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13화 (13/131)

13화. 변수(1)

철컥-

투욱-

빈 탄창을 옆으로 대충 던져버리고, 새로운 탄창을 끼워 넣었다.

띠링!

[업적! 정의로운 학살자 달성!]

[10명의 시련자를 죽이셨습니다. 조금만 더 분발하세요!]

[25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나는 명사수다 달성!]

[10명의 시련자를 ‘권총’으로 죽이셨습니다. 더 분발하세요!]

[25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코인을 얻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Episode #2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몬스터 사냥’에서, 어떤 방식으로 몬스터를 죽이는지, 혹은 연속으로 얼마나 죽이는지 등,

그 외에도 준비되어있는 업적은 정말로 무궁무진하다.

즉, 살아만 있다면 시련자는 누구든 강해질 수 있다.

괜히 선택받은 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지금 나는 고작해야 첫발을 내딛은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아, 물론 다른 시련자들보다 덩치는 5배 정도 큰 괴물 햇병아리다.

이후 나는 한 가지 작업을 시작했다.

머리가 으깨진 채 죽어있던 페데리코 마키아벨리의 시체를 밑으로 집어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내 권총에 맞아죽은 시련자들의 시체도 죄다 밑으로 집어던졌다.

이 열차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시련자들에게 이 정도면 충분한 답이 되었을터.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간 14시 28분, Episode #1 종료까지 32분 남았다.

동시에 손에서, 거북함이 느껴진다.

왠지 철근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슬슬 오른손에 마비가 오는걸까. 젠장. 화상이 생각보다 심한 것 같다.

한숨을 내쉬고는 고통에 얼룩진 표정을 숨겼다.

나는, 여유롭게 열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운이 좋게도 2번 열차칸이다.

익숙한 면상의 한국인 몇몇과 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보인다.

그들 중 얍삽하게 생긴 외국인 한명이 나를 보더니 기다렸다는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저놈 저거, 총알 없어! 다 떨어진 거라고!“

근거 없는 그 말에 몇몇 시련자가 반응한다.

위로 올라왔던 놈들이 총알 어쩌구 했던거같은데, 혹시 저놈이 선동한 건가?

쯧.

가볍게 혀를 차고는 걸음을 옮겼다.

한심해서 웃음 조차 나오지않는다.

”에휴.. 이 븅신들아. 앞으로 오크,와이번,드레이크... 이런 괴물들을 상대해야 되는데.. 아직도 현실감이 없지?“

철컥-

싸늘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귓구멍 열고 잘 들어라. 이 시련에서, 시련자라면 무조건 지켜야 할 절대적인 규칙 하나를 알려주마.“

[선신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악신들이 코웃음을 치며 당신을 노려봅니다.]

[중립신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같은 시련자의 뒤통수를 치는 놈은, 무조건 내 손에 죽는다.“

총구를, 겨눴다.

얍삽하게 생긴 외국인을 향해서.

그놈이 빠르게 한 시련자의 뒤로 숨자, 그놈을 가리고 있던 여성 시련자가 놈을 대변하듯 외쳤다.

”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조금 당황스럽다.

거참..

”내가 언제? 나 죽이겠다고 달려든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인데?“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그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저 개소리에 현혹되지 말라며 외칩니다.]

내 말에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는다.

물론 내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깜빡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맞다...이 말을 했어야했는데, 뒤통수치는 새끼를 보호해주거나 도와주는 놈, 오해였다느니 누구누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느니.. 이딴 개소리하는 새끼들도 죽일 거다. 3초주지. 3.“

내 말에 얍삽하게 생긴 놈이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외친다.

”네가 뭔데 규칙을 정해!! 그리고 ‘우리’가 무슨 틀린 말 했....“

타앙-

”아아아악!!!“

망설임 없이 쏜 총알이 놈의 귀를 관통하고 1번 열차칸으로 향하는 창문을 부쉈다.

머지않아, 나는 귀를 움켜쥐고 있는 놈의 머리맡에 서있었다.

그놈을 대변하던 시련자는 조용히 옆으로 물러난 상태다.

힐끔 고개를 돌려 대변하던 시련자를 바라보며 한마디 툭 내던졌다.

”운이 좋네?“

”으..으으..“

”두 번은 없어. 명심해.“

뒤로 물러섰던 여성 시련자가 겁먹은듯 그 자리에서 털퍼덕 주저앉는다.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얍삽하게 생긴 놈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

”나는 말이야. 시련자를 최대한 많이 살리려고 하거든.“

"...뭐?"

모두가 당황한다.

살린다는 놈이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 일수도 있다.

[무의 극의를 깨우친 전사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혼란스러워합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제발 누가 저놈 좀 죽여 달라며 외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는 전부 무시했다.

모두가 나를 주목한다.

