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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4화 (14/131)

14화. 변수(2)

대기실로 귀환한 나는, 멍하니 눈앞에 뜬 메시지창을 응시하고있었다.

[매혹 상태가 해제됩니다.]

...상황을 파악하는데 3초가 걸렸고. 머지않아 폭소를 터트리는 데에는 2초가 걸렸다.

배를 잡고 웃었다.

정말.. 뭐라고 해야 하지?

아니, 그냥 말이 안 나온다.

매혹.. 매혹이라고?

웃음을 멈추고는 생각을.. 아. 미치겠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안 좋은 생각을 하자.

그래 지구. 가볍게 과거를 잠깐 언급해보자.

지옥이 된 지구는, 초창기에 그다지 큰 위험이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등장하는 몬스터는 고블린과 오크, 그리고 높아봐야 하위종과 중위종에 걸쳐있는 드레이크정도였으니.

솔직히 그 정도는 현대식 무기로도 몰살이 가능했다.

아니, 솔직히 그 이상까지도 가능했다.

현대에는 핵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무기도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지구가 지옥이 되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던 이유는 하나다.

일단 페데리코 마키아벨리 같은 정신병자새끼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

그중에서 마키아벨리의 경우는 거의 양반이나 다름없었다.

놈은 그냥 폭탄을 터트리며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게 가장 큰 위험이 아니었냐고?

아니다.

진짜 위험은 사회 지도층은 물론이고 시련자까지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정신 계열 능력자’였다.

고유권능 ‘세뇌’를 가진 중국 국적의 ‘판링링’, 그녀는 스스로를 환희신녀歡喜信女라고 칭했으며 그 세뇌 능력 하나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자기만의 왕국으로 꾸렸다.

또한 일반인과 시련자들 사이에 노골적인 계급 구조를 만들었고 일반인을 노예로 부렸으며 몬스터에게 먹이를 주는 등, 온갖 패악질을 일삼던 여자였다.

어찌 보면 몬스터보다 더한 년이었고 시련에서 만나는 그 즉시 반드시 죽이려고 벼르고 있던 여자다.

그리고 내가 아는 정신계열 고유 권능을 가진 여자는 그녀 혼자였다.

그런데 지금, ‘매혹’이라는 고유 권능이 등장했다.

이게 스킬 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아니, 확신한다.

이건 고유 권능이다.

-정신 계열 스킬이 궁금하다고? 고유 권능까지 포함한다면 내가 알기로 총 세 가지야. 세뇌, 착란, 환각. 그중에서 착란과 환각은 상점에서도 살 수 있었지. 얼마였더라... 각각 10만 코인이었나?

그 뒷말도, 기억난다.

-그런데 그 두 개는 쓰레기야. 피시전자가 마나의 유동을 느끼고, 그걸 깨트릴 정도만되도 손쉽게 저항이 가능하지. 세뇌는 더 말할 것도 없지? 그 개년, 다시 생각해도 잘 죽였네.

왜 판링링이 그 정도로 독보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는가.

이유는 하나였다.

판링링은 강자였다.

Episode #73에서 형님에게 죽었지만 아마 형님이 아니었다면 판링링은 최소 #90까지는 올랐으리라.

젠장.

매혹이라니.

Episode #1이 끝난 지금까지 나는 내가 매혹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누가? 대체 언제부터...?

순간, 머릿속으로 형님과 대화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고유 권능을 가진 놈들을 상대할 때 주의할건 하나야. 놈들의 권능 발동 조건. 그런데 신기하게, 대부분 공격계열이나 방어계열은 그 조건이 비슷비슷하더라고.

-비슷해요?

-어, 풍신 박유정이 태풍 만들 때, 박수치는 거 알지?

-아... 그게 발동 조건이었습니까?

-공격 계열은 대부분 비슷하더라, 말은 안했지 누구는 발바닥을 마주쳐야 스킬 발동 되는 놈도 있어.

-그거 누군지 알 것 같은데요.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놈 맞어, 여하튼 대충 하나만 알고 있으면 돼. 까다로울수록 능력이 좋은 경우가 많아.

판링링은 세뇌를 걸려면 상대의 ‘눈’을 바라본 채로 ‘신체’를 접촉 해야 했다.

나는 예지력을 발휘하려면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해야했고, 마키아벨리는 손가락을 튕겨야한다.

즉,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

천천히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 매혹의 발동 조건은 뭘까.

공격 계열은 소리를 내야하는 공통점이 있다.

방어 계열은 특정 자세가 있으며, 정신 계열.. 아니, 유일한 정신계열 고유 권능자였던 판링링은 눈을 바라본 채로 신체를 접촉해야한다.

그래.. 접촉.

매혹은 정신계열이니, 그녀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시련자.

시발.

내게 접촉하고 눈을 마주친 인물은 한명 밖에 없다.

한수아.

그 여자가 나를 상대로 매혹을 걸었다.

와..

와...뭐 말이 안 나오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아니, 실체를 알게 되자 웃음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리라.

지금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한수아. 솔직히 예쁘긴 했다.

