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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34화 (34/131)

34화. 도주刀主를 죽이고.(1)

이게, 조금은 우습기까지 하다.

언젠가 언급한적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들과 예지력은 정답이 아닌 단순한 힌트에 불과하다.

조금 더 깊게 가자면 미래의 정보는 그렇다 쳐도, 예지력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애매하다.

Episode #2가 시작될 때 나는 한수아를 죽이겠다고 결심했고 예지가 발동됐다.

그 이후로 예지는 단 한 번도 발동하지 않았다.

아니,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권능이라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게 아니라면, 이제 더 이상 내 목숨을 위협할 존재가 없다는 뜻일까?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나?

정답이 아닌 힌트이기에 더 이상 생각해봤자 머리만 복잡해진다.

화제를 돌렸다.

여기서 대신관이 장난질을 했다는 것은, 당연히 미래의 정보들과 현재의 내 상황으로 미루어 추측한 결과.

당연히 나는 그놈 손에 놀아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반응 정도는 해줘야겠지.

그리고, 만약에 만약이라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대신관의 장난질이 아니라 정말로 신들이 개입해 몬스터의 소환 위치가 바뀌었을 상황.

그건..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계획을 조금 더 앞당겨야 할 정도로 꽤 큰 문제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정말로.

깽판중의 깽판.

개판중의 개판이 벌어지겠지.

가능하면 우리, 거기까지 가지는 말자.

*

내 대비책은 별게 없었다.

아니, 사실 대비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일단 오늘 오전에 제물이 될 뻔한 이들 중 2천 명 정도를 병사단에 편입시켰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의적으로 입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아마 머지않아 병사로 입대하는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터.

나는 그들을 비롯해 총 3만여 명의 병력을 남동부 성벽에 파견시켰으며, 그 책임자로 병사단 단장인 주체와 성미령, 그리고 나성진을 보냈다.

물자 보급 등의 아주 '작은' 문제가 생기긴했었지만 어차피 먼 곳으로 파병가는것도 아니다.

그들이 챙겨야하는건 오직 무기와 갑옷, 그리고 약간의 식수, 그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주체를 제외하고 내가 보낸 성미령과 나성진은 솔직히 막말로 낙하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병사단장 주체는 정신머리가 조금은 제대로 박혀있었다.

주체는 이름뿐이긴 하지만 그 둘에게 부관 내지, 전술 자문 자리를 주었고, 그걸로 나성진과 성미령은 새로운 업적을 달성했다.

뭐였더라.

최초로 부관이 된 자랑, 최초로 전술 자문이 된 자 였나?

보상은 각각 5만 코인.

그쪽으로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그들이 정리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기사단 전부와 약간의 병사들을 이끌고 골짜기로 향했다.

[천상의 학살자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당신의 무능함에 탄식합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흥미롭다는 듯 당신을 주시합니다.]

내가 데려온 병력은 정확히 7천.

신들이 의아함을 내비치는 것도 당연하리라.

신들뿐만이 아니었다.

내 옆에 있던 신관 제파를 비롯해. 기사단 단장인 케인까지.

그들이 왜 계시와는 다르게 움직이냐는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이중에서 내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건 한수아 말고는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뭐라고 했더라.

“골짜기 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더군. 그곳에서 대기한다.”

라고 했던 것 같다.

소환 시간은 정확히 19시. 현재 시간은 18시 59분이다.

나와 내 명령을 받는 기사들은, 이곳의 이동 수단중 하나인 말을 탄 채로 조용히 정면을 응시했다.

분명 초록빛이 울창하던 숲이, 이제는 검회색의 잿더미들로 물들어있었다.

간밤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참사중 하나.

이곳에서 수백의 사도가 '원인모를 화재'로 인해서 죽었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죽은 그들의 영혼이 주변을 떠돌아다니기라도 한 것일까.

분위기마저 을씨년스러웠다.

타고 있던 백마가 미약하게 불안해 하는 것이 느껴진다.

손으로 백마의 갈기를 쓸어내렸다.

백마가, 안정된다.

내 뒤에 타고 있던 한수아는 애초에 떨린 적이 없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언급 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어렸을때 승마를 배운적이 있었다.

