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미친놈(3)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간, 14시 09분.
동남아인을 옆으로 치우고, 3번 열차로 통하는 문고리를 잡아채던 그때.
“..저기.. 저기요!”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렸다.
성미령.
8월 17일, 고블린들과의 전투에서 죽었던 시련자다.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 다급하게 말을 잇는다.
“당신.. 혹시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나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자. 몇 개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잠깐의 그 침묵동안, 5-2번 열차칸의 모든 이들이 나를 주목한다.
메시지창도 고작 5개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아마, 200명이 훌쩍 넘어가는 신들도 나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
앞서 말했지만 당연히 없었다.
다만 이 말 정도는 해줄 수 있다.
“혹시 앞 칸에서 나를 찾는 놈이 있으면, 내가 3번 열차칸으로 갔다고...”
그때였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나는 걷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의 외모는 동남아쪽.
그러니까. 여기는 5-3번 열차칸이다.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찾는 것 같은 미래의 내 모습.
뻔하다.
페데리코 마키아벨리.
나는 놈의 면상을 안다.
4번 열차칸을 폭발시킨 그놈은, 아마도 3번 열차칸으로 몸을 옮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이곳에, 놈이 있어야한다.
순간 내 눈앞에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퀘스트창이다.
[1번 열차칸 14/20]
[2번 열차칸 20/20]
[3번 열차칸 19/20]
[4번 열차칸 0/20]
[제한 시간 : 42분 01초]
순간 흠칫했다.
시간도 미묘하고, 숫자도 이상하다.
이어서 내 시야가 내 왼쪽 팔목으로 옮겨진다.
현재 시간, 14시 18분
내가 3번 열차칸으로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이 14시 09분, 그러니까 9분이 지난 상태다.
그러니까 지금, 이 미래는 정확히 내가 3번 열차를 들어오고 난 뒤 9분 뒤 벌어질 미래다.
“뭐야!! 이거 왜 안 열려!!!”
동남아인 2명이 5-3번에서 5-2번으로 넘어가는 문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거기까지 보고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지 않는 건 당연하다.
[2번 열차 20/20]
정원이 전부 찼으니까.
당연히 수용될 인원은 없다.
그렇게, 내 시야가 주변을 훑었다.
주변에 죽어있는 시체들이 보인다.
숫자는 2.
묘한 위화감이 머릿속을 강타하기가 무섭게,
콰아아아아앙-
열차가, 폭발했다.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5-2번 열차가 화마에 휩싸였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빛처럼 흐릿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진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저 안에 타있던 20명은 전부 죽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5-3번이 아니라 5-2번이 터진 거지?
그 순간,
내 후각이 반응했다.
미약하게, 냄새가 난다.
가스.
시발.
콰아아아아앙-
*
시야가 변했다.
나는, 3번 열차로 향하는 문고리를 움켜잡은 상태.
그래, 현실로 돌아왔다.
한번만 더 강조하자.
이쯤 되니 확실해진다.
내 예지력은, 내 죽음이 가까워질 때만 발휘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부터 정확히 9분 뒤 죽는다.
그것도 폭사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키아벨리. 그놈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지?
내 기억에 의하면 마키아벨리는 시련 초창기부터 ‘가스’를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 튜토리얼에서 얻은 보상으로 ‘가스 살포’를 배웠거나, 애초 시련 후보자가 되었을 때부터 가스 살포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Episode #1을 시작한 햇병아리 시련자다.
놈이 나처럼 회귀한 게 아니고서야 놈의 고유 권능 ‘발화’는 미약한 수준이 확실하다.
놈이 더 크기 전에, 반드시 잡아서 쳐 죽여야 되는데..
후우..
심호흡을 했다.
복잡한 머리가 잠깐 환기되는 기분이다.
생각하자.
멈추지 말고 생각하자.
놈은 대체 어디에서 가스를 살포했던 거고 불꽃을 일으킨 거지?
나는 5-3번 칸에서 놈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5-2번 칸에 있다?
놈의 면상을 알고 있는 내가, 그런 놈을 놓친다고?
혹시,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련자의 눈을 속이고 이동하는 수단이 놈에게 있었던 걸까?
