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36화 (36/131)

36화. 도주刀主를 죽이고.(3)

놈의 갑옷이 짓이겨진다.

타격은... 내 생각보다 크지 않나보다.

그런데, 이쪽 세상의 기사들은 무기를 놓으면 진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손잡이를 꽉 움켜쥔 놈의 모습이 우습기기까지 하다.

팔꿈치로 놈의 안면을 후려쳤다.

놈이 주춤한다.

그때 놈의 발이 내 옆구리를 향해 휘둘러진다.

심지어 강기까지 머금은듯하다.

방향은 놈을 기준으로 좌측에서 우측.

즉, 놈은 나를 두 동강 낼 생각이다.

이거였나 보다.

놈이 노린 게.

나는 그 자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푸우욱-!

뇌리가 찌릿하고 통증이 몰려온다.

아프다.

젠장.

인내심을 발휘했다.

놈이 쥐고 있는 도의 길이는 약 160cm, 그리고 내 몸은 놈의 손잡이 코앞까지 와있는 상황.

즉 놈의 발은 대상을 잃었다.

대상을 잃은 놈의 발이 허공을 짓이긴다.

“..어?”

놈이 당황해한다.

그리고 이 구도, 오랜만이다.

그대로 입을 벌렸고 망설임 없이 놈의 목을 물어뜯었다.

콰드득-

피와 살점이 묻어나온다.

삼키고는 한 번 더 물어뜯었다.

입가에 뜨끈한 피가 가득 차오른다.

동시에 놈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이다.

놈은 질겼다.

오슨보다 더.

입을 떼네고는 주먹을 쥐고, 놈의 부서진 갑옷, 그 안에 보이는 내갑을 향해 휘둘렀다.

퍼거걱-!

놈의 내갑도 짓이겨진다.

심장을 터트리기엔 모자랐다.

그때 놈의 눈동자에,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후 벌어진 매캐넌의 행동은 ‘누군가’의 행동과 비슷했다.

바로 오슨.

내게 당했던 오슨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캐넌이 발을 들어 올리더니 내 몸을 밀어 찬 것이다.

퍼억-!!

내 몸이 주르륵하고 밀려난다.

필사적으로 놈의 도를 움켜쥐었다.

젠장, 복부가 쓸리는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내 복부는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역겹다.

무언가 턱 끝을 타고 터져나오려한다.

참았다.

아니, 그대로 삼켰다.

양 다리에 힘을 주고, 오른팔을 접었다.

그리고 한걸음 내디뎠다.

내 몸이 밀려난 거리만큼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퍼거걱-!!

한 번 더 놈의 안면을 후려쳤다.

놈의 턱이 부서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놈의 눈동자에는 아직 빛이 들어와 있었다.

그때였다.

놈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도망치려는 걸까, 아니면 박투로 승부를 보자는 걸까.

복부에 도를 꽂은 채로 오른 주먹에 온힘을 집중시켰다.

놈이, 뒤로 자리를 박차려한다.

아무래도 도를 놓은 건 박투를 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도망치기 위해서였나보다.

놈이 다급하게 외친다.

“...자..잠깐!!”

내 심상치 않은 기운에, 놈의 목소리가 파묻힌다.

나는 느꼈다.

허공의 기운을, 그리고 그 길을.

나는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기가 밀려나며, 땅이 터져나가고, 그 기파에 휩쓸린 매캐넌이 그대로 날아간다.

띠링!

[전설傳說 스킬 강기폭류罡氣爆流를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레귤러입니다.]

[전설傳說 스킬 강기폭류罡氣爆流가 삭제됩니다.]

[새로운 능력치, ‘기력氣力’을 획득하셨습니다.]

기력이라... 솔직히 진작에 얻어야하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아있었다.

물론, 이유도 짐작이 간다.

혈기를 강제로 자극해 한계를 뛰어넘은 내 몸은, 엄밀히 말하면 ‘기물’의 힘을 빌린 것이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것을 온전한 내 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겠지.

그리고 지금은 혈기의 기운이 매우 약화된 상태.

온전한 나의 힘과 기물의 힘, 그 사이의 균형추가 내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었다는 증거다.

이어서.

띠링!

[칭호! 「킹 슬레이어(2/5)」가 진화합니다.]

[다섯의 왕을 죽인 자 인간의 허물을 벗으리라.]

[5,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오늘도 왕을 죽였습니다.」를 달성하셨습니다.]

[3,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누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했냐? 두 번이 더 어렵다.」를 달성하셨습니다.]