5개월인가 6개월인가.

매우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 배웠던 얄팍한 지식들과 월등히 상승한 지금의 몸 상태로, 말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망신 수준이리라.

내가 오슨이 아니라는 걸 아는 기사들과, 그렇지 않은 기사들 모두가 내 승마술을 보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니,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59분 58초.

59분 59초.

...

19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하다.

골짜기는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쿠구궁-

굉음과 함께 하늘이 열리고, 그곳에서 총 여섯 개의 빛무리가 대륙에 내리쬔다.

너무 멀어서 거의 실선처럼 보이는 서너 줄기의 빛기둥과, 그나마 가까운 곳에 보이는 큼지막한 두개의 빛기둥.

하나는 매캐넌 왕국 쪽이고, 다른 하나는... 발리스타 왕국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30키로 정도 떨어져있는 동남부 성벽, 그곳이다.

[천상의 학살자가 안타까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쌤통이라며 당신을 향해 비웃음을 날립니다.]

[항상 속이는 장인이 속고 속이는 게 세상 아니냐며 당신에게 격려의 말을 보냅니다.]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놀랍게도 대신관은 구라를 치지 않았다.

즉, 신들이 개입해 에피소드의 방향을 바꿨다.

이거,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니다.

이건 매우 큰 의미를 시사한다.

내가 아는 힌트들이, 신들에 의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의미...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무언가가 나를 계속 압박하고, 나는 그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지금의 상황.

왜 이럴까.

정말..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캐넌 왕국으로 이동한다.”

“...예?”

기사단 단장이 벙찐 표정을 짓고, 제파가 화들짝 놀랐다.

그때 내 뒤에 앉아있던 한수아가 양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싼다.

꽤나, 괜찮은 감각이다.

그 손길을 느끼며 말했다.

“오늘, 매캐넌 왕국을 정리한다.”

말고삐를 움켜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내가 아는 힌트들이 무용지물이 되기 전에 모든 걸 얻어야한다.

굳이 손으로 얼굴을 만져볼 필요도 없었다.

아마도 나는, 웃고 있을 테니까.

*

”대체... 저 미친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야!!”

한 남자가 붉어진 얼굴로 정면을 바라본다.

매캐넌 왕국과 발리스타 왕국,

그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공터에 어림잡아 수천 이상의 병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성벽으로부터 거리는 얼추 300m.

그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있었다.

그리고 지금, 정확히 성문을 기준으로 100미터 전방에서 멈춰선 채로 전열을 가다듬는다.

젠장.

저건 누가 봐도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성벽위에 서있던 남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야!!!”

굵직한 인상과 각진 사각턱.

그리고 거대한 덩치와 입고 있는 갑옷으로도 숨기지 못하는 엄청난 근육.

제국의 다섯 개의 별중 하나이자, 매캐넌 왕국의 왕으로 있는 도주刀主 클레시스 매캐넌.

그는 지금, 당황이라는 감정을 넘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현재 이곳에있는 병사의 수는 4천.. 지금 당장 남쪽 성벽에있는 모든 병사들과 기사를 이곳으로 불러 저들을...”

“황제는!!!”

“..예?”

“율리우스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냔말이다!”

분노 가득한 매캐넌의 말에 매캐넌 왕국 재상은 당황했다.

솔직히, 이 말을 해야 할지 그로서도 매우 고민되는 듯 한 표정이다.

“..그게... 서로 간에 생긴 오해는 서로가 풀라고 하셨습니다.”

매캐넌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진다.

그러다 문득 고블린들이 소환되기 전의 일이 떠오른다.

‘오슨 발리스타와 함께 반역을 모의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인가요?’

‘...’

‘사실인가 보군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뭐?’

‘오슨 발리스타와 싸우세요. 그를 죽인다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건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요 폐하.'

'생각이라... 재미있는 말이에요. 잊지마세요. 오슨 발리스타를 죽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이 될거라는걸.'

그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었다.

매캐넌은 고개를 들었다.

오슨과 함께, 제국을 무너트리자고 모의를 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들통 났다.

다른 이도 아닌 바로 황제에게.

젠장.

잡생각이 끊긴다.

