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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24화 (24/131)

24화. 군림(1)

"...이도야"

꿈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왠지. 데자뷰가 느껴진다.

내가 있는 곳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뭐지?

"이도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었다.

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의 형님이.

형님의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아함이었다.

분명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한수아를 죽이려했을 때 예지가 발동했고, 나는 정신을 잃었지.

그때, 이 공간에서 형님을 마주했었다.

"왜 말이 없냐. 사람 무안하게."

픽 웃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내 기억속의 형님이 맞았다.

대체,

이건 뭐지?

예지력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설마 현재?

"...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형님이 웃는 얼굴 그대로 내 앞에 털퍼덕 주저앉는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내가 너랑 여기서,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지."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대한 불안감이,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기에.

"이도야."

"...예 형님."

"나는 말이야. 네가 생각한대로 우유부단한 놈이야."

말없이 형님의 말을 경청했다.

"시련을 진행할 때 꼭 죽였어야 할 놈을 죽이지 않았고 한번 이상은 기회를 줬지. 정말.. 답답했을 정도로."

"...형님."

"뇌신이니 철강왕이니, 그놈들이 너를 배신하는 건 당연해. '풍신'도 마찬가지고, 사실 말하지 않았지만 걔들, 죄다 내가 기회를 서너 번씩 줬던 놈들이거든. 그런데..."

말을 멈춘 형님이, 잠깐 숨을 몰아쉬더니,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그러지 마라."

형님의 눈을 직시하던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실패했어. 영웅이라 불리든 선인이라 불리든.. 그래, 나는 실패했다. 그게 진실이고 향후 벌어질 미래지. 아니, 미래였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니,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다.

뭘까.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

"하지만 너라면 달라. 너라면... 분명 할 수 있을 거다."

형님이 씩 웃더니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흐트러트린다.

그 손길을 거부하지 못했다.

뭔가. 마지막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눈앞이 흐릿해진다.

꿈에서 깨려는 걸까?

아니다.

이건...

정말 믿기지 않게도 눈물이다.

"짜식.. 울 줄도 아네."

형님이 손을 뻗어 내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천천히,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투욱-

형님의 이마와 내 이마가 맞닿는다.

"꼭 해내라. 믿는다."

*

눈을 떴다.

천장이 보인다.

종유석이 박혀있는.. 그래, 여긴 대기실이다.

"어...? 이도님 지금.. 울어요?"

손으로 눈가를 슥 훔쳐냈다.

물기가 묻어나온다.

...이상하다.

나는 잠을 잤었다.

그래서 꿈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불안감은 뭐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윌의 속삭임, 상점에 있지?"

쎄쎄가 고개를 갸웃한다.

"시련자들끼리 통신할 수 있는 그거요? 있긴 있는데.. 그거 가격이 20만 코인인데요?"

"내놔. 잔말 말고."

토라진 표정을 짓던 쎄쎄가, 결국 허공에서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내게 건넨다.

받아들자마자 빠르게 말했다.

"윌의 속삭임을 사용한다. 대상자는 시련자 정지혁."

[윌의 속삭임을 사용합니다.]

[시련자 정지혁님을 찾고 있습니다.]

아이템이 형님을 찾을 동안 나는 대기했다.

애초에 남겨두었던 30만 코인은 변장의 가면을 후원 받지 못했을 때 '변장의 물약'을 사기 위해 남겨둔 거였지만 이상하게 너무나도 불안하다.

이 불안감을, 해소시켜야한다.

[시련자 정지혁 님을 찾고 있습니다....]

꽈아악-

슬며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나는 Episode #10정도에서 형님과 재회하려고 했다.

내가 알기로 형님은 판테온 제국에 떨어졌을 거고, 거기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을 테니까.

솔직히, 굳이 방해할 필요가 없었다.

젠장.

조용히 머리를 쓸어 올렸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형님을 믿는다.

짐승처럼 살던 내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

그와 함께 이 시련을 씹어 먹고 싶었다.

사람의 본성이니 뭐니, 철학적인 개소리는 모조리 집어치우고, 내가, 나 같은 싸이코가 세상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정지혁, 단 한 사람 밖에 없다.

그라면 믿을 수 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앞서있는 상태,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형님을 내 위치 정도 까지는 끌어 올려야한다.

즉, 나는 형님에게 어마어마한 코인 다발을 선물해주려고했다.

그런데...

젠장..

Episode #10, 그 정도의 시간이면 판을 마련하는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꿈에서 보았던 게 너무 불안하다.

내 직감이 지금 외치고 있었다.

빨리 형님과 대화를 하라고. 아니 형님과 만나라고.

나는 기다렸다.

윌의 속삭임은 아직까지도 형님을 찾고 있었다.

내 예상으로 현재 살아남은 시련자의 수는 대충 1100명.. 아니, 한 1천 명 정도 될 터.

조급해 하지 말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띠링 하는 알림음 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눈을 번쩍 뜨고는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상태, 그 표정, 그 몸짓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시련자 정지혁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찾을 수 없다고?

이게 무슨 의미지?

도중에 죽었다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형님은 누군가에게 죽을 사람이 아니다.

그 괴물 같은 피지컬과 말도 안 되는 반사 신경.

스스로가 우유부단하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강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여유였다.

