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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38화 (38/131)

38화. 단 한 사람을 위한 에피소드(2)

“..허억!!”

눈을 뜨자마자 숨을 토해냈다.

젠장.

가슴이 따갑다.

아니 아프다.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여긴 대기실이다.

내 몸에는 대기실 특유의 ‘하얀빛’이 생겨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아파하는 거, 이 고통은 외상과 내상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고통이 아니라는 뜻.

젠장.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그리고 방금 내가 본건 대체 뭐지?

그때 쎄쎄와 눈이 마주쳣다.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조금 걱정된다는 듯이.

“...악몽이라도 꾸신거에요?”

악몽?

하...

악몽이라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바하무트가 등장한건 악몽이지만, 형님이 등장한건 길몽이다.

그 두 개가 합쳐진 거면.. 아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를 악물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푹신하다.

분명 기절했을 때는 바닥이었는데.. 지금 침대에 있다는 건..

고개를 돌려 쎄쎄를 바라보자.

그녀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쟤가 나를 침대에 눕혀 줬나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퀘스트창을 살폈다.

[31분 뒤 Episode에 진입합니다.]

24시간의 대기 시간중, 23시간 29분을 누워서 보냈나보다.

미치겠다.

곧바로 컨디션을 체크했다.

주먹을 쥐었고 발가락을 움직여보았으며 몸을 가볍게 스트레칭 했다.

확실하다.

지금, 내 몸은 정상이다.

소실된 선천지기는 ‘대부분’ 회복되었으며, 살짝 푸석해진 피부도 매끈하다.

물론 몸에 묻어있는 이물질은 모두 깔끔하게 사라진 상태.

가슴 어림에서 느껴지던 통증도 사라진 상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영문을 알 수가 없네..

잡생각을 지우고 보유 코인을 확인했다.

[보유 코인 : 49,829,150]

어마어마하다.

에피소드 재 입장까지 고작해야 30분 남았다.

잡생각 할 시간은 물론 그냥.. 시간이 별로 없다.

쎄쎄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능력치를 59레벨까지 올리려면 얼마의 코인이 필요하지?”

내 말에 쎄쎄가 조용히 허공에서 무언가를 조작한다.

“음... 3천... 아니, 3550만 코인이요.”

“기력 스텟까지 포함한 거지?”

쎄쎄가 고개를 끄덕인다.

3550만이라...

“69레벨 까지는?”

“모자라실 텐데요? 39레벨부터 69레벨 까지면 얼추 8천만 이상의 코인이 필요하거든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쎄쎄가, 그다지 얄미워 보이지는 않았다.

고민은 없었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든 능력치를 59레벨까지 올려줘.”

내 말에 쎄쎄가 싱겁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내 몸에서 빛이 나고, 온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대기실에 있던 기운들이 내 몸을 감싸고, 근육이 파괴되고 재생되며, 머리는 맑아졌고 감각은 더욱 더 예민해졌다.

시련자들이 ‘Episode #40’은 넘어가야 얻을 수 있는 능력치를, 나는 고작해야 Episode #3이 끝나고 얻게 된 것이다.

쎄쎄는 이제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말 그대로 이레귤러.

그냥 번외의 존재로 판단한 것.

픽 웃고 말았다.

솔직히 나는 욕심이 매우 많다.

그리고 지금, 매우 욕심이 난다.

몸이 강해지고 점점 인간의 탈을 벗어나가는 이 기분.

그래, 나는 중독됐다.

그리고 여기서 더 강해지고 싶다.

남은 코인은 약 1430만.

상점창을 둘러보았다.

마침, 내가 찾던 게 보인다.

[슈타이어 INOF][유니크Unique]

-기氣로 만들어진 탄을 사용할 수 있다.

-탄속과 유효 사정거리는 시전자의 기력 수치에 비례한다.

-하루에 한번 기氣의 산탄散彈을 사용할 수 있다.

가격은 무려 1250만 코인.