매캐넌은 구겨진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마치 준비 된 것처럼 병사를 도열 시키는 오슨 발리스타가 시야에 들어온다.

단순한 위협일까 아니면 정말로 전쟁을 하자는 걸까.

그것보다.

황제는 대체 반역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내 쪽에서 정보가 새어나갔을 리가 없다... 그러면... 설마.. 저놈이..?’

매캐넌의 머릿속에서, 오슨이 사도 두 명을 발리스타 왕국으로 보내라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 이후, 마치 짜 맞춘 것처럼 황제가 연락을 했고 두 사도를 오슨에게 보내라고 했었다.

아무리 마스터들이 오만방자하다해도, 황제는 황제다.

매캐넌은 그 말을 따랐다.

판링링과 박유정을 발리스타 왕국으로 순순히 보낸 것은 그런 이유였던 것.

그런데 물밑에서 조용히 준비하던 반역은 들통났고, 황제는 오슨과 싸우라고 하고, 오슨은 기다렸다는듯 쳐들어온다?

상황이 머리속에서 그려진다.

최근부터 이상해진 오슨의 오만방자했던 그 태도와, 들통난 반역.

즉, 오슨과 황제가 손을 잡았다.

목적은 뻔하다.

“나를 제거하려고? 그래 그거구나... 황제랑 오슨 이 머저리 새끼 두 놈이 나를 죽이려고 작당모의를 했다 이거구나!”

옆에 있던 재상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선다.

황제,

명실상부한 최고의 권력자인 황제를 저렇게 부르는 건 그 자체로 대역죄나 다름이 없었지만, 솔직히 재상으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발리스타 왕국을 독립 지역으로 선포한다고 했었나?’

재상은 바보가 아니다.

이건 단순한 작당모의가 아니다.

이건 전조현상이다.

무언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려는.

눈앞에 있는 매캐넌이 등에 차고 있던 도검을 내뽑는 모습을 바라보며, 재상 자넬리는 생각했다.

제국 체계에 따르면 왕국의 도시와 그곳에 있는 재산, 그 모든 것들의 소유주는 황제이며, 왕국의 관리 또한 황제의 명령을 받은 제국 소속의 행정관이 파견되어 관리한다.

그런데 독립지역?

이건 발바라 대륙에 독립된 두 개의 나라가 생겨났다는 뜻이다.

하나는 판테온.

그리고 하나는 발리스타.

그게 뜻하는 것은 수십 년 전 벌어진 제1차 대륙전쟁이후, 처음으로 통일 제국 판테온을 제외한 '국가'가 들어섰다는 뜻인데.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다.

대륙의 멸망이니 뭐니 하는 신의 계시가 내려오고, 사도가 내려오고, 몬스터가 소환되고, 통일 제국은 이제 더 이상 통일 제국이 아니게 되었으니.

자넬리 재상은 확신했다.

곧, 대륙에 거대한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라고.

“내 저놈을 반드시 죽이고!! 율리우스 그놈도 죽여 버릴 것이야!!!”

자넬리 재상은 그런 매캐넌을 이 멧돼지 같은 놈을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정말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이놈은 뇌속까지 근육으로 차있는게 확실하다.

지금은 다른걸 다 떠나서 그냥... 도망 쳐야 하는 타이밍이 확실한데...

이렇게 계속 혼잣말을 하는 여유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더 웃긴건 그 혼잣말도 이제는 너무 자주 듣다보니, 이게 명령인지 그냥 자기 혼자 중얼거리는건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반역? 좋다! 오늘 저놈을 죽이고 재상을 시켜서 병사들을 모아 제국으로 진격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무너트려주....”

매캐넌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백마에 타고 있던 한 남자가 말에서 내리더니 자리를 박찼으니까.

정확히는 오슨 발리스타가, 순식간에 십여미터 높이의 성벽위로 올라왔다.

매캐넌의 입 꼬리가 꿈틀한다.

이내.

매캐넌은 미친 듯이 들끓고 있는 분노와 함께,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오냐!! 오늘 끝을 보자꾸나!!”

매캐넌은 망설임 없이 ‘오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뒤로 자넬리 재상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미친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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