그런 괴물이었기에 많은 시련자들이 형님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 괴물이 고작해야 Episode #2에서 죽는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시발. 머리가 복잡하다.

존나 복잡하다.

"왜 그러세요? 뭐가 잘 안 풀리세요?"

고개를 돌리자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쎄쎄가 보인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시련자를 찾을 수 없다는데, 이게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긴요. 말 그대로 시련자를 찾을 수 없다는 거죠."

"말장난하지 말고."

내 서늘한 기세에 쎄쎄가 잠깐 움찔한다.

"...조금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정지혁이라는 시련자님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죽었거나.. 애초에 시련자가 되지 못했거나."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더 자세하게 듣고 싶으세요?"

"무슨 의미지?"

"별건 아니고.. 정지혁이라는 사람이 시련자가 되어서 죽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시련자가 되지못했던 건지. 혹은 시련 후보자가 되었지만 튜토리얼에서 죽었던 건지, 그런 거요. 원하시면 말씀드릴게요."

젠장.

난 바보다.

이 순간에도 그 정보를 대가로 무엇을 건네야할지 자연스럽게 계산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보료나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이건 안내자 개인의 재량에 따라서 알려드릴 수 있는 사안이거든요."

"...말해봐."

쎄쎄가 허공에서 또 다시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상점창의 아이템을 조작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뭔가 다르다.

이내, 그녀가 조금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이상하네요. 정지혁... 이름이 정지혁 맞아요?"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그 정지혁이라는 사람이, 지구에서 8체급을 제패한 복싱 천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쎄쎄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이거 진짜 이상하네요. 그분 없는데요?"

"뭐?"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없다고?

"시련 후보자도 아니었고, 시련자도 아니었고... 그리고 지구에서도 이분은.. 아예 없는데요?"

번개가, 내 머리를 기준으로 나를 두 동강 내는 기분이 든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혹시 이 정지혁이라는 분, 8월 15일 전에 사고를 당해 돌아가신 거 아닌가요?"

"...."

대답하지 못했다.

무언가.

어마어마하게 뒤틀렸다.

형님이 없다고?

죽었다고?

그럼 방금 내가 본 건 뭔데.

시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말았다.

누구한테 맞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

고통스럽다.

-꼭 해내라. 믿는다.

형님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메아리치고, 도플러 효과까지 입혀진다.

[악惡을 지배하는 자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당신을 주시합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노래 좀 꺼달라고 소리지릅니다.]

떠오르는 메시지창은 무시했다.

젠장.

나는 회귀했다.

그리고, 예지력까지 얻었다.

그 수많은 과정과 결과는 시냇물처럼 흘려도 된다.

딱 하나.

딱 한 가지 의문점만 해소하면 된다.

-왜 나는 회귀를 한 거지?

...

사고가 정지한 느낌이다.

설마... 안배를 준비 해둔 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형님이었던 건가?

그 대가로 형님은 죽은 거고?

아니, 아직 확실 한건 없다.

일의 선후관계가 너무나도 궁금하고,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안 된다.

흔들리면 안 된다.

지금은 눈앞에 일에 집중해야한다.

떨리던 내 눈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간다.

"...고맙다. 알려줘서."

쎄쎄가 빙긋 웃던 그때,

띠링!

[잠시 후 Episode #3이 시작됩니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망설이지말자.

인벤토리에서 곤룡포를 꺼내 입고는 허리춤에 란지에를 걸쳤다.

그리고, 변장의 가면을 작동시켜 얼굴을 오슨의 얼굴로 바꿨다.

이내, 빛이 나를 감싼다.

*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장이었다.

그리고 내 양옆에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있는 한수아와 성미령, 그리고 나성진이 보인다.

눈을 뜬 그들이 나를 발견하더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고, 한수아는 재빨리 내게 달려든다.

딱 보니까 매혹을 걸려는 것 같다.

슬며시 뒤로 몸을 빼며 말했다.

"그만."

내 목소리에 한수아의 표정이 조금 굳어진다.

뭔가 아리송한 그런 느낌을 받는 듯 한 표정이다.

분명 지금 내 어조는 오슨의 어조와 똑같을 텐데, 그걸 구별한 건가?

으음..

가볍게 얼굴을 어루만지며 변장을 풀었다.

"...이도님?"

"...아!"

"...얼굴이?"

그들을 바라보며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다시 얼굴을 매만졌다.

오슨의 얼굴로 변하자, 그제야 주변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왕국 전체에 비상이 걸린듯하다.

사방에는 기사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며,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는 듯 한 분위기다.

그러다, 어느 기사가 나를 발견한다.

"..전..전하!!!!!!!!!!"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목소리.

그제야 나를 발견한 시민들과 기사, 그리고 병사들이 모조리 무릎을 꿇는다.

"전하를 뵙습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형님이 사라진 이유가 뭐든, 생각하지말자.

지금은.. 한눈을 팔 때가 아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힘 있는 보폭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걸이.

나는, 오슨 발리스타다.

나는, 왕이다.

띠링!

[업적! 최초의 왕을 달성하셨습니다.]

[5,00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수만 명을 속인 남자를 달성하셨습니다.]

[10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수십만 명을 속인 남자를 달성하셨습니다.]

[당신은 대단한 거짓말쟁이였군요!]

[1,00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나는, 군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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