내가 여태껏 보아온 ‘인간’ 여자 중에서 한수아만큼 외모나 분위기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자는 없었다.

인정한다.

그런데 내가 왜, 그녀를 보고 ‘가족’을 떠올렸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독을 살포했던 그 시련자. 내가 살해자 업적을 달성하게 되었던 계기를 마련해준 그놈을 죽인 것은, 과연 나의 의지였는가 아니면 그녀의 의지였는가.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고유 권능을 가진 시련자는, 확실히 특별해. 그게 어떤 권능이건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래서 시전자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그게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정신 계열은 그 간극이 다른 권능에 비해서 너무 커. 심각할 정도로.

개인의 의지가 상대의 의지를 침범하고 그 의지를 마음대로 조종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세뇌 권능의 정의였다.

그렇다면 매혹은 어떠한가.

앞서 말했던 시련자를 죽인 것, 그건 분명 나의 의지였다.

뿐만이 아니라 기차 내에서 벌어졌던 그 모든 일들은, 모두 내 의지로 이루어진 일이다.

매혹이 풀린 지금도 괴리감 자체가 없다.

그때의 한수아는 분명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고 그 창백해진 얼굴과 떨리는 몸으로 보아 체력 스텟이 굉장히 낮은 걸로 강하게 추정된다.

그리고, 아마 내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죽었을 것이다.

형님이 말씀하셨던 시전자의 의지.

그 말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돈다.

후우-

결과만 보자.

한수아는 내게 아무런 '명령'을 하지않았다.

내가 그 시련자를 죽인것은 그놈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녀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생각하긴했었지만 그게 전부였고,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내 목에는 1만 코인과 유물형 아이템이 걸려있었는데도 그녀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다시 정리하자.

결론은 한가지로 압축된다.

한수아는 나에게, 매혹을 걸어놓고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모르겠다.

모든 가정이 무의미한 것 같다.

젠장.

한수아.

그녀는 재앙인가 축복인가.

오직 나만 알고있는 또 다른 정신 계열 권능자.

그녀는 내가 생각한 '변수'일까?

문득 내 시야에 내 팔을 둘러싸고 있는 한수아의 치맛단이 들어온다.

자기 옷을 찢어서 내 팔에 감싸주는 게... 무슨 애완동물 치료해주듯..

“허어...”

탄식이 터져 나온다.

심호흡을 하니 상황이 조금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이거 생각해보면 굉장히 웃기다.

시련자라는 것은 결국 튜토리얼에서 고블린을 죽이고 족장을 죽인 이들이다.

절대로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는 뜻.

미치겠다.

죽었어야 할 이들을 살렸는데, 그중에 한명이 정신 계열 권능자라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우연이 아닌가.

젠장.

그냥 기차 내의 모든 시련자를 죽였어야 했던 걸까?

새삼스럽지만 현실감이 느껴진다.

내가 들었던 시련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정답이 될 수 없다.

그 모든것은 오직 힌트의 범주를 벗어나지못한다.

그 범주안에는 당연히 예지력도 포함된다.

약간 흐릿해지고 거만해지려던 가슴이 제 자리를 찾는다.

“고생하셨어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쎄쎄였다.

그녀가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내 표정은 지금 어떨까.

기차에서처럼 손으로 입가를 더듬었다.

나는, 이번에도 웃고 있었다.

“시련이 꽤나 만족스러우셨나보네요.”

“그건 아니고, 그냥 일이 조금 재미있게 흘러가는 거 같아서.”

쎄쎄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Episode #1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5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햇병아리 시련자」를 달성하셨습니다.]

[1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은 특수 퀘스트를 통과하셨습니다.]

[1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대기실의 안내자로부터 나머지 ‘보상’을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Episode #2는 12시간 뒤 시작됩니다.]

보상이 꽤나 후하다.

보유 코인은 거의 3만 코인에 육박한다.

그리고 12시간 뒤 시작되는 Episode #2, 향후 벌일 일을 생각하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확인 하셨나보네요.”

고개를 들자 쎄쎄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도님은 역시 보통 시련자가 아니었네요. 겨우 Episode #1에서 깬 업적만 도대체 몇 개야. 아니 그것보다 대체 신님의 진명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그분 말고 다른 분의 진명도 혹시 알고 있는 건가요? 이곳에는 지구에서 탄생한 신이 한명도 없는데.. 혹시 고유 권능을 개화하신건가요?”

말없이 피식 웃었다.

“왜 웃으세요? 저 정말 궁금해요. 말씀해주시면 코인이라도 드릴...”

“미수령 보상을 수령한다.”

그녀의 말을 끊었다.

지금은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때고, 가만히 있으면 그녀의 개소리가 점점 지나쳐질게 뻔 하기에.

“유물 아이템, ‘광전사의 갑옷’을 받겠다.”

웃고 있던 쎄쎄의 표정에 금이 갔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경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천상의 학살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시작을 알린 아룡이 폭소를 터트립니다.]

“...그게 뭔지는 알고 받으시는..”

“잔말 말고,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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