그 시선을 느끼며 나는, 내 할 말을 이어갔다.

”살리는 기준은 내가 정한다. 미친놈, 싸이코, 나를 뭐라고 부르건 상관안해. 하지만 하나만 명심해라. 내 기준에서, 이 새끼처럼 같잖은 욕심 부리는 새끼들은, 이렇게...“

베레타를 겨누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탕!

세발의 총알이 놈의 머리통을 헤집는다.

마키아벨리가 죽었을 때처럼 사방으로 피가 터져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앙-

놈의 심장에도 한발 박았다.

그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뿌리째 뽑아 버릴 거다.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면상 기억해놨다가, 이 시련을 진행하면서 만나는 그 즉시 죽여 버릴 거니까.“

나는 이 순간, 2번 열차와 1번 열차, 그리고 3번 열차안의 모든 시련자들을 압도했다.

내 말에는 무게가 담겨있었으며 힘이 담겨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십억명의 인간들이 산채로 찢겨나가고, 몬스터들의 먹이가 되고, 인간들이 인간들끼리 싸우고, 시련자는 시련자들끼리 싸우는, 개판중의 개판, 그 좆같은 현실을 나는 5년 동안 온몸으로 겪었다.

고작해야 나를 죽여 1만 코인을 얻겠다는 같잖은 욕심을 부리는 놈들이랑 내 각오가, 비견 될 리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이들은 100% 확률로 과거에 마키아벨리에의해 모조리 죽은 사람들이다.

고작해야 #1에서 죽었기에 그들의 힘은 당연히 보잘것없었다.

고블린에게 죽을 정도였고, 운이 좋아봐야 시련자들끼리의 싸움에서 등짝이 터져나간 새우 꼴이었으니. 솔직히, 다시 봐도 이 사람들을 나는 거의 처음 본다.

그 정도면 말 다한 거다.

그런 내가, 이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들을 살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변수일 수도 있고, 판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아직은 확실하지않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만들 자신은 있다.

발에 묻은 핏자국을 대가리가 터져 죽어있는 놈의 옷에 대충 문질렀다.

오물이 묻은 기분이다.

쯧.

여하튼, 하던 말을 마저 하자면 Episode #2부터 모든 시련자들은 ‘발바라 대륙’이라는 공통적인 무대로 이동한다.

그곳에 속해있는 거대한 제국과 여러 왕국으로 시련자들은 제각기 흩어진다.

당연히, 지금 이 기차에있는 모든 시련자들도 뿔뿔히 흩어진다.

아마 이들은 제각기 배정된 곳에서 내 이름을 언급하겠지.

나는 내 이야기가, 세상 널리 퍼지기를 원한다.

적어도 이 열차에있는 이들은 시련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새끼는 반드시 찾아서 죽인다는 내 말을 주의깊게 들었을것이다.

일단, 지금은 그거면 된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살아남은 5-2번 열차의 시련자들과 하나도 빠짐없이 눈을 맞췄다.

내 말이 그들의 뇌리 깊숙이 꽂혀들고. 그들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나도 그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간단한 절차였고 간단한 과정이었다.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침묵에 쌓인 5-2번 열차칸을 지나. 5-1번 칸으로 이동했다.

11명가량의 서양인들이 나를 바라본다.

표정이 5-2번에서 나를 바라보던 이들과 흡사하다.

깨진 창문으로 내 목소리를 들은 건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네.

그중 몇몇 이들의 눈에는 반발심마저 보인다.

반발심. 좋다.

이 정도의 ‘패기’면 조금은 성장할 가능성이 있겠지.

당연히 그들의 얼굴도 기억했다.

이번에는 5-2번을 가로질러 5-3번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살아있었다.

15명,

1번 열차칸에 있어야할 서양인들이 이곳에 몇몇 보였다.

대충 어떤 상황일지 짐작은 간다.

주변을 한번 쭉 훑고는 조용히 5-2번의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 주변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쯤 모두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Episode #1, 5번 기차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기회를 주었다는 걸 알아챘을 테고.

잠깐 주변을 훑고는 베레타를 허리춤에 대충 쑤셔 넣었다.

이내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아까 그 여자,

종이에 조심하라고 적었던 그 여자가 또 다시 종이에 무언가를 적더니 내게 보여준다.

-팔 괜찮으세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내 오른손.

그러니까, 정확히 팔목 부분을 감싸고 있던 옷가지는 터져나가 있었으며, 팔목에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고, 오른손가락은 화상으로 붉게 달아올라있었으며, 군데군데 살이 짓물리고, 그 밖으로 고름이 새어나오는 상태였다.

참고로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부터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 싶었는데.. 이 정도였구나.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대기실로 귀환하면 모든 상처는 재생되고, 치료된다.

목이 잘린 게 아니라면 말이다.

