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33화 (33/131)

33화. 개입하다(2)

복도에 도열해있는 두 명의 기사와 한 노인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해야하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들이, 바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전하!!!”

슬쩍 눈꼬리가 꿈틀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가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재상으로 임명한 소천이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어찌된 게 이 노인은 나를 볼때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걸까.

그런데, 이 노인의 눈깔이.. 참 거슬린다.

처음에 이 노인을 보았을 때 무언가 연기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평정심이 흐트러진 것일까.

지금 노인의 인상은 기이한 어둠을 품고 있었다.

하긴, 오슨 발리스타에게 행정부장으로 임명될 정도면, 적어도 이 노인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뜻.

음...

“...다 죽여 버릴까...”

나지막한 내 말에 두 기사가 빠르게 무릎을 꿇는다.

소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말없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놈들이 문 밖에서 대기했던 이유는 너무나도 뻔했다.

이들은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 나를 죽이고 안에서 나올 브릴란트를 기다렸던 것이다.

공모를 했던 걸까?

그렇다면 이놈들은 언제부터 내가 오슨이 아니란 걸 눈치 채고 있던 걸까.

무슨 트루먼 쇼도 아니고.

짧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대전 안에 있는 시체들 전부 치우고, 부서진 곳 원상복구 시켜놔.”

“예...예?”

“그리고 거기 너희 둘.”

손가락으로 덩치 큰 두 남자를 가리키자. 그 둘이 고개를 번쩍 치켜든다.

“신! 기사단 단장 케인,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신! 병사단 단장 주체,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한 놈은 서양인과 흡사한 외모였고, 다른 한 놈은 동양인과 흡사한 외모였다.

딱 봐도 기도 자체가 달라 보인다.

그간 이름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기소개를 해주네.

“너희는 지금부터 병사들 모으고, 전투준비 시켜놔.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게.”

“...그 말씀은...?”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닐 테고, 아마 내 태도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은 거겠지.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건, 무슨 생각을 했건 관심 없다는 말이다.”

“전하!!!!”

모두가 감격한 듯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유의 깊게 살폈다.

이놈들은 브릴란트와 같은 ‘신념’을 가진 놈들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브릴란트는 고작해야 다섯 명의 기사만 데리고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그 다섯의 기사는 브릴란트가 믿고 있던 놈들이다.

정리하면 간단하다.

브릴란트는 애초부터 죽음을 각오했었고, 자신의 최후를 지켜봐 줄 이들로, 대전안에서 울부짖고있는 저 다섯의 기사를 '선택' 한 것이다.

내 눈이, 조금 가라앉는다.

브릴란트의 등을 떠민 이놈들은, 마치 브릴란트에게 빌붙으려는 거머리처럼 보인다.

거머리... 거머리라.. 너무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소천.”

“예 전하.”

“저기 안쪽에 있는 사도는 판테온 제국으로 워프시켜주고... 그 제파인지 쪽파인지 뭔지 하는 신관은, 오지 않았나?”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소천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나는 슬며시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져주었다.

그가 흠칫 몸을 떤다.

“내가 오슨이든 아니든. 내가 지금 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너희 셋과, 황제. 그리고 몇몇 사도랑 저기 대전 구석에서 질질 짜고있는 다섯명의 기사말고는 없어. 대충 상황으로 보니까. 너희 셋이 브릴란트의 등을 떠민 거 같은데.. 다 집어 치우고, 따로 원하는 게 있었던거같은데, 맞나?”

“...”

말하지 못하는걸 보니, 정말로 이놈들은 거머리 새끼들이었나 보다.

“브릴란트는 ‘반역’을 했고, 내게 죽었다. 그렇게 발표하도록.”

내 말에 모두가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오랜만에 얼굴에 가면을 썼다.

이 칙칙한 분위기를, 조금 풀어야 할 것 같다.

“너희가 브릴란트의 옆에 붙어서 무엇을 얻으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 큰걸 줄 수 있다. 그걸 보여주도록 하지.”

“...보여주신다면..?”

“이 발바라 대륙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왕국, 너무 많아. 나는 그 수를 하나로 줄일 거다.”

내 말의 뜻을 알아챈 셋이 숨을 헉하고 들이마신다.

“그래, 이 대륙에는 판테온 제국과 발리스타 왕국만이 남게 되겠지.”

“...그 이후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소천의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을 떼고, 여전히 무릎 꿇고 있는 병사단의 단장 주체의 어깨에 턱 올렸다.

“정말로 궁금하면, 끝까지 따라와 보던가.”

씩 웃자, 주체가 한 번 더 고개를 깊숙이 숙인다.