모습은 온통 흰색으로 물들어있는 ‘권총’의 형태였으며, 중간 중간 양각되어있는 무늬는 이 아이템의 희소가치를 올려주고 있었다.

언제였더라.

시련자들 중에도 총을 사용하던 시련자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압도적으로 총기를 잘 사용하던 ‘존 로드’ 라는 시련자가 사용하던 권총이 바로 이 슈타이어 INOF였다.

그는 이 권총을 비롯해 수많은 총기로 몬스터를 학살하기도 했으며, 기탄의 사수로써 이름을 날렸고 악마들과의 전쟁에서 후방을 담당하던 시련자중 한명이었다.

비록 격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꽤 강했던 그 시련자는 매우 안타깝게도 판링링에게 세뇌 당했고, 결국 박유정에게 죽었다.

그런데..

‘지금도 총기를 사용하려나?’

듣기로는 그가 에르큘 왕국 소속의 시련자라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이건 조금 후에 생각하자.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는 권총을 구매했다.

남은 코인으로는 맹의 증표를 6개 구매하고, 회복 효과가 매우 뛰어난 40만 코인짜리 하급 엘릭서를 2개 구매했다.

갑주를 자극해 오른쪽 허리춤에 권총을 집어넣을 홀더를 하나 만들고는 그곳에 끼워 넣었다.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약 9분.

그때.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습니다.]

이상한 메시지가 떠오른다.

저놈이, 행복해한다고?

띠링!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매우 행복해합니다.]

이놈도?

위화감이 느껴진다.

뭘까.

또 무슨 모략을 꾸민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내 직감이 외친다.

무언가, 불안하다고.

이내 눈매가 와락 찌푸려졌다.

예지력을 얻고 나서 조금 흐릿해졌다싶었지만, 나는 직감이 굉장히 좋다.

내가 아무리 많은 시련자들의 아이템을 얻고 형님에게 광전사의 갑주를 얻었다고 해도, 그런 걸로 내가 끝까지 살아남는 건 어불성설이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본은 당연히 이 초인적인 직감이다.

그 직감이, 지금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도 아닌 ‘악신’ 들에게서.

뭘까.

대체 뭐지?

혹시나 싶어 예지력이 발동하는 걸까 싶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

전조 현상이었던 이명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3분.. 2분... 1분..

쎄쎄가 말했다.

“...저는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나를 응시한다.

30초... 25초...

“...이도님이 오래 살길 바래요. 이건 진심이에요.”

쎄쎄의 말투에는 걱정이 한껏 묻어 나오고 있었다.

할 말은 저게 끝인 걸까?

20초...

10초...

예의상 한마디 해줘야겠다.

“그래 고맙....”

“살아남으세요.”

그녀가 내 말을 끊자, 나는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왜 나를 걱정하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묻지도 못했다.

빛무리가 나를 감쌌기에.

*

광장으로 소환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느낌이... 정말로 좋지 않다.

예지력이 발동하지 않는데도 이런 개 같은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다.

주변에 있던 시련자들이 뭐라 뭐라 떠들고, 한수아가 누구냐, 이 ***사단이라는 건 이름이 없는 거냐 뭐냐, 왜 여기에 소속된 거지 등등,

온갖 잡소리가 들려온다.

후우..

반사적으로 품에서 맹의 증표를 꺼내들었다.

여분으로 산게 아니라 박유정과 나눴던 증표다.

눈앞에 작은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박유정의 위치는 여전히 판테온 제국.

그런데..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

계속해서 옆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그때였다.

그녀의 모습을 나타내는 하얀 점이, 갑자기 점멸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깜박인다.

...설마 하는 순간, 빛이 훅 하고 꺼져버렸다.

“...이년이..?”

이건 하나밖에 없다.

그녀가 맹의 증표 효과를 풀었거나, 혹은 배지를 버렸거나.

조용히 목을 풀었다.

내가 아는 과거에서 형님을 좋아했던 여자, 그리고 형님도 좋아했던 여자.

지구를 구원했더라면 아마도 형님과 박유정은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곁에 두었을 때, 후에 나를 배신하게 될 여자.

