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멍청이들(2)
나는 매혹에 걸린 오슨 발리스타를 유심히 관찰했다.
놈의 모습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지만 딱 하나 달라진 게 있었다.
바로 한수아를 바라보는 시선.
마치 애장품을 바라보는 듯 한 시선이라고나 할까.
아니다.
단순히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조금 더 발전한..
그래. 중세 시대때 무슨 수를 써서든 레이디를 지켜야겠다는 숭고한 의지를 가진 기사의 모습같다.
“다른 사도 분들은 만찬장에 계십니다. 몇 가지 알려드릴 사항을 다 말씀드렸는데.. 두 분은 이곳에 계시느라 듣지 못하셨던 것 같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륙의 모든 신전중 가장 으뜸인 대신전에서 정확히 1년 전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정중한 말투안에 약간이지만 끈적거리는 감성을 넣은채 말하는 오슨의 모습은, 마치 퀘스트를 내려주는 게임속의 NPC같았다.
플레이어에게 빠져버린 논 플레이어라..
아이러니함에 웃음 짓는 것도 잠시.
오슨의 말이 이어졌다.
“‘머지않아 제국에 멸망이 닥칠 것이니, 그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사도밖에 없으니라’ 라는 계시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대신전에서 ‘사도들을 도와 멸망을 막아라’ 라는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짐작했겠지만 그 계시의 정체는 바로 시스템의 메시지다.
아니지.
신들의 협약으로 만들어진 게 시스템이니까 신들의 메시지라고 하는 것도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게 에피소드 시작의 배경이다.
“그리고 오늘, 사도님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과 동시에 계시가 또 내려왔는데... 오늘, 4000마리의 고블린과 200마리의 족장이 각 왕국과 제국을 습격한다는 계시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방식은 모두 이런 형태로 진행된다.
이곳 발바라 대륙에는 수없이 많은 신전이 있고, 그중 가장 크고, 교황이라 불리는자가 거주하는 대신전이 존재한다.
계시는 대신전으로 내려오고, 대신전은 계시를 전국각지에 존재하는 신전으로 전파한다.
어느 곳에 어느 몬스터가 나타날 것이라느니, 혹은 어느 몬스터가 태동한다느니. 당연히 그 계시들은 신들이 내려주는 ‘퀘스트’고, 시련자들은 그것을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힘을 얻고, 스킬을 발전시키는 말 그대로 강해지기 위한 시련을 겪게되는데.
모두가 눈치 챘듯이 모든 게 그렇게 스무스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앞서 확인했던 Episode #2의 퀘스트창을 보면 몬스터 50마리를 죽이거나 인간 50명을 죽이라는 말이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이 두 가지 퀘스트 모두 완료하지 않아도 된다.
계시에 할당된 몬스터들이 모조리 죽으면 #2는 종료, 곧바로 #3가 이어지는데, 두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 이들은 죽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10000코인의 보상을 획득하지 못할 뿐이다.
이걸 사람들에게 알려줄까 말까하는 고민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모든 시련자에게 말할 필요도 없으며 솔직히 그럴 생각도 없다.
어차피 #2가 종료되면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이다.
아마 지금쯤 발리스타 왕국 소속 시련자들은 그 두 가지 중에 뭘 할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발리스타 왕국에 할당된 시련자는 얼추 200명정도, 그 200명이 4200의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그중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시로 잠입해 50명의 사람을 죽이는 게 훨씬 간편하다... 라고 생각하는 시련자가 절반 이상은 넘을것이다.
확률은 한 99.9% 정도.
나는, 그들의 선택지를 매우 압축 시켜 줄 생각이다.
“...제가 원래는 이런 말씀 잘 안 드리지만..”
오슨이 힐끗 나를 바라본다.
저거 왠지 내가 믿어도 될 놈인지 아닌지 그걸 판단하는 것 같은데.
피식 웃고는 얼굴에 가면을 썼다.
“저는 한수아님의 호위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셔도 됩니다.”
“호위... 그래도..”
힐끗 한수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내 말을 거들었다.
“말씀하셔도 돼요. 저분은 믿을만하니까.”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오슨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토벌’에는 참가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요?”
한수아의 물음에 오슨이 뜸을 들인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사도님들은 ‘할당량’이 정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몇 사도 분들에게 들어보니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을 죽이기만 해도 문제가 없으시다고..”
쿡..
아. 미치겠다.
조용히 지켜보다 나도 모르게 대놓고 웃고 말았다.
오슨과 한수아가 나를 동시에 바라본다.
나는 둘에게 손을 휘저으며 마저 대화 나누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둘의 대화가 이어진다.
미치겠다.
정말로 미치겠다.
매혹의 효과. 이거.. 어마어마하다.
내가 듣기로 오슨 발리스타는 절대로 평범한 왕이 아니다.
일단 강하다.
이 세상에는 ‘기’라는게 존재하는데, 오슨 발리스타는 그 기를 깨우치고 발전시켜, 지닌바 무력으로는 왕국 내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강자다.
검주劍主 오슨 발리스타.
