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97화 (완결) (197/197)

197 클리어(3)

그림자의 세계로 숨어든 영수는 빠르게 적진의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실제 세계와 그림자 너머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그림자의 세계에서는 전체의 그림을 보기가 좋았고, 마치 위성지도를 사용하듯이 마음대로 시야를 넓혔다가 줄일 수도 있었다.

그는 산성 물질이 주입되고 있는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다.

“적진 후방에 저런 움직이는 공장이 존재하고 있었을 줄이야.”

몬스터들은 행성 내부에 쌓여 있는 산성 물질을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녹여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몬스터들을 따로 진화시키고 키워서 움직이는 공장을 만들어 후방 지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수는 일단 산성 물질을 끌어오는 혈관부터 차단하기로 했다.

두근, 두근……!

마치 행성 바닥을 혈관처럼 연결시켜 놓은 혈관을 찾아가서 그 그림자에 타격을 입혔다.

서걱!

그러자 행성의 내부에서부터 장기가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위장에 위산이 가득 찬 상태로 위벽이 뚫려서 장기가 상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다만 그 위산이 모든 것을 녹일 정도로 강력하다고나 할까?

-끼에에에에엑!

행성에 강력한 진동이 느껴진다. 12개의 코어를 비롯한 연결체 모두에게 고통이 분담되는 것이었다.

영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산성 물질 공장을 타격하러 올라갔다.

산성 물질을 만드는 공장은 마치 개구리처럼 생겼는데, 거대한 공기주머니를 이용해서 산성 물질을 빨아들여 살로 이뤄진 산성 폭탄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생명을 거둬 주마!”

영수는 대검을 휘둘러 산성 물질 공장들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 버렸다.

서걱!

그러자 바닥으로 산성 물질이 퍼지면서 산성 폭탄을 발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압축대포에 대미지가 가해졌다.

압축대포는 화산의 분화구처럼 생긴 단단한 주둥이에 포탄을 장전한 후에 일종의 메탄가스로 만들어진 추진제를 통해 포탄을 쏘아 올렸다.

그런 가스 압력이 가해지는 압축대포에 산성 물질이 닿자, 녀석들은 미친 듯이 괴로워하며 사방으로 메탄가스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가스가 얼마나 압축되었으면,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주변이 초토화될 정도였다.

“……오호, 그래! 가스를 이용하면 되겠구나!”

영수는 광대역 무전기를 이용해서 본진에 연락을 취했다.

가스가 분출되고 있고, 그 안에 라이터를 집어 던져서 사방에 폭발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었다.

-잘못하면 영수 씨까지 다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림자 안으로 숨으면 됩니다. 아무리 폭발이 강력해도 지하 깊숙한 곳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겠죠.”

-아아, 그건 그래요!

“그럼 시작합니다!”

영수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 놓고 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냈다.

스파크 한 번만 튀어도 폭발할 것이 분명한 놈들의 소굴에 그는 미련 없이 불을 댕겼다.

치칙, 화르르륵!

“잘 가라, 이 괴물들아!”

라이터를 집어 던지는 순간, 메탄가스 배출구에 불이 붙었다.

그 즉시 영수는 그림자 안으로 숨어들었고, 최대한 지하로 숨어든 후에 본진을 향해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메탄가스에 불이 옮겨붙었고 몬스터들의 장기는 물론이고 행성의 혈관까지 죄다 불에 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영수 씨, 폭발이 일어나려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빨리!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

그림자의 속도가 더 빠를 것이냐, 폭발의 화염이 더 빠를 것이냐의 대결이었다.

만약 여기서 그림자가 진다면 영수는 그대로 객사하는 팔자가 될 수도 있었다. 허나 영수의 신형은 불길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파앗!

“허억, 허억! 죽는 줄 알았네!”

“자, 그럼 다들 꽉 잡아요!”

태하에게서 강화 버프를 받은 희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너지 스킬을 방어막에 집중시켰다.

쿠르르릉, 콰아앙!

행성을 부술 듯한 폭발이 일어났고, 희란은 있는 힘을 다해서 동료들을 보호했다.

화염이 끝도 없이 희란의 방어막을 두드렸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화르르르륵……!

“……거의 헬파이어 수준인데요?”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요?!”

방어막만으로 버티기엔 화염의 크기와 압력이 너무 강했다. 행성 전체를 메탄가스가 꽉 채우고 있었으니, 폭발이 일어나면 대기권까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아니던가.

바로 그때, 드래곤들이 머리를 짜냈다.

