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를 한다는 건-2화 (2/131)

2화. 이번에는 다르다.(1)

흙냄새 비스무리한게 코를 훅 찌른다.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바닥을 짚었다.

질퍽하다.

질퍽한 흙을 짚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이었다.

내 키의 10배는 족히 넘을 거대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었고, 벌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현실감이 확 사라질 정도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보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와 빼빼 말랐지만 인상이 굉장히 좋은 남자, 그리고 내 또래로 보이는 평범한 여성, 총 3명이 나를 바라본다.

...이 사람들은 뭐지?

아니,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자네 혹시 기억나는 게 있는가?”

수염이 덥수룩한.. 그냥 남자1이라고 하자.

남자 1이 진지한 어조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옆에 있던 인상이 좋은 남자... 얘는 남자2 라고하자.

남자2가 끼어들었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퀘스트창이라고 한번 말해보세요.”

퀘스트창?

뜬금없이 갑자기 뭔 개소리야?

“자느라 못 들으신 것 같은데. 그냥 제 말대로 한번만 해보세요.”

이상하다.

퀘스트창이라면 분명 ‘시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던 길잡이일텐데...

“..‘퀘스트창’이요?”

말하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눈앞에 홀로그램창이 떠올랐으니까.

-

[Tutorial #1]

[당신은 10001번째 시련 후보자입니다.]

[‘정글’에 서식하는 고블린 무리를 처치하십시오.]

[고블린 0/50]

[고블린 족장 0/1]

[보상 : 시련자 자격 획득, (500코인)]

[제한 시간 : 없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하지만 적을 알기 전에 자신부터 알아야겠죠?

‘상태창’을 외쳐보세요.

-

망치로 머리를 쎄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운석에 맞기 전 무언가를 들었던 것 같다.

당황스럽다.

아니, 당황을 넘어 경악스럽다.

대체 이게 뭐지?

아니. 뭔지는 알고 있다.

내가 시련 후보자라고?

10001번째?

내가 알기로 시련 후보자는 총 1만 명이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죽었을 텐데?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남자2가 여유롭게 손짓했다.

마치 상태창을 외쳐 보라는 것 같은 손짓이다.

정신이 분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짧게 심호흡하고는 상태창을 외쳤다.

[이름 : 이도]

[칭호 : (?)]

[스킬 : (?)]

[능력치]

[힘 : LV 2]

[민첩 LV 3]

[지능 LV 2]

[체력 LV 3]

당황을 넘어 경악스럽다.

지금 나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우선.. 상황부터 정리해야할 것 같네요. 우리는 납치당한 것 같습니다.”

“시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저는.. 제가 왜... 여기에...”

남자 2를 시작으로 남자1 여자1이 혼잣말처럼 한마디씩 내뱉는다.

물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짝짝!

남자2가 박수를 치더니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그가, 나름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단 서로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는 서울 서부지검 형사 2부, 한태식 검사입니다.”

입고 있는 정장이 말끔하고 그 중간에 명찰 같은 걸 달고있어서 공무원인 줄 알았는데.. 검사였구나.

아 생각해보니 검사도 공무원이구나.

그렇게 한태식 검사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검사셨어? 큰 일 하실 양반이었네. 난 박철중이라고하네. 웹툰 작가지.”

“전 김예원이에요. 대학생이구요.”

그들의 소개를 들으며 내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세 명 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지금, 아니.. 오늘이 며칠입니까?”

뜬금없는 내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몰린다.

“..8월 15일입니다. 확실해요.”

한태식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져 있었다.

대체 뭘까.

나는 회귀를 한 걸까?

아니면 미래를 본걸까.

그것도 아니면 죽기 직전 환각을 보고 있는 걸까.

다시 상태창을 살폈다.

[당신은 10001번째 시련 후보자입니다.]

모르겠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복잡한 머릿속에도 주변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용히 고개를 들자 세명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뭐라고 했었지?

자기소개 하자고 했었나?

그런데,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저들의 시선과 몸짓으로 보아 내가 누군지, 내가 뭐하던 놈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도입니다. 군인..이 아니라 백수구요.”

내 말에,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진다.

...오랜만이다 이 엿 같은 분위기.

지옥이 된 지구에서 나는 시련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희망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건, 혹은 죽을 것이라고 확실시되던 상황에서도 나는 항상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니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런 엿 같은 시선들이 아닌 동경과 부러움이었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자 그때 한태식 검사가 여유롭게 손짓하며 말했다.

“일단... 서로 퀘스트창이랑 상태창 확인하셨죠?”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걸까.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기엔 설득성이 떨어집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현실이고 우리는 어떤 일에 휘말린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침착성이라니.

검사라더니, 어떤 상황에서건 침착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걸까.

“서로에 대해 조금 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서로 가지고 있는 ‘스킬’을 공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모두의 눈에 ‘경계심’이 서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패를 오픈하자는 저 말이 달갑게 다가올수는 없을 것이리라.

분명, 내가 들었던 ‘튜토리얼’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아니. 매우 똑같다.

그렇게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지려던 그때, 한태식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는 [진실 혹은 거짓 Lv1]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 확인해보니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먼저 패를 오픈하자, 나를 제외한 둘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각자의 스킬을 공개했다.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다.

저 남자의 뭘 믿고 그런 걸 오픈하지?

5년간 내가 살아온 지옥에서는 품속에 초코바만 가지고 있어도 살인나는 세상이었는데.

여러모로 신기하다.

여하튼, 김예원이라는 여자의 스킬은 [아이스 에로우 LV1]라는 스킬이었다.

직접 시연을 하는걸 보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경악했다.

