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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6화 (16/131)

16화. 변수(4)-800자 추가

*

그대로 몸을 돌려 침대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아니 잠깐.

깜빡 했다. 이거 물어봐야하는데.

"그런데, 이 이레귤러라는 칭호."

"그게 왜요?"

Episode를 진행하면서 떠올랐던 의문.

"칭호가 진화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진화하나? 페널티가 더 안좋은 쪽으로?"

쎄쎄가, 조금 기묘한 웃음을 짓는다.

마치 계속해서 휘둘리던 자기가 처음으로 우위에 선 것을 자축이라도 하는듯하다.

"글쎄요? 궁금하세요?"

"아니. 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되겠지."

쎄쎄의 표정이 팍 구겨진다.

"말씀드릴게요. 당연히 진화해요. 그런데... 이거 알아두셔야해요."

고개를 들어 쎄쎄를 바라보았다.

이걸 말해야 할 지. 말하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는듯한 표정이다.

저러니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대체 뭐길래?

"...이레귤러. 그 칭호요. 엄밀히 말하면 그건 칭호가 아니에요. 시스템에 등록 되지 않은 번외의 성격...아차. 여기 까지!"

"..?"

쎄쎄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활발하게 말했다.

"제재가 들어왔거든요. 그 이상 말하지 말래요."

"..."

"그래도 이건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페널티는 진화한다는거."

픽하고 실소를 터트리고말았다.

페널티가 진화한다는게 조금 꺼림찍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번외의 성격이라...

이것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리고 이때의 나는 모르고있었다.

이 번외의 성격이라는게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를.

*

12시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전히 침대에 앉아 대기하고있던 나를, 쎄쎄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쎄쎄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다.

굳이 아는걸 말하자면 인간이 아니라는것과 한수아에 비견 될 정도로 아름답다는것, 그리고, 각 시련자에게 배정된 '안내자' 라는것.

그게 전부다.

여기서 재미있는건, 그녀는 안내자이기에 각 Episode 에는 무엇이 준비되어있는지, 혹은 어떤 과정으로 전개되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녀만이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시련을 진행하고있는 수천 명의 시련자중. 내가 가장 강하고, 독보적이고, 압도적이라는 것을.

그녀의 복잡하던 표정이,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하게 전환된다.

마치, 내가 고유 권능을 개화한건 확실한데 그게 어떤건지 짐작조차 하지못하는 그런 표정이다.

신경 쓰이지않냐고?

전혀.

고유 권능은 시련자 스스로가 밝히지 않는 한, 그리고 직접 보여주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목숨을 담보로, 강압적으로 협박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글쎄.

그럴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존재할까?

마왕급이 오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신들은 시련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없다.

피식 웃고는 상태창을 켰다.

[이름 : 이도]

[칭호 : 이레귤러,유물 사냥꾼]

[고유 권능 : 예지력豫知力]

[스킬 : X]

[능력치]

[힘 : LV 19]

[민첩 LV 19]

[지능 LV 19]

[체력 LV 19]

나는 강해졌다.

언급은 안했지만 힘이 1레벨 올라갈 때마다 악력 5kg정도가 증가한다.

당연히 능력치 몇 개 올린다고해서 근육맨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외형적인 변화가 아닌 내부적인 변화이기에.

음.. 가볍게 언급하자면 민첩은 말 그대로 감각과 유연성, 그리고 균형성을 말하고 지능은 일종의 집중력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체력은 말할 것도 없이 맷집이고.

이미 내 몸 내부는 인간의 수준이 아니다.

참고로 이 능력치들까지 올리는데 무려 161,250코인이 들었다.

왜 19에서 멈췄냐고?

이유는 별게 아니다.

18레벨에서 19레벨로 넘어갈 때 소모했던 코인은 4500코인이다.

하지만 19레벨에서 20레벨로 넘어갈 때 필요한 코인은 무려 1만 코인.

즉, 19레벨까지는 일종의 ‘튜토리얼의 영역’이었고, 지금부터는 ‘초급자의 영역’이다.

띠링!