더 숙일 고개가 없어 보일정도다.

그 옆에 있던 케인의 어깨도 살짝 두드려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브릴란트의 목을 광장에 효수하도록.”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왕국 소속의 사도들은?”

“귀빈실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귀빈실이라..

“소천 너는 신관을 귀빈실로 부르고, 너희 둘은 아까 말했던 대로 병사들 준비시켜놔. 내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사실 신관을 만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알기로 #3에서 나올 몬스터들은 여전히 고블린들이다.

다만 그 숫자가 무려 일반 고블린 1만에 족장 1천으로 늘어났을 뿐.

그리고 그들이 소환되는 장소는 #2에서 고블린이 소환되었던 그 골짜기다.

그래도, 확실히 하는게 좋겠지.

입꼬리가 꿈틀 떨려온다.

나는, 오늘 두 가지 일을 하려 한다.

하나는 고블린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

둘째는 매캐넌 왕국을, 정확히는 클레시스 매캐넌을 죽일 것이다.

사실, 율리우스의 주민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그 말은 내게 별 의미가 없었다.

나는 애초부터 주민들에게 손 댈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기사들은 물론이고 병사들도 마찬가지.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힘'을 가지고있는 마스터들이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성장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숨이 필요하니까.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 부터 해결해야한다.

귀빈실로 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닥친 일은 당연히 Episode #3다.

오늘 중으로, 저 두가지 일은 무조건 끝내야 한다.

그것도 매우 깔끔하게.

*

“길 비켜 씹새끼들아!”

“아니, 안에 계시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팔이 쑤신다고! 신관이라도 불러주던가!!”

“이러지 마십시오. 적당히 하시란 말입니다!!”

“우리 사도야! 니네 천벌 받고 싶어?”

[천상의 학살자가 아무리 그래도 천벌은 무리라고 말합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그냥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성미령과 나성진이 입에서 걸쭉한 욕설을 내뱉으며 두 명의 기사와 몸싸움을 벌이는 중이었고.

“어어? 이봐!! 너는 또 왜 그래!!”

조금 덩치 있어 보이는 기사를 향해 다른 기사가 결연한 표정으로 덮치고,

“수아야 저놈. 저기 검 뽑으려고 하는 놈 저 새끼도 빨리!!”

성미령의 말에 한수아가 재빨리 몸을 움직이며 또 다른 기사한테 매혹을 걸고.

개판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어울릴 수가 없다.

그때, 다른 기사에게 재차 매혹을 걸려던 한수아가 멈칫한다.

한숨을 내쉬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에.

한수아를 시작으로 남은 기사와 에덴의 단원들이 모두 나를 바라본다.

반응은, 기사들이 더 빨랐다.

“전..전하!!!“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무릎을 꿇는 기사들.

에휴. 지랄한다.

말없이 그들에게 걸어갔다.

눈치 빠른 한수아가 재빨리 매혹을 풀었고 매혹에 걸렸던 두 기사도 남은 기사들처럼 재빨리 땅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성미령과 나성진이 쌤통이라는 듯 한 표정으로 뒤로 한걸음 물러서자 나와 기사들의 작은 공간이 마련되었다.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물었다.

“내가 누구지?”

“전...전하십니다.”

알긴 아네.

실소가 터져 나올 뻔했다.

음..

“브릴란트가 코르시우스와 함께 반역을 준비하고 있었더군. 너희들도 그들과 한패인가?”

훅 치고 들어오는 내 말에 기사들이 예의도 잊고 머리를 치켜든다.

“절대!! 아닙니다!!! 그저, 대장군... 아니, 브릴란트 그놈이 사도님들을 귀빈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

그중에서 유독 발언권이 강해보이는 기사.

어깨에 두 개의 깃을 달고 있는 놈이 빠르게 말하던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뒤늦게 파악한 것이다.

내 모습이. 평소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얼굴을 제외하고, 걸치고 있는 곤룡포는 물론, 검은색 전신 가죽 갑주는 별반 다를바가 없었지만 그 분위기.

묘하게 갑옷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압도된 것이다.

그리고, 오슨의 얼굴로 변한 내 눈동자.

가면으로 가리긴 했으나 지금의 나는 혈기를 자극한 상태다.

그 안에 담긴 광기와 미약하게 흘러나오는 살기.

그것을 기사는 느낀 것이다.

말을 멈춘 기사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벌벌 떤다.

정말로 애처로워 보일 정도다.

조용히 놈을 바라보다 한마디 툭 내던졌다.

“소천에게 가라. 그가 명령을 내려 줄 터이니.”

“며...명을 받듭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사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연기처럼 빠르게 흩어졌다.

