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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25화 (25/131)

25화. 군림(2)

그렇게 병사들과 어리둥절한 세명의 시련자를 데리고 왕궁으로 가려던 때.

뒤쪽으로 빛무리가 생기더니 한 남자가 소환되었다.

익숙한 면상이다.

알베르토 라미레즈.

놀랍게도 그 불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불길이 솟구쳤을 때 저놈의 심장에 총알을 박았었는데.. 회생 스킬 같은걸 가지고있었던걸까.

쯧.. 질긴 새끼.

놈이 나를 보고, 내 옆에 있는 병사들을 보고, 그 옆에 있는 한수아와 나성진, 성미령을 보더니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그리고는 갑자기 주변을 다급하게 살피는 게.

마치 누군가를 찾는 모습이다.

예를 들면 고블린과 시련자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린 어떤 미친 싸이코 같은 놈을.

피식 웃고는 놈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는 나를 발견한 놈이, 그 자리에서 넙죽 엎드린다.

"와.. 왕이시여!! 급하게 알려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사실?"

그가 다급한 표정으로 애원한다.

"배신자...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 보내신 기사를 죽이고, 사도들을 죽인 배신자!!!"

슬며시 허리춤의 란지에를 집고는 꺼내들었다.

스르릉하는 맑은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진다.

확실히, 다시 봐도 매끄럽고 아름답다.

검 날의 길이만 1.4m에 달하는 장검.

그 장검을 바라보던 라미레즈가 일순간 당황한다.

"...갑자기 검은 왜... 그러니까. 배신자가..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말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어?"

놈이 의아한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푸슈슛!

놈의 목이 시간차를 두고 그대로 절단되었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바라본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습격당했다."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고개를 갸웃합니다.]

[속이는 것을 낙으로 삼는 장인이 폭소를 터트립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당신을 죽일 듯이 노려봅니다.]

사기를 칠 때 가장 중요한건 무엇일까.

"어젯밤, 대전에서 쉬고 있던 나를 습격한 사도들이 있었다."

하나밖에 없다.

진실 속에 거짓을 섞는 것.

그 비율을 잘만 맞추면 진정한 사기꾼이 영웅이 될 수 있다.

조용히 기억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왕국은 어디지?

머릿속에, 형님에게 들었던 대륙의 대략적인 구도가 떠오른다.

망설임 없이 답이 도출되었다.

가장 가까운 왕국은 매캐넌 왕국이다.

내가 듣기로, 그리고 알기로 발리스타 왕국의 왕성과 매캐넌 왕국의 왕성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100km정도.

그리고 그곳에는 박유정과 내가 반드시 죽여야 할 세뇌  능력자, 판링링이 속해있다.

생각이, 정리되었다.

"나를 습격한 사도의 이름은 라미레즈. 그리고 매캐넌 왕국의 판링링, 박유정 이 세 명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박유정은 애매하다.

그렇기에 직접 보고, 결정할 것이다.

"기사들에게 명하노라."

한껏 가라앉은 어조로 말하자.

"충!!"

거대한 목소리가 한 울림이 되어 광장에 울려 퍼진다.

꽤나 믿음직스럽다.

"매캐넌 국왕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다. 사도를 ‘사칭’하며 나를 습격한 암살자들을 제압해, 내게 데려오라."

"충!!!"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할 말을 잃습니다.]

[황제의 길을 걸었던 전사가 당신에게 약간의 적대감을 갖습니다.]

[속이는 것을 낙으로 삼는 장인이 폭소를 거두지 않습니다.]

힐끔 쳐다본 메시지 창은 역시나 난리가 났다.

그냥 무시했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믿음직스럽게 충성을 외치는 기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들이 그 둘을 정말로 데려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가능하다.

아니, 그렇게 만들 것이다.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 명의 시련자를 향해 따라오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려던 때.

한 늙은 남자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전하.. 편찮으신곳은 없으십니까."

누군지를 모르겠지만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표정은 어두웠다.

그리고 눈빛.. 눈빛이 묘하게 거슬린다.

딱 그런 느낌이 든다.

왠지 이 노인도 연기자 같다는 그런 느낌.

"없다. 그리고 이 세 명은 나를 구한 영웅들이니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말도록."

"그리하겠나이다."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이제 내가 머물 장소인 왕궁을 향해서.

그리고는 슬쩍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왕의 말투.

대충 흉내만 내본 건데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적응해야한다.

당분간은, 오슨 발리스타라는 이름의 방패가 필요하니까.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칭이긴 하지만 순식간에 권력을 가지고 왕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또 다시 떠오른다.

형님이 이 시련에 없다는 사실이.

형님은 앞서 말했던 대로 굉장히 우유부단하다.

리더십이 있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는, 그냥 영웅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자.

또한 사람을 끌어 모으는 매력까지 겸비한 남자.

그게, 내가 아는 정지혁이다.

또한 나는 형님이 될 수 없고, 형님도 내가 될 수 없다.

형님은 양지의 사람, 나는 음지의 사람.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스스로를 정의 내렸으니까.

잠시 자리에서 멈췄다.

의식이 이질감을 잡아낸다.

아직까지도 내 손에는 란지에가 쥐어져있었다.