[10초 뒤 Episode #2로 이동합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어떻게든 당신을 죽이겠다며 선언합니다.]

[천상의 학살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어깨춤을 추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시작을 알린 아룡은 보면 볼수록 별난 신이다.

힐끗 고개를 들고는 남은 코인을 확인했다.

[보유 코인 : 300 코인]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거지다.

#1에서 얻은 코인들과 대기실에서 얻은 칭호들까지. 내가 얻은 코인은 무려 30만 코인에 육박했지만, 능력치를 올리고 내게 필요한 아이템들을 사다보니 이렇게 됐다.

고개를 들어 눈을 껌뻑이고 있는 쎄쎄를 눈에 담았다.

내가 산 아이템의 종류는 정확히 4가지다.

하나는 탄창.

베레타를 써야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기에 여유롭게 200여발의 탄창을 구매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회복 포션이었고, 그 외 식량을 구매했다.

몸 전체의 밸런스가 점점 인간을 벗어나고 있었기에, 나는 칼로리가 매우 높은 음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고기 한 점당 500Kcal에 달하는 ‘드레이크 훈제 고기’같은 거.

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하나 구매했다.

성수라 불리는 일종의 신력이 깃든 물약.

가격은 무려 1만 코인.

효과는 별거 없다.

그냥.. 일종의 결계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머지 하나는...

피식-

그걸 살 때의 쎄쎄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내 뇌리에 남아있었다.

‘...정말 그걸 사시게요? 진심이세요?’

‘어.’

‘...그게 뭔지는 알고 사시는... 아니 진짜 미치겠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에요?’

황당한 표정으로 되묻는 쎄쎄에게 당연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템’을 요구 했을 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Episode #2로 이동합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후우...

이번에는 왠지... 아마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머지않아 빛무리가 내 몸을 감쌌다.

*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pisode #2]

[발바라 대륙에는 다섯 개의 왕국과 그 왕국들을 휘하에 두고있는 판테온 제국이 존재하고있습니다.]

[당신은 '발리스타 왕국 소속의 시련자'입니다.]

[시련자는 소속된 지역을 옮길 수 있습니다.]

[퀘스트 완료 조건 : 1번과 2번, 최소 둘중 하나를 완료하십시오.]

[1. 몬스터 50마리 처치(미완료)]

[2. 인간 50명 처치 (미완료)]

[두 선택지의 보상은 10,000코인으로 동일합니다.]

[제한 시간 : 24시간]

발리스타 왕국이라... 이건 천운인가.

조용히 심호흡했다

-왜 하필이면 우리를 시련자라 부를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도시였다.

높은 첨탑과 거대한 돔, 드넓은 광장과 그곳에 장식되어있는 거대한 분수대. 그리고 그 너머에있는 거대한 ‘왕궁’.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구원자!! 만세!!!!”

“으아아아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환영합니다아!!!!”

그들은 열광하고있었다.

자연스럽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있는 시련자들,

나를 제외한 얼추 200여명의 시련자들은 죄다 동상처럼 똑같은 표정을 짓고있었다.

-누구는 우리를 구원자라 부르고 누구는 우리를 신의 사도라고 불렀어. 처음엔 신기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웃기더라. 우리는 그렇게 불릴 자격이 없어.

열광하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던 그때,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것처럼 좌중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점점 좌우로 갈라진다.

그 사이로 보인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걸치고 그 밖으로는 검붉은 색의 용포같은 것을 걸친 남자, 그가 주변 시선을 받으며 일직선으로 걸어오고있는 것이.

-그 세상도 이쪽만큼이나 개판이었지. 지들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는데도 왕이라는 새끼들은 병신들처럼 밥그릇가지고 싸우고, 거기에 우리를 이용하고, 애꿎은 시민들은 몬스터 잡다 뒤지고, 몇놈의 권력싸움에 대륙 전체가 들썩이고, 악신들은 그걸 교묘하게 이용하고.. 시발.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잊혀지지않는 이름이 딱 네 개가있거든.

언제부턴가 주변 눈높이가 높아져보이는가싶더니 시련자들을 제외한 모든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있었다.