흩어진 수준이 아니라 그냥 사라진 수준이다.

이 자리를 벗어난 것만으로 천운이라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한수아, 나성진, 성미령..

이들은 방금, 왜 기사들과 대치했을까.

뻔했다.

나를 걱정한 거겠지.

잠깐 그들을 바라보다, 손을 들어 눈앞에 있는 한수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물론 이 말을 빼먹지는 않았다.

“고개 들지 마라.”

“...네”

성미령이 묘한 눈으로 나와 한수아를 응시하고, 나성진이 남은 한쪽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그들의 모습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진다.

성미령이나 한수아는 그렇다 쳐도, 나성진은 왜?

나한테 반감을 가지고 있을게 뻔한데.

왜 저렇게 행동하는걸까.

아까, 뭐라고 했더라?

‘팔이 쑤신다고! 신관이라도 불러주던가!!’

그 팔을 자른 게 난데, 정말로 반감이 없는 걸까.

아니면 있는데도 감추는 걸까.

내가 아는 나성진은 현실 파악과 스탠스를 취하는 속도가 매우 빠른 남자였다.

그리고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는 남자다.

그 신념은 내가 알기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단순 무식한 기질이었으며, 조금 더 나아가 은혜를 입으면 그 은혜를 반드시 갚는 것.

그런 남자다 나성진은.

아무래도 나성진은 자기가 잘못을 했고 그 잘못에 의한 벌이 팔을 자르는 아주 비합리적인 일이었음에도, 결국 대기실에만 가면 치료가 되니...

그 여러 가지 상황들로 미루어보아, 이게 나름 합리적인 처벌이라 생각한 것이라는 결론이, 앞뒤 짜 맞추기에 가장 적절하다.

결정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저 셋의 눈에는 적개심이 보이지 않는다.

예지력도 발동하지 않았고, 내 직감도 저들이 위험하다고 외치지 않는다.

웃기다.

내가 이들을 왜 받아들였는가.

일단 이들의 심성은 분명 선善이다.

한수아는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 심성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약간의 힘을 주고, 가능성이 보인다면 신격을 갖추는 그 자리까지 데려갈 생각이었다.

당연히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올 정도로 심하게 굴릴 생각이었고.

그런 그들이 나를 걱정한다.

하하...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거의 4년차 때 멸망을 앞둔 사람들이 서로를 걱정해주던 그때가 떠오를 정도다.

그래, 이렇게만 가자.

이렇게만.

*

사실, 내 계획에는 허점이 많다.

그것도 매우 많이.

일단 앞서 말했듯 왕의 행세를 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한다고 해도 수년, 수십 년을 함께해온 오슨의 관계자들을 모두 속인다는 건 너무나도 비상식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슨을 스승이라 부르던 브릴란트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 사실을 알아챘고, 내게 죽었다.

그건 위기가 아니라 확신의 계기였다.

오슨의 행세를 하고 있는 나라는 사도가, 얼마나 강한지를 확신시켜주는 계기.

애초에 오슨이 왕이라는 호칭을 달고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바로 강했기 때문에.

그를 죽이고, 그의 제자이자 제국에서 파견된 대장군인 브릴란트도 내게 죽었다.

심지어 그 브릴란트는 목이 잘려 반역죄로 효수된 상태.

가슴 한편이 시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그 일로 이제는 그 누구도 내게 토를 달지 않게 되었으니까.

나는 오슨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거슬리게 하는 놈이 하나 있었다.

“대신전에서 내려온 계시에 의하면 발리스타 왕국의 남동부 성벽, 그곳으로 1만 마리의 고블린과 1000마리의 고블린 족장이 소환된다고 합니다.”

신관 제파의 말을 듣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불 지르고 발리스타 왕국 소속 시련자 대부분을 깡그리 몰살시켰던 그 골짜기가 아니라, 남동부 성벽?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남동부 성벽에서 골짜기까지의 거리는 대략 30Km, 이건 절대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이건 뭘까.

신들이 소환 위치를 변경한 걸까?

그렇다면 왜 라는 의문이 남는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건 현재의 내 수준으로는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전제를 바꿔서 생각해보자.

시스템이라는 메신저가 아니라 그 계시를 각 신전으로 전파해준 대신전이라는 메신저.

정확히는 대신관 베네딕 메디치.

음...

“인사하러 오라는 내 말은, 놈에게 전했나?”

내 물음에 화들짝 놀란 제파가, 뒤늦게나마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이거 아무래도 이 대신관이라는 새끼가.

“...장난질을 한 건가.”

제파가 화들짝 놀란다.

“아니..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저는 정말 아닙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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