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6화 (6/131)

6화. 이번에는 다르다.(5)

힐끗 고개를 돌렸다.

한태식,

그의 크게 떠진 눈안에는, 빛 한점 들어서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목도 꺾여있었으니,

죽은 게 확실하다.

죄책감?

그딴건 없었다.

나를 두 번(?)이나 죽인 놈인데 죄책감은 지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쩔줄몰라하는 김예원이 시야에 잡힌다.

와.. 대단하다.

연기가 수준급이네.

저 모습은 내가 아니라 다른 이가 봐도 가냘파 보이고, 연약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저벅저벅-

그녀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흠칫하고 놀란다.

아니...

”왜 놀라고 그래? 살다보면 실수하고 그러는 거지.“

그녀와 거리가 가까워진다.

동시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연약한 표정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뒤통수도 몇번 칠수도있고, 한태식처럼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 오빠 마음 약해지게 왜 그래?“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요..? 오지 마요.. 오빠, 정말 실수였다니까요..“

실수라..

”응 그래 실수. 내가 말했잖아 살다보면 실수도하고 그러는 거라고, 저기 한태식처럼 ‘불의의 사고’로 뒤질 수도 있는 거라니까? 응? 그런데 지금, 아이스 에로우는 왜 꺼냈어?“

그녀의 몸 주변에, 아이스 에로우가 떠있었다.

숫자는 정확히 3개.

그러니까.. 배신이고 모의고 나발이고, 이년도 한태식처럼 처음부터 모두를 속였던 거다.

분명 지입으로는 1개가 한계라더니..

푸ㅡ하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글 속에서 나도 모르게 초식동물 흉내를 내고 말았다.

나는 분명 야생동물인데.

그녀와의 거리는 5미터정도.

내 눈에 서린 단호함과, 내 멈추지 않는 걸음.

이내, 그녀의 가면이 벗겨졌다.

”이 개새끼!! 죽어!!“

3개의 얼음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지금껏 김예원을 경계하지 않았다.

왜?

저 얼음 화살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피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지금처럼.

고개를 숙이자 화살 하나가 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대로 몸을 틀었다.

트레이닝복 허리춤이 살짝 찢겨져나간다.

두 개의 화살을 피했다.

남은 하나,

방향은 정중앙.

내 명치를 노리고 날아온다.

그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오른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를 박찼다.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3개의 화살.

전부 피했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지고, 내가 그녀의 목을 움켜잡는 것까지. 그 과정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매끈하고 깔끔했다.

꽈아악-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내 팔을 툭툭 친다.

오해라고. 살려달라고. 이럴 생각 없었다고. 그 눈동자에 저 말 모두가 들어가 있다.

그 눈빛이 애처로웠지만 글쎄.

손아귀에 힘이 몰리고.

뚜둑-

그녀의 목이 꺾였다.

털썩-

멍한 눈의 김예원이 바닥에 쓰러지고 적막이 이어진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죽어있는 고블린들을 시작으로 목에 단검이 꽂힌 채 죽어있는 박철중.

그의 부릅 뜬 눈은 너무나도 공허했고, 쓰러져있음에도 압도적인 동체를 자랑하는 족장과 그 앞에 목이 기형적으로 꺾인 채 죽어있는 한태식.

그리고 눈앞에 애원하는 표정으로 죽어있는 김예원까지.

결국, 나 혼자 살아남았다.

피식-

죽어있는 한태식의 시체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대로 다가가 발로 놈의 면상을 한 번 더 밟았다.

내가 연쇄살인범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아니꼬웠던 걸까.

그런데···. 이젠 별 상관이 없네.

”프..프하하하하하“

아.. 미치겠다.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현실을 깨달았던 피터팬은 그 동안 자기가 멍청했다는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이건 또 다른 잔혹한 이야기다.

지구에서의 멸망보다 더 잔인하고 냉정한 이야기.

그 이야기속에 들어와있는 나는, 전보다 더욱 더 냉정해지고 잔혹해져야한다.

그 사실을 망각했다.

웃음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웃었다.

띠링!

[Tutorial #1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의 지위가 '시련 후보자'에서 '시련자'로 격상됩니다.]

[2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0초 뒤 Tutorial #2로 이동합니다.]

미치도록 웃다가 10초가 지났고, 무언가에 흡수되는 듯 내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고블린이 있었다.

동체 2m 크기의, 아까 보았던 족장.

놈이 분명했다.

띠링!

[Tutorial #2]

[당신은 시련자입니다.]

[고블린 족장과 1:1로 겨뤄 당신을 증명하십시오.]

