의 발이 고블린의 얼굴을 가격한다.

퍼어억-!

그 서늘한 피륙음에 병사들은 직감했다.

이겼다고.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된다고.

“미물 따위가!! 감히 내 몸에서 피를 내게 해!!”

일그러진 얼굴로 고블린을 걷어차는 발라티에의 표정은, 악마 그 자체였다.

한 번 더 고블린을 걷어차자 그의 몸이 꿈틀거린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퍼억-! 퍼어억!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인 고블린을 미친 듯이 후려 팼다.

물론, 입도 멈추지 않았다.

“빌어먹을 새끼! 네놈을 시작으로 나머지 마스터들은 물론 그 쿤린인지 군린인지 뭔지 하는 놈도 죽여주..."

타아앙-!

퍼석-!

모두가 당황했다.

갑자기 굉음이 울리고, 이어서 창주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갔으니까.

털썩-

발라티에의 목 없는 시체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저벅저벅-

문득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쓰러져있던 고블린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밀려오는 고통에 불구하고, 그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남자.

그가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겼고. 그곳에서 드러난 그 외모가, 너무나도 익숙했으니까. 이도.

황제와 거래를 하겠다던 사도.

그 인간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을 내려다보며, 한마디 툭 던졌다.

“소감은?”

짧은 말이었지만 고블린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듯하다.

그가,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최악이더군.”

“그래?’’

"..쿨럭.. 저들은 멸망을 막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 그냥.. 그 멸망은 자연스럽게 막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고블린의 말을 들으면서 발라티에의 시체를 흡수했다.

“그대들의 세상에는 신을 믿는 자들이 없었단 말인가? 정보가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원래 저런 심성을 가진 건지.. 우습더군. 우리를 죽이기 위해 자국의 병사들을 방패로 삼다니.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지켜야할 자국의 국민들을 희생시키다니!! 개인의 욕심이 멸망을 막으려는 욕심보다 크다니..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언젠가부터 숨을 혈떡이던 고블린이, 평상시의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드러나는 감정까지도 너무 세세했다.

이 상황은.. 익숙하다.

회광반조.

죽기직전, 잠시나마 맨 정신을 유지하는 그 모습이다.

그가 가슴에 꿰뚫린 창을 잠깐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다.

“그대는.. 다른가?”

다르냐... 글쎄.

“비슷하지만 같다고 할 수는 없지.”

그가, 물끄러미 나를 응시한다.

내 말에 담긴 뜻을, 파악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이상도 이하도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폐하와는 무슨 거래를 하려는 거지?”

나는 그대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조용히 속삭이자.

고블린의 입가에, 한줄기 빛살 같은 미소가 조용히 피어오른다.

“하...하하하... 그렇군... 그렇구나..하.. 하하하하!”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리더니 웃음을 뚝 그치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치 내 얼굴을 최대한 기억하고자하는 모습 같다.

그리고..

“다르군. 비슷하지도 않아. 그대는... 분명 황제의 자격이 있어.”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허리춤의 슈타이어를 꺼내들고, 그의 미간을 겨눴다.

“...가능하면 고통이 없는 지금, 빠르게 보내줬으면 좋겠군. ‘구원자’ 이도여.

구원자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권총에 기를 모았다.

방아쇠에 손을 걸치고 당기자.

타아앙-!

고블린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업적!「이종족 마스터 살해자」를 달성하셨습니다.]

[5,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 중략…

이어서 고블린의 시체를 흡수하자.

띠링!

[광폭률이 29%로 상승합니다. ]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의 시체를 기준으로 또 다른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확신했다.

이건 고블린 황제 쿤린이 있는 아까의 그곳으로 향하는 게이트라고.

들어가기 전 고개를 돌려 고블린들을 학살하던 시련자들과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싸움은 이미 멈춰있는 상황. 그들의 표정에 드러나 있는 감정은 분명 당황이었다.

“내 이름은 이도다.”

내 말이 조용히 울려 퍼진다.

"나는 멸망을 막을 거고,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거다.”

고블린의 복부에 박혀있던 장팔사모같이 생긴 창을 빼내고는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그 현상을 알아챈 시련자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고, 대륙의 주민들이 영문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에게,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게이트를 타고 발바라 대륙으로 돌아가라. 시련자들도 마찬가지고,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낄 무대가 아니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내 얼굴을 툭 쳤다.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이 오슨의 얼굴로 바뀐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다, 망설임 없이 게이트로 몸을 밀어 넣었다.

게이트로 진입한 내가,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지겹도록 봐왔던 전장의 모습이었다.

보자마자 기분이 매우 더러워진다.

사방에 살점이 날아다니고, 무기가 날아다니며, 시체가 쌓여간다.

피는 강을 이뤘고 강이 된 곳에 피로 목욕을 한 이들과 눈을 뜬 채로 죽어있는 이들.

종족을 불문하고 시체는 계속해서 쌓여갔다.

어마어마하다.

고블린 제국 전체가, 피로 들끓고 있었다.

당연히, 죽어나가는 쪽은 인간들에 비해서 고블린들이 월등히 많았다.

눈매를 좁혔다.

정면에서, 수십 명의 기사들을 방패삼아 두 고블린 마스터와 싸우고 있는 권주와 궁주가 보인다.

내 시야가, 조금 옆으로 돌아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고블린.

검은색 피부의 고블린 황제, 쿤린이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을 정말로 원하지 않았다는 듯.

매우 슬퍼한다고 해야 하나.

우습게도 그의 모습에서 형님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우습게도 말이다.