광오하게도 검의 주인이라는 이명을 가진 남자.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오슨 발리스타는 소드 마스터다.
지금, 그런 강자가 한수아에게 빠져들었다.
저 매혹 하나로 인해서 한수아의 안위를 걱정한다.
심지어 몬스터를 죽이는 ‘위험’을 감수할 바엔 차라리 인간을 죽이란다.
이어지는 대화를 대충 들어보니 그 인간들도 오슨이 대신 마련해주겠다는데...
아마도 50명의 사람을 반죽음으로 만들어놓고 한수아에게 건네주겠지.
그게 끝이 아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는 나는, 발바라 대륙에서 중요 인물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인물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까지 ‘대충’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을 찾아서 매혹을 건다면?
벌어진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미래의 내가 후회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
사기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다.
물론, 정신 계열 권능은 단점도 있다.
그것도 치명적인 한 가지 단점.
권능자가 대기실로 귀환할 경우, 그 귀환하는 순간 피권능자들에게 적용된 모든 효과가 사라진다.
즉, 권능자인 한수아나, 판링링은 대기실로 귀환하지만 않는다면 권능의 효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매혹과 세뇌는 다르다.
내가 없던 시련에서 판링링이 왕을 자살시킨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지겹도록 언급했지만 세뇌는 이지를 상실시킨다.
말 그대로 판링링이 시키는 일만 처리하는 기계가 되는데, 평소 멀쩡하던 왕이 높낮이 없는 어조로 무언가를 지시하고 명령한다?
우습다.
그의 측근들이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판링링이 세뇌 능력을 숨기고, 또 숨긴 이유가.
즉, 판링링은 에피소드를 ‘지배’할 수 없다.
하지만, 한수아는 에피소드를 ‘지배’ 할 수 있다.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는 나와, 한수아는 어마어마한 듀오가 될 수 있다.
이 세상 자체를 씹어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변수.
그럴수록 내 가슴속에서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 하나가 계속해서 고개를 치켜든다.
젠장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자.
오슨이 한수아를 질기게 설득하는 동안 한수아가 내뱉은 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니, 그냥 말을 못한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그녀로서는 무슨 상황인지 조금 당황스러울 테니.
결국 내가 끼어들었다.
“한수아님이 조금 당황 하신 것 같은데.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간들을 ‘공수’해주시겠다 이 말씀 같은데.. 그 바탕에는 당연히 한수아 님의 ‘안전’이 들어있겠죠?”
“당연하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한수아님은 보통 사도가 아니십니다. 저는 그걸 방금 깨달았습니다. 손을 잡는 그 순간, 아.. 저는 해방 된 겁니다. 저는 한수아님에게 모든 걸 바치고 싶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말려 올라가는 입 꼬리를 막았다.
그러다 결국 포기했다.
손을 치웠다.
“그러면 말입니다. 혹시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떤..?”
말려 올라가던 내 입 꼬리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리고 내 말이 이어질수록 오슨의 표정은 의아함으로 변했다.
저 표정, 익숙하다.
내가 뭘 살 때마다 짓던 쎄쎄의 표정과 흡사하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천상의 학살자가 말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입을 쩍하고 벌립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혹시 #1에서 말할 때 선이랑 악을 혼동해서 말한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문 워크를 추고 있습니다.]
내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다.
“물론입니다.”
*
만찬장에서 시련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발리스타 왕국의 국왕인 오슨 발리스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도님들께 미처 말씀 드리지 못 한 게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오슨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고블린들이 ‘소환’되는 장소가 방금 계시로 내려왔습니다. 시간은 오늘 오후 19시, 장소는 수도 외곽에 위치한 ‘골짜기’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오슨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시련자들로서는 약간, 의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
묘한 침묵이 자리할 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뭐가요?”
“이도라는 그 남자가 #1에서 보여주었다는 그 행보들이요.”
오슨이 등장하면서 끊겼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 것이다.
당연히 시련자들이 나누던 대화의 주제는 이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1에서 이도의 모습을 보았던 이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시련자들에게 이도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렸고, 5번 기차가 아닌 다른 기차에서 #1을 진행했던 이들은 고개를 갸웃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번 기차에서 1만 코인을 획득했던 시련자. ‘알베르토 라미레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도.
지구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던 라미레즈는 이도가 입고 있던 그 갑옷의 가치를 단숨에 알아봤다.
아니, 정확히는 짐작이라고 해야겠지.
온 몸을 덮고 있는 검은색 가죽 갑옷은, 상의부터 하의까지 일체형으로 되어있었으며 그의 신발과 장갑은 정말이지.. 그 결 자체가 남달랐다.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난다고 해야 할까.
마치, 현대형 전투복에서 중세시대 기사들의 평상복을 합쳐 놓은 것 같았다.
그런 갑옷을, 대체 어찌 얻은 걸까.
그리고 그런 갑옷을 입고 있는 그런 남자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경계한단 말인가.
이미 튜토리얼과 #1을 겪으면서 처참한 현실을 깨달은 알베르토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내고 있었다.
지금처럼.