눈앞에서 동그랗게 뭉친 물이 훅 하고 튀어나오더니 화살 모양을 갖추는데, 나처럼 여러 번 본게 아니라면 그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도 경악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박철중이라는 아저씨의 스킬은 [강타 LV1]였다.

그가 주먹으로 나무를 후려치니 그 거대한 나무가 부서질 듯이 흔들린다.

그들의 태도는 묘했다.

마치 청문회에서 나는 결백합니다 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겹쳐보일지경이다.

그렇게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공개했고, 지켜만 보고 있던 나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나는 다시 한 번 상태창을 확인해보고, 나도 조금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스킬이 없습니다.”

모두의 눈이 의심의 눈초리로 변하고, 동시에 한태식 검사에게로 시선이 옮겨진다.

마치,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그 스킬을 써 보라는 것 같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부의 적보다 무서운 건 없으니까요. [진실 혹은 거짓]”

그가 스킬 명을 외치자 내 머리 위에 기이한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그곳에 적혀있었다.

[진실]

이라고,

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태식과 김예원이 보인다.

박철중은 대놓고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슬슬 짜증나네.

뭐라고 한마디 하려던 그때.

“끼익! 끽!“

기이한 괴성이 울려 퍼지고,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 있었다.

초록색 피부에 1.2m크기의 체구, 그리고 비상식적으로 큰 면상에 그보다 더 비상식적으로 큰 눈깔.

”..저게 고블린인것같군.“

박철중이 자신 있다는 듯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강타]라는 비현실적인 힘을 시험해보고싶다는 그 안달감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그의 걸음은 두 걸음을 넘기지 못했다.

”끼익! 끽!“

”끽끽!!“

한 마리 인 줄 알았던 고블린이, 다섯 마리로 늘어났으니까.

”흐..흐윽...“

”....“

김예원은 아까부터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고, 박철중은 겁먹은 표정으로 뒤로 한걸음 물러섰으며, 한태식은 침착해 지려고 애쓰는지 왼팔로 자신의 오른 팔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확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직접 싸워보고 겪어보면 된다.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슬며시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는다.

동시에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

모든 게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고블린들의 손에 쥐어져있던 얇은 검붙이 3개가, 시간차를 두고 휘둘러진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살짝 트는 것으로 모든 공격을 피했다.

이어서 손을 내뻗었다.

터억-

공중에 떠있던 고블린 하나의 얼굴을 잡아챘다.

”끽?“

조금 무겁다.

무게는 20..아니, 30kg정도.

그대로 옆으로 집어던졌다.

퍼억-

날아가던 고블린이 한 마리의 고블린과 부딪히며 바닥에 쓰러진다.

그 자리에서 스텝을 밟으며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조금 뒤쪽에 있던 고블린과 최적의 거리가 만들어진다.

놈이 단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내가 주먹을 내지르는 게 더 빨랐다.

콰지직-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 더 걸음을 내디뎠다.

후웅-

뒤쪽으로 무언가 스쳐지나간다.

볼 필요도 없다.

단검이겠지.

그대로 몸을 돌리며 손등을 휘둘렀다.

퍼어억-

정확하게 고블린의 옆머리에 틀어박힌다.

띠링!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알림음은 무시했다.

”히야...“

뒤쪽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던 그때. 나는 뒤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터억-

등에 무언가 닿았다.

고블린이다.

옆을 힐끗 쳐다보니 목표를 잃은 고블린의 손과, 단검이 보인다.

그대로 놈의 팔을 잡아채고 몸을 굽혔다.

반동을 이용해 놈을 바닥에 처박았고, 이어서 발로 놈의 목을 내려찍었다.

콰지직-

띠링!

[힘이 1 상승합니다]

그 와중에 놈이 놓친 단검이 하늘로 솟구친다.

그대로 손을 뻗어 단검을 잡아챘다.

남은 고블린은 두 마리.

아까 내가 집어던진 놈과 그놈과 부딪친 놈이다.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푸우욱-

일어서려는 고블린의 목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살 가르는 섬뜩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뇌에 전달된다.

이런 건 내게 일상이었다.

일단 무시했다.

바로 다른 손을 뻗어 눈에 빛을 잃은 놈의 머리를 잡아채고 단검을 뽑아냈다.

푸슛하고 피가 치솟아 오른다.

쓰러져있던 고블린이 겁먹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못 한 듯하다.

그대로 단검을 역수로 꼬나 쥐고 가차 없이 내려찍었다.

놈의 심장을 향해서.

푸우욱-

4마리가 정리되었다.

그대로 단검을 뽑아냈다.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내게 옆머리를 얻어맞은 고블린이 기절한 것처럼 바닥에 쓰러져있다.

누가 봐도 죽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약하게 떨리는 놈의 손가락을 나는 놓치지않았다.

이런 식이다.

고블린은 교활하다.

자신들이 불리하다싶으면 죽은 척을 하기도하고, 방심한 인간들과 시련자들의 뒤통수를 친다.

수도 없이 보았고, 수도 없이 겪어보았다.

이제는.

당하지 않는다.

발로 단검을 쥐고 있던 놈의 팔을 밟고, 손에 쥐고 있던 단검으로 놈의 목을 찍었다.

푸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눈을 번쩍 뜬다.

그게 끝이었다.

놈의 눈에는 내가 비춰보였다.

항상 내가 거울 속에서 보던 그 모습이다.

살아남겠다는 의지와 몬스터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는 내 결심이 담긴 눈동자.

그렇게, 모든 고블린이 죽었다.

띠링!

[Tutorial #1이 갱신됩니다.]

[고블린 5/50]

[지능이 1 상승합니다.]

이제는 의심 할 여지조차 없다.

이건 현실이다.

나는, 시련 후보자가 되었고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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