그가 조용히 눈을 뜨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조용히 그와 눈을 맞췄다.

나를 기다렸던 걸까.

쿤린의 맑은 눈동자가, 묘하게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매우 안타깝지만 힘이 없는 자의 정의는 짓밟힐 수밖에 없다.

나는 그걸 너무 일찍 깨달았고 쿤린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화살로 마스터 고블린을 저격하던 궁주가, 나를 발견한다.

“오슨!!!! 이 빌어먹을 놈이!! 왔으면 도와야지 거기서 뭘 하고 있어!!”

그리고는 기의 화살을 만들어 권주를 공격하려는 고블린에게 쏘아낸다.

솔직히 조금 안도했다.

창주가 왔을 때 짐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눈으로 보니까 안도감이 플러스가 된다.

모든 마스터를 자리에 모아놓고, 모든 고블린 마스터들과 황제까지 한 자리에 모아놓은 이 구도.

딱 내가 바라는 구도다.

분명하다.

쿤린은, 나와 통했다.

그때, 궁주의 화살을 피하던 고블린이 이어지는 권주의 주먹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허용했다.

퍼석-!

그의 머리가, 종잇장처럼 짓이겨지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그렇게, 마스터 고블린 하나가 정리되고 이제 남은 마스터 고블린은 하나,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권주에게 달려 들었다.

하지만, 권주는 맞서지 않고 뒤로 자리를 박찼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놈의 행동은 정말이지,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어서, 놈이 꽤 젊어 보이는 병사의 멱살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고블린에게 집어던진 것.

인간답지 않은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그 행동에 발바라 진영 쪽에 약간의 동요가 생겨났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듯한 표정.

조용히 지켜보던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매우 안쓰럽다.

이어서 권주가 자세를 잡고는 다시 고블린을 향해 자리를 박찼다.

“...이놈!!”

남은 마스터 고블린이 들고 있던 망치를 휘두르자, 날아오던 젊은 인간 병사가 그대로 터져나가고, 시간차를 두고 권주의 주먹이 고블린의 명치를 향해 내뻗어진다.

당연히, 마스터 고블린은 피하지 못했다.

퍼어억-!

중심을 못 잡고 옆으로 주춤거리던 고블린, 그때 궁주가 기다렸다는 듯 기운으로 만들어진 화살을 쏘아내고,

퍼억[!

마스터 고블린의 명치에 그대로 툴어박힌다.

앞서 말했듯, 이건 고블린들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머리수는 별개로 해도 종의 차이 자체가 너무나도 극심하기에.

단적인 예로 지금 권주와 궁주는 상처하나 없었다.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슈타이어를 꺼내들었고, 기운을 몰아넣었다.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고블린을 향해서 아닌, 궁주를 향해서.

타아앙-!

놈이 이변을 깨닫고 옆으로 몸을 틀자.

타아앙-!

한 번 더 쐈다.

결국 내 기탄은 놈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퍼억-!

“커헉... 오슨 이 새끼가..!!”

놈이 뒤로 털퍼덕 주저앉으며 외치는 목소리는 분명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배신한 것처럼 보이나보다.

어찌 보면 배신이기도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자.

나는 자리를 박찼다.

내 몸이 앞으로 뻗어나가고, 궁주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 뒤로 몸을 빼낸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 무시하고 총구를 겨눴다.

타앙-!

빛무리가 놈의 옆머리를 스친다.

마스터는 마스터다 이건가.

땅에 다리를 짚는 순간, 놈이 활을 내게 겨눈다.

돌풍과 함께 기운이 뭉치더니, 그곳에 화살이 생겨났다.

강기로 만들어진 필살의 화살.

내가 땅에 닿은 다리에, 힘을 준 그 순간,

쩌어어영-!

놈의 활에서 거대한 파공음이 들려온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찬란한 빛.

찰나의 순간이었다.

내가 다리에 힘을 주고, 그 자리에 잔상을 남기고 1m정도를 이동한 것이.

잔보.

놈의 빛은 내 잔상을 꿰뚫고 발바라 진영에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잔보가 미숙했던 걸까.

입고 있던 로브가, 기의 여파로 갈가리 찢겨져나갔다.

타격은 없었지만 매우 거추장스럽다.

자리를 박차는 것과 동시에 한손으로 로브를 벗어던졌다.

빠르게 궁주를 향해 총구를 겨눴고, 속으로 시동어를 외쳤다.

'기의 탄환.’

방아쇠를 당기자.

파아아아앙-!!

모아졌던 내 기운이,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뒤늦게 확인한 궁주가, 뒤로 자리를 박차려했지만 늦었다.

놈은 내가 만든 기운의 여파에 그대로 휩쓸렸다.

놈의 몸에 잘게 쪼개진 기운이 틀어박히고,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그때, 나는 란지에를 뽑아들고 있었다. 청명음과 함께, 내 몸이 한 번 더 앞으로 뻗어나간다.

크게 떠지는 놈의 눈동자와, 무언가 발악이라도 하려는 놈의 움직임, 모든 게 눈에 들어온다.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궁주의 목이 떨어진다.

알림음이 들려왔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아직 한 놈이 더 남아있으니까.

“이놈!!!! 배신을 한 것이냐!!!!”

중후한 권주의 목소리가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그 살기로 얼룩진 표정을 보자 양심이라는 부분이 살짝 아려온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정확히 배신은 아닌데... 권주가 흉신악살 같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찬다.

꽤나, 무서워 보일정도다.

달려오는 권주를 향해 총구를 겨누던 그때,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던 ‘황제’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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