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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0화 (10/131)
  • 10화. 미친놈(2)

    나는 대의大義 같은 것은 모른다.

    내 목적은 세가지다.

    첫째. 이곳에서 시련자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얻는다.

    둘째. 지구의 멸망을 막는다.

    셋째. 멸망을 앞당기는 쓰레기들을 잡아 죽인다.

    내 목적들은, 분명 대의大義가 아닌 자기만족自己滿足이다.

    물론 곱게 포장하면 대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나는 누군가를 설득 시킬 생각도 없으며, 이해를 바랄 생각도 당연히 없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거나, 안타깝게 여기거나, 그딴것도 당연히없다.

    그런 나의 심성은 분명 악에 가깝다.

    물론, 이건 인간들의 기준이지 신들의 기준은 아니다.

    선신들은 위에 말했던 대의大義에 집착한다.

    어떤 행동이 만들어낼 결과가 결국에는 모두의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판단’ 된다면 선신들은 앞으로 쭉, 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물론 근거는 있다.

    -시련 도중에 시련자들이 죽는걸 선신들은 방치를 했었거든. 그 이유가 뭔가 싶었는데.. 이렇게 지구로 돌아와 보니까 알겠더라. 어차피 시련에서 죽어도 실제로 죽는 게 아니니까. 그들은 시련에서 대의로 무장한 새로운 신의 탄생을 기다렸던 거야. 그래서 악신들이 지랄할 때도 그냥 지켜만 봤던 거고, 넓게 보자면 악신들의 수작도 시련의 일부중 하나니까. 우리랑 생각하는 사고가, 아예 달라.

    천천히 눈을 떴다.

    내가 들은 Episode #1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살육전’이었다.

    내가 속한 5번 기차가 아니라, 1번 기차, 2번 기차 등등등.. 수많은 기차에서 죽은 시련자들의 숫자는 줄지어도 연병장 다섯 바퀴정도는 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5번 기차에 있는 모든 시련자들의 표적이 나에게로 옮겨졌다.

    선신들과 중립의 신들은 생각할 것이다.

    저 시련자는 대체 뭐기에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가.

    그 이면에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걸까.

    악신들도 생각할 것이다.

    저 건방진 시련자는 반드시 탈락시켜야겠다.

    혹은, 반드시 죽여야겠다.

    그리고 세 진영의 신들은 공통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대체, 저 시련자는 누구 길래 진명眞名을 알고 있는 것인가.

    당연히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시선을 돌려 주변을 훑었다.

    혼란 가득했지만 저마다, 자신들의 무기를 강하게 움켜쥐는 것은 거의 동일했다.

    그들은 유물급 아이템이 뭔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1만 코인.

    그거면 눈 돌아가기에 충분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굉장히 소란스럽던 앞 칸과 뒤 칸은 조용했다.

    중간 중간 ‘이도’라는 이름이 들려오는 걸로 보아. 나를 찾는 것 같다.

    피식 웃고 말았다.

    죽음에 쫓기는 기분이라..

    이거. 생각 외로 나쁘지 않다.

    그때, 누군가 내 손을 두드린다.

    고개를 돌렸다.

    말 못하는 여자. 그녀였다.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그녀가 종이에 무언가를 끼적이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조심하세요.

    한 번 더 웃고 말았다.

    신기하네.

    그래도 내 편이 하나 있는 건가?

    슬슬 움직이려던 그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열차 전체가 진동했다.

    진동?

    아니. 탈선 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그리고 내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진다.

    익숙해서 더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

    이건 폭발소리다.

    무언가, 어마어마한 게 폭발한..

    설마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퀘스트창을 켰다.

    선신들과 악신들이 연관된 퀘스트가 아닌, 처음 이 열차에서 살아남으라는 그 퀘스트.

    [1번 열차칸 17/20]

    [2번 열차칸 19/20]

    [3번 열차칸 19/20]

    [4번 열차칸 0/20]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4번 열차칸.

    숫자가 0이다.

    즉. 전멸했다는 뜻이다.

    내가 알기로 열차 안에는 폭발하는 요소가 단 하나도 없다.

    이건 스킬이나 아이템에 의한 것일 확률이 높다.

    한 99.9%정도.

    고개를 들었다.

    나처럼 퀘스트창을 확인하고 표정이 굳어진 이들도 있고, 폭발 소리가 났던 뒷 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이들도 보인다.

    [혼란을 초래하는 거인이 굉장히 만족스러워합니다.]

    [불을 다루던 소인이 폭발은 예술이라며 손뼉을 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나는 이 기차안의 모든 시련자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면 또 상황이 달라진다.

    가볍게 언급되었지만 사실, 이 업적이라는 시스템은 시련자들에게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컨텐츠다.

    업적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지만 솔직히, 공개 되어도 언급 할 수가 없다.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 혹은 누군가를 고문하고 굴복시키고, 정신을 망가트리는.. 정말로 많은 카테고리가있다.

    그중에서 가장 위협적인건 바로 '학살자' 업적이다.

    이건 오직, 시련자를 죽였을 때만 개방되는 카테고린데.

    앞서 말했던 살해자 업적은 단순한 시작에 불과하다.

    10명 이상의 시련자를 죽인다면 깨게되는 '네임드 학살자', 내가 알기로 10명의 시련자를 죽였을때의 보상은 5천 코인, 하지만 20명을 죽였을때는 1만 코인, 30명을 죽였을때는 2만 코인, 40명을 죽였을때는 4만 코인.

    단순히 10명씩 늘어날 뿐이지만 그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보상은 어마어마해진다.

    내가 알기로 50명을 죽였을때부터는 '네임드'의 명칭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고는 하는데...

    저 열차에서는 과연 어떤 네임드 학살자가...아니지. 아니다.

