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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3화 (3/131)

3화. 이번에는 다르다.(2)

5마리의 고블린이 죽고나서부터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대기했다.

이 상황이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 걸까.

나를 제외한 세명의 시련 후보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쯧..

“일단.. 자리부터 옮기시죠.”

내 말에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이동했다.

한 40여 미터 정도?

머지않아 우리는 공터를 발견했고, 그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기로 합의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속에서, 나는 박철중에게 부탁했다.

이 바닥에, 강타 스킬을 사용해달라고.

그가 강타라는 시동어를 외치며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땅이 움푹움푹 파였다.

굴착기가 따로 없을 정도다.

정확히 다섯 번 정도를 사용하자, 그가 당황했다.

“스킬이.. 나가지 않아?”

엄밀히 말하면 스킬에는 횟수 제한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필요한 ‘마력’이 고갈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즉, 박철중의 마력은 강타를 다섯 번 정도 연달아 쓸 수 있을 정도다.

당황해하는 그에게 별거 아니라는 듯 답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 될 겁니다.”

“...”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경계하는 듯 한 모습이다.

에휴.. 나 말고 고블린을 경계해야지 이 사람아.

나는 걸음을 옮겼다.

다시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한태식이 붙잡는다.

“이.. 이봐? 어디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베이스캠프잖아요. 나뭇가지 구하러갑니다.”

한태식은 바보가 아닌듯했다.

땅을 판 것은 온도차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고, 그곳을 나뭇가지로 덮으면 확실히 잠을 잘 수는 있다.

그가 납득하는 표정을 지으며, 작게 웃는다.

“그럼, 저희도 돕겠습니다.”

“말 놓으세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 것 같은데.”

“...그럴까?”

이 미약한 경계심을 흩트리는 데에는 말 놓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지.

픽 웃고는 죽인 고블린에게서 가져온 단검으로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마치 수렵꾼처럼.

한태식은 김예원과 박철중을 따로 불러 그들과 정글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처럼 나뭇가지를 모아왔고, 눈치가 빠른 것인지 나뭇잎들도 구해왔다.

우리는 마치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처럼 텐트를 만들었고, 당연히 그 텐트를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평범하게’ 살아온 저들이 언제 이런 일을 해봤겠는가.

텐트를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와..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오빠 대단하시네요.”

“혹시 특전사...는 아니겠구나.”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이때의 나는 복싱 유망주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정지혁이라는 복싱 괴물의 밑에서 복싱을 배우다, 돌연 은퇴를 선언한 남자.

그게 나다.

그렇게 베이스캠프가 만들어졌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30분정도?

미약한 경계심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나는 납득했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들.

전부 살려야겠다고.

내가 알기로 1만 명의 실종자들 중에 ‘시련자’가 되어 지구로 돌아온 건 총 3000여명이다.

그들의 말과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시련 후보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시련자가 되어야 살아서 지구로 갈 수 있는 거고, 지구로 가서 ‘전쟁’을 해야 한다.

즉, 하나의 전력이 아쉬운 상황.

정말.. 할 게 많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걸까.

나는 최대한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고, 그들도 마음을 열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우리는 지구에서의 이야기를 주로 나누며, 주변을 경계했다.

박철중은 여전히 나를 경계했고, 김예원은 나한테 언제부턴가 오빠라 부르며 친근감을 과시했지만,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한태식, 검사 출신인 그는 내 생각보다 꽤나 괜찮은 남자였다.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구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했었나?

실소가 새어나온다.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면 거기는 예전의 지구가 아닐 텐데..

물론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희망이란 건,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거니까.

*

당연하게도 고블린이 습격 할 수도 있으니, 우리는 불침번을 정했다.

2인 1조, 박철중과 김예원, 그리고 나와 한태식.

나는 한태식과 모닥불을 가운데에 두고 주변을 경계했다.

묘한 침묵이 자리 잡는다.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내가 아는 시련에 대한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또 종합하고 끊임없이 살을 이어 붙였다.

당연하게도 모든 걸 기억 할 수는 없다.

거기다, 모든 걸 기억한다고해도 실제로 행동하는 건 ‘나’라는 주체.

즉, 내가 힘이 없다면 아는 정보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에 잠겼고, 한태식은 자기 나름대로의 무언가를 생각하는듯했다.

그 침묵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서로 아무 말도 안하던 그때.

“복싱은 왜 그만 둔 건지 물어봐도 될까?”

한태식이 침묵을 깼다.

고개를 돌리자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쑤셔 넣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쩝.. 복싱을 왜 그만뒀냐고?

“그냥요. 이러저러 일도 있었고.”

“아버지 때문에?”

벌렸던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 너 응원했었는데.”

“응원이요?”

“한국 최고의 복싱 유망주잖아? 거기다 그 ‘정지혁‘이 인정한 괴물이기도하고. 난 네가 언제 프로 데뷔하나 기다렸었거든.”