[5,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상체가 그대로 짓이겨지고, 양 다리는 물론 목까지 기형적으로 꺾여있는 클레시스 매캐넌.

놈을 잠시 바라보다 나는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몸에, 힘이 없다.

우르릉-!

초토화된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먼지구름이 계속해서 피어오른다.

후우...

이를 악물고 복부에 박혀있던 도를 그대로 뽑아냈다.

빼내니까 더 아프다.

젠장.

“쿨럭-”

이렇게 피를 토해낸 게 얼마만인지.

한 번 더 심호흡했다.

갑주가 내 의지에 맞춰 움직인다.

꿰뚫린 복부는 갑주가 감싸주고, 출혈을 강제로 막아준다.

거기다 잘려나가고 조각난 내장기관들도 강제로 이어 붙였다.

나는, 움직일 수 있다.

아프긴 하지만 괜찮다.

참을만하다.

아니 참아야한다.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 매캐넌에게 다가갔다.

놈의 시체를 흡수하자.

띠링!

[광전사의 전신 갑주의 기운이 더 농밀해집니다.]

[광폭률이 10%를 넘어섰습니다.]

언제 뜨나 했었다.

광폭률.

길게 말 할 필요 없다.

광폭률을 100%달성하게되면 갑주는 성물로 변한다.

성물로 변하면 이 갑주는 갑옷의 형태가 아닌 무형의 기운만 남게되며, 본인의 의지로 갑주와 혈기를 따로 분리할 수 있다.

짧게 심호흡하며 걸음을 옮겼다.

먼지 구름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자.

“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내가 데려온 병사들 모두가 환호하고, 시련자들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매캐넌 왕국 소속의 주민들은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그들은 나라를 잃긴 했다.

띠링!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못마땅하다는 듯 표정을 구깁니다.]

[선善에서 군림하는 자가 조용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플래카드를 들어 올리며 환호합니다.]

조용히 몸 상태를 다시 체크했다.

일단 얼굴, 여전히 변장의 가면은 작동중이다.

그리고 전신...

삐걱이긴 하지만 괜찮다.

걸을 수만 있으면 된다.

마무리가.. 후우...

아직 남은 절차가 있으니까.

인벤토리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고는 그대로 들이켰다.

고통이 조금 줄어든다.

움직임이 조금 편해졌다.

천천히, 무너진 돌 무더기 중, 그나마 큰 곳으로 올라갔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자 환호성이 줄어든다.

전장 전체가, 침묵에 잠겼다.

“...왕이 없는 왕국을, 어찌 왕국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모두가 내 입을 주시하고, 내 존재감이 주변 전체를 짓누른다.

시련자들은 내가 자신들과 같은 ‘시련자’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터.

마저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이 지역은 발리스타 왕국의 부속령이 되었음을 선포한다.”

조용한 내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로 파고든다.

그들 모두가, 내 말과 내 위압감에 할 말을 잃었을 때.

띠링!

[업적! 「명장중의 명장을 달성하셨습니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죠. 그 어려운걸 해내셨네요.]

[2,50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오늘 왕국을 점령했습니다를 달성하셨습니다.」]

[2,00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중략-

띠링!

[모든 시련자들에게 알립니다.]

[매캐넌 왕국은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전 매캐넌 왕국 소속의 모든 시련자는 발리스타 왕국 소속 시련자로 변경됩니다.]

[에피소드 재입장시, 소환 위치는 발리스타 왕국 중앙 광장으로 통일됩니다.]

[모두 무운을 빌겠습니다.]

모든 시련자들이 오늘 매캐넌 왕국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건 고작해야 한 발자국 나선 것일 뿐이며, 오늘부터 하루에 최소 한개의 왕국이 무너질것임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백마위에 타있는 한수아가, 나를 바라본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매가 슬며시 호선을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떠오른다.

주변 시련자들과 병사들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명화와도 같은 장면.

그런 그녀를, 나는 계속해서 응시했다.

*

그 시각-

판테온 제국에 있던 한 시련자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것 봐라?”

남자, 에릭의 눈이 조용히 허공을 응시한다.

[칭호! 「권능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의 격格이 소폭 상승합니다.]

[1,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나는 가진다 너는 내놔라.」를 달성하셨습니다.]

[1,000,00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당신에게 2,00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당신에게 50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침묵의 암살자가 당신에게 40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에릭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깝죽거리던 한 여자를 죽이고, 흡수를 발동하자 갑자기 어마어마한 코인을 후원받았다.

