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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한다는 건-1화 (1/131)

회귀를 한다는 건  © 넉울히

1화.  Prologue

세상에 정의는 없었다.

18살 때였다.

가정이 풍비박산났다.

나의 아버지가 연쇄 살인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날 부터 나는 연쇄 살인마의 아들이 되었다.

나는 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와 내 가족에게만 한정된 작은 현실 도피였을 뿐.

세상은 그런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세상은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당연하게도 나는 유명해졌다.

매우 안 좋은 쪽으로.

어딜 가든 연쇄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고 많은 사람들은 나를 배척했다.

그런 세상은 나와 남은 내 가족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2019년 8월 16일.

세상은 진짜 지옥으로 변했다.

게임 속에서나 나올법한 괴물들이 지구를 침공했고, 우리는 괴물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2019년 8월 17일. '시련자’라 불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킬이라는 비상식적인 힘으로 괴물들을 유린했다.

그들은 단숨에 영웅이 되었고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광은 얼마가지 못했다.

1년차에 전 지구의 50%에 해당하는 인류가 죽었으며 시련자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2년차에는 또 다시 남은 인류의 50%가 죽었으며 나의 남은 가족도 모두 죽었고, 남은 시련자는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3년차에는 인류의 반격이 이루어지나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악마들의 습격으로, 지구에 남은 인류의 숫자는 고작해야 천만명밖에 되지않았다.

4년차에는 생산 시설들은 물론, 인류가 만든 문명의 이기가 대부분 사라졌다.

그때, 살아 남았던 인류는 십만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5년차가 되었을 때, 지구의 모든것이 무너졌다.

지구에서 살아남아 숨쉬고 있던 '인간'은 단 둘이었다.

일반인이었던 나와, 신들조차 괴물이라 부르는 영웅 정지혁,

기적이었다.

고작해야 일반인에 불과했던 내가, 여태껏 살아남은 건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이도야.. 네가 시련자가 되었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정지혁의 넋두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자리해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지 마십시오 형님. 저는.. 그냥 자격이 되지 않았던 거니까.”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했지만 무리였나보다.

씁쓸한 내 표정이, 형님의 맑은 눈동자에 비춰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씁쓸했다.

지구에 재앙이 닥치기 전날인 2019년 8월 15일.

정확히 전 세계에서 총, 1만 명의 사람들이 일시 다발적으로 실종되었다.

눈앞에 있는 형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나는 형님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실종되었던 1만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시련 후보자'가 되었고 튜토리얼을 겪었으며,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시련자의 자격을 획득했다.

그렇게해서 3천명의 시련자가 탄생한 것이다.

내가 들은 형님의 이야기는 동화책보다 훨씬 잔인했고, 훨씬 흥미로웠다.

시련자의 자격을 획득한 과정과 그 이후에 일어난 본격적인 시련, 통칭 Episode라 불리는 수많은 시나리오의 이야기.

Episode #1부터, 오직, 형님만이 도달했고 형님만이 클리어 했던 #99까지.

그리고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다던 최종 시나리오 Episode. #100.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의 처절하고 암울한 이야기중 하나였다.

앞서 말했듯 나는 시련자가 되지못했다.

처음에는 세상을 원망했다.

대체 왜 나는 시련자가 되지못했던 거지?

내가 뭐가 부족했기에?

시련자도 아니었던 나는, 이렇게 세상의 끝까지 살아남았는데.

대체 왜 나는?

후회하고 원망해봐야 남는 것은 없었다.

나와 형님은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쿠구구궁-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름, 넓이. 부피, 그런걸 생각할 여유는 물론, 그냥 생각 자체가 무의미했다.

"저 '개년'이... 아무리 판타지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대기가 따갑다.

지표면이 박살나고 하늘이 무너져내린다.

달 정도의 크기일까.

아니, 그 보다 큰 것 같다.

지구의 자기장이 변하지 않는걸로보아 지구보다는 작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와 형님은, 이 순간 확실한 죽음을 직감했다.

“형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피식-

“그래, 너도 고생 많았다.”

대화는 불필요했다.

이어질 이야기도 없었다.

이미,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앙-

그게 끝이었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세상은 그게 끝이었다.

암전된 세상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띠링!

[당신은 시련 후보자입니다.]

[Tutorial #1을 시작합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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