설마... 투명화 스킬을?
아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
투명화 스킬은 최상위 등급에 랭크되어있는 스킬이다.
코인의 가격으로는 100만이 넘어가며, 넓게 쳐서 악신들의 소행이라고 해도 본격적인 후원 시스템이 공개되는 것은 Episode #1이 종료되는 순간부터다.
더 확실한건 미래의 그놈은 투명화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갑자기 왜 말씀을 하시다 마세요?”
고개를 돌리자 성미령이, 조금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나는 5-3번 칸으로 간다고, 그걸 말해두려고 했는데..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내가, 무언가 어마어마한걸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자.
예지속에서 보았던 9분 뒤 열차 상황.
1번 열차칸에는 14명이 있었고, 2번에는 20명이, 하지만 3번에는 19명이 있었다.
2번 칸으로 진입하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소리 지르던 두 동남아인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본 3번 열차칸의 시체는 총 둘.
머릿속에서 흐릿해졌던 무언가가 점점 뚜렷해진다.
일단, 숫자가 이상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2번에서 3번으로 넘어온 ‘한국인’은, 분명 나 혼자다.
3번에서 2번으로 넘어갔던 동남아인 1명과 죽어있던 두 시체.
그렇게 된다면 원래 20명에서 마이너스 3, 17명이 되어야했고, 거기에 내가 들어갔으니 18명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19명이다.
즉,
3번 열차칸에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놈이 더 있었다.
100% 확률로 놈은 마키아벨리가 확실하다.
그리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놈은 대체 어디에 있던 거지?
아니, 그것을 넘어 5-3번 열차에 있을 것이 확실한 놈이, 왜 5-2번칸을 터트리고 5-3번을 터트린거지?
5-3번에서 5-2번으로 넘어가려면 나를 거쳐가야한다.
나는 5-2번으로 향하는 문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었으니까.
...그런데 5-2번으로 이동하는놈은 없었으니 놈은.. 5-3번에서 폭발에 휘말려 '자살'했다는 말이된다.
이상하다.
아니, 자살?
피식 웃고 말았다.
말하고 나니 우습다 못해 어이가 없다.
놈이 자살을 한다?
맹세컨대 그럴 일은 없다.
그 새끼만큼 삶에 집착이 있는 놈을 나는 본적이 없었으니까.
갈증이 난다.
성미령을 무시하고,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꺼내들었다.
당연히 문 앞에 선채로,
한 모금을 입에 담고, 목 뒤로 넘기던 그 순간.
‘...어라?’
창밖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물병속의 물과 바깥 풍경이 교차된다.
이게.. 가능한일인가?
물병을 그대로 수평으로 놓았다.
바깥 풍경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뒤바뀌고 있었다.
당연히 ‘곡선’ 구간도 존재했다.
그런데 물병의 물은 그대로다.
출렁이지도 않는다.
마치. 열차가 ‘정지’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툭-
물병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너무 멍청했다.
왜 이걸 생각하지 못한 거지?
여기도 하나의 세계다.
중력이 작용하고, 공기 저항이 존재한다.
그런 세계에 ‘마법’이라는 여태껏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힘’이 작용한 상태일 뿐.
무언가에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깥 풍경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뒤바뀌고 있다.
그 누가 보았건 확실히 이 기차는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솔직히, 아직까지도 약간은 긴가민가하다.
그래서 한 가지 더 실험했다.
나는 창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유리가 박살나며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다.
그게 끝이었다.
기차에 붙어있던 유리가 깨져서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면, 유리는 공기저항에 의해 뒤쪽으로 날아가야 한다.
하지만 유리는 날아가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질 뿐이다.
기차가 ‘이동’중이었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즉, 기차는 현재 ‘정지’중이다.
그러니까. 바깥 풍경만 그럴싸해보인거지, 열차는 제자리에서 멈춰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련자들까지. 그 모두가 비상식적인 상황에 맞물려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발.
마키아벨리는 투명화 스킬이나 이딴 걸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놈은 단순히 알게 된 것이다.
남들의 눈을 피해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머리가 맑아진다.
찾았다.
그놈이 어디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