묘하게도 계속 나를 신경써주는 이 여자가 안 좋게 보일 수는 없겠지만 나는 경계했다.

그래도 팔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으니 가벼운 인사치레로는 괜찮은 거겠지?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약간의 긴장의 끈이 유지된 채로 모두가 빈자리에 가서 앉더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내 말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거고, 아니면 지금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지. 혹은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지.

그런걸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나도 문득, 여동생과 할머니를 떠올렸다.

걱정 되냐고?

아니,

내가 알기로 19세 미만의 아이들과 40세 초반 이상의 사람들은 시련 후보자가 되지 못한다.

이유는 당연히 모른다.

수많은 이론이 나왔었고,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건 그들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미약하거나 노쇠되어가는 과정이기에 배제되었다는 이론이 통설이었다.

내 여동생은 18살, 그리고 할머니는 79살.

설령 지옥이 된 지구로 돌아간다 해도 첫날에는 고블린 따위의 최하급 몬스터들이 등장하고, 그 정도는 약간의 혼란이 있긴 하겠지만 군대로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

나는 걱정할게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흘러갔다.

*

현재 시간 14시 50분

Episode #1 종료까지 10분 남았다.

당연히 나는 살아있었다.

[만개의 언어를 깨우친 자가 주변에 있는 물건을 다 때려 부수고 있습니다.]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조용히 웃습니다.]

내가 이들에게 경고를 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5번 기차의 상황은 너무나도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일단,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의도한 결과였고, 당연하게 만들어질 결과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는 10분 전부터 토론을 벌이고 있는 두 시련자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시련자인 성미령과, 처음 보는 서양인 한명. 그 둘의 대화는 2번 열차뿐만이 아니라 1번과 3번 열차의 모든 시련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확실히 저 남자의 말이 일리가 있긴 해요. 앞으로 어떤 시련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우리끼리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앞으로 벌어질 시련이 전부 인간끼리 싸우는 것일 수도.”

“글쎄요. 개인적으로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튜토리얼에서 봤잖아요? 고블린이라는 괴물이 왜 나타났겠어요. 그리고 대기실에서 보았던 그 영상도 마찬가지고, 우리 적은 시련자가 아니에요. 이 시련도 뭔가 이상해, 갑자기 1명을 죽이면 살해자라는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니? 마치 싸움을 부추기는 것 같은 뉘앙스였지 않아요?”

등등.

성미령은 확실히 괜찮은 여자였다.

고작해야 Episode #1에서 죽기엔 아까울 정도다.

“저 남자의 방식이 과하긴 하지만.. 어쩌면 최선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어요.”

“...글쎄, 그건 모르는 거지.”

당사자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 있어서 퍽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조용히 대화하는 시련자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띠링!

[10초 뒤 대기실로 귀환합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문득 내 오른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헝겊 같은 것으로 둘둘 말려져있는 내 오른손.

힐끔 고개를 돌렸다.

입으로 말하지 않고, 종이에 자기 의사를 적어 전달하던 여자가 보인다.

정말이지... 이 여자는 뭘까.

나는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

곧게 뻗은 다리를 넘어 그녀의 원피스 아래 잘려져 있는 치맛단이 눈에 들어온다.

내 손에 둘둘 말려져있는 헝겊은, 이 여자의 치맛단이다.

절대로 내가 찢은 게 아니다.

그녀가 스스로 찢어서 내 손에 둘둘 말아준 것.

대기실로 가면 모든 상처가 치료되긴 하지만, 이 여자는 그걸 모르는 걸까.

마치 내 상처가 자기 상처 인 것 마냥 자기 치마를 찢고, 내 손에 둘둘 말아 주는 그 과정은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아니 나를 언제 봤다고?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도 배시시 웃는다.

[5초 뒤 대기실로 귀환합니다.]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덕담을 건넸다.

“너. 꼭 오래 살아라.”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보게 되었다.

그녀의 큰 눈망울이 글썽이는 것을.

...매우 당황스럽다.

갑자기 왜?

그녀가 이번에도 입을 열었다.

뻐끔대는 그녀를 보니.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듯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신기하다.

나는, 말했다.

내 이름을.

“이도.”

[3초 뒤 귀환합니다.]

뻐끔거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작게 빛난다.

그녀의 입에서, 천천히, 울적하게 가라앉아있는 목소리가 힘겹게 새어나온다.

“저.. 저는...”

[1초 뒤 귀환합니다.]

“한...수아... 한수아에요..”

모기 목소리였지만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대기실로 귀환합니다.]

기차에 있던 모두의 몸을 빛무리가 감싼다.

Episode #1, 이제 끝났다.

나는 살아남았고, 보상을 고르면 된다.

몸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던 그때.

띠링!

[매혹 상태가 해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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