“신의 사도들이시여. 처음 뵙겠습니다.”

조용하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아까 그놈이다.

검붉은 용포를 걸치고있던 남자.

뒤로 질끈 묶은 적발의 머리카락과 굵직한 이목구비.

잘생긴 것을 떠나, 분위기가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달랐다.

-율리우스 폰 판테온, 클레시스 맥캐넌, 오슨 발리스타, 베네딕 메디치, 특히 오슨 발리스타라는 그 개새끼는 잊을 수가 없더라. 제2차 대륙전쟁을 발발시킨놈이 그새끼거든.

눈앞에있던 남자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올라간다.

“발리스타 왕국을 다스리는 오슨 발리스타라고합니다. 예언에 나오던 신의 사도분들을 직접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오슨 발리스타, 덩달아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련자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놈을, 정확히는 놈의 눈과 표정을 살피고있었다.

-형님, 궁금한게 있는데 여쭤봐도 됩니까?

-뭔데?

-구원자라 불리고, 신의 사도라고 불리셨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제가 듣기로는 하나가 더 있었다고 하던데요.

내 기억속의 형님이 씩 웃는다.

-악마?

내가 들은 이야기속에서, 판테온 제국의 시민들은, 아니 정확히는 발바라 대륙의 '인류'는 시련자들을 ‘악마’라고 불렀다.

-부를만도하지. 어찌보면 우리 잘못이라고도 할 수 있어. 판테온 제국이 멸망한건.

그때, 오슨 발리스타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 호기심이라는 빛이 머물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피식 웃고말았다.

이놈도 튜토리얼에서 만났던 한태식과 같은 부류다.

배우가 직업이었다면 방송 3사의 연기 대상을 휩쓸 초신성의 재목.

새끼.. 반갑다.

이야기로 들은건 졸라게많은데, 직접 보는건 처음이네.

오슨 발리스타가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한번 더 숙인다.

순간 거대한 충동에 휩싸였다.

죽일까..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다.

형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한적이있었다.

시련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에피소드 세계의 결과가 바뀔수있다고.

내가 없던 시련에서, 형님을 비롯한 시련자들은 발바라 대륙을 구원했었다.

하지만 판테온 제국은 멸망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지금, 이 시련에서도 판테온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결과를 바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과정을.. 조금 바꿀 생각이다.

어쩌면 매우 많이 바뀔 수도 있고.

그렇게 나와 오슨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짧았다.

오슨은 유쾌하게 웃으며 시련자들에게 손짓했고, 수많은 기사들이 우리를 호위했다.

이후, 나를 비롯한 시련자들은 오슨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 하나밖에 없지않은가.

왕궁.

오슨 발리스타가 직접 왕궁으로 시련자들을 이끌던 그때,

“저기.. 저기요.”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탄성이 터져나올뻔했다.

일단 나를 부른 사람은 바로 성미령이었다.

#1에서 내가 살려주었던 여자.

하지만 탄성을 터트린건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성미령 옆에 서있는 여자.

내게 매혹을 걸었던 한수아, 그녀였다.

이건 운이 좋은건가..

착한일하니까 복이 제발로굴러들어오네.

“이도... 이도님 맞으시죠?”

성미령은 내 달라진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는듯했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당황한다.

픽 웃고는 그녀의 뒤쪽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수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하다.

여전히 예쁘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그녀의 외모는 독보적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시련자들까지. 그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한수아를 한번이상 돌아볼정도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꾸벅 숙인다.

뒷통수가 보일 지경이다.

거리는 얼추 1m

슬며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고개를 든 그녀가, 갑자기 멀어진 서로간의 거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이딴건 됐고.

“우리, 따로 대화좀 해야될거같은데.”

한수아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성미령은 지금 이 상황이 당황을 넘어, 그냥.. 믿기지가 않는것처럼 보였다.

기차 안에서는 친해보였는데.. 지금은 왜 저렇게 ‘경계’하는걸까.

딱 그런 시선이다.

그런데, 네가 내 입장이었으면 이보다 더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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