슬며시 정보창을 열람했다.

[란지에][유물遺物]

-결불부식決不腐蝕

-결부절단決不折斷

-명경지수明鏡止水

아이템의 등급은 총 5가지에 규격외인 2가지, 총 7가지다.

일반, 레어, 유니크, 전설, 신화. 그리고 규격 외라 칭해지는 유물과 성물.

내가 쥐고 있는 이 란지에는 유니크와 전설, 그 사이에 걸쳐져있는 아이템이다.

굳이 말하자면 준전설급이라고 하는게 낫겠지.

이렇게 유물 아이템이 규격 외로 쳐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효과가 일반 아이템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아이템도 존재했으며, 최대 전설 아이템의 효과가 붙어있는것도 존재한다.

정말 제 각각이다.

신화급 효력을 가진 유물은 당연히 존재하지않으며, 유물의 상위 버전인 성물급이 되어야만 신화급 효력을 가진다.

그리고 내가 아는 성물 아이템은 단 두 가지다.

풍령의 전신 갑주와 광전사의 전신 갑주.

절대로 부식되지 않고, 부서지지도 않으며, 쥐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는 이 란지에는 확실히, 준전설급의 아이템이다.

특히 마지막 명경지수.

그게 내가 굳이 이 검을 뽑고, 지금껏 쥐고 있던 이유다.

젠장.

그런데도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지 않는다.

계속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이 엇나간 느낌이다.

시발.

란지에를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검집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스르릉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왕이 되었던 시련자는 몇 명 있었지. 일단 나, 그리고 박유정, 존 랜버튼, 주청윤, 홀던 크리스틴. 그리고 판링링까지. 그런데.. 그 누구도 못 해본 게 하나있었어.

-그게 뭔데요?

-황제.

-...예?

-그 왕들을 지배하는 황제를 해보지 못했다고, 왕이 되니까 수백만 코인이 들어오긴 했는데, 과연 황제는 어떨까 싶더라. 딱 그게 아쉬웠어. 언제였더라, 안내자한테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대답하더라. 고개를 삐딱하게 쳐 기울이고는 ‘그거만 이루면 다른 잡스런 업적들은 무시해도 됐을 텐데요.. 조금 멍청하셨네요.’ 라고. 진짜... 한 대 쥐어박을 뻔했다.

내가 왕이 된 이유, 내가 준비하려던 안배.

간단하다.

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모든 시련을 클리어 할 것이다.

당연히, 발바라 대륙의 최종 에피소드는 발바라 대륙의 구원이다.

내가 없던 시련에서는 대륙은 구원했지만 제국은 멸망했고 국가는 여러 개로 나눠졌다.

이번 생에서, 나는 과정을 바꾼다고 분명히 말했다.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생에서는 왕들이 서로 제각각 싸우면서 국가가 무너졌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서 모든 국가를 무너트리려고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손으로 판테온 제국을 세상에서 지우고, 왕국도 지운다는 의미.

그리고, 형님을 '황제'의 자리에 앉힐 것이다.

그게 발바라 대륙에서의 내 최종 목적이었다.

그런데, 형님이 없다.

시발. 젠장.

엿 같다.

모든 게 어그러진 느낌이다.

그래서 멈출 거냐고?

여기서 그만둘 거냐고?

아니.

나는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다.

힘을 얻을 것이다.

세상은 약육강식.

모든 일은 힘이라는 게 받쳐줘야 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다.

나는 강대하고, 압도적인 힘을 얻어서 내가 모르는 의문을 밝혀낼 것이다.

물론 지구도 구할 거고.

그러니까. 나는 멈춰서는 안 된다.

형님에게 주려던 것들... 어쩔 수 없다.

전부 내가 취하는 수밖에.

계획이라는 퍼즐이, 분해되더니 머릿속에서 빠르게 재조합 된다.

나는 왕국을 모조리 지울 것이며 유일한 제국인 판테온 제국도 지워 버릴 것이다.

조용히 눈을 떴다.

혈신 상태가 된 것도 아닌데, 내 안광이 번뜩인다.

-나는, 그 빈자리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 할 것이며.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오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 제국의 유일무이한 황제가 될 것이다.

그래, 형님이 아니라 내가.

**

그 시각-

판테온 제국의 광장에 174명의 시련자가 소환되었다.

저마다 긴장한 표정을 지은 사람도 있었고, 결의를 다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 한사람만은 달랐다.

서양인 특유의 금발 머리.

깔끔하지만 약간은 투박해보이는 5:5 가르마.

그리고 푸른색의 투명한 눈동자, 그 안에 번들거리는 미약한 광기.

그의 갸름한 턱선은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 그는 남자였다.

그는 한쪽 눈매를 찌푸리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유 권능 흡수吸收를 개화하셨습니다.]

이어서.

띠링!

[칭호! 「이레귤러」의 페널티가 진화합니다.]

[당신은 효과가 있는 모든 종류의 아이템을 사용할 시, 그 효과가 20% 감소합니다.]

"...이건 또 뭐야 시발.."

전생에서 이도와 마찬가지로 시련자가 되지 못했던 남자.

'에릭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한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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