정지혁.

복싱 불모지였던 한국에 복싱 열풍을 불러일으킨 괴물중의 괴물이다.

라이트급으로 데뷔했고, 8개의 타이틀을 석권했으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진짜 괴물.

그의 복싱 성적은 아마추어 경기를 포함해 120전 120승 0무 0패 120KO. 더 놀라운 건 그는 120번의 경기 중 단 한 번도 상대와 1라운드를 넘어 간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괴물이라는 말로도 모자랐다.

그리고, 그는 시련자들중 가장 독보적이었으며 오로지 혼자서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도달했다.

실패하긴 했지만 그가 걸어온 길과 그의 업적은 그 어떤 시련자들보다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구에서 형님은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

마지막에 가서야 그 모든 의미가 사라지긴 했지만 하나 남은게 있었다.

바로 나라는 존재.

이내 내 입가에 뜻모를 미소가 피어오른다.

“과거보다 현재가 훨씬 중요하지 않습니까? 현재를 살아야지 과거를 살면 쓰나.”

한태식이 안타깝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내 어깨를 툭 쳤다.

“여기서 나가면, 내가 네 아버지 사건 한번 재조사해볼게.”

“...예?”

“나 연수원 43기거든. 모의 재판때 내가 변호사 역할 했었는데, 조금 미심쩍은 게 많더라고.”

미심쩍다라...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과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아버지의 후광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지구가 멸망 하기 전 그 진실을 밝혀 보고자 한 적도 있었다.

죽기 전에 정말로 아버지가 범죄자였는지. 아니면 누명을 쓴 건지,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무의미했다.

내가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을 때는 관련자가 모조리 죽고 난 뒤였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 모의재판, 결과는 어땠습니까?”

“판사는 무기 징역을 선고했는데.. 난 무죄를 주장했지.”

피식 웃고 말았다.

무죄를 주장했다라..

꽤나 재미있는 검사님이시네.

물끄러미 한태식을 바라보았다.

저 표정은 분명 진심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신뢰하지는 않았다.

신뢰라는 건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깨닫고, 또 그렇게 배웠으니까.

다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사선에서 같이 싸우면.. ’미약한 전우애’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시답잖은 생각이었다.

“우리 힘내자.”

그가 씩 웃는 그 순간.

띠링!

[당신의 고유 능력이 개화됩니다.]

[(?)가 ‘예지력‘으로 변화됩니다.]

그 알림음을 시작으로 눈앞이 훅 하고 꺼졌다.

적응이고 나발이고 손발로 허우적거리던 그때.

푸우욱-

순간 머릿속이 깜깜해지고, 가슴에서 거대한 고통이 느껴진다.

시발-

시야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내 명치를 꿰뚫고나온 단검이 보인다.

그리고 주변에는 나무와 수풀이 가득하다.

분명, ’정글‘이다.

아니, 방금 전까지 한태식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내가 잠깐 졸았나?

그리고 고블린들이 기습했고?

아니, 내가.. 내 감각이 그걸 못 잡아냈다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나랑 대화하고 있던 한태식은??

“이 시발새끼가..”

순간 고통이고 뭐고 전부 잊었다.

...뭐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내 주둥이에서 말이 튀어 나오고 있는 거지?

점점, 머릿속에 안개가 끼는 기분이다.

마치, 내가 ’나‘에게 빙의되어 감각만을 공유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때 내 뒤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어차피 세상 다 속고 속이는 거잖아? 속은 놈이 병신이지.”

영하 10도의 물로 아이스버킷을 한 느낌이다.

저 목소리.

분명 ‘한태식’ 목소리다.

‘나’가 말했다.

“미친 새끼... 언제부터냐? 처음부터냐?”

“당연히 처음부터지. 야 그리고, 혼자 다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네 명 이서 나눠?”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싸늘하게 웃고 있는 한태식이 보인다.

당황스럽다.

아니, 무언가 칼로 가슴을 헤집는 듯 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 느낌을 나는 안다.

‘배신’.

쿨럭-

나는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그때, 한태식이 내 머리맡에 쪼그려 앉더니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그는 정말로,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아니, 웃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연쇄살인마의 핏줄이라.. 후.. 볼 때부터 얼마나 구역질이 나던지. 니 앞에서 표정 연기하느라 이제 웃는 것도 힘들어졌어. 야 그리고 무죄? 지랄한다. 난 모의 재판때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역할이었고, 사형을 구형했거든. 무기징역? 사람 20명 죽인 연쇄살인마한테 무기징역이 가당키나 하냐? 어휴.. 하여간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더니 눈치도 더럽게 없어요. 쯧쯧-”

충격의 연속이다.

할 말을 찾지도 못했다.

이윽고 한태식이 쥐고 있던 단검으로 내 목을 내려찍었다.

화아아아악!!

그게 끝이었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마에 땀이 흥건하고 손이 축축하다.

내가 지금... 대체 뭘 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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