나는 분명 그녀에게 기회를 줬다.

그녀가 지금, 내가 준 기회를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찾아가서.

죽이는 수밖에.

그 순간.

찌이이잉-!

예지가 발동했다.

**

“사...살려주세요...”

익숙한 목소리다.

박유정.

분명 박유정의 목소리다.

나에게 애원하는 걸까.

아니다.

“왜 그렇게 겁을 내고 그래? 그냥 권능 좀 가져가겠다는 건데.”

내 귓가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이건?

고개를 들었다.

잠깐.

고개를 들었다고?

지금껏 내가 보았던 예지는 내가 ‘나’에게 빙의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지금 이건, 내가 ‘나’에게 빙의된 게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는 형태.

나는 땅을 짚고 서있었다.

초토화되어있는 주변 상황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한 남자가, 박유정에게 다가가고 있는 모습.

그런데, 남자의 모습이 묘하다.

왜 이렇게 익숙한 거지?

순간, 박유정의 뒤로 주춤 거리더니 힘겹게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후우우웅-!

그녀의 눈앞에 기의 폭풍이 몰아친다.

하지만 미약하다.

발리스타 왕국 대전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그때의 위력보다 한참은 뒤떨어지는 위력.

이건 하나밖에 없다.

그녀의 감정이, 그녀의 그릇이 안정되지 못했기에.

공포에 질려있는 그 눈동자로 보아 확실하다.

박유정은, 겁에 질려있었다.

그때, 그녀의 눈앞에 있던 남자가 실소를 터트리고는 한쪽 발을 들어 바닥을 내려찍는다.

지켜보던 내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거.. 익숙하다.

저 남자가 익숙한 게 아니라.

저 남자가 발을 들어 바닥을 내려찍는 저 부분.

분명..

‘홀던 크리스틴’의 고유 권능, [중력]의 발동 조건이다.

아니나 다를까.

솟아오르던 기의 폭풍이 순식간에 가라앉더니, 이내 박유정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는다.

갑작스럽게 상승한 중력.

그녀가,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다.

최소 4배.. 아니. 5배. 그 이상이다.

미치겠다.

이게 시발... 대체 무슨 상황이지?

남자가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는 박유정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애원한다.

“살..살려주세요... 제발... 죽고 싶지 않아....”

바닥에 머리를 박은 박유정에게서, 정말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남자는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그녀를 내려다본다.

“그런데 너 아까 뭐한 거냐? 나한테 도망치면서 손에서 무슨 배지 같은 거 부수지 않았어?”

“그거... 별거 아니에요. 그냥.. 행운의 상징 같은 거...”

남자가 피식 웃고는 으음..하면서 작게 신음한다.

이내.

“넌 예쁘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니네.”

“..예?”

남자가 손가락에 힘을 주더니, 조용히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박유정의 눈빛이 돌변하고, 그녀의 손에서 단검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느리다.

그리고 중간에 정지했다.

그 단검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쪼그라들기 시작했기에.

“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손뿐만이 아니었다. 손을 시작으로 몸이 쪼그라들고, 뼈가 드러난다.

이내 박유정은 가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으로 추정되는 잿더미에서 빛나는 구슬 같은 게 튀어나오더니 남자의 몸에 흡수된다.

남자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짝!

박수를 치자.

후우우우우웅!!!!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의 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친다.

**

번쩍하는 빛무리가 나를 휩쓰는 순간, 나는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젠장.

이건 내 죽음에 대한 예지가 아니다.

그러면 혹시 내 '잠재적인 적'에 대한 위협?

아니다.

모르겠다.

중요한 건 하나다.

예지력의 형태가, 변했다.

띠링!

[칭호! 「이레귤러」의 페널티가 진화합니다.]

[당신은 효과가 있는 모든 종류의 아이템을 사용할 시, 그 효과가 20% 감소합니다.]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찼다.

*

뒤늦게 소환된 한수아가 이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정령술... 배웠는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그녀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한껏 묻어나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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