[고블린 족장 0/1]

[보상 : 2000코인]

[제한 시간 : 없음]

[5분간의 대기 시간이 부여됩니다.]

괴로운 시련처럼 보이는 것이 뜻밖의 좋은 일일 때가 많다는 말이 있죠! 동료들과 힘을 합쳤던 과거는 이제부터 잊으세요! 당신은 시련자랍니다. 시련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를 뜻하죠. 당신은 스스로의 힘으로 족장을 죽이셔야해요! 힌트를 드리자면, 우선 무기를 선택하고 함정을 파보세요! 족장은 멍청하답니다!

5분간의 대기 시간이라..

다시 족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재생되던 동영상을 중지시킨 것처럼 멍하니 서있다.

주변에는 온갖 돌멩이들과 장검, 숏소드, 방패, 창. 할버드... 등등등.

온갖 무기가 즐비하다.

1:1로 겨루라고?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마침 잘됐네.

기분이 조금 꿀꿀했는데 조금 풀어야겠어.

나는 망설임 없이 구석에 있던 건틀렛을 집어 들었다.

재질은 강철로 되어 있는 건지, 꽤나 묵직하다.

팔에 끼우고 주먹을 한번 강하게 쥐어보았다.

꽈아악-

꽤나 만족스럽다.

다시 걸음을 옮겨 족장의 코앞에 섰다.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04:28]

그때 내 머릿속에 형님과 대화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튜토리얼#2였나? 고블린 족장이 나왔는데, 대기시간이 있더라고, 그냥 조용히 대기하다가 하도 지겨워서 2분정도 남겼을 때 주먹을 휘둘렀거든?

자세를 잡고, 오른 주먹을 그대로 휘둘렀다.

퍼어어억!!

족장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간다.

-그게 히든피스더라고, 그 남은 대기시간 안에 족장을 죽이면 남은 시간만큼 보너스 코인을 주더라.

띠링!

[대기 시간이 사라집니다.]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4분 26초 안에 족장을 죽이십시오.]

[보상 : 2000코인   남은 시간(초) X 10]

퀘스트가 갱신되는 것과 동시에 족장의 눈에 빛이 들어온다.

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그의 팔이 빛살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족장의 주먹이 스쳐지나간다.

빠르게 주먹을 내뻗었다.

뻐어억-

족장의 옆구리가 움푹 파이고 그의 균형이 무너진다.

한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족장의 눈이 빠르게 나를 훑는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왼팔을 들어 족장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족장의 눈에 당황이 서리고,

콰지지직-

내 반대쪽 팔꿈치가 족장의 안면을 강타했다.

튜토리얼#1을 진행할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힘 조절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으니까.

한 번 더 찍었다.

콰지지직!

“커헉-”

족장의 안면이 찌그러진다.

이내 팔을 올려 족장의 숱 없는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밑으로 내리는 것과 동시에 무릎을 들어올린다.

콰지지지지직-

무릎에 피와 살점이 묻어나온다.

신경 쓰지 않았다.

족장의 머리를 위로 올리고, 다시 아래로 잡아당겼다.

콰지지직-

내 무릎이 한 번 더 족장의 안면을 찍는다.

족장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망설임 없이 쥐고 있던 족장의 머리채를 놓았다.

반사적으로 족장의 머리가 위로 올려진다.

힘겹게 버티는 그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거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아.

눈이 풀린 족장의 안면을 향해, 이번에는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콰지직-

손아귀에서 느껴진다.

안면이 함몰되고, 뇌가 짓뭉개지는 그 감촉이.

그렇게..

털썩-

족장이 맥없이 쓰러졌다.

띠링!

[Tutorial #2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2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25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0초 뒤 ‘대기실’로 귀환합니다.]

[모든 Tutorial이 종료됩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잠깐 자아비판의 시간을 좀 가져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자신했지만 오히려 퇴보하다니.

이 얼마나 멍청하고 한심한가.

이유는 알고 있다. 아니 짐작하고 있었다.

4년차에서 5년차가 될 때쯤,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우애가 돈독했다.

정말로 돈독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상이 삭막해지고 멸망이 눈앞에 다가온다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악해진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악의 씨앗’은 모조리 척살하고 씨를 말린 상태였으니, 그런 ‘악’이 자리할 공간은 없었다.

남아있는 소수의 인류는 협동했고, 신뢰했으며. 서로를 위해 움직였다.

지구의 멸망과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물렁해진 것이.

그냥 잠깐의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자.

지금부터는 2년차.

정확히 2년차, 냉혈한이자 싸이코패스라 불리던 그때로 돌아가자.

머릿속에 낀 안개가 점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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