참고로, 현재 진행형이다.

보유 코인을 확인했다.

[보유 코인 : 8,432,520]

“...뭔데 대체”

띠링!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당신에게 호감어린 눈빛을 보냅니다.]

[선善에서 군림하는 자가 조용히 눈매를 좁힙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에릭은 조용히 허공을 응시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으나..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어있는 수십 명의 시련자들과 수천마리가 훌쩍 넘어가는 고블린 시체들.

그리고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400여 마리의 고블린.

살아남은 시련자들도 꽤 많긴 했지만... 그닥 의미가 없었다.

에릭은 조용히 양 주먹을 마주쳤다.

턱-

이내.

콰아아아아아앙!!

고블린들이 있던 땅이 그대로 터져나간다.

이어서 한쪽 발을 들어 바닥을 내려찍었다.

쿵-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친 돌 파편들과 고블린들이 허공에서 우뚝 정지하더니. 자유낙하의 속도로 바닥에 추락한다.

아니, 그 속도는 평범한 자유 낙하 속도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중력에 비해, 두 배에서 세배정도 더 강해진 인력.

이내.

콰아아아아앙!!!

땅에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나고, 먼지 더미가 피어오른다.

더 볼 필요도 없었다.

그 크레이터 안에, 모든 고블린이었던 것들의 살점과 뼈들이 퍼져 있었을 테니까.

에릭은 몰이 사냥꾼 업적을 깼다는 알림음을 듣고 확신했다.

살아남은 고블린은 없다.

에릭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코인이라는건, 고대부터 기축통화로 유명했던 금과 비슷했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냥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게 분명한데...

순식간에 800만 코인이라는 어마어마한 코인을 얻었다.

주변에있던 시련자들은 고작해야 1만에서 10만 사이의 코인을 얻었는데 말이다.

이건...

'내가 가장 앞서있다..이건가?'

의문으로 끝났지만 에릭은 확신했다.

시련자들중에서, 자신보다 앞서나가고있는 자는 단 한명도 없을거라고.

에릭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밑에 심장이 꿰뚫린 채 죽어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음...

“이름이 크리스틴 이라고 했나? [중력]이라.. 이거 괜찮네?”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고는 그녀의 금발 머리를 잡아채며 들어 올리자 빛을 잃은 눈동자가 보인다.

에릭은 그 눈빛과 그녀의 얼굴을 잠시나마 감상했다.

정말이지..

“아까워.. 딱 내 취향인데... 그러게 왜 거슬리게 하고 그래... 쯧.”

가볍게 혀를 찬 에릭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미련 없다는 듯 옆으로 집어던졌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자. 주변에서 미약한 환호성이 들려온다.

띠링!

환호성과 함께 들려오는 알림음 소리.

에릭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새롭게 갱신된 메시지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당신에게 신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묻습니다.]

신이라...

글쎄..

“싫은데?”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허탈하게 웃습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건방 떨지 말라며 외칩니다.]

에릭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하늘로 높이 치켜 올릴 뿐.

[시작을 알린 아룡이 폭소를 터트립니다.]

[선善에서 군림하는 자가 폭소를 터트립니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에릭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보니까.

신들에게도 계급이 있는 것 같고, 거기에 악을 지배한다는 저 신은 최상위 신일 확률이 높으며.

저렇게 대놓고 웃는 저 두 명의 신은 악을 지배하는 신과 동급의 신인 것과 동시에 대립하는 존재.

지구에서 경영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던 에릭은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생각보다 편협하고 감정에 치우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런걸 어떻게 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저 힘센 인간이지.

거기다 먼저 관심을 표했다는건 원하는게 있다는 뜻.

굽힐 필요가 없다.

에릭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주변에 있던 시련자들이 뒤로 주춤 물러선다.

그들의 눈에 담겨져 있는 것은 분명 공포였다.

그때였다.

띠링!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당신에게 거래를 제시합니다.]

“거래?”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당신에게 ‘신화’ 등급의 아이템 하나를 후원해주겠다고 합니다.]

그 메시지가 뜨는 것과 동시에.

띠링!

[시작을 알린 아룡이 양 발로 바닥을 미친 듯이 찍습니다.]

[선善에서 군림하는 자가 ‘악惡을 지배하는 자’를 노려봅니다.]

에릭의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신들이 저렇게 난리치는걸 보니 보통 아이템은 아닌 것 같다.

마치 부하 직원의 결재를 받으려는 기업체의 임원처럼 에릭은 팔짱을 꼈다.

“들어는 봅시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