“아 참, 정령들! 비를 내리면 되잖아요?”

-아하, 그래! 주인, 비를 내려도 되겠나?

정령들의 질문에 빅토리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일 시간도 아까워!”

-그럼 시작한다!

대자연의 정령들은 즉시 메탄가스 위로 먹구름을 만들어 낸 후, 그 안으로 습기를 마구 주입해서 비가 내리도록 했다.

우르르릉, 콰앙!

그야말로 순식간에 주변을 장마철로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비가 내리자, 메탄가스도 점점 사그라졌고 불길도 멎었다.

슬슬 진지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살펴보는 동료들.

“끝난 것 같죠?”

“……그나저나 악취가 말도 못 하겠네.”

“대장, 정신 개조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태하는 슬그머니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클리어!”

***

아이든 행성을 장악한 태하는 포털의 사용권을 되찾았다.

그는 아이든 행성의 몬스터들을 이용해서 타 차원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콰아앙!

대자연의 정령들과 함께 차원 ‘미테란’을 공격한 태하는 안 그래도 마침 지구 침공을 준비하고 있던 그들의 문명을 있는 대로 짓밟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막아라! 밀리면 다 죽는다!”

“대장님, 산성 물질이 비처럼 내립니다! 이대로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제기랄!”

미테란은 고도화된 마법을 바탕으로 발전했고, 과학보다는 마법이 더 발달한 문명이었다.

이런 문명이기에 더 이상의 과학은 기대하기 힘들었고 딱 지구의 중세 시대와 비슷한 수준에서 태하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테란의 방어 총사령관의 앞에 나타난 태하.

파앗!

“허, 허억!”

“나는 지구에서 온 바벨탑의 수호자다. 여기서 침공의 의지를 접고 포털의 사용 권한을 우리에게 넘긴다면 멸망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정녕 학살자들이란 말인가! 어째서 이 행성 전체를 무너뜨리려 한단 말이냐!”

“너희들이 지구를 침공해서 바벨탑이 흔들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산성비가 내려서 병사들은 물론이고 시민들까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만약 제대로 된 정신을 가졌다면 더 이상 침공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방어 총사령관은 태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졌다.”

“포털의 사용 권한은?”

그는 자신의 속주머니에서 붉은색 크리스털을 꺼내어 태하에게 건네주었다.

태하의 곁에 있던 아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맞아요! 이게 확실해요.”

“그럼 이만 돌아갑시다.”

포털의 사용 권한을 손에 거머쥐자마자 돌아서는 태하.

솨아아아아!

그가 돌아가자마자 미테란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푸른색 비가 내렸다.

이 푸른 비는 산성 물질로 얼룩졌던 미테란의 모든 것을 정화해 주었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람들은 이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대장님! 살았습니다! 이제 도시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빌어먹을, 완벽하게 졌다.”

끝까지 깔끔한 침공. 미테란은 태하에게 완벽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

제5바벨탑 점령 이후, 총 55개의 차원을 침공하여 포털 사용 권한을 회수한 태하는 바벨탑을 완벽히 봉인해 버렸다.

이제 바벨탑은 1층에서부터 3층까지 탐험을 통해서만 코어를 얻을 수 있었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행위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이계의 통로로 지목되었던 샌드타워는 이제 포털이 닫힘으로 인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곳에는 과거 이계에서 넘어와 지금까지 쌓여 있던 수많은 광물들이 존재했으므로 탐험가들의 성지가 될 것이었다.

이른 아침, 태하가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에 등장했다.

찰칵, 찰칵!

제네시스는 지금까지 수많은 불법 행위를 저지른 파이어볼과 그 산하기관들을 일망타진하여 국제사법재판소로 보냈다.

기자들은 제네시스와 합작하여 임무를 수행한 국제헌터연맹의 맹주 태하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맹주님! 앞으로 파이어볼은 어떻게 됩니까?!”

“펀드는 해체될 것이고 그 재산은 몰수해서 국제사회복지재단에 귀속될 것입니다. 유엔과 각 국가에서 운용되는 사회복지재단에서는 결식아동이나 사회 약자들을 위해서 출자할 것이고, 더 이상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던전을 봉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탐사를 허가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제 태하가 바벨탑과 관련되어 있고, 그 중심 세력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태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성의껏 답을 해 주었다.

“우리는 지구를 아름답고 푸르게 가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연 친화적인 에너지원을 값싸게 조달할 필요가 생겼죠. 해서 우리는 석탄이나 석유, 혹은 원자력과 같은 제한적인 발전 방식 말고 마정석이라는 대체 코어를 민간에 공급하기로 한 겁니다.”