    지금 그걸 생각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광기의 학살자, 혹은 분노의 학살자, 인간의 탈을 쓴 학살자.. 내가 알기로 그 종류만 열개가 넘어간다.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정리하면, 중요한건 하나다.

    지금, ‘네임드 학살자’가 탄생했다.

    조금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나온다.

    나한테 걸린 ‘현상금’만 1만 코인, 그런데 나를 노리지 않고 다른 시련자를 죽인다?

    어떤 미친....

    “젠장!!!!”

    생각이 끊겼다.

    누군가 3번 열차와 연결되어있는 칸의 문을 열더니 욕설을 내뱉으며 들어왔으니까.

    그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동남아인.. 이름은 모른다.

    처음 보는 남자였으니까.

    다만 욕설이 매우 찰지다.

    언급은 안했지만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한 국적 불문하고 모든 언어의 장벽은 무너진다.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 표정, 무언가를 보고 두려움에 떠는 것 같은 저 표정은 확실히 신경 쓸 만했다.

    그에게 다가갔다.

    주변에 웅성거리던 이들이 내가 다가오자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쫙 갈라선다.

    순간 동남아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진퇴양난.

    그 동남아인의 표정은 분명 진퇴양난을 마주한 이의 표정과 흡사했다.

    경험상, 그리고 상황상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무언가 아는 게 있는 거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물었다.

    “4번 열차 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폭발...

    그건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정보다.

    모자르다.

    “자세히.”

    “..내가 왜 그걸..”

    순간, 놈의 눈동자에 무언가 비춰 보인다.

    내 뒤쪽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터억-

    놈의 팔목과 맞닿으며 검 자체가 허공에서 정지한다.

    그대로 몸을 돌려 주먹을 휘둘렀다.

    퍼걱-

    “커헉..”

    놈의 울대가 움푹 파인다.

    긴 머리에 탐욕으로 젖은 눈동자.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다.

    살려줄 생각?

    없었다.

    그대로 발을 들어 놈의 허벅지를 찍어 누르자 퍼걱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다.

    “끅..”

    고통어린 신음은 무시했다.

    스텝을 밟고는 빠르게 놈의 뒤쪽으로 돌아간 뒤 오른손으로는 놈의 아래턱을, 왼손으로는 놈의 머리를 잡아챘다.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양 팔을 각각 반대방향으로 강하게 틀자.

    뚜두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목이 부러졌다.

    그대로 나를 습격한, 그러니까 이름 모를 시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옆으로 던져버렸다.

    “으..으아악!”

    그 시체와 충돌한 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빠르게 뒤로 물러선다.

    무시했다.

    다시, 그 동남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4번 열차 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꿀꺽-

    침을 시원하게 삼킨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별게 없었다.

    스피커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난 뒤, 3번 열차칸에서 8명 정도가 서로 싸웠고, 그 싸움에 끼기 싫었던 그는 다른 열차칸으로 몸을 옮기려고 했다.

    하필이면 그 열차칸이 4번 열차칸이었고, 그 열차칸의 문을 열려던 그 순간. 무슨 ‘가스’같은 냄새를 맡았단다.

    그래서 잠깐 멈칫거렸던 그때, 갑작스럽게 4번 열차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휩쓸린 시련자들은 모조리 죽었고, 그것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던 그는 그 순간 공포고 나발이고, 일단 경악했단다.

    단 하나의 문으로 연결되어있었지만 폭발이 일어난 것과 동시에 4번 열차 자체가 마치, 그 자리에 원래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그것을 지켜본 그는 미친 듯이 반대쪽으로 도망쳤다.

    그 반대쪽이라는 게, 2번 열차칸이었으며 문을 열었더니 내가있었다...라는 이야기.

    이야기를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다.

    그러다 순간, 흠칫했다.

    이도 이 멍청한 새끼.

    가스. 폭발.

    정보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4번 열차칸에 타있던 이들의 국적은?”

    순간 동남아인이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뜬금없이 갑자기 뭔 개소리냐는, 그런 표정이다.

    “혹시 ‘이탈리아’였나?”

    내 말에 그가 흠칫하고 놀란다.

    마치,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이탈리아인. 가스. 폭발. 그리고, 2번 열차칸안의 이들이 내 기억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이유.

    이거다.

    내 머릿속에 불현 듯 한 남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페데리코 마키아벨리’

    놈은 통칭 F.M폭탄마라 불리던 싸이코중의 싸이코다.

    시련자라는 존재가 지구에 처음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이들은 몬스터를 사냥했지만 놈은 인간을 사냥했다.

    목적? 없었다.

    그저 사람을 죽이고 터트리는 게 좋단다.

    그의 수법은 단순하다.

    놈은 ‘발화’라는 고유 권능을 가진 시련자다.

    고유 권능,

    주인을 잘못 만난 재능은 거대한 재앙이 되었다.

    그놈의 수법은 단순하다.

    단순히 발화로 폭발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극의까지 깨우친 ‘가스 살포’라는 스킬을 이용해 그 중앙에 폭발을 일으킨다.

    가스 냄새를 맡는 순간, 도망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놈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이 없었고, 이 단순한 수법으로 놈은 무려 3845만 명이라는 숫자의 사람을 죽이고, 그에 비등하는 악명을 얻게 된다.

    그래. 그놈이다.

    그 새끼가. 이 열차 칸에 타있다.

    ‘악의 씨앗’중 하나. 이건 운명인가.

    죽일 놈이, 이렇게 알아서 나타나주다니.

    순간 내 앞에 있던 동남아인과, 주변에 있던 시련자들이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나를 보는 그 눈빛이, 괴물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문득, 손으로 입가를 더듬었다.

    말려 올라가있는 입 꼬리.

    나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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