“그러니까. 이철준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같은 시련자를 죽이면 무조건 죽이겠다고 선언하던 그 남자가, 결국에는 다른 시련자를 계속해서 죽였다.. 이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미친놈이군요... 그리고 시련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한 모습이었고요?”
이철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기까지 한 남자군요.”
“...”
이곳에 있는 시련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심지어 눈뜬장님도 아니었으니, 이도가 ‘베레타’를 가지고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겨누고 있던 그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입고 있던 옷.. 아니, 그 갑옷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게.. 어찌 보면 몬스터보다 위험한 남자 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퀘스트 내용을 보니 몬스터를 죽이거나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 아까 그 오슨이라는 왕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총 4000마리의 고블린과 200마리의 고블린 족장이 습격한다고.”
모두가 이철준과 라미레즈의 대화에 집중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시련자들의 숫자는 정확히 212명, 이도라는 그 남자와 그 여자까지 포함하면 총 214명, 하지만 한 명당 필요한 몬스터의 숫자는 50, 대충 계산 해봐도 최소 절반은 퀘스트를 완료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탄식을 터트렸다.
만찬장에 준비된 음식은 이미 입맛이 없어진 상태.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불안감을 읽은 라미레즈는, 그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아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절반은 죽겠지요.”
그 말에, 구석에서 듣고만 있던 성미령이 끼어들었다.
“죽는다는 건 조금 억측 아닌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성미령은 바보가 아니었다.
라미레즈.
저자의 말투와 눈깔 돌아가는걸 보니 무언가를 꾸미는 게 틀림이 없다.
성미령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또한 당당했다.
절대로, 부끄럽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1번과 2번을 클리어 하지 못 한다 해도 죽는다는 말은 퀘스트의 어딜 봐도 나오지 않아요. 죽는다는 건 그쪽의 근거 없는 추측 아닌가요?”
“근거라면 있습니다.”
“...?”
“튜토리얼 때 혹시 기억나십니까?”
“...”
“시련 후보자라고 했었죠. 제가 안내자한테 물어봤는데.. 그들은 전부 죽었다고 하더군요. 이 시련이라는 것에 대해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신들이라는 자들은 ‘강한 자’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자가 한명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수보다 강한 건 없습니다. 우리는 뭉쳐야합니다.”
성미령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게 어떻게 죽는다는 결론으로 내려지는지 의아했지만 라미레즈의 화술은 교묘했다.
마치, 말 자체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여기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애초부터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아요. 튜토리얼에서 받았던 보상은 많아봐야 4천에서 5천사이인데, 이철준씨가 말씀하셨듯이 그 총은 가격만 무려 5천 코인이라면서요? 그런데도 한손으로 사람의 목을 꺾는다? 분명히 말하죠. 그자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성미령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개소리에, 더 이상 놀아나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는 이 순간 한수아를 떠올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보호 해주고 싶은 기분.
성미령이 문을 열고 만찬장을 나서자, 라미레즈가 결론을 토해냈다.
“...이도라는 그 남자를, 죽입시다.”
“하지만 그자는 강합니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던 라미레즈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스킬은 ‘위험 감지’와 공격스킬 한가지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 스킬과 제 직감이 말하고 있습니다. 고블린보다 그 남자가 훨씬 위험하다고. 그자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돌발 행동을 하지는 않을 테니, 아까 오슨 국왕이 말했던 고블린들이 소환된다는 그 장소, 그곳에 그자를 밀어 넣읍시다.”
“...그자가 고블린을 다 죽이면요?”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우리도 고블린들과 함께 그 남자를 공격할거니까.”
라미레즈의 단호한 말에 좌중이 침묵했다.
아니, 이건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이들은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도, 그 위험한 그 남자를 제거하자고.
솔직히 이들 중에서 시련자의 뒤통수를 치지 않은 자는 거의 없다.
튜토리얼부터 시작해서 #1까지. 배경에 협동이라는 걸 조용히 깔아두면서 배신이라는 욕망을 건드린다.
심지어 Episode #1에서 살해자 업적을 안내했던 그 부분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미 시련에 본격적으로 임하면서 시련자들은 생각했다.
힘을 가져야겠다고.
그런데, 그 누구보다 강해보이는 남자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것도 권총이라는 걸 들고서,
웃기지도않는다.
거기다 뒤통수를 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 버리겠단다.
지가 뭔데?
놈이 대체 뭐 길래?
이들은 본능적으로 이도를 두려워했다.
그 입고 있는 갑옷과 싸늘한 눈깔은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오싹하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라미레즈가 결국, 비수를 꽂았다.
“우리는 이도라는 그 남자를 죽여야 합니다. 내부의 적보다 무서운 건 없으니까요. 어차피 제한 시간은 24시간, 뒷일은 그 남자를 죽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던 시련자들 대부분이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라미레즈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선동만큼 쉬운 것은 없다고.
그리고..
‘놈이 아무리 강해도 고블린들에게 휩싸인 채로 우리에게 공격당한다면.. 살아 날 수는 없겠지.’
피식 웃었다.
‘50명의 인간이라.. 그 안에 시련자도 포함되겠지?’
라미레즈는 애초부터 50마리의 몬스터를 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