바벨탑의 위치를 바꿔서 마정석을 1층부터 3층까지 포진시킨 태하는 보름에 한 번씩 마정석이 리젠되도록 했다. 또한, 마정석의 위치를 매번 바꿔 줌으로써 일정한 메타의 구성도 최대한 배제했다.

또한, 대기업 독점 방식의 에너지 배분을 완전 봉쇄하고 민간이 최대한 자율적으로 싸고 간편하게 마정석을 채취하도록 한 것이었다.

태하의 이런 숭고한 뜻은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었고, 앞으로 지구는 훨씬 더 희망적인 행성이 될 것이었다.

***

태평양 한복판.

솨아아아아……!

수평선을 따라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탐사용 항공모함의 갑판에 선 태하.

그런 그의 뒤로 은은한 은발의 소녀가 다가왔다.

“아빠! 엄마가 밥 먹으래요!”

“음, 그래. 금방 간다고 전해 줘.”

“그나저나 아까부터 뭘 그렇게 보고 있었어요?”

하프드래곤이자 태하의 딸 유리나는 며칠 전부터 계속 갑판에만 서 있는 아빠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올해로 열세 살이 된 유리나는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동적인 아이다.

태하는 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자, 유리나. 잘 봐.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아래에 뭔가 보이지 않니?”

“뭐가 보이는데요?”

“수면 아래를 잘 봐. 뭔가 일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니?”

“……수면 아래?”

태하는 태평양 아래에 뭔가 거대한 바위 같은 것이 운집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바위들은 전부 정사각형에 완벽한 직각으로 잘려 있었고 거대한 길을 따라서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신룡의 딸이자 바벨탑의 수호자의 후계자인 유리나는 인간을 초월하는 시야를 가지고 있었기에 태하와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어?! 정말로 있네?!”

“이제부터 아빠는 저 아래를 탐사할까 해. 드래곤들과 함께 내려가서 저 아래에 대체 뭐가 있는지 알아보려는 거지.”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돼요?!”

두 눈을 반짝이는 유리나. 허나 태하는 딸의 동행을 쉽게 허락하지는 않았다.

육아는 전적으로 유리아의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사정을 말하고 허락을 받으렴. 이 아빠는 그에 대해선 힘이 없어.”

“……엄마는 아빠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데, 어째서 아빠가 힘이 없어요?”

“그런 주종 관계와 부부 관계는 엄연히 달라. 애초에 우리는 너를 낳을 때 그렇게 약속을 했단다. 나는 아이를 낳는 데 일조하고 너를 딸로서 아낄 수는 있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 너를 교육하는 데 관여할 수 없다고 말이야.”

“끄응.”

“어서 내려가서 동생들이랑 밥부터 먹자.”

태하는 유리나에 이어서 무려 1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았다.

유리아는 살면서 앞으로 20명의 아이들을 더 낳을 것이라고 했는데, 태하는 그에 대해서 별 불만이 없었다.

그녀는 슈퍼우먼이고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기에 얼마든 아이를 낳아도 책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태하 역시 적어도 천 년은 살아갈 것이기에 가문을 건사할 능력이 있었고 말이다.

유리나와 함께 선실 식당으로 내려온 태하는 12명의 딸들과 마주했다.

“와아, 아빠다!”

“그래, 우리 공주님들! 밥 먹자!”

신룡과 아이를 낳은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아이를 낳아도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허나 태하는 자식이 아들이든 딸이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에게 성별은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식으로 이뤄진 밥상 앞에 앉자, 딸들의 수다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아빠! 어제 열째가 3대 1,200을 찍었대요!”

“흠, 그래? 조금 더 정진해야겠구나.”

이 집안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돌이 되면 뛰어다닌다. 드래곤의 혈통에 태하의 무지막지한 유전자가 섞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들은 걸음마를 배울 때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를 먼저 배우는 집안이기 때문에 아무리 딸들이라도 단련은 필수 항목이 된다.

이것은 태하가 정한 것이 아니라 유리아가 정한 전통이었다.

앞으로 이 집안은 가장을 따라서 모두 헬창이 될 것이다.

‘뿌듯하군. 헬창 가문이라니.’

딸이 30명이 태어나든 40명이 태어나든 상관없다.

가족과 함께 헬창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면야, 무슨 상관이겠는가?

“얘들아! 밥 먹고 데드리프트 하러 갈까?”

“네에!”

